패션 사진의 아이콘 | 엘르코리아 (ELLE KOREA)

20기 패션 사진의 아이콘들과의 인터뷰 |

1. Iriving penn1985년 봄이었다. 뉴욕에서 활동한 지 1년쯤 지났을 무렵, 어느 화창한 일요일 아침에 나는 드디어 결심을 굳혔다. 초라하기 짝이 없는 내 포트폴리오를 들고 5번가에 있는 어빙 펜의 스튜디오의 문을 두드려보기로 결정한 거다. 어시스턴트에게 포트폴리오를 맡기고 도망치듯 그곳을 나왔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날 오후, 한 여자가 전화해서는 어빙 펜이 나를 보고 싶어 한다는 게 아닌가. 어빙 펜은 내 포트폴리오가 썩 훌륭하진 않지만 잠재력이 있다고 본 것 같다. 광고 작업을 같이해 보자고 했다. 앤디 맥도웰이 모델로 결정된 로레알의 F/W 캠페인이었다. 어빙 펜이 스타일리스트로 나를 지목하자 로레알에선 의상을 구해올 경비를 지급함과 동시에 온갖 주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무슨 색이 어떻게 잘 보여야 하고 그러려면 어떤 깃털과 어떤 스카프가 필요하고 어쩌고저쩌고. 나는 몹시 당황스러웠지만 결국 전부 구해왔다. 도마뱀가죽에서 뱀가죽에 이르기까지 모든 재질과 컬러별로, 장갑이란 장갑은 전부. 깃털도 마찬가지였다. 100개의 스카프와 50개의 톱을 구하고도 리스트는 끝이 없었다. 모두 어빙 펜을 위한 거였다. 촬영 전날, 어빙 펜은 스타일리스트로부터 프레젠테이션을 받곤 했다. 내가 준비해간 걸 전부 펼치면 그가 에이전시 사람들과 클라이언트와 함께 어떤 걸 촬영에 쓸지 골라내는 식이었다. 당연히 몹시 긴장했다. 그래서 꽤 유명한 사진가이자 친한 친구였던 빌 킹(Bill King)에게 은밀하게 충고를 구했다. 그때 빌이 해준 말을 나는 절대 잊을 수 없었다. “천재와 일할 땐 말야, 꼭 그가 말하는 걸 놓치지 말고 들어야 해. 만약 그가 빨간 가방이 필요하다고 말하면, 꼭 빨간 가방이어야 하는 거지. 그게 바로 천재와 보통 사람들과의 차이지. 어빙 펜이라면 당연히 몹시 정확한 비전을 가지고 있을 거고 절대 자기 생각을 바꾸진 않을 거라니깐.” 마침내 프레젠테이션을 하기로 한 오후, 소품과 의상이 잔뜩 쌓여 있는 트럭에서 어빙 펜은 초록색 도마뱀가죽 글러브 하나와 자주색 글러브 하나를 골랐다. 그리곤 내 가슴을 총알처럼 꿰뚫는 한 마디를 던졌다. “이 두 컬러의 도마뱀가죽 글러브에 도마뱀가죽 베레를 매치하고 싶은데….” 이미 시간은 오후 여섯 시였다. 촬영은 바로 다음날 아침 아홉 시에 정확하게 시작할 텐데. 나는 곧장 스튜디오를 뛰쳐나갔다. 그리고 택시를 잡아타고선 전문가인 나오미에게 갔다. 꼭 퇴근 전에 만나 그녀가 초록색과 자주색 도마뱀가죽을 구입하는 걸 봐야만 했으니까. 물론 모든 마켓은 6시에 문을 닫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날 새벽 2시까지 내가 그녀 옆자리에 앉아 내내 기다리는 동안, 그녀는 그 장갑을 만들어냈다. 다음날 아침, 모델인 앤디의 메이크업과 헤어가 끝나자 나는 그녀에게 도마뱀가죽 재킷을 입히고 베레를 씌운 뒤, 양팔에 따끈따끈하게 만들어진 두 가지 컬러의 도마뱀가죽 글러브를 끼웠다. 어빙 펜은 앤디를 조명 앞에 세우더니 내가 만든 ‘깃털 테이블’로 왔다. 그리고선 테이블 위의 온갖 종류의 깃털들을 꼼꼼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나는 그의 뒤에 서 있다가 화려한 컬러들이 멋지게 엉켜 있는 공작새 깃털을 하나 뽑아서 그에게 보여줬다. 그가 말했다. “아, 이거야! 이 공작새 깃털은 완벽해! 자, 이제 이걸 그녀의 눈앞에 놓이도록 해보자고.” 나는 조명 아래 앉아 있는 앤디 쪽으로 가서는 카메라 앵글의 바깥쪽에서 깃털 한아름을 앤디의 앞쪽으로 늘어뜨리며 서 있었다. 어빙 펜은 말했다. “그래! 바로 그렇게!” 그러더니 클릭! 그는 정확히 딱 한 프레임의 사진을 찍더니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자, 이제부터 휴식 시간이야. 점심 먹고 나서 다시 촬영을 할 텐데 네가 딱 방금 찍었던 사진과 똑같이 깃털들의 위치를 잡아줬으면 좋겠어.” 나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치만, 그치만, 방금 했던 거랑 똑같이 깃털들이 모두 다 정확한 위치에 떨어지리란 보장은 없는데요” 그는 부드럽게 나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반드시 정확히 똑같아야 한다고. 자, 넌 할 수 있을 거야.” 음, 그날 내가 점심을 먹을 수 있으리란 생각은 애당초 하지도 않았지만 어쨌든 사진이 나오긴 했고, 어빙 펜은 나를 다음 로레알 광고에 다시 쓸 만큼 마음에 들어 했다. 얼마 후, 어빙 펜은 전화를 걸어 나를 불러내더니 로레알의 관계자들이 모두 있는 앞에서 말했다. “내게 좋은 생각이 있어. 네가 서너 개의 울새(Robin) 알과 진짜 둥지를 구해오면 그걸 다음 광고 때 앤디의 머리 위에 얹는 거야! 아주 멋진 생각이지 않아?” 오 마이 갓! 이미 식은땀을 흘리며 나는 감히 그에게 말했다. “저, 울새는 지금 멸종 위기라서 정부에서 특별히 보호하는데요. 알이든 둥지든 주에서 주로 이동하는 것만 해도 범법행위라고요.” 하지만 그는 결코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미팅이 끝난 후, 그는 나를 사무실로 데려가 말했다. “제인, 잘 들어. 나는 어빙 펜이라고. 이제부터 내가 울새의 알과 울새의 둥지라고 하면, 그런 거야. 응? 알아듣겠어, 제인? 나는 너희 스타일리스트들을 잘 알아. 아마도 넌 메추라기 알을 좀 가져다 색칠하면 된다고 생각하겠지. 근데 아니야, 제인! 울새 알과 울새 둥지라고!” 나는 내가 아는 모든 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뉴햄프셔 주에서 유타 주까지 모든 주의 담당자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유타 주의 한 전시장에 울새의 알과 둥지가 있다는 걸 알아냈다. 나는 그들에게 편지를 썼다. 어빙 펜이라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사진가가 오직 딱 하루만 촬영을 위해 그걸 사용하고 싶어 한다고. 마침내 나를 불쌍히 여기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는 딱 하루라면 빌려갈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정말 얼마나 안심이 됐는지. 그런데 촬영을 얼마 앞두지 않은 어느 날, 그 담당자가 전화를 걸어선 말했다. “한 가지 알아둘 게 있는데 울새는 멸종 위기의 생물이라 유타 주 밖으로 옮기는 건 금지돼 있어요.” “뭐라구요?” “아, 그러니까, 비행기를 태워 뉴욕으로 옮기는 건 불가능하다고요.” “음, 그럼 제가 대체 어떻게 유타 주에서 촬영을 하죠? 어빙 펜의 스튜디오는 뉴욕이라구요!!” “아, 음, 어쩌죠, 어쨌든, 법이니까. 안 되는 건 안 된다고요.” “오케이, 그럼 내가 유타 주로 누군가를 보내서 비행기 안에서 그녀의 무릎 위에 고스란히 지키도록 하면 어때요?” “아, 안 된다고요! 안 돼요! 옮기는 사람이 있던 없던 그 알들을 비행기에 태우는 건 안 된다고요. 그게 법이라고요! 아가씨!!!” 긴 이야길 줄여 말하면, 나는 뉴욕에서 유타 주까지 운전사가 딸린 리무진을 보내 알과 둥지를 다시 뉴욕으로 옮겨왔다. 그리곤 촬영이 끝날 때까지 스튜디오 앞에서 대기하던 리무진에 다시 고스란히 실어 유타 주로 돌려보냈다. 유타 주와 뉴욕의 거리가 약 3천마일쯤 된다는 건 다들 알 거다. 그렇게 울새 알 세 개와 둥지를 앤디의 헝클어진 머리 위에 얹은 사진이 완성됐다. 아, 돌발 위기가 하나 더 있었다. 촬영 날 아침 스튜디오에 알들을 가지고 가자, 어빙 펜의 당시 어시스턴트였던 제시 폼이 울시 알을 꺼내서 3차원으로 보이도록 강조하려고 아주 작은 파란 압정들을 놓기 시작한 거다. 나는 소리를 질렀다. “안 돼! 제시, 그러다 알 깨뜨리겠어요!!” 제시는 걱정 말라며 나를 안심시키려 했지만 결과적으론 알 껍질 하나에 머리카락 굵기 정도의 얇은 틈이 생겼다. 물론 나는 제시를 죽이고 싶었다. 유타 주의 담당자는 내게 격노했다. 엄청난 벌금을 매기겠다고 협박하면서 감옥에 집어넣겠다고 했다. 나는 어빙 펜의 스튜디오로 가서 이 모든 상황을 설명하면서 만약 그들이 손상된 알에 대해 어떤 문제를 제기하면 스튜디오가 해결해야 할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어빙 펜에게 달려가 이야기했다. “오, 미스터 펜! 제가 엄청난 벌금을 내지 ㅇ낳으면 그 울새 사람들이 저를 감옥에 보내겠대요. 도와주세요!” 그러자 그가 차분히 말했다. “걱정 마. 우리가 해결할게.” 그는 결국 어빙 펜이었다. 나는 그후 유타 주의 담당자들에게 그 어떤 불평도 듣지 못했다. 2. SARAH MOON요즘 사진 작업을 예전과 비교해 본다면?70~80년대에 비해 사공이 많다. 가로?세로 방향은 각각 몇 컷씩 찍을지, 어떤 순서로 할지, 어떤 아이템이 잘 보여야 하는지 등이 모두 미리 의논되고 그대로 따라야하잖아. 패션은 결국 팀 작업이니까 촬영을 시작하기 전에는 누구의 얘기라도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촬영이 시작되면 딱 사진가의 시간이다. 사진가 스스로 내면의 감정을 따라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번엔 프라다가 잘 보여야 하고, 이번엔 구찌를 걸쳐야 하는 식이 되면 작업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70년대 촬영장 얘기를 좀 더 해달라.좀 더 크리에이티브한 작업이 가능했다. 지금은 광고가 제일 중요하지만 광고를 의식해야 하는 부담이 적었으니까. 당시엔 1인 다역을 해야 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지금처럼 헤어 스타일리스트,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당연시되지 않았다. 특히 헤어 스타일리스트가 없는 촬영이 더 많았다. 모델이 직접 머리를 만져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였지.어쨌든 최근의 추세를 따르는 편?아니. 당연히 내게도 그런 걸 바라는 경우들이야 있지. 이럴 땐 경력이 오래돼서 좋은 것 같다. 굳이 그런 말을 따르지 않아도 되는, 일종의 특권을 가져도 되잖아. 그만큼 작업이 더 편해지는지?아니다. 사진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힘들다. 초반에는 일에 적응하고 작업하는 것들이 힘들었다. 지금은 그런 부분은 수월하지. 하지만 자신에게 점점 더 많은 걸 기대하고 원하게 된다. 스스로의 기대치 때문에 어렵다. 유난히 워커홀릭처럼 일했던 시기는?딱히 꼽을 수 없다. 지금이나 예전이나 일에 대한 태도는 마찬가지다. 음, 커리어 초반에는 참 안달복달 했다. 그런데 지금도 어떤 면에 있어서는 여전히 그렇다. 1972년에 남자 사진가들이 줄곧 맡아왔던 ‘피렐리’ 달력을 촬영하면서 화제가 된 것으로 알고 있다. 여자 사진가 숫자 자체가 적었던 당시의 상황이 활동하는 데 어떻게 작용했는지?차별이나 어려움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유리했고 이득이 더 많았다. 아니, 이건 꼭 여자였기 때문은 아니다. 모델에서 출발한 게 큰 도움이 됐다. 당시 활동하던 스타일리스트, 광고 디렉터, 잡지 에디터 등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잖아. 이미 네트워킹이 돼 있고, 업계 비즈니스를 알고 있었으니까.모델에서 사진가로 진로를 바꾼 이유는?사진가인 친구가 “작업 한번 해볼래?”라고 묻더라. 그리고는 라는 주간지를 소개해줬다. 프랑스 주간지들이 그러하듯이 정치?사회적인 얘기도 다루고, 패션을 다루는 페이지도 있었다. 여기서 1페이지를 맡아서 진행했다. 이때의 경험이 재미있었고, 거기서부터 계속 잘 연결이 돼서 사진을 계속 했다.90년대 이후로 영화 작업도 병행하고 있는데….처음부터 영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지만 우연히 을 만들 기회가 왔다. 크리에이터 입장에서 사진과 영화는 서로 넘나들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영화를 통해 사진에 대한 이해가 커졌고, 또 사진을 통해서도 마찬가지다. 좋은 사진을 만드는 데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은?같이 일하는 사람들끼리의 조화, 모델, 조명, 앵글 안에서의 컴포지션. 작업에 따라 순위가 바뀔 수 있지만 대개 이들은 나열된 순서대로 중요하다. 계속 팀워크를 강조하는데 스태프 구성 역시 직접 하는 걸 선호하는지?물론이다. 예민하고 섬세한 작업이잖아. 내 입장에서 편한 사람들과 같이 일하고 싶은 게 당연하다. 아, 이 부분도 지금은 거의 담당 에디터나 클라이언트가 세팅해서 오지. 이미 그렇게 세팅된 스태프들과 일을 해야 한다면?일하는 동안에는 모두를 좋아해야 한다. 별 수 있어? 하하.예전 인터뷰들을 보면 모델도 꼭 직접 정한다던데….맞다. 그래서 같이 일하는 모델들이 매우 소수로 한정돼 있다. 어쨌든 카메라 앵글 안에서는 모델이 해줘야 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다. 여러 곳에서 영감을 얻지만 모델에게서 받는 영감도 큰 부분이다. 자신이 하고 있는 작업을, 입고 있는 옷을, 얼굴에 한 메이크업을, 잘 이해해야 하고.당신의 뮤즈라 부를 만한 모델은?시간에 따라 변해왔다. 최근에는 콜 킹가라는 폴란드 모델. 그녀는 사진 작업을 잘 이해한다.지금도 잡지와 작업할 의향이 있는지?물론! 내게 자유가 주어진다면! 프랑스 아카이브를 보면 당신 사진이 참 많다. 와 일한 경험을 떠올려 본다면?패션 사진을 참 많이 찍었지. 요지 야마모토를 위한 작업도 같이했고, 또 러시아까지 가서 촬영했던 기억도 난다. 에디터들과도 친하게 어울렸다. 몇몇은 지금까지도 친구로 지낸다. 대부분 은퇴했고, 아, 가만 있어봐… 미셸 피투시(Michele Fitoussi)는 아직 있지. 는 콘텐츠를 다루거나 비주얼을 만드는 데 있어서 자유로운 편이다. 그래픽적으로는 좀 약한 부분도 있었는데 지금은 또 다르겠지, 뭐.한 업계에 오래 있으면 그 안에서만 네트워킹을 하거나 언젠가는 아예 외부 사람들만 보게 될 것 같다. 어느 쪽인지?지금 와서 보면 패션계에서 같이 어울려다니는 사람은 별로 없다. 10 꼬르소 꼬모의 디렉터인 카를라 소차니, 디자이너 아제딘 알라이야 정도. 둘은 워낙 오래된 친구들이다. 뉴 페이스들과는 관계가 잘 없다. 젊은 사진가들 중에서 좀 주목해서 보는 사람이 있는지?팀 워커(Tim Walker)! 앗, 그의 사진에서 살짝 당신 영향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는 유화의 느낌보다는 수채화에 더 가깝지만 어쨌든 꿈 같고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사진이잖아.음, 그런가? 내 영향을 받았는지는 모르지. 직접적으로 교류한 적은 없다. 어쨌든 그의 사진은 굉장히 창조적이다. 요즘처럼 자신의 개성을 창조하기 힘든 시대에서도. 11월 29일까지 예술의전당 V갤러리에서 개인전을 하는데 당신 사진이 어떻게 보이길 바라는지?내가 의도한 메시지가 있고, 그대로 읽히게끔 시도는 하지만 어차피 모두와 1:1로 소통할 수는 없다. 내가 보는 것과 느끼는 것을 사진에 담았으니 모두 각자의 자유 의지대로 보고 느끼겠지. 파리를 걸어다니는 사라 문, 일상 속에서의 당신은 어떤 모습인가?남들과 다를 바 없다. 옷차림 얘길하자면 평소에 이런 바람막이 같은 코트를 항상 입고 다닌다. 모든 걸 숨길 수 있잖아. 하하. 좋아하는 스타일은?어릴 때는 오드리 헵번, 그레타 가르보, 루이즈 브룩스 같은 배우를 좋아했지. 그들의 스타일을 동경했고. 지금은 요지 야마모토와 꼼 데 갸르송을 좋아한다. 일본 건축을 좋아하거든. 이들의 옷은 그런 느낌과 닮아 있다.당신은 사진가로서 거장이기도 하지만 진보적이고 열정적으로 커리어를 이어오고 있다는 점에서도 아이코닉한 여성이다. 젊은 여성들을 위한 조언 한 마디.나는 그랬다. 일보다는 사랑. 그런데 일과 가족은 항상 팽팽했다. 지금 사회는 더 힘들고 치열하지. 하지만 스스로 좀 더 자유를 가졌으면 한다. 그리고 be yourself! 3. Fashion Etcetera Sam Haskins사진집은 여러 권 있었지만 당신이 셀렉트한 작품집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이 일곱 번째 작품집으로 지금 시점이 아카이브에 있는 다양한 테마들을 되짚어보기에 좋다고 생각했다. ‘Fashion Etcetera’는 과거와 현재의 한 켠에 있었던 이미지를 되돌아보는 진정한 첫 여행인 셈이다. 사진 구성에 신경 썼는데 각기 다른 시대와 테마에서 선별된 이미지들을 스프레드로 된 레이아웃을 선택했다. 그래야만 내가 전하고 싶은 ‘뉘앙스’를 독자들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신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자들은 거의 누드 컷이다. 순수예술을 배웠던 나는 수년 동안 사람을 보고 드로잉, 회화, 조각을 해왔다. 누드 작업은 아트 스쿨에서 배워온 영역의 자연스러운 확장일 뿐이다. 만약, 삶과 아름다움을 경이롭게 표현할 수 있는 더 좋은 방법이 있다면, 그 방법을 썼을 거다. 또 젊었을 때는 매우 억압받았기 때문에 반발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런 감정까지 사진에 넣지는 않았다. 오히려 건강하고 자유로운 여성이 등장한다. 누드는 분명 진행하기 어려운 작업이다. 당신만의 것으로 만드는 비법이 있다면?좋은 사진을 찍는 것은 굉장히 힘든 작업이다. 모델들이 나와 함께 촬영을 하는 것이 핵심인 만큼 촬영 전후의 크리에이티브 과정에 그들을 꼭 관여시킨다. 그러면, 누드라는 것에 대해 어떤 의식조차 갖지 않는다. 또 굉장히 좋은 보디를 소유한 모델들이 누드 작업을 꺼려하지 않는 것을 종종 보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당신의 작품속 여성은 누구인가?모델들을 되돌아본다거나 등수를 매기지는 않는다. 가장 중요한 모델은 오늘 나의 카메라 앞에 서 있는 그녀다. 가장 깊은 인상을 주는 것은 카메라 앞에 있는 그녀가 지닌 창조적인 지성!당신의 작품에는 항상 스토리가 있다. 만화책을 읽던 어린 시절부터 영화와 오페라를 즐겨보던 지금까지, 항상 시각적 스토리에 관심을 가져왔다. 나는 비주얼 요소들을 병렬 방식으로 늘여놓거나 페이지의 레이아웃을 통해 전달하는 작업방식을 정말 좋아한다. 여기에 이야기가 잘 접목되면, 훨씬 좋은 작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의 작품에는 대표적으로 아프리카, 바르셀로나, 볼로냐, 세나라가 등장한다. 혹시 에피소드가 있나.글쎄, 바르셀로나나 볼로냐의 작업들이 나의 시각적 사고를 형성하는 데 기초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서로 다른 두 도시를, 다르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였다. 볼로냐는 현대사회로의 빠른 변화와 종교 사이에 긴장감이 심했다. 그래서인지 다양한 견해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다. 그에 비해 바르셀로나는 삶과 예술, 건축과 에너지를 순수하게 찬미하는 도시였다. 아프리카는 내가 자라기도 했지만 경력을 쌓을 수 있었던 굉장히 멋진 대륙이다. 아름다움과 에너지가 있는 곳일 뿐 아니라 아티스트로서 나를 정의할 수 있었다. 60년대에 제작한 4권의 핵심 작품집을 배경을 제공했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요즘처럼 포토숍이 발전한 것도 아닌데 예전부터 시도한 합성 이미지는 놀랍다. 음. 포토숍이 있기 이전에 수십 년간 포토숍 기법(이미지 몽타주)을 사용해왔다. 이는 테크닉의 문제가 아니라, 사진을 창조적인 일러스트레이션으로 바꾸려는 그 사고의 문제다. 이 책을 만들면서 남들보다 앞선 디지털 툴을 사용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나는 창조적 자유와 컨트롤, 작업의 퀄리티를 사랑한다. 이 책과 이번 전시회의 그림만큼이나 나의 컬러 작업이 좋았던 적은 없다. 지난날을 돌이켜볼 때 가장 큰 전환기가 있다면?의 발간이었다. 출판의 중요성을 확인했을 뿐 아니라 몸을 담은 작업들 중 가장 초창기 작업이기도 하다. 가 그런 생각들의 정제된 작업이자 매우 많이 판매도 된 작품이었지만, 가 주는 의미가 더 크다. 당신이 주목하는 포토그래퍼가 있다면?항상 나에게 영향을 주는 포토그래퍼는 20세기 최고의 포토그래퍼 리처드 아베돈이나 어빙 펜이다.어떤 포토그래퍼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기를 바라나?열정과 미소로 삶을 대했을 뿐만 아니라 창조적인 사진에 대해 매우 진지했다고 기억되기를 바란다. 그래도 역시, 한 사람이 어떻게 기억되는가는 정말 컨트롤할 수 없는 것이고, 시간과 비판적 분석이 그 사람의 작업을 정의할 것이다.이번 작품집은 특별히 패션 디자이너 타미 힐피거와 함께했다. 어떤 경험이었나?이번 작품집은 스탠더드 버전과 타미 힐피거 스페셜 에디션, 두 가지 버전으로 발간됐다. 타미 힐피거 스페셜 에디션은 디자이너 타미 힐피거가 에서 직접 컷을 골라 북 커버를 정했고 반투명의 북케이스를 디자인한 것은 물론 서문까지 직접 작성했다. 사실 타미 힐피거가 나의 사진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 그의 캣워크 쇼를 정말 관심 있게 보았다. 의상뿐 아니라 헤어, 메이크업, 모델의 선택까지 말이다. 그의 쇼가 관객에게 굉장한 호평들을 받는것을 보니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인기 있는 타미 힐피거와 함께했으니 지난 50년보다 더 빨리 대중과 더 가까워지겠다.작품집 ‘Five girl’속의 사진 girl with curl이 실린 사진이 프린트된 캡슐 컬렉션까지 선보인다니 더욱 그렇다. 남성 티셔츠와 여성 티셔츠, 토트백과 스카프로 구성됐다니 이젠 누구나 나와 더욱 친밀해진 기분이다. 게다가 수익금의 15%가 비주얼 아트의 자선업체로 기증된다니 의미까지 깊어졌다. 4. BRIGITTE LACOMBE브리짓 라콩브의 영원한 화두는 사람이다. 프랑스 출신의 사진작가는 지난 30년간 사람의 얼굴을 카메라에 담는 데 집착했다. 주름 깊이와 순간 스치는 표정 하나까지 잡아내는 그녀 앞에 섰던 사람들의 면면은 화려하다. 대니얼 데이 루이스, 니콜 키드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스티븐 스필버그, 마틴 스콜세지, 미우치아 프라다, 버락 오바마, 넬슨 만델라, 달라이 라마를 포함한 수많은 셀러브리티들이 그녀의 피사체가 됐다. 사진 촬영을 질색하기로 유명한 메릴 스트립도 그녀에게만은 촬영을 허했다. 이름만 들어도 가슴 설레고 묵직한 존재감이 느껴지는 명사들을 촬영한 덕분에 그녀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포트레이트 작가가 됐다.스냅 샷을 찍던 브리짓 라콩브가 전문적으로 슈퍼스타들을 촬영하게 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학교를 뛰쳐나와 17세의 나이로 프랑스 견습생 포토그래퍼가 된 그녀는 1975년, 칸영화제 촬영을 맡게 됐다. 주어진 미션은 간단했다. 최대한 많은 사진을 건져오라는 것. 당시 매니지먼트 시스템은 지금처럼 체계적이지 않아 배우에 대한 접근이 쉬웠다. 파파라치에 시달릴 걱정이 없던 시대라 배우들도 플래시 세례를 반겼다. 운좋게 더스티 호프먼, 도널드 서덜랜드와 인연을 맺은 그녀는 그들의 도움으로 영화 과 촬영현장을 찍게 된다. 이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영화 촬영현장을 스케치하게 된 그녀는 스티븐 스필버그와 마틴 스콜세지부터 스파이크 존스, 쿠엔틴 타란티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명감독들과 작업을 하게 된다. 할리우드 영화판을 안방처럼 드나들게 된 브리짓 라콩브는 자연스레 배우, 감독들과 가까워졌고 그들의 얼굴을 하나 둘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은 영화계 인사뿐 아니라 정치, 예술, 종교 등 각계 인사들의 얼굴을 향해 셔터를 누르고 있다.브리짓 라콩브의 원칙은 간단 명료하다. 단순한 것이 곧 순수하다는 거다. 그녀가 찍은 인물사진들은 화려하지 않다.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는 기발하고 감각적인 사진들에 비하면 진부하고 심심할 수 있다. 그녀는 한 장의 사진에 많은 것을 담으려 하지 않는다. 하얀 배경, 하나의 피사체만 있으면 충분하다. 렌즈는 얼굴과 상반신을 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증명사진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차이점은 표정에서 나타난다. 이들의 얼굴에서 평소 이미지를 찾기란 쉽지 않다.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천진난만하고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말이다. 자신을 대변하는 명예와 부와 권력을 벗어던지고 수더분하며 털털한 보통사람으로 돌아간 것만 같다. 브리짓 라콩브는 촬영 내내 그들이 셀러브리티란 사실을 의식하지 않는다. 그들의 이면에 감춰진 순수한 면을 꺼내고 싶어 한다. 그녀의 작업 방식은 촬영현장에 어시스턴트를 제외한 그 누구도 들이지 않기로 유명하다. 모델에겐 이래라 저래라 포즈를 잡으라고 주문하지 않는다. 별다른 소품이나 스타일링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사진가와 피사체만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가볍게 대화를 나눈다. 그런 분위기에서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편안해지며 자신의 본래 모습에 가까워진다는 게 그녀의 논리다. 그리고 그 순간을 기술적으로 잡아내는 것이 그녀의 재능이다. 최근 평생의 작업을 정리한 사진집 ‘라콩브:아니마/페르소나(Lacombe:anima/persona)’를 선보인 브리짓 라콩브는 자신을 카메라를 통해 인물의 내면을 바라보는 관찰자라고 소개한다. 지난 30년간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본 그녀가 안타까워하는 것이 딱 하나 있다.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인 1940년대 할리우드 미남배우들을 촬영하지 못했다는 것. 욕심도 많다. 5. JUERGEN TELLER얼마 전 개인전 때문에 뉴욕에 다녀온 걸로 알고 있다. 바로 런던에서 광고 촬영 시즌이 시작돼서 인터뷰 시간 잡기도 어려웠다.맞다. ‘Lehmann Maupin’이라는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했다. 프랑스 잡지 에 실렸던 사진들로 전시를 준비했다. 9월 말에 이 사진들로 리미티드 에디션 북을 내기도 했고. 한국 추석 때쯤 바로 또 파리로 로케이션 촬영을 다녀오는 바람에 더 정신이 없었지. 전시는 좋았다. 아직 아시아에서는 전시 한 적 없는데 계획 좀 해봐야겠다.그러면 너무 좋겠다. 사실 여기 당신 사진 팬이 진짜 많거든.진짜? 아, 몰랐는데…. 과찬인 것 같지만 기분 좋다!초보 사진가였을 때를 기억하는지?카메라 렌즈를 통해 눈을 크게 뜨게 됐다고 할까?당신 특유의 사진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건가? 늘 변화하지만 그래도 항상 ‘유르겐표’ 사진 임을 알게 된다.좀 날것이고, 못생긴 부분을 드러낸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겠지?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일부러 예쁘지 않은 모습만 찾아다니는 것도 아니고, 내 일을 하는 것뿐이다. 사진 역시 ‘프로듀스’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작업 자체가 좋다.사람들의 평가에 신경 쓰는지.다른 사람들이 내 사진에 대해 뭐라고 하든 간에 그거야 그들의 자유지, 뭐.사진에서 제일 중요한 건?컨셉트!작업 방식을 소개해달라.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조사하고 준비하고 계산해둔다. 그러면서 현장에서는 순간의 창의성과 본능을 따라가기도 하고. 양쪽을 항상 겸하려는 편이다.당신은 아무래도 비범한 사람이다. 여태까지 보아온 당신 작품들도 그렇고, 이번 인터뷰에서 느껴지는 것도 그렇고, 코리아를 위해 손수 골라 보내준 사진들도 그렇고. 당신 사진의 원천이 궁금하다.뭔가 비일상적이고 멋있는 것에서 ‘번뜩’ 하고 일을 시작하는 건 아니다. 솔직히 얘기하면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상, 그러면서 경험하게 되는 모든 것들에서 영감을 얻으려고 한다. 책, 영화, 패션쇼도 굉장히 중요하다.어찌 보면 패션계를 굉장히 싫어할 것 같기도 한데….아니아니, 좋아한다! 심지어 이 업계에 일부로 참여하고 있다는 걸 굉장히 즐긴다. 이 안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일들과 커뮤니케이션, 인물 등이 작업에 영향을 미친다. 앗, 그런데 이쪽에서 일하고 싶거나 관심 있다면 항상 자기답게 행동하는 걸 잊지 말라고 조언해주고 싶다.에디터들과 일하는 건 어떤지?일단 나는 작업할 때 스태프들과 충분히 의논하는 편이다. 하나의 팀으로써. 그런 면에서 에디터들은 굉장히, 아니 극도로 중요한 존재다. 단지 팀원이라기보다 콜래보레이션을 하는 파트너라고 할 수 있다.그렇다면 그들에게 기대하는 역할은? 말이 되게 행동하는 것.매 시즌 마크 제이콥스와 비비안 웨스트우드 광고 사진을 촬영하지 않나. 이 사진들도 매번 화제가 되곤 하는데…. 음, 그건 말했듯이 광고 촬영이니까 클라이언트에 따라서 상대적으로 맞춰준다.마감이 닥쳤을 때의 당신은? 지금도 마감 중이긴 한데…. 특별한 버릇이 있거나 나만의 노하우가 있지는 않다. 그때그때 달라지는데 아무래도 있는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게 기본이겠지.잡지, 광고, 개인 작업 골고루 많이 하는 것 같다. 특별히 좀 더 치중하는 쪽이 있는지?전부 좋은 경험이라 생각하고 최대한 하려고 한다.제일 좋아하는 모델 혹은 뮤즈를 꼽자면? 음, 내 자신이라고 해야 할 것 같은데. 코리아와 일해볼 생각은? 왜 안 되겠어. 괜찮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6. CARTER SMITH주로하는 작업은. 오랫동안 패션 사진에 몰두했다. 포트레이트 작업은 간간히 있었고. 지금은 배우들과의 작업이 너무 즐겁다. 자기 밖으로 걸어나와서 다른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걸 기꺼이 해내니까. 그럼, 본인 그대로이기보다는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 보여주는 걸 선호하는 건지?예쁜 사진을 찍는 데 초점을 맞추지 않아도 되잖아. 대신 인물과 시진 이면에서 어떤 스토리를 끄집어내는 거지. 사진을 통해 스토리를 말할 수 있다는 것. 내가 사진에 대해 가장 좋아하는 점이다.직업 사진가로서 첫 작업은? 18세에 라는 잡지. 90년대 초반 10대 소녀들 사이에서 꽤 인기 좋았던 ‘쿨’한 잡지다. 당시 뉴욕에 온 지 몇 달 되지 않았을 때였다. 촬영하면서도 내가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더라. 그런데 사진이 잘 나온 거지. 패션 사진을 계속 해도 되겠다는 자신감과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당신 사진에 대해 좀 더 설명해달라. 스토리텔링이 핵심이다. 모델이든 배우든 어떤 인물과 촬영하든지 간에 시나리오를 두고 일하는 게 좋다. ‘이 여자는 누구지? 왜 여기에 있지? 사진을 찍기 직전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지? 지금 막 어떤 일이 일어나려는 걸까?’ 이런 식으로 연상하는 거지. 나는 초창기부터 지속적으로 이런 접근 방식을 사용했다.자연스레 다른 장르의 영상 작업들이 연상된다. 실제로도 영화 작업을 하고 있지?지난해 첫 번째 장편영화 를 만들면서 커리어에 전환기를 맞은 것 같다. 사진이라는 프레임 안에서만 부리던 재주를 확장시킬 수 있는 첫 번째 기회였다. 결과물이 그 자체로 생명력을 가진다는 느낌도 처음 받았다. 잡지나 광고 사진은 시한이 있잖아. 길어봤자 최대한 대여섯 달이고 그것도 어느 순간에 지나가 버린다. 반면 영화는 몇 세대를 거치고 미래에도 존재할 거라고 생각해봐!일의 중심은 여전히 사진? 사진을 사랑하지만… 영화 찍는 게 제일 좋다! 앗, 그래도 잡지도 계속 많이 하지 않나. 와는 정기적으로 일하고 있다.와 일할 때는 어떤지? 미국판 크리에이티버 디렉터 조 지(Joe Zee)와 계속 같이 해서 좋다. 우리는 뉴욕의 패션 스쿨 FIT 동창이기도 하고 그때부터 쭉 친구다.그렇게 원래 잘 맞는 사람끼리 하면 좋긴 좋은데, 사진가 입장에서는 에디터가 귀찮은 존재일 수도 있을 것 같다. 특별히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다. 에디터도 팀의 일부지, 뭐. 어차피 나도 혼자 총대를 메고 촬영을 이끌어나가는 스타일은 아니다.에디터 얘기가 나온 김에, 어떤 에디터가 일하기 편한지? 그날 촬영에 대해 자신의 생각이 확고하고 비전이 있는 사람. 그저 옷만 준비해서 들고 오는 타입보다는.일하는 방식. 일단 촬영 전에 가능한 모든 걸 다 준비한다. 물론 그때그때 돌발 상황이 생겨도 자연스럽게 대처하리라는 마음을 굳게 먹고. 사진에도 은근히 유행이 있다고들 하는데… 특정한 사진 경향이나 패션 트렌드 같은 건 전혀 고려하지 않으려고 한다. 내 사진만의 ‘스피릿’을 계속 지켜나가는 게 중요하지.결과에 실망한 적은? 없다. 일 자체에 대해서도 그렇고. 다만 내가 정말 좋아한 컷을 잡지에서 싣지 않고 제외시키면 좀 그럴 수 있지. 그것도 그때뿐이지만.커리어 롤 모델이 있는지? 사실상 없다. 사진에서 시작해서 장편영화로 이어지는 케이스가 드물잖아. 대부분은 그저 의뢰가 들어오면 TV 광고나 뮤직비디오, 쇼트 필름 작업을 하는 정도다. 부업 삼아서. 하지만 나는 자연스럽게 전환점을 맞고 커리어가 연결돼서 굉장히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동기 부여랄까, 계속 일을 하게 하는 힘은?주변 사물에서 많이 영감을 얻고, 아티스트 친구들도 좋은 자극이 된다. 그 중에서도 김소영이라는 친구가 많은 영향을 준다. 뉴욕에 사는 한국인 영화감독인데, 한국어 영화도 만든 걸로 안다. 과 이라는. 김소영은 정말 자신의 영감과 감성에 충실한 타입이다. 남들이 “돈이 안 된다” 해도 개의치 않는다. 자신이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드니까. 이런 식으로 일하는 게 정말 쉽지 않은데…. 그녀를 보면서 따라하려고 부단히 노력 중이다.버릇이 있다면? 20분 동안 일기 쓰기.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이다. 하루를 고요하고 침착하게 바라보며 시작할 수 있다.패션계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 업계 밖에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근사한 탈출구인 것 같다. 그러니까 이쪽을 다룬 책이나 영화가 그렇게 많이 나오지. 어쨌든 패션은 자신을 표현하는 커다란 통로다. 그것도 꽤 예술적인 양식으로 표현할 수 있으니 매력적이지. 하지만 패션은 판타지고, 그 판타지를 사람들에게 판다는 걸 기억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본다. 이 바닥이 항상 ‘글래머러스’하고 ‘패뷸러스’한 것만은 아니잖아. 코리아와 일해볼 생각은? 물론!*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11월호를 참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