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닮은 남자 or 다른 남자, 뭐가 답일까?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유경험자가 전수하는 리얼 연애 코치. | 연애,사랑,데이트,남자친구

  돌이켜보면 내 20대 연애는 대부분 음악 얘기를 하다가 시작했다. 민망하게도 “넵튠스 좋아하세요?” 같은 말이 일종의 신호탄이었다. 그것만 알면 대화가 술술 풀렸다. 직감은 대충 들어맞았다. 2019년의 퍼렐 윌리엄스보다 2003년에 발매된 넵튠스의 첫 번째 앨범을 좋아하는 그들은 ‘나처럼’ 구두보다 운동화를 선호하고 ‘나처럼’ 레이밴을 고집했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에서 제시(에던 호크)와 셀린(줄리 델피) 역시 레코드점에서 킹크스의 음악을 뒤적거리고 캐스 블룸의 ‘Come here’를 같이 들으면서 사랑에 빠지지 않았나. 우리는 이해와 존중이 가능한 취향을 공유하며 열정적으로 탐색전을 펼쳤다. 짧게는 석 달, 길게는 일 년 정도는 뜨거웠다. 서로의 유사성에 이끌려 시작된 연애는 대부분의 커플이 그렇듯 극복할 수 없는 차이 때문에 끝을 맺었다. 분노조절장애, 우울증, 여성편력 같은 굵직한 사건도 있었지만 ‘알고 보니 잘 안 맞는 것 같다’는 막연하지만 결정적인 이유가 더 많았다. 그렇다. 이놈의 ‘알고 보니’가 문제였다. 개인 연애사에 있어서 그 구절 이후는 늘 실망뿐이었다. 하지만 계속되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내 이상형은 한결같았다. 취향 좋은 남자. 여기서 취향이 좋다는 건 공감할 수 있는, 그러니까 나와 비슷한 취향을 뜻했다. 결국 난 무의식중에 나와 닮은 남자를 찾고 있던 셈이었다. 그리고 20대 마지막 즈음, 드디어 A를 만났다. 내 생애 “너도? 나도!”를 그렇게 많이 외친 적은 처음이었다. 음악이나 영화, 미적 취향을 넘어 자라온 환경도, 불규칙한 생활 패턴도, 개인주의적 성격도, 하물며 입이 짧은 것까지 비슷했다. 친구들에게는 ‘영혼이 비슷하다’는 말로 그를 설명했고, 연애 초반에는 ‘이런 걸 운명이라 하는구나’라는 순진한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그렇게 운명 같은 연애가 전쟁 같은 사랑이 되기까지는 1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우리는 가장 비슷했던 만큼 가장 처참하게 끝났다. 결과적으로 자기 객관화의 계기가 됐다. 나보다 늦게 일어나고 나보다 늦게 잠드는(하물며 새벽 네 시에 퇴근하는 게 일상이었던 마감 기간에도!) 계획 없는 삶이 상대방을 얼마나 지치게 만드는지, 개인주의라는 말이 연애에 있어서 얼마나 이기적 변명인지를 그를 만나면서 깨달았으니 말이다(그전의 남자친구들아, 미안하다). 이건 뭐, 동족 혐오인가? 그가, 아니 내가 이렇게 형편없는 사람이었나? 아니면 애초에 나와 ‘비슷한 사람’이란 게 나와 ‘맞는 사람’의 유의어가 아니었던 걸까?     어쩌면 실패한 연애의 반작용이었을 수도, 나이 탓일 수도 있다. 서른이 넘어가면서부터 비슷한 관심사 같은 건 부질없다고 믿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그까짓 힙합 음악 좀 안 좋아하면 어떻고 구두 좀 신으면 어떤가. 오히려 나와 달라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남자야말로 섹시한 거 아닌가? 그렇게 만난 B는 말그대로 정반대의 남자였다. 내가 모든 히어로영화를 관람하는 것처럼 그는 60~70년대 예술영화의 팬이었고, 내가 AI나 5G에 관한 테크놀로지 뉴스를 읽을 때면 옆에 앉아 라디오를 즐겨 들었으며, ‘될 대로 돼라’를 모토로 사는 주제에 성격은 급한 나와는 달리 느긋하면서도 계획적이었다. 모든 것이 새롭고 참으로 무탈했다. 처음부터 다른 걸 인지하고 시작했으니 실망할 일도 없었다. 별 문제는 없었지만, 젠장, 결정적으로 재미도 없었다. 연애 초반 흥미로웠던 다른 세계의 면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무료함과 짜증으로 변했다. 왜 저렇게 청승맞은 음악을 듣지? 얘는 이 흑백영화가 정말 재미있다고 생각하나?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데 말을 안 하는 거야? 그와 데이트를 할 때마다 점점 낮잠과 넷플릭스가 절실해졌고, 결국 머지않아 원 없이 넷플릭스를 보게 됐다. ‘반대가 끌리는 이유’ 같은 건 그저 노래 제목일 뿐이라고 자위하면서.     ‘성향과 취향이 비슷한 사람 혹은 정반대인 사람’은 연애의 케케묵은 질문이다. 보통의 커플은 ‘우린 참 비슷해’가 아니면 ‘우린 오히려 서로 달라서’를 이유로 서로 잘 맞는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내 경우는 어느 쪽이었을까? 양쪽의 연애에 모두 실패한 후 침대에 드러누워 미드 <모던 패밀리>를 보고 있는데 이런 대사가 등장했다. <모던 패밀리>는 후자의 편이었다. “왜 우리는 우리와 정반대인 동반자를 선택할까요? 이건 운명이나 확률 때문이 아닙니다. ‘마음은 마음이 원하는 걸 안다’는 뻔한 말 때문도 아니죠. 그 이유는 그 사람이 우리가 유년기에 해내지 못한 과업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가 가졌으면 하는 자질들을 상대방이 가졌기 때문이에요. 자신과 다른 동반자를 선택하고 상대방이 원하는 걸 공급해 주면서 우리는 자신의 성장을 도모하게 됩니다.” 드라마니까 가능한 동화 같은 논리지만(그러니까 이론적으로 당신이 정반대 성향과 취향을 가진 누군가와 오래도록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면 그 온도와는 관계없이 영화 같은 사랑이라는 걸 기억하자) 어느 정도 일리가 있긴 하다. 프로이트는 사랑의 본질은 나르시시즘이라고 말하면서 두 사람이 서로에게 강한 호감을 갖게 되는 것은 상대방 자체에 대한 호감보다 자신들의 모습을 상대에게서 보기 때문이라고 했다. 바꿔 말해 이건 나와 정반대의 사람에게서 자신에게 결핍된 무언가를 보고 찾게 된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결국 나와 닮은 사람 혹은 나와 다른 사람에게 끌리는 여부는 상대방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찾느냐 혹은 내게 부족한 모습을 찾느냐 하는 문제라는 거다.     서로의 결핍을 보완해 줄 수 있는 누군가를 단번에 알아볼 수 있다면 더없이 이상적이겠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냉정하다. 학술적으로 인간은 나와 비슷한 외모와 사고방식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에게 호감을 갖는다는 연구 결과가 압도적이다. 이것을 유사의 법칙(Similar to Me Effect)이라 부른다. 흥미로운 것은 두 사람이 정말 비슷한 성향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사실이다. 심리학 박사 제러미 니콜슨은 <사이콜로지 투데이>에 기고한 칼럼에서 두 사람간의 실제 공통점은 초반에는 상대방을 매력적으로 느끼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관계가 발전하면서는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파트너와 비슷하다는 단순한 인식 자체는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관계에 계속적으로 긍정적 영향을 끼쳤다. 또 사람들은 더 많은 정보를 제공받을수록 상대방을 비호감으로 느끼기 시작했는데, 10개의 유사성보다 1개의 차이점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한다. 이 칼럼을 읽는데 지난날의 연애가 빠르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의 애플 뮤직 플레이리스트, 모자를 고르는 취향, 자기계발서로 가득한 책장 등에 꽂혀서 우린 너무 다르다며 한숨을 쉬던 날들.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그 사람이 정말 나와 달랐는지, 아니면 비슷했는지 확신할 수 없다. 그냥 내가 넵튠스나 흑백영화 같은 사소한 단서를 확대 해석해서 그렇게 믿었을 뿐이다. 어차피 사랑이라는 건 착각이 반이지만 이 경우엔 내 막연한 느낌과 추측이 반 이상이었다.     그래서 여전히 숱한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나와 당신이 진짜 묻고 싶은 질문은 이거다. 결국 나와 맞는 파트너는, 그런 게 있다면, 어떤 사람인가? 아마 알랭 드 보통의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의 한 구절이 해답 비슷한 것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낭만주의 결혼관은 ‘알맞은’ 사람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는 우리의 허다한 관심사와 가치관에 공감하는 사람을 찾는 것으로 인식된다. 장기적으로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는 너무 다양하고 특이하다. 영구적인 조화는 불가능하다.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파트너는 우연히 기적처럼 모든 취향이 같은 사람이 아니라, 지혜롭고 흔쾌하게 취향의 차이를 놓고 협의할 수 있는 사람이다.” 결국 책의 주인공 ‘라비’는 사랑은 열정이 아니라 기술이라는 걸 깨닫는다. 서로간의 차이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태도, 세상에서 가장 습득하기 어려운 기술 중 하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