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발칙한 이탈리아 여행기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젠가 드라마에서 이탈리아 식당에선 피클이 없다는 제법 쇼킹한 소재를 다뤄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확실히 텔레비전이 무섭긴 무섭다. 내가 그토록 떠들어도 꿈쩍 안 하던 사람들이 그제야 내게 물었다. “정말 이탈리아에선 피클 안 먹어요?” 글쎄, 그렇다니까요. 그럼 지금 우리가 먹는 피클은 뭐? 뭐긴 뭐겠어요, 미국식이지.::이탈리아,여행,엘르,엣진,elle.co.kr:: | ::이탈리아,여행,엘르,엣진,elle.co.kr::

이탈리아 식당엔 없는 것들언젠가 드라마에서 이탈리아 식당에선 피클이 없다는 제법 쇼킹한 소재를 다뤄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확실히 텔레비전이 무섭긴 무섭다. 내가 그토록 떠들어도 꿈쩍 안 하던 사람들이 그제야 내게 물었다. “정말 이탈리아에선 피클 안 먹어요?” 글쎄, 그렇다니까요. 그럼 지금 우리가 먹는 피클은 뭐? 뭐긴 뭐겠어요, 미국식이지. 미국은 참 독특한 나라다. 뭐든 집어넣으면 변하는 트랜스 머신, 아니 트랜스 네이션이라고나 할까. 미국에서 멕시코 음식 좀 먹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멕시코 사람 앞에서 그런 말 하면 곤란해진다. 마치 한국의 중화요릿집에서 먹은 게 중국 요리라고 생각하는 것과 진배없다. 일례로 우리도 다 아는 타바스코 소스, 멕시코에 그런 거 없다. 미국인이 ‘멕시코적인 맛’으로 창작해낸 소스다. 그러니까 타바스코란 미국 소스란 말씀이다. 이 소스의 위력은 아주 대단해서 멕시코 식당은 물론 피자집까지 진출했다. 드디어 한국에선 웬만한 이탤리언 식당에서 만나는 게 어렵지도 않게 됐다. 부탁인데, 제발 내가 일하는 식당에서 타바스코 좀 찾지 마시라. 내가 잘나서 드리는 부탁은 아니다. 그걸 먹고 나면 도대체 어떤 음식을 먹어도 맛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다. 할라페뇨는 또 뭐냐. 홀 직원들이 나 몰래 슬쩍 슬쩍 손님들에게 내주는 일이 있었다는 건 알고 있다. 말하자면, 나도 눈감아주고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알고는 먹자. 이게 멕시코식 고추이지, 이탈리아와는 아무 상관없다. 원하시면 내게 오시라. 한 대접 퍼드리는 것도 어렵지 않다(값이 무척 싸다). 그러나 이탈리아에서 이걸 찾지 마시라. 피클이라면 그네들이 알아들을 수는 있다. 물론 가지고 있을 확률 제로에 가깝다. 그러나 할라페뇨는 아무리 설명해도 고개를 내저을 것이다. 그림을 그리면 가져다줄지도 모른다. 그래 봤자 할라페뇨와는 사뭇 다른 맛의 고추인 페페론치노겠지만. 없는 게 이것뿐이랴. 이탤리언 식당의 인기 아이템 카프레제 샐러드도 그렇다. 모차렐라 치즈와 토마토는 그렇다치고 그 위에 뿌리는 소스는 다분히 우리 식이다. 종종 페스토소스를 뿌리기도 하지만, 대세는 발사믹이다. 발사믹을 졸여서 달콤하게 만든 리덕션을 카프레제 위에 뿌려주는 것이다. 이것도 알고는 먹자. 카프레제를 즐기는 카프리 섬이나 인근 지역에서는 발사믹 식초를 거의 구경하기 힘들다. 발사믹은 전형적으로 북부의 식초다. 남부는 레몬이나 화이트 와인 식초를 쓴다. 나는 시칠리아에서 일했는데, 단 한 번도 그들이 발사믹 식초를 먹는 걸 보지 못했다(물론 식당 주방에 그런 식초가 놓여 있지도 않았다). 그러니 이탈리아에서 카프레제를 메뉴에서 발견하고 쾌재를 부르는 건 좋지만, 발사믹 달라고는 하지 마시라. 그런데 발사믹을 뿌리지 않은 카프레제, 은근 맛있다. 달고 신 자극적인 맛이 없으니 고소한 치즈의 맛이 제대로 살아난다. 아이고, 내가 왜 발사믹 졸인 걸(심지어 꿀이나 설탕시럽까지 섞은) 넣어 먹었을까,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 참, 빵을 찍어 먹는 발사믹 오일도 보기 힘들다. 오일은 종종 찍어 먹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발사믹을 넣은 오일은 그야말로 이탈리아 사람에게는 금시초문일 것이다. 카프레제는 나폴리 앞바다에 떠 있는 아름다운 섬 카프리의 샐러드란 뜻이다. 물론 카프리 사람이란 뜻도 된다. 그러니까 카프리섬에 가면 카프레제들이 우글우글하다. 우리 부부의 신혼여행은 로마를 거쳐 카프리행이었다. 카프리 최고의 명소는 역시 푸른 동굴, 그래 맞다, 그로타 아추라였다. 워낙 입구가 작아서 쪽배를 타야만 들어갈 수 있다. 물론 이 동굴의 비경은 에메랄드 빛으로 빛나는 아름다운 바다 색깔이다. 나는 자연이 만들어낸 걸작에 탄성을 연발했는데, 뜻밖에도 아내는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생각해보면, 난 참 무심한 남편이었다. 아내 얼굴에 척 하니 시커먼 선글라스가 씌워져 있었던 것이다. 당시 요금이 얼마였는지 모르지만, 대략 지금 시세로 10만원은 좋이 주었던 것 같은데, 에메랄드 빛은커녕 흙빛으로 변한 아내 얼굴이 지금도 생생하다. 토마토 주스와 된장 주스 조금 각도가 다른 얘기지만, 역시 시 쓰는 우리의 최갑수군-인터넷 검색을 해보시라, 꽤 유명한 시인이자 여행가다-과 이탈리아 남쪽을 돌아다닐 때였다. 그와 바에 들른 적이 많았는데, 한번은 그가 말했다. “메뉴에 토마토 주스는 없어요?” 그는 거의 들리지 않는 음성으로 조그맣게 말했다. 사족이지만, 그의 ‘작은 목소리’는 일종의 작전이다. 갑수 씨, 그렇게 작게 말하면 통 들리지 않네, 하고 퉁을 주면 그는 느긋하게 받아친다. “선배, 그게 다 생각이 있는 거요. 작게 말해보슈. 누구나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어 있다니까.” 글쎄, 내 생각에는 그건 관심이 아니라 짜증일 것 같은데. 하여튼 토마토 주스는 없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토마토 주스를 마시지 않는다. 왜 그럴까. 당신 같으면 고추장이나 된장 주스를 마시겠는가. 그렇다, 빙고! 이탈리아에선 토마토는 절대 과일 행세를 못 한다. 어디까지나 파스타나 요리의 소스를 만드는 재료일 뿐이다. 식당에서 일할 때 사람들은 나의 두 가지 식성에 놀랐다. 매운 마늘을 날로 먹을 줄 안다는 것과 토마토 주스, 아니 소스를 벌컥벌컥 마시는 야만적(?) 식성이 그것이었다. 한 가지 더하면 그들이 바다의 잡초 취급하는 미역이나 김을 먹는다는 사실까지도. 물론 한국인이 개고기를 먹는다는 얘기는 절대 비밀이었다. 이건 약간 난해한 문화적 설명이 뒤따라야 하기 때문이었다. 복날, 단백질 부족, ‘개 패듯이’와 같은 부사구, 브리지트 바르도…아아, 이해하시라. 나의 언어는 짧기만 했고, 문화상대주의 같은 용어를 어떻게 이탈리아어로 할 수 있었겠는가. 곰곰이 생각하면 없는 게 또 많다. 피자집에 절대 피자 커터칼이나 서빙 주걱이 없다. 피자집의 제1원칙, ‘1인당 한 장씩 먹는다’에 그런 기물들은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냥 포크나 나이프를 써서 썩썩 썰면 된다. 우리처럼 나눠 먹기를 좋아하거나 미국식 피자처럼 너무 커서 나누지 않고서는 먹을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물론 길거리의 간이 피자집에서는 그런 기물이 있긴 하다. 그러나 그건 개인용이 아니라 서빙하는 직원들이 쓰기 위한 것일 뿐이다. 피자집에 없는 것 또 한 가지. 테이블에 있는 가루치즈통도 없다. 부드러운 맛의 모차렐라 치즈 위에 진한 맛의 파르메산 가루 치즈를 뿌리면 맛의 조화를 기대할 수 없는 까닭이다. 물론 피클도, 배달 피자집도 없다. 성공적인 요리 유학의 노하우 생각해보면 요리학교에 있을 때, 담당 선생의 말을 들을 걸 그랬다. 커리큘럼에 피자 수업이 있었는데 그는 둥그런 반죽 하나를 손에 들고 우리에게 반문했다. 이게 얼마쯤 하는 것 같냐고. 그는 자답했다. 250리라, 그러니까 150원이었다. 그는 한참을 그렇게 반죽을 든 채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학생들을 쭉 응시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고생하지 말고 피자를 만들어 팔게.” 그는 농담처럼 말했지만, 깊은 진실이 배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피자는 비록 폼 나고 빛나는 고급 요리는 아니지만, 먹고살며 돈 벌기에는 최고라는 의미였다. 멋보다 실속을 차리라는 뜻이기도 했다. 지금도 이탈리아의 요리사 월급은 2백만~3백만원이 고작이다. 셰프가 되어야 대도시 유명 식당이라면 한 5백만원을 받아볼까, 그렇지 않으면 그다지 높지 않다. 그러나 피자이올로, 즉 피자 만드는 기술자는 10년만 하면 가볍게 4백만~5백만원을 받는다. 멋진 제복도, 높다란 요리 모자도, 사람들의 부러움도 없지만 실속 하나는 짱짱한 게 피자 기술자가 아니던가. 나도 일찌감치 한국에서 피자 반죽을 주물렀다면 귀밑머리가 희어지기 전에 집칸을 샀을지도 모르겠다. 갖은 폼 잡으며 매체에 얼굴을 디밀고, 책 따위나 써서 쥐꼬리만한 인세를 받는 대신-그래봤자 석탄차 화부처럼 지글거리는 고온의 그릴에 얼굴이나 익히면서 말이다-가족과 저녁 식사를 하고 9시 뉴스를 볼 수 있었을 것 같다(가게는 수금이나 하러 들르지 뭐). 휴, 그 트라우마 때문인지 누가 내게 이탈리아 요리 유학에 대해 자문하려고 하면 일단 정색을 한다. 그런데 여기서 밝히자면 자문을 하면 자문료를 주세요. 크리스피 크림 도넛이나 비타500 한 박스로 때우지는 마시고요. 홍삼 한 박스도 아니고…. 하여간 정색을 하고 대답한다. 뭐 하러 그 고생길을 가려 하느냐(경쟁자의 싹을 잘라야 한다), 한국에서 배울 수 있는 길도 열려 있다(피클이나 실컷 담그렴), 피자를 배우는 건 어떠냐(역시 예비 경쟁자 검속차원) 등등…. 고생해서 요리랍시고 2, 3년을 돈과 시간 들여 배워 귀국해도 한국은 이미 호락호락하지 않은 건 사실이다. 널린 게 이탈리아 식당이어서 오죽하면 번화가는 물론이고 동네에도 한 집 건너 파스타집이라고 하지 않는가. 지금부터 여러분에게 자문료를 받지 않고 이탈리아 요리 유학에서 성공하는 법을 일러주련다. 자문료가 공짜인 건 어디까지나 여러분의 책임이라는 걸 강조하기 위함이다. 자, 쟁쟁한 이탤리언 식당 틈에서 기약 없는 경쟁을 치르느니 틈새를 노려보는 거다. 스텝 원, 자장~! 요리에 어디 식당의 기술만 있더냐. 디저트와 피자, 빵 같은 기술만 집중적으로 배워오는 거다. 농담 아니다. 아직 한국에 제대로 된 이쪽 분야는 많이 들어오지 않았다. 달다구리라면 뒤로 넘어가는 여인네들을 유혹하는 디저트 카페, 젤라토 장인, 유럽식 정통 빵집, 거기다가 5초에 한 장씩 반죽을 펴는 멋진 나폴리식 피자집. 이게 다 여러분에게 널린 요리 유학의 한 갈래다. 축구화 신으면 누구나 투톱을 하려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축구는 정성룡도 있어야 하고, 김정우나 이영표, 도대체 카메라에 잡히지도 않는 조용형이나 김남일 같은 선수가 없으면 절대 안된다. 당신이 박지성이나 박주영 재목이 아니라는 얘긴 아니다. 문제는 누구나 그걸 하고 싶다는 것이다. 스텝 투, 자장~! 직접적인 요리 기술만 요리더냐. 요리 재료를 만드는 기술을 익히는 것도 틈새시장의 비결이다. 살라미나 프로슈토, 햄과 베이컨 만드는 기술은 어떤가. 나는 누군가 그걸 멋지게(물론 수입산보다 엄청나게 싼 가격일 테지) 만들어오면 당장 연간 계약을 맺을 의향이 있다. 아니, 다른 식당 주방장 녀석들이 얼씬도 못하게 독점계약을 맺을 수도 있다. 이걸 우리말로는 찜, 일본말로는 도리(맞나?)라고 하는 거다. 그뿐이랴, 치즈는 또 어떤가. 구미가 당기지 않는가. 물 건너 배 타고 비행기 타고 오느라 가격이 비싼 이런 식재료들이 한국산이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푸드 마일까지 줄일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스텝 스리, 자장~! 당신이 여성이라면 어렵게 요리를 배울 생각 말고 요리 잘하는 이탈리아 녀석을 하나 꼬셔라. 녀석을 비행기에 태워오면 그게 끝이다. 남자라면 제2의 크리스티나는 안 되겠냐고? 안 될 건 없겠지만 글쎄요. 배낭여행으로 이탈리아 안 가봤어요? 한국 여자만 보면 부나방처럼 달려드는 이탈리아 남자들은 많아도, 그대를 바라보던 이탈리아 여자들이 있던가요? 햄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올해 피에몬테 여행을 하면서 운전하는 마르코 아저씨와 많이 친해졌다. 그와 이탈리아의 명품 얘기를 나누었다. 우리가 익히 아는 구찌나 페라가모만 명품이 아니었다. 그는 특히 무기에 대해 조예가 깊었다. 특수부대원의 필수품인 전설적인 베레타 권총이 바로 이탈리아산이란다. 그러면서 그는 덧붙였다. “베레타 상표의 햄도 아주 유명하지. 재미있지 않나? 베레타 씨는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네.”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하던 나는 이내 그 말뜻을 깨달았다. 어헛! Profile박찬일은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에서 소설을 전공하고 잡지 기자가 되었다. 33세 느닷없는 깨우침(!)은 아니었고 돌연 요리에 흥미를 느껴 3년 동안 이탈리아에서 요리와 와인을 공부했다. 시칠리아에서 고수 주방장을 만나 요리사로 일하다 한국으로 돌아와 ‘뚜또베네’에 이어 ‘트라토리아 논나’를 성공적으로 론칭, 스타 셰프로 이름을 날렸다. 현재 이태리 요릿집 ‘라 꼼마’의 오너 셰프. 요리와 와인에 대한 쫄깃한 문체의 칼럼으로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그가 쓴 이탈리아 도시와 지방, 주방과 거리를 누비며 보고 느낀 유쾌 발랄 달콤 살벌 이탈리아 여행기를 만나본다. *자세한 내용은 엘라서울 본지 9월호를 참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