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매거진의 피처 디렉터들의 인터뷰에 관한 기억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사람과 사람이 만난 자리에는 어떤 식으로든 이야기가 남는다. ‘인터뷰’란 그래서 매력적이다. 인터뷰란 그냥 ‘묻고 답하기’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아는 다섯 개 패션 매거진의 피처 디렉터들이 인터뷰에 관한 기억을 보내왔다.::인터뷰,엘르,엣진,elle.co.kr:: | ::인터뷰,엘르,엣진,elle.co.kr::

인터뷰=치유. ‘내 인생 최초의 인터뷰이’에 대해 말해달라. 어떤 인터뷰였나? 첫 인터뷰에서 했던 첫 질문을 기억하나? 인터뷰어로서 내가 가장 단골로 하는 질문이다. 작년에 인터뷰 에세이 를 내고 나서 인터뷰라는 걸 당하게 됐을 때도 이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누구를 처음 인터뷰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물론 첫 질문도. 대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면, 그때는 지면 인터뷰가 아니라 학교 방송국 아나운서로서 방송 인터뷰를 했는데, 산울림소극장에서 를 공연하던 연극배우 박정자 씨였던 것 같다. 아마 질문보다는 코멘트를 했지 않을까 싶다. “노래를 참 잘하시네요.” 16mm 독립영화 감독 배인오를 인터뷰할 때는 “당신은 참 순진하시군요.” 어떤 화가에게는 “수줍음이 많으시네요.” 등등. 아주 친밀하게 느껴지는 다정한 인사를 건넨 것 같다. 인터뷰 후 친구 혹은 지인으로 남은 사람이 있나? 그 계기나 이유는? 사실 거의 없지만 굳이 꼽으라면 고현정과 김상경. 둘 다 나와 동갑이었고 동시대의 경험이 많았고 내가 그들에게 품는 만큼 나에게 동등한 리스펙트를 가졌고 아주 근사한 성품을 가졌으며 술을 좋아했다는 것. 기자는 항상 대상에게 일방적인 호기심과 애정을 품은 존재일 수밖에 없는데, 그들도 똑같이 나에게 그런 호기심과 애정을 가져주었다. 인터뷰마다 꼭 하게 되는 ‘나만의 단골 질문’을 꼽자면?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질문. 내 인터뷰는 정신분석적인 측면이 있기 때문에 인터뷰이의 가정 환경, 어린 시절 그리고 특히 부모에 대한 인터뷰이의 태도가 그 사람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만나기 전부터 유난히 떨리게 한 인터뷰이가 있나? 누구였는지 궁금하다. 이것도 기억을 더듬어봐야 하는 질문이다. 나는 사실 인터뷰이를 만나기 전에 크게 긴장하지 않는다. 내가 다가가서 마음을 열면 상대도 곧 그렇게 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다. 굳이 꼽자면 내가 그 상대를 아주 많이 좋아했던 경우. 에쿠니 가오리와 소피 마르소 정도이다. 에쿠니는 책에 사인을 하면서 “당신은 시인이네요”라고 써주었고, 소피 마르소와는 침대에 엎드려서 시절의 대사를 함께 읊으면서 깊은 대화를 나눴다. 첫 대면의 순간, 인터뷰이와 긴장을 허무는 ‘나만의 노하우’를 말해달라. 칭찬. 무조건적인 칭찬. 환상을 한순간에 깨버린 인터뷰이, 그리고 의외로 가장 만족스러운 결과를 안겨준 인터뷰이는? 환상을 깨버린 인터뷰이는…글쎄. 크게 환상을 가진 적이 없기 때문에 잘 모르겠다. 다만 에쿠니 가오리를 만났을 때, 그녀가 책에서 본 것만큼 긴 목선을 가진 모딜리아니 스타일의 우아한 여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깜짝 놀랐다. 의외로 가장 만족스러운 결과를 안겨준 인터뷰이는 ‘의외’라는 말만 빼면 정우성. 정우성은 일상의 사상가이기 때문에 그와 대화를 나누면 평범한 질문도 비범해져서 특별히 ‘라이팅 설계’를 하지 않고 그대로 실어도 된다. 인터뷰 때마다 반복되는 나만의 습관 혹은 징크스가 있다면? 나는 현장에서 나 자신을 믿는다. 그래서 나 자신을 인터뷰이와 약속한 상상의 세계 속으로 밀어 넣으려고 한다. 그러니까 배우들이 카메라 앞에 서면 연기자가 되는 것처럼, 인터뷰를 할 때는 나도 인터뷰할 상대를 위해 내가 설정한 배우 역할로, 스스로 약간 하이퍼 상태가 되도록 최면을 건다. 인터뷰 때 꼭 챙겨가는 물건은? 펜과 노트, 생수. 녹음기를 쓰지 않기 때문에 펜과 노트가 생명이다. 생수는 집중력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하고, 향수는 꼭 뿌리는 편이다. 남녀를 불문하고 ‘내 생애 가장 매력적이었던 인터뷰이’를 밝혀달라. 소설가 김훈. 날것 그대로의, 본능으로서 사유로서 예술가로서 아름다운 인간. 시간이 흐른 뒤 다시 꺼내봤을 때 기억에 남는 인터뷰를 꼽자면? 박완서 선생의 댁에 갔을 때, 그냥 그 아치울의 겨울 풍경이 간간이 기억나곤 한다. 여태껏 읽은 인터뷰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인터뷰는 어떤 것이었나? 에 실렸던 숀 펜 인터뷰.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아주 드라이하게 서술됐고, 인물의 멘트가 한마디도 없었다. 인터뷰가 책에 실린 후, 인터뷰이에게 항의 혹은 감사 전화를 받기도 하나? 이런 걸 어떻게 낯간지럽게 이야기할 수 있지? 하지만 고현정, 김희애, 장미희, 김윤진, 유오성, 정우성, 조인성, 이병헌, 이정재, 김상경 등 수많은 배우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감동한 아름다운 글이었다’는 말을 많이 한다.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었던 인터뷰에 관해 들려달라. 박해일을 인터뷰하러 갈 때 스튜디오로 가는 강변북로에서 차가 전복되는 사고가 있었다. 119가 달려오고 구출되고…. 일단 나는 외상이 없었기 때문에 강남의 인터뷰 현장으로 갔는데, 박해일이 날 보고 그랬다. “스턴트 하고 오셨다면서요?” 촬영과 인터뷰를 다 끝낸 뒤에 세상이 거꾸로 뒤집히는 것처럼 정신이 아득했던 기억이 난다. 성별을 막론하고 섭외부터 ‘사심’으로 시작해 ‘사심’으로 끝난 인터뷰가 혹시 있나? 없다. 그런 일은 직업 윤리상 벌이지 않는다. 작업 과정에서도 사심을 가진 만큼 고통이 따르니까. 가장 오랜 섭외 시간 끝에 만난 인터뷰이는 누구였나? 결정적으로 섭외에 성공할 수 있었던 계기는? 가장 오랜 섭외 시간 끝에 만난 인터뷰이는 과학자 정재승. 나는 주로 편지를 쓴다. 인터뷰했던 사람 중 세상을 떠난 사람이 있나? 그에 관한 기억이 궁금하다. 장진영. 특히 마지막 생일 파티 때 청혼을 받고 행복해하던 모습이 기억에 남아 오래도록 마음이 아렸다. 무한한 섭외의 자유가 주어진다면 누구를 섭외하고 싶나? 그에게 묻고 싶은 세 가지 질문은? 나, 김지수. 왜 이 세상에 나왔습니까? 어디를 향해 가고 있습니까?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꼭 한 번 다시 인터뷰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모든 사람은 내게 매혹적이지만, 또한 그만큼 진부하기도 하다. 이게 현재 내 마음의 상태다. 다시 인터뷰하고 싶은 사람은 설경구. 이 사람도 참 대책 없이 본질에 가까운 남자다. 비겁함이 없는 남자. 천호진도 좋다. 책임감 있고 약속을 지킨다는 것의 명예로움을 아는 남자다. 김지수· 피처 디렉터 인터뷰=두뇌와 심장의 스킨십. ‘내 인생 최초의 인터뷰이’에 대해 말해달라. 어떤 인터뷰였나? 첫 인터뷰에서 했던 첫 질문을 기억하나? 나의 첫 인터뷰이는 루키였던 그때의 나처럼 에로 영화에 갓 데뷔한 어느 여배우였다. 선배 기자가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보든지”라고 말했다. 인터뷰하려면 하라는 얘기였는데 나는 쑥스러움을 타서 몇 마디 건네지 않았다. 결국 그것이 기사를 쓰다 없는 말을 살짝 지어내야 하는 부끄러운 기억을 만들게 했다. 그때 그 여배우에게 아무 생각 없이 가명을 하나 지어줬는데, 그 후로 그녀가 계속 그 이름으로 활동하는 걸 보면서 작명의 중요성을 느꼈다. 인터뷰마다 꼭 하게 되는 ‘나만의 단골 질문’을 꼽자면? “요즘, 행복하세요?” 예전에 여배우를 인터뷰할 때 이런 질문을 던지곤 했다. 뜬금없는 질문이다. 그런데 그 덕에 ‘소격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분위기 반전’이나 ‘거리 두기’가 좀 더 쉬운 표현이겠다. 뻔한 질문과 답이 오가다 이 질문 하나 던지면 진지한 여배우는 더 진지해졌고, 미용실 의자에 다리 꼬고 앉아 대답하던 여배우는 요즘 자기가 어떻게 사는지 되돌아보며 조금은 더 성의 있는 태도를 보였다. ‘요즘’과 ‘행복하세요?’ 사이에 1초 정도 여백을 두는 것이 질문의 요령이다. 만나기 전부터 유난히 떨리게 한 인터뷰이가 있나? 누구였는지 궁금하다. 라는 걸작이자 괴작으로 유명한 소설가 박상륭. 대학생 때 그 소설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충격의 근원을 만나 그 근원의 근원을 물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나는 다 묻지도 못할 수십 개 질문을 준비했다. 질문지는 숨어 있기 좋은 방이다. 첫 대면의 순간, 인터뷰이와 긴장을 허무는 ‘나만의 노하우’를 말해달라. “담배 태우시죠?” 하면서 건네는 담배 한 대와 재떨이. 이것은 곧 ‘저나 당신이나 바쁘게 사는 건 마찬가지잖아요. 우리 잠시 담배 한 대 피우면서 사는 얘기 좀 나누며 쉬다 일상으로 돌아가자고요’라고 말하지 않으며 말하는 것이다. 인터뷰 때 꼭 챙겨가는 물건은? 나는 노트가 없다. 질문을 A4용지 2~4장으로 출력해서 스테이플러로 찍어 들고 간다. 계속 카세트테이프 녹음기를 쓰다 작년부터 디지털 녹음기로 바꾸었다. 주로 안경을 쓰는 편이다. 상대의 표정과 눈빛을 더 잘 살펴볼 수 있게 된다. 가급적이면 재킷을 입고 타이를 맨다. 그것은 인터뷰이와 그가 보낸 세월에 대한 예의다. 성의를 보이면 충실한 인터뷰를 얻게 된다(신선하거나 충격적인 인터뷰는 성의만으로는 안 된다). 복장과 태도의 중요성은 내가 인터뷰이가 되었을 때 절감했다. 남녀를 불문하고 ‘내 생애 가장 매력적이었던 인터뷰이’를 밝혀달라. 카레이서로 활동하던 여자 유명인이 있었다. 인터뷰하던 날, 나는 세상에 없을 것 같은 여자가 실제로 있음을 알았다. 한마디로 ‘천문학을 좋아하는 발레리나’라고나 할까? 뛰어난 이지(理智)가 아름다운 외모로 신비하게 감싸인, 그녀는 그런 여자였다.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었던 인터뷰가 있나? 그는 젊은 미술 작가였다. 가족을 소재로 한 그의 설치 작품에 대해 내가 몇 가지 질문을 던지자 그가 자신의 가족사를 말하다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제가 괜한 걸 여쭤봤네요. 죄송해요.” “흑흑. 아닙니다. 제가 죄송하지요.” 그는 꽤 유명한 소장 작가로 성장했다. 성별을 막론하고 섭외부터 ‘사심’으로 시작해 ‘사심’으로 끝난 인터뷰가 혹시 있나? 그런 인터뷰를 해보지 않았다는 것이 저널리스트로서 나의 문제점이다. 인터뷰했던 사람 중 세상을 떠난 사람이 있나? 그에 관한 기억이 궁금하다. 세계 챔피언 최요삼, 배우 장진영, 그리고 시인 김영태. 최요삼은 쇼맨십과 자기 주장이 강한 권투선수였다. 장진영은 자신의 얼굴처럼 모난 구석 없는 여자였다. 굽 낮은 여자 구두를 신고 있던 김영태 선생과는 대학로의 중식집에서 자장면을 먹었다. 나에 대해 놀란 것은 내가 인터뷰이의 부음을 듣고도 심적으로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나의 천성 때문일까. 아니면 진심이 오가지 않은, 충실하지만 사무적인 인터뷰를 나눴기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면 우리 모두 그렇게 사는 걸까? 무한한 섭외의 자유가 주어진다면 누구를 섭외하고 싶나? 그에게 묻고 싶은 세 가지 질문은?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을 만나 묻고 싶다. “이라크를 침공한 그 주 주일에 교회에 가서 어떤 기도를 올렸습니까?” “석유는 목숨보다 중요한 물질입니까?” “기독교 신자인 당신은 천국에 당신의 자리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꼭 한 번 다시 인터뷰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가수 조용필. 외국 출장 직후 그를 인터뷰하는 바람에 질문을 충실하게 준비하지 못했다. 뻔한 질문을 애써 피하다 보니 너무 깔끔하기만 한 인터뷰가 되어버렸다. 때로 뻔한 질문이 빛나는 답변을 얻게 해주기도 한다. 그와 제대로 인터뷰를 하려면 술을 함께 마셔야 한다. 인터뷰가 끝나고 그가 그랬다. “벌써 끝났어요?” 그때 나는 속으로 나를 팼다. 조용필이 만들어온 세월에 미안했다. 여전히 나는 질문지를 휙 던져버리지 못하는 소심한 인터뷰어다. 송원석· 피처 앤 라이프스타일 디렉터 인터뷰=농담뿐인 세상에서 서로 마음을 털어놓는 순간이 선사하는 최고의 쾌락. ‘내 인생 최초의 인터뷰이’에 대해 말해달라. 어떤 인터뷰였나? 첫 인터뷰에서 했던 첫 질문을 기억하나? 신하균, 정재영, 임원희 등 당시 매니지먼트 회사 ‘수다’ 식구들. 대학로 연극무대에서 잔뼈 굵은 실력파 배우들이 하나 둘씩 충무로를 접수하기 시작했다는 내용이었다. 회사 사무실에서 만났는데, 딱 한 가지 생각나는 건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리는 어색한 분위기. 초짜 기자가 심하게 낯가리고 말은 더욱 가리는 수줍은 남자들 틈에서 진땀 흘린 기억밖에 없다. 아, 더워진다. 인터뷰 후 친구 혹은 지인으로 남은 사람이 있나? 그 계기나 이유는?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임민욱 작가. 2007년 에르메스 미술상 대상을 받은 그녀를 처음 만난 건 인터뷰가 아니라 작품 의뢰 건 때문이었다. 결국 그 프로젝트는 예산 문제 때문에 무산되었다. 그 후 첫 개인전을 하면서 다시 만났다. 그녀는 틀어진 일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예술, 사회, 정치, 문화 그리고 한국인과 엄마로 산다는 것에 대해 끝없이 얘기할 수 있는 좋은 친구였다. 그녀는 자신을 ‘선생님’ 대신 ‘민욱’이라 불러달라고 했다. 결정적으로 그녀는, 셔츠에 청바지를 입는 내 패션 스타일과 생머리, 갈색 눈이 서로 잘 어울린다고 말해주었다. 처음으로. 하하. 인터뷰마다 꼭 하게 되는 ‘나만의 단골 질문’을 꼽자면? 왜 이 일을 하면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만나기 전부터 유난히 떨리게 한 인터뷰이가 있나? 누구였는지 궁금하다. ‘꼼 데 가르송’의 디자이너 레이 가와쿠보(Rei Kawakubo). 한국 패션 잡지에서는 단 한 번도 제대로 인터뷰를 해본 적 없는 그녀를 만나러 가기 전날 밤, 떨려서 잠을 제대로 못 잤다. 그러고는 처음 그녀를 대면했을 때, 머릿속에 가지런히 정리해둔 인터뷰 질문들이 뒤엉켜버렸다. 사람을 꿰뚫어보는 듯한 그녀의 눈빛에 1시간 내내 긴장하면서 앉아 있었다. 내가 본 중 가장 통역을 잘하는 베테랑 일본인 통역사는 급기야 점심 먹은 게 체했다고 연락이 왔다. 첫 대면의 순간, 인터뷰이와 긴장을 허무는 ‘나만의 노하우’를 말해달라. 노하우는 없다. 아직도 어떤 인터뷰든 하러 갈 때면 차를 돌려 도망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가끔은 그런 마음을 솔직하게 나타내는 것이 도움이 된다. 나 역시 당신과 똑같이 긴장하고 있으니, 우린 한배를 탄 거 아니겠냐면서. 인터뷰 때마다 반복하는 나만의 습관 혹은 징크스가 있다면? 그 혹은 그녀의 노메이크업 모습을 상상하곤 한다. 지금 이 순간, 난 그 혹은 그녀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되니까. 인터뷰 때 꼭 챙겨가는 물건은? 녹음기(이제는 아이폰과 아이폰 녹음기), 노트, 물 그리고 장미 향이 나는 립밤. 입술이 마르면 초초해진다. 남녀를 불문하고 ‘내 생애 가장 매력적이었던 인터뷰이’를 밝혀달라. 표민수 감독과 노희경 작가(도저히 한 명을 고르기는 힘들다). 이들과의 인터뷰는 ‘인터뷰’라는 행위가 줄 수 있는 가장 궁극의 쾌락을 선사한다. 말하는 것의 기쁨, 말을 듣는 것의 행복 그리고 지금 내가 이 자리에서 이들과 대화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진한 감동. 게다가 사람에게 기본적으로 애정이 있는 이들이라, 인터뷰를 하면서 내가 위로를 받게 되니 더할 나위 없이 고마운 일이다. 시간이 흐른 뒤 다시 꺼내봤을 때 기억에 남는 인터뷰를 꼽자면? 하라 켄야. 무인양품의 아트 디렉터인 그는 자신의 디자인과 닮았다. 하이쿠처럼 심플하지만 모든 걸 담고 있는 스타일과 말투. 지금 생각하면, 그가 내게 건넨 건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라 또 다른 질문이었던 것 같아 새록새록 재미있다. 인터뷰가 책에 실린 후, 인터뷰이에게 특별한 인사를 받은 경험은? 레이 가와쿠보의 인터뷰가 실린 책이 나온 후, 원고를 일본어로 번역해서 보냈다. 어느 날 그녀의 비서에게서 전화가 왔다. “레이가 파리 컬렉션 리허설장까지 잡지를 들고 가서는 한 자리에서 다 읽더군요. 걱정 말아요. 그녀가 빙긋 웃었어요.” 그녀가 웃었다! 한 명을 더 꼽으라면 로 인터뷰한 김혜자 선생님. 임신 중에 만난 그녀는 “아이를 가진 엄마가 보기엔 좀 힘든 영화였을 텐데…. 인터뷰 때문에 고생했겠어요”라고 날 토닥였다. 그리고 책이 나간 후, 이런 문자를 보내주었다. “윤혜정 씨. 딱딱한 기사가 아니라 따뜻한 수필을 읽는 느낌이 들었어요. 곧 예쁜 아기가 태어나겠군요. 좋은 추억 만들어주어 정말 고마워요.” 성별을 막론하고 섭외부터 ‘사심’으로 시작해 ‘사심’으로 끝난 인터뷰가 혹시 있나? 원빈에 대한 환상은 없었지만, 그는 과연 스타였다. 보는 순간 환상을 갖게 만드는 힘이 있었으니까. 저녁도 못 먹은 그를 2시간이나 잡아두었다. 게다가 난 그때 임신 8개월이었다. 다비드와 함께 있었어도 그렇게 훌륭한 태교를 할 수 있었을까? 정두홍 무술감독은 이상하게 존경심이 드는 사람이다. 세상에 그렇게 무뚝뚝하지만 순박한 남자가 또 있을까 싶다. 몸을 거칠게 쓰면서 사는 남자에 대한 동경 같은 게 마음속에 있기 때문일까? 그와의 대화는 언제나 설렌다. 가장 오랜 섭외 시간 끝에 만난 인터뷰이는 누구였나? 결정적으로 섭외에 성공할 수 있었던 계기는? 불법 복제 영화 파일을 만들어 유포하던 무명씨들. 이들은 얼굴도 연락처도 공개하지 않는지라 찾아내고, 회유하고, 인터뷰하는 것까지 모두 메신저로 했다. 이들을 섭외할 수 있었던 건 장문의 편지도, 선물도 아닌, 솔직함이었던 것 같다. “당신들이 이런 짓을 하는 이유와 그 쾌락의 정체가 궁금해 미치겠다!” 그게 먹혔다. 인터뷰했던 사람 중 세상을 떠난 사람이 있나? 그에 관한 기억이 궁금하다. 이강산 조명감독은 , , , , , 등의 빛과 그림자를 담당해온 영화계의 증인이었다. 또한 날이 잔뜩 선 감독에게 다가와 구운 고구마를 건네던 따뜻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의 아내는 잡지에 실린 남편의 사진을 액자로 만들어두었다 했고, 이강산 감독은 현장에서 폴라로이드로 찍은, 세상에서 단 한 장뿐인 배우들 사진을 선물했다. 그리고 몇 년 후, 을 찍던 그는 갑작스레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그립다. 무한한 섭외의 자유가 주어진다면 누구를 섭외하고 싶나? 그에게 묻고 싶은 세 가지 질문은? 최근 질 샌더에 컴백한 피비 필로. 디자이너로서, 여자로서, 엄마로서 당신의 삶을 이야기해보아요(난 요즘 이 세 가지를 완벽하게 하는 여자들이 가장 대단해 보인다). 꼭 한 번 다시 인터뷰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임상수 감독. 개봉 전 그를 만났을 때, 그는 어떻게 영화도 안 보고 인터뷰를 하느냐고 타박을 주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아직 편집도 끝나기 전이었으니까. 이번에 를 봤으니, 다시 만나 인터뷰를 하고 싶다. “뱀상수 감독님, 어쩌자고 영화를?…”(그 다음 말은 알아서 상상하시길. 하하.) 윤혜정· 피처 디렉터 인터뷰=장막. 보이지 않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 인터뷰 후 친구 혹은 지인으로 남은 사람이 있나? 그 계기나 이유는? 나 혼자만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MBC 개그맨 김경진. 놀랍게도 인터뷰에서 진심을 보여주었다. 친구가 되는 건 너무 당연하다. 인터뷰마다 꼭 하게 되는 ‘나만의 단골 질문’을 꼽자면? 표현은 그때그때 다르지만 의미는 이렇다. 당신을 존재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당신과 당신을 비롯한 세계에서 당신의 지점은 고유한가. 만나기 전부터 유난히 떨리게 한 인터뷰이가 있나? 누구였는지 궁금하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라이언 긱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긱스를 만나러 갈 때 흥분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내가 긴장한 건 내가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하기 때문이었다. 첫 대면의 순간, 인터뷰이와 긴장을 허무는 ‘나만의 노하우’를 말해달라. 하늘을 보거나 창밖을 본다. 그런데 요즘은 긴장을 잘 안 한다. 에디터는 조율하는 자이다. 에디터가 긴장해선 안 된다. 긴장은 인터뷰이의 것이다. 환상을 한순간에 깨버린 인터뷰이 그리고 의외로 가장 만족스러운 결과를 안겨준 인터뷰이는? 환상 같은 건 없다. 인터뷰를 조율하는 에디터가 환상을 갖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환상을 가지면 바보 같은 질문을 하게 된다. 그런 질문에 현답을 할 만큼 위대한 인터뷰이는 많지 않다. 의외로 만족스러웠던 건 이태란이었다.이태란을 인터뷰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다들 별로라고 했다. 나도 마찬가지였고. 그런데 만나고 생각이 달라졌다. 그녀는 차분하게 앉아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이야기했다. 그런 사람이 별로 없다. 다들 어슷하게 앉는다. 인터뷰 때 꼭 챙겨가는 물건은? 네이비 블레이저를 입는다. 더운 날은 하얀색 셔츠를 입는다. 물론 셔츠는 팔이 긴 것을 입는다. 날이 더우면 소매를 걷어 입는다. 남녀를 불문하고 ‘내 생애 가장 매력적이었던 인터뷰이’를 밝혀달라. 테니스 선수 이형택. US 오픈 16강에 진출했을 때, 편집장이 이형택을 섭외하면 나를 업고 압구정동을 한 바퀴 돌겠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섭외에 성공하니 편집장이 약속을 안 지켰다. 이형택은 부인과 함께 왔는데, ‘사랑이란 이런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정말 신사다. 남자로서 표본으로 삼을 만하다. 어떻게 세계적인 선수가 됐는지 말해줬는데 그건 기사에 적지 않았다. 혼자만 알고 있으려고. 시간이 흐른 뒤 다시 꺼내봤을 때 기억에 남는 인터뷰를 꼽자면? 야구선수 김동주와의 인터뷰. 그가 말했다. “비밀로 하겠다고 해서 말한 건데 기자가 기사에 써버렸다.” 내가 말했다. “그 자식, 방망이로 한 대 쳐버려요.” 당시 디렉터 선배가 경박하다며 “한 대 때리세요”로 바꾸라고 했다. 그런데 편집장이 보더니 그대로 가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도 다행이다. 경박한 게, 나다. 여태껏 읽은 인터뷰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인터뷰는 어떤 것이었나? 내 인터뷰의 많은 부분은 이충걸 편집장의 인터뷰에서 가져온 것이다. 나는 모방했다. 예전에 이충걸 편집장이 배용준을 인터뷰했는데, 그 인터뷰를 본 한 배우가 나에게 “같은 배우로서 그런 인터뷰어와 이야기해보고 싶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김지수 선배, 김경 선배의 인터뷰도 내 인터뷰의 기준을 세우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이들은 스타일이 확실하다는 점에서 인상 깊었다. 인터뷰가 책에 실린 후, 인터뷰이에게 특별한 인사를 받은 경험이 있는지? 소설가 박상륭 선생님께서 한국에 잠깐 들어오셨을 때 인터뷰를 했다. 잡지 발행일 다음 날 캐나다로 돌아가셔야 해서 잡지가 나오자마자 직접 가져다 드렸다. 돌아오는데 전화가 왔다. 선생님께서 워낙 꼼꼼하시니까 내가 쓴 글에 문제가 있어 전화하신 줄 알았다. 그런데 더듬거리는 말투로, 단어와 단어 사이에 약간 휴지를 두면서, 고맙다고, 나를 이렇게 잘 이해해준 글은 없었다고, 감동적이었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운전 중이었는데 갑자기 눈물이 뚝뚝 떨어져서 차를 세우고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인터뷰 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좋은 작가는 자기가 왜 글을 쓰는지, 세계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이 두 가지 물음이 내 삶의 지표다. 가장 오랜 섭외 시간 끝에 만난 인터뷰이는 누구였나? 결정적으로 섭외에 성공할 수 있었던 계기도 궁금하다. 시인 최승자 선생님. 6개월이 걸렸다. 최승자 선생님을 인터뷰하게 됐다고 했을 때 친하게 지내는 작가 친구들 대부분이 믿지 않았다. 선생님께서는 전화기를 꺼두실 때가 많았다. 출근할 때마다 전화를 걸었고 어렵게 몇 번을 통화했다. 그때마다 설득했다. 좀 신기해하셨던 것 같다. 패션 잡지에서 인터뷰하겠다고 애쓰는 게. 선생님 생애 두 번째 인터뷰였다. 무한한 섭외의 자유가 주어진다면 누구를 섭외하고 싶나? 그에게 묻고 싶은 세 가지 질문은? 이런 질문에 냉소적이었던 적이 있다. 인간에 대한 실망이 커져 인터뷰하고 싶은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내 관점이 결코 진리일 수 없고 나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는 뻔하고 진부한 사실을 어느 날 절실하게 깨달았다. 애정을 버려선 안 된다. 넬슨 만델라 대통령을 만나 용서와 화해 그리고 월드컵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월드컵을 위해 지은 넬슨 만델라 경기장 관중석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자리는 어딘지 묻고 싶다. 남은 삶을 통해 더 이루고 싶은 게 있는지도 묻고 싶다. 몇몇 질문은 답을 예상할 수 있지만 그를 통해 직접 들어야 의미 있다. 꼭 한 번 다시 인터뷰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아이비. 그녀가 정점에 있을 때 인터뷰했는데 그때 나는 너무 어렸다. 묻는 질문마다 빤한 답을 내놓았다. 남자친구가 없다고 했다. 나중에 보니, 있었다. 그것 말고도 속은 게 한둘이 아니다. 다시 만나면 빤한 답을 해도 안 빤하게 만들 수 있다. 속지 않을 자신도 있다. 그렇지만 적나라한 인터뷰를 하고 싶은 건 아니다. 삶이 왜 그렇게 아픈지, 진심으로 이야기하고 싶다. 변함없이 나는 그녀의 팬이니까. 이우성· 피처 디렉터 인터뷰=시한부 연애. 인터뷰 후 친구 혹은 지인으로 남은 사람이 있나? 그 계기나 이유는? 은근한 작업을 받아본 적이 몇 번, 드물게 친구 혹은 비슷한 관계로 남은 이도 몇 명. 계기는 단순했던 것 같다. 어떤 땐 공통의 관심사였고 또 어떤 땐 서로 막연하게 느끼는 친숙함이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케머스트리란 게 참 묘하다. 그 미묘한 패턴을 다 알 것만 같다는 오만함이 드는 순간이면 어김없이, 역시 정답은 없다는 걸 깨닫게 되는 일들이 뒤따라온다. 이 절대 명제는 인터뷰에도 고스란히 적용되는데 그래도 세월과 함께 어쩌다 그런 일이 생긴다. 인터뷰마다 꼭 하게 되는 ‘나만의 단골 질문’을 꼽자면? 나는 그들을 이끄는 결정적인 무엇, 하다 하다 벽에 부딪혔을 때,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나게 하는 무엇, 포기할 수 없는 무엇이 늘 궁금하다. 누구에게나 각자의 삶을 진짜라고 느끼게 해주는 에너지원이 하나쯤은 존재한다고 생각하니까. 하지만 인터뷰라는 짧은 스파링 동안 재능과 욕망의 괴리는 어떻게 풀어가는지 그 전부를 알아내려 안달하진 않는다. 단지 함께하는 현재라는 시간만이라도 제대로 공유하려 애쓴다. 첫 대면의 순간, 인터뷰이와 긴장을 허무는 ‘나만의 노하우’를 말해달라. 칭찬. 정말 예쁜 여배우에겐 예쁘다고(아무리 많이 들어도 그들은 질리지 않는다) 이야기해주고, 기싸움을 하는 대신 감탄스러운 부분은 솔직하게 드러내놓고 감탄한다. 지나치게 사적인 질문으로 바로 파고드는 건 금기.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투자하는 만큼 인터뷰이들도 각자의 기대치와 목적이 있다. 그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부터 하게 해준다. 영화 개봉을 앞둔 배우에게는 작품과 연기 이야기를, 오랜만에 이미지 변신을 꿈꾸는 스타와는 함께 아이디어를 나누고 영감의 원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로 흐름을 이끈다. 환상을 한순간에 깨버린 인터뷰이, 그리고 의외로 가장 만족스러운 결과를 안겨준 인터뷰이는? 그의 음악은 나의 어린 시절이었다. 언어가 아니라 오로지 감정만이 넘실대던 그 아스라한 밤들, 그의 목소리는 미장센을 완성하는 배경음악이었다. 첫사랑 혹은 그 시절 성장통의 동음이의어였던 그 노래, 그 목소리. 15년도 더 지난 어느 날, 마침내 어렵게 성사시킨 만남. 그건 결코 닿을 수 없는 견고한 벽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돌아서면서 왠지 씁쓸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인터뷰 때 꼭 챙겨가는 물건은? 한 때 담배가 필수품이었던 적도 있었다. 담배를 끊은 지금은 평소에도 늘 지니고 다니는 녹음기와 수첩, 펜 그리고 블랙베리면 충분하다. 가장 단순한 조합이지만 없으면 암담해지는 필수품들. 작정하고 앉아 이야기를 시작할 땐 녹음기를 켜지만 촬영 틈틈이 이야기를 나눌 땐 블랙베리로 메모 기능을 활용하거나 직접 녹음하는 편이다. ENG카메라가 그렇듯 녹음기도 종종 사람들이 끄집어내려던 진심을 다시 꾹꾹 눌러버리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위해선 스스로 매력적인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려면 우선 내 모습이 마음에 들어야 한다. 평소보다 한 번 더 거울을 보고 좋아하는 옷으로 조합을 맞춘다. 되도록 힐을 신지만 새 구두는 피한다. 인터뷰 현장에서 나는 자유롭고 편안한 상태여야 하지만 동시에 몸 위에 걸친 옷 어딘가엔 녹음기와 수첩, 펜, 블랙베리, 명함 지갑이 언제든 켜고 꺼낼 수 있게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인터뷰이에게 집중하며 현장을 컨트롤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준비 과정인 셈이다. 남녀를 불문하고 ‘내 생애 가장 매력적이었던 인터뷰이’를 밝혀달라. ‘가장’을 꼽긴 힘들고 질문과 함께 반사적으로 기억나는 이들은 넘친다. 딱 기대만큼 나지막하고 달콤한 목소리의 이병헌, 까르르 천진하게 웃고 씩씩하게 대답하던 김연아, 함께 ‘엄마’ 이야기를 하다가 코끝이 찡해졌던 인순이, 사람이 사람을 마주한다는 행위를 다시 돌아보게 했던 표민수 감독 등등.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었던 인터뷰가 있나? 비교적 최근으로는 출장 전날 밤, 함께 떠나는 포토그래퍼의 여권이 만기되어 그때부터 2시간 동안 눈물 젖은 야밤 섭외로 다음 날 새로운 포토그래퍼와 출장길에 나선 것. 항공은 물론 호텔까지 부킹했다가 통째로 캔슬한 일은 한 손으로는 다 꼽을 수 없다. 스튜디오에서 갑자기 기분이 급변해 나가버린 모씨라거나 2시간 늦게 나타난 모씨 등은 이제 기억도 희미하다. 더 아찔한 건 알고 보니 녹음 파일이 갑자기 삭제됐다거나 하는 일들. 그런 일들을 겪다 보면 이제 어떤 일에도 놀라지 않을 거라 생각하게 되지만 인생이 어디 말처럼 되어야 말이지. 인터뷰했던 사람 중 세상을 떠난 사람이 있나? 그에 관한 기억이 궁금하다. 영화배우 장진영. 뻔한 대답을 하지 않는 인터뷰이였고, 맑았고, 분명했다. 별다른 주문이 필요 없을 만큼 카메라 앞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던 그녀의 몸짓과 경쾌한 웃음소리가 오래 기억에 남는다. 박소영· 피처 디렉터*자세한 내용은 엘르걸 본지 6월호를 참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