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라면 모두 공감할 택시에 관한 이야기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젊은 여성에게 택시를 탄다는 건 그야말로 '복불복'에 가깝다. | 택시,타다,파파,대중교통,이야기

  얼마 전 친구와 택시를 탈 일이 있었다. 출발지는 서울 마포구 망원동, 도착지는 서울 용산구 이촌동. 약간의 짐을 들고 언제나처럼 자연스럽게 ‘타다’ 앱을 켰다. 수요가 많은 시간이라 평소 요금의 1.2배가 책정된다는 알림이 떴지만, 우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번갈아가며 세 번 정도 ‘콜’을 시도했다. 정말 가장 바쁜 주말 낮이라 그런지 아무리 기다려도 택시가 배정되지 않았다. 결국 오랜만에 카카오 T 앱을 찾았다.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다른 앱이 등장한 탓일까, 요금 1000원을 더 내는 ‘스마트 호출’을 지정하지 않았음에도 의외로 카카오택시는 금방 잡혔다. 대로에 서 있는 우리를 좀처럼 찾아오지 못하고 망원시장 근처 골목을 빙빙 돌다가 택시는 10분 후, 우리 앞에 도착했다. “아, 뒷길에 차가 너무 많아 빠져나오느라 오래 걸렸네. 에이씨.” 우리가 택시 뒷좌석에 앉자마자 기사는 반말도 존댓말도, 혼잣말도, 우리에게 건네는 말도 아닌 말투로 중얼거렸다. 택시는 얼마간 달려 곧 이촌동에 도착했다. 시간은 정확했고, 불필요한 대화도 없었으니 이만하면 나름 쾌적한 주행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앱을 통해 목적지로 설정한 장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우리를 데려다 놓았다는 사실만 빼면. 우리가 내린 곳 바로 앞에는 아마도 김포공항 혹은 인천공항까지 갈 것으로 보이는 짐을 많이 든 사람들이 서 있었고, 그제야 택시 기사가 우리를 목적지보다 먼 곳에 내려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뮤지션이자 영화감독인 이랑이 친구들과 만드는 뉴스레터 <앨리바바와 30인의 친구친구> 1편에는 택시 관련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카카오택시를 이용하려던 이랑은 중간에 착오가 생기는 바람에 다른 택시를 타게 되고, 원래 타려던 택시 기사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는다. 상황을 설명하는 이랑에게 기사는 다짜고짜 욕을 퍼붓고, 심지어 전화를 끊은 후 문자로도 욕을 남긴다. “개 같은 년.” 대한민국 30대 여성인 나는 이랑의 에피소드에 즉각 공감했다. 택시를 타는 건 늘 부담스러운 일이다. 인구 밀도가 높은 지하철이나 버스와는 전혀 다른 육체적인 안락함을 아는데도 그렇다. 당연히 20대 때도 그랬다. 젊은 여성이, 택시를 탈 때는 높은 확률로 불쾌한 경험이 동반된다. 이른 아침 혼자 택시를 탔을 때는 “첫 손님이 여자 한 명이면 종일 재수가 없다”는 말을 들었고, 기본요금이 나올 거리이거나 택시로 찾아가기 까다로운 장소로 갈 때는 목적지에 다다를 때까지 몇 번이고 욕설 혹은 푸념을 들어야 했다. “마포에서 서울역으로 갈 때는 서부역에 내려달라고 해야 돼. 알겠어?” “거길 갈 거면 맞은편에서 탔어야지. 이러면 내가 저기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와야 한다고.” “여기 일방통행이라서 못 나가는 거 몰랐어요?” 같은 지적이나 핀잔을 들은 적은 셀 수도 없다. “내 아들이 아주 괜찮은데, 한번 만나볼 생각 있어요?”라거나 “예쁜 공주님이 왜 이렇게 늦게까지 일을 하시나?”처럼 사적인 관계를 맺으려 하거나, 애매한 수위의 성희롱을 겪었다는 경험담은 끝없이 들려온다. 그럴 때마다 지금 당신의 말이 나를 매우 불쾌하게 만든다고 바로 대꾸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택시 안에 나와 남성 운전자 밖에 없다는 점, 심지어 차량을 조종할 수 있는 권한이 운전대를 잡고 있는 남성에게 주어져 있다는 점 때문에 언제나 움츠러들고 만다. 화나고 속상하지만 보통 대강 웃어넘기거나 못 들은 척하고 목적지까지 조용히 갈 수밖에 없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일은 내가 만만하게 생겨서, 대부분의 택시 기사보다 나이가 어린 승객이기 때문에 겪는 줄 알았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남편에게 자신은 살아오는 동안 단 한 번도 택시에서 이런 일을 당해본 적 없다는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기본요금 정도의 거리를 가야 할 때 그냥 버스를 타자는 나와 기본요금 거리니까 당연히 택시를 타야 한다는 남편은 늘 옥신각신했고, 그것이 지금까지 겪어온 경험의 차이 때문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그리고 기본요금이 나오는 거리를 가기 위해 남편과 함께 택시를 탄 어느 날, 나는 짧은 거리를 갈 때도 이렇게 쾌적하게 택시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에 조금 놀라고 많이 좌절했다.     나 같은 여성에게 일반 택시(카카오택시 포함)와 ‘타다’는 아예 다른 서비스다. 타다가 서비스를 개시하자마자 빠르게 입소문을 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클래식이 흐르는 차 안이나 자동으로 열리고 닫히는 문도 물론 좋지만, 가장 쾌적함을 느끼게 하는 요소는 기사들의 공적인 태도다. 안전벨트를 매 주세요, 불편한 데는 없으신가요, 출발하겠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놓고 가시는 물건이 없는지 확인해 주세요, 조심히 내리세요. 출발부터 도착까지 많아야 여섯 마디가 될까 말까 한 기사들의 말에 ‘나는 당신을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일을 하는 사람이며, 당신은 이 차량을 이용하는 사람일 뿐’이라는 태도가 묻어 있다. 이때 택시는 서비스 제공자와 이용자가 만나는 공적인 장소가 된다. 타다를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그동안 왜 그렇게까지 택시 타기에 피로감을 느꼈는지 조금 더 명확하게 깨달았다. 기사들이 욕설이나 반말을 하는 것, 이유 없이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 훈계하는 것 등은 단순한 서비스 이용자인 나에게 지나치게 사적으로 접근하는 행위에 가까웠고, 그럴 때마다 택시는 처음 만나는 타인으로부터 내 영역을 보호할 수 없는, 피곤하고 위험하기까지 한 공간으로 변했다. 보통 어떨 때 택시를 타게 되는지 생각해 보면 이것은 모순이다. 사람에게 치이고 싶지 않을 때, 피로할 때, 바쁠 때, 쾌적하고 편안하게 이동하기 위해 이용한 택시가 더 큰 불편함을 안겨주다니!   택시에 극진한 서비스를 바란다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타다’를 이용하며 길이 험한 탓에 차가 조금 덜컹거렸다는 이유로 “불편하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라는 운전사의 말을 들으며 ‘그렇게까지 조심하실 필요는 없는데요…’라고 생각한 적 있다. 당연히 돈 내고 택시를 이용하는 손님이 ‘갑’이라고 주장하고 싶지도 않다. 온종일 혼자 좁은 공간에서 운전하는 일이 얼마나 고독하고 고단한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으며, 택시 기사를 고통스럽게 하는 승객 역시 매우 많다는 걸, 그래서 기사들도 극심한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 역시 짐작할 수 있다.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좋은 기사도 당연히 많이 만났다. 타다의 편의성을 많은 사람이 극찬하고 있지만, 정작 그 서비스를 돌아가게 하는 운전자들은 합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최근 면허를 둘러싼 개인택시 기사들과 타다 측의 갈등 관련 뉴스를 보며, 누군가의 생존이 달려 있는 문제 앞에서 서비스 이용자인 나는 편의성만 추구해도 괜찮은지 고민하기도 한다. 기사에게는 부담이었던 사납금 제도 대신 월급제를 도입하고, 임산부와 노인 등 노약자를 위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마카롱 택시’ 같은 새로운 서비스에도 관심이 간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여성인 내가 지금 택시에 바라는 바는 딱 하나다. 택시는 그야말로 ‘대중교통’임을 이해하며 서로를 서비스 제공자와 이용자로, 또 동등한 시민으로 존중하자는 것. 더 이상 우리가 택시에서의 경험을 개인의 운에 맡기지 않아도 되도록 말이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황효진 다양한 콘텐츠를 여성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헤이메이트’, 일하는 여성들을 위한 커뮤니티 서비스 ‘빌라선샤인’에서 콘텐츠를 기획하고 있다. <아무튼 잡지> <여자들은 먼저 미래로 간다>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