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트는 Heroine. 셔츠는 Hugo Boss. 슈즈는 Converse.   ‘재재 월급 좀 올려주세요’ <문명특급> 댓글창에 빠지지 않는 댓글이다. SBS에서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스브스뉴스’ 시리즈인 <문명특급>은 2018년 2월 첫선을 보인 후 현재까지 누적 조회수 1500백만 회를 기록했다. ‘신문물을 전파하라’는 특명하에 옥탑방 더위를 체험 중인 박원순 서울시장을 찾고, 귀여니와 노라조를 만나며 초등학생들과 ‘틱톡’ 손가락 댄스를 배우는 이 시리즈의 인기를 견인하는 MC 재재, SBS 이은재 PD는 밝은 에너지와 선명한 생각으로 가득하다.     연예인도 아니고 일반인도 아닌 ‘연반인’ 재재를 만나게 돼서 영광이다. ‘연반인’이라는 단어를 덕분에 알게 됐다 기획 중 하나인 ‘숨어 듣는 명곡’에 ‘이러쿵저러쿵’으로 언급된 파이브돌스의 멤버 은교 씨와 밥을 먹은 적 있다. 그때 알게 된 말이다. 나중에 인스타 DM으로 이 표현을 써도 될지 물어봤더니 허락해 주셨다. ‘스페셜 땡스 투 은교’라고 써달라. 연반인의 삶에는 즐거움과 어려움이 있을 것 같은데 연예인과 비슷한 점이 있다면 사람들이 알아본다는 점일 것이다.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사람들이 나를 관찰하고 있다는 사실이 가끔 우려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영화관 화장실에서 재재 언니 봤어요!’ 같은 댓글을 볼 때다. 그때 내가 장 트러블이 났다면? 표정이 안 좋았다면?   그래도 오늘 현장에서는 연반인 라이프를 매우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이렇게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일반인 봉급을 받으니까 문제다! 그러나 내가 항상 주인공은 아니다. 오늘 같은 촬영일이 MC 재재의 <문명특급>이라면, CG 작업을 할 때는 담당자인 김하경이, 연출 회의 때는 홍민지 PD가 주인공인 식이다. 스브스 카드 뉴스로 일을 시작했다. SBS라는 레거시 미디어가 뉴미디어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한 셈인데 회사 내부의 시선이나 평가가 신경 쓰이진 않는지 사내에서도 실험이자 도전이었던 것 같다. 처음 캐치프레이즈였던 ‘SBS가 내놓은 자식들’이라는 표현만 봐도 자조적인 면이 있다. 지금도 레거시만큼의 위상을 쳐주지 않는 건 확실하지만 우리도 그쪽 반응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최근 양측이 통합하며 성장하려는 움직임이 보이긴 하다. <문명특급> 이전의 콘텐츠인 <다시 만난 세대> 초반에는 기존 SBS 기자들이 출연하기도 했다 20대와 40대가 만나는 ‘2040’ 편이다. 진짜 우리가 서로 안 통해서 만들었다(웃음). 그때는 조회 수가 많이 나오지 않았는데 10대와 20대가 만났던 5편 ‘90년생 패션에 기죽은 03년생 반응’ 편부터 터졌다.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 작업 중에서 애정이 가는 게 있다면 혼자 카드 뉴스를 만들던 시절에는 ‘역사 속의 그 많던 여자들은 어디로 갔을까’라는 궁금증을 갖고 시작한 ‘미싱(Missing)’이다. 여성 화가라 배척받았던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XY 유전자를 발견한 네티 스티븐슨 등을 다뤘는데 9편까지 하고 ‘미싱’돼 버렸다(웃음). 하지만 지금 만드는 <문명특급> 콘텐츠와 크게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명특급>도 시사교양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개인 유튜브 채널인 <해피아가리 Happy I Got It!>을 운영한 지도 1년 반이 넘었다.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SBS 4기 인턴이었던 정혜윤과 2기 인턴이었던 나, 둘 다 정규직 전환이 되기 전 유튜브 시장에 눈떴다. 인턴 시절 아이템을 가져갈 때마다 선배들에게 이런 건 너네 개인 계정에나 올리라는 피드백을 많이 받은 것도 자극이 됐다. 그래서 정말 개인 계정을 만들어버린 건가(웃음) ‘상근직 프리랜서’라는 형용 모순적인 직함을 달고 일할 때라 프리랜서인데 뭐 어쩔 거냐는 마음이었다. 당시 <다시 만난 세대>가 반응을 얻으면서 지금 아니면 일을 못 벌일 것 같다는 불안감도 있었다. 서로 책임감을 갖고 격주로 한 편씩 꾸역꾸역 해나가고 있다. 얼마 전 모교인 이화여대에서 강연을 했다. 후배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나 취업 준비를 오래했다. 첫 학기에는 자소서만 50개를 썼을 정도다. 많이 의기소침해졌고 특히 기준이 상대적으로 불분명한 임원 면접에 연달아 떨어질 때는 내가 쇼트커트이기 때문인가, 사회가 제시하는 여성성에 나를 맞춰야 하나 하는 고민도 했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을 하게 될 줄 전혀 몰랐다. 후배들에게 그러니까 마음대로 해도 괜찮다는, 같은 고민을 했던 여성으로서 위로를 전하고 싶었다. 어릴 때 좋아했던 개그 콘텐츠는 <개그콘서트> 시대다. 특히 강유미, 안영미의 ‘예술 속으로 고고’를 너무 좋아했다. 비하하거나 호통치는 것보다 재치 있는 대화로 웃기는 걸 좋아한다. 누군가를 깎아내리지 않으면서 웃기는 건 쉽지 않다. 논란이 있던 15번째 에피소드 ‘홈카페하는 인스타 장인에게 감성 사진 꿀팁 배우고 옴’ 편에 대한 피드백을 빨리 한 게 인상 깊었다 현실과 인스타그램 사진 사이의 괴리감을 재미있게 살리려 했는데 그걸 영상에 충분히 담아내지 못했다. 처음에 도가 지나친 것 같다는 비판 댓글이 달릴 때는 ‘현장에서는 아무 문제 없었는데 왜 그러지?’라고 생각했는데 진짜로 홈 카페나 인스타그램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불쾌할 만한 요소가 있었던 거다. 문제가 생겼을 때 쌍방향으로 즉각 반응할 수 있다는 게 뉴미디어의 장점 아닐까.     체크 패턴 재킷은 Heroine. 안에 입은 슬리브리스 셔츠는 Nine. 팬츠는 Mocobling. 슈즈는 Converse. 올해 서른이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나. 워낙 다양한 세대를 만나다 보니 나이 드는 것에 대한 교훈도 얻었을 것 같다 롤 모델이 있어도 어차피 그렇게 되기 어렵다면 차라리 반면교사로 삼을 만한 사람들을 참고하려 한다. 저렇게 살지 말자는. 후배들을 보며 나도 내가 아는 걸 너무 알려주고 싶을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자기검열을 한다. 당신을 즐겁게 하는 건 뭔가 100% 사람이다. 여러 인터뷰이를 만나는 것도 그래서 너무 즐겁다. 2017년 <다시 만난 세대> 때부터 함께한 홍민지 PD를 비롯해 같이 일하는 동료들을 정말 좋아한다. 이 유대감 덕에 계속 열심히 할 수 있다. 팀 자랑을 좀 더 한다면 막내들이 시끄럽다는 건 정말 자랑이다. 특히 팀장님이 재미있다고 하면 무조건 경계하고 본다. ‘2040’ 편도 너무 재미있다고 하셨는게 망했다! 잘된 게 하나도 없다(웃음). 하지만 방송은 감이 굉장히 중요하지 않나. 적극적으로 96, 97년생 막내들에게 의존하려는 이유다. ‘콘텐츠에 대한 감’은 잡지도 늘 고민하는 부분이다 초등학생을 만나서 ‘틱톡’을 처음 해봤다. 하지만 내가 10대랑 똑같을 수도 그들 감성을 억지로 따라갈 수도 없다. 대신 그들이 아니라고 하는 걸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올드’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자. 지금의 기로에서 욕심나는 게 있다면 항상 어느 정도 의미 있고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 특히 자극적인 콘텐츠를 보고 자라는 10대에게 이 시리즈가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길 바란다. 당신에게 사람과 관계의 의미는 영화 <비포 선라이즈>에서 셀린(줄리 델피)의 대사, “만일 신이 존재한다면 너, 나, 우리, 그 안에 존재하지는 않을 것 같아. 신은 우리 사이의 작은 공간에 아마 존재할 거야”라는 말을 좌우명처럼 삼고 있다. 지금 하는 일은 내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다. 누군가의 도움 덕분에 해낼 수 있기에 앞으로도 그 힘으로 계속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