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출산이 친구 사이에 미치는 영향 | 엘르코리아 (ELLE KOREA)

비혼러와 육아 맘, 어느덧 다른 세계를 사는 우리의 우정은 어디로?::결혼,출산,여성,친구,우정,비혼,육아,에세이,엘르,elle.co.kr:: | 결혼,출산,여성,친구,우정

달라 보여도 같은 걸지난해 1월쯤. 잔뜩 배가 나온 Y와 H가 나란히 회사 앞에 찾아왔을 때 맹세했다. 아, 비록 결혼과 육아가 우리를 갈라놓을지라도 이 우정을 지키리라! 내 눈엔 10대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친구들이 남들 눈엔 완벽한 ‘만삭의 임산부’로 보인다는 것, 그럼에도 나를 보러 여기까지 와준 것만으로 감동의 눈물이 났다. 우리는 약재를 잔뜩 넣은 훠궈 샤브샤브와 디저트를 먹고 헤어졌다.  한번도 비혼을 강력히 결심한 적 없건만,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보니 친구들은 전부(거의)가 결혼했다. 일곱 명이 속한 단톡방에 이제 미혼은 나뿐. 수없이 많은 결혼식에 참석했고, 그중 더 이상 연락이 닿지 않는 이도 많으며, 내 결혼식은 여전히 요원하지만 맹세코 본전 생각을 한 적은 없다. ‘인싸’ 중에 ‘인싸’인 우리 엄마아빠가 그동안 낸 수많은 축의금이 좀 아깝지만…. 별 수 없지 뭐. 카카오스토리도 인스타그램도 하지 않고, 청첩장 소식을 알리는 단톡방도 시들해진 탓일까. ‘결혼한 친구들이 남편과 시댁 욕만 해서 괴로워요’ ‘자기 애 사진만 수십 장 보내요’ 같은 일은 내게 생기지 않았다. 사촌 조카들 이름도 더듬더듬 외울 정도로 아기에 관심이 덜한 편이라고 해도 조금 섭섭할 지경이었다. 아이 사진으로 바뀐 친구들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넘기며 ‘음 잘 살고 있나 보군!’ 짐작만 하던 어느날. 문득 우리의 우정을 되살려야겠다는 마음이 솟구쳤다. 우선 중학생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 Y에게 연락해 보니, Y는 이미 H의 상황을 훤히 알고 있는 것 아닌가! 막 육아 휴직을 마치고 회사에 복귀했다는 사실과 곧 있을 딸의 돌잔치에 관한 내용까지. 비슷한 시기에 임신과 출산을 겪은 두 사람은 수시로 연락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일순 소외감이 들었지만 원래 생판 모르던 사이도 조리원에서 만나면 평생 친구가 된다고 하니까. 3년 전 결혼한 또 다른 동창 S까지, 넷이서 호텔 라운지에서 가진 두 시간 남짓한 만남 동안 나는 새삼 인정하게 됐다. 그들에게 가장 가깝고 중요한 운명 공동체는 새로운 가족이란 사실을. 그렇다고 친구들이 남편과 아이 이야기만 잔뜩 했다는 건 아니다. 그날 우리 대화의 주된 주제는 S의 새 직장과 어떤 정치인의 스캔들에 관한 것이었다. 다만 아이를 챙기기 위해 동석한 H의 남편, 마침 그 호텔 라운지 할인 혜택이 있다며 신용카드를 챙겨 보낸 Y의 남편, 헤어질 시간에 맞춰 차를 끌고 마중 나온 S 남편을 보며, ‘친구 남편들’이라는 엄청난 존재감을 목격했을 뿐. 연애는 한때 우리에게 가장 재미있는 주제였지만 이제는 아무도 내 남자친구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는다. 연애 시장을 탈출한 기혼자에게, 비혼자의 연애는 아주 옛날에 지나온 길일 뿐이니까. 그래서 서럽거나 부러웠냐면 그렇진 않다. “애 안 낳을 거면 굳이 결혼하지 마” “능력 되면 혼자 살아” 같은 친구들의 추임새가 반쯤 진심이고 반쯤은 거짓인 것처럼, 나 역시 친구들의 결혼 생활에 행복도 질곡도 있을 것이라 짐작할 뿐. 우리는 이제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사이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서 있는 곳이 다르기에 또 다른 지지를 보낼 수 있는 부분이 있음을 안다. 회사 내 첫 여자 기수인 자신의 임신과 출산이 여자 후배들에게 선례가 될 수 있음을 의식하고, 복직 후 육아를 위해 당분간 시댁과 합가를 결정하기도 하며 고군분투하는 내 친구들에게 세상이 너무 쉽게 ‘민폐 워킹 맘’ ‘맘충’ ‘경단녀’ 같은 딱지를 붙일 수 있다고 생각하면 속에서 열불 천불이 나는 것처럼! 그리고 ‘30대 중반 비혼 여성(a.k.a 노처녀)’이라는, 친구들이 가지 않은 길을 걷고 있는 나를 위해 그녀들이 해줄 수 있는 것 또한 있지 않을까? “내 친구 중에 마루라는 애가 있는데 말이야”라는 문장의 뒤에 이해와 응원이 따라 붙으면 좋겠다. 부디!이마루(34세, 고양이 두 마리와 동거 중)다시 함께할 시간이 올 거야“왜 애기 얘기만 할까?” 나도 그런 생각을 한 때가 있었다. 서른을 넘겨 결혼했고, 이후에도 이런저런 핑계로 출산을 유보한 나와 달리 내 오랜 친구들은 부지런히 생의 경로를 밟았다. 어쩌다 보니, 모임을 가면 나만 빼고 모두 ‘애엄마’인 경우도 늘어났다. 육아와 시월드에 대한 그네들의 대화를 꽤 흥미롭게 경청하는 편이었으나 가끔 지루하거나 아쉽다는 생각도 들었다. 친구들은 이제 다른 주제에 대해서는 관심이 사라진 걸까? 소피아 코폴라의 신작 영화나 지난 호에 실린 내 인터뷰 기사는? 그리하여 ‘노산’ 딱지가 붙은 임산부가 됐을 때, 마음속으로 이런 결심이 스쳤다. 나는 안 그래야지, 난 변함없을 거야. 이것이 얼마나 무지하고 오만한 생각이었는지 깨닫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모유수유의 고통과 수면 부족, 오르락내리락하는 감정의 롤러코스터 속에서 과거에 흘려 들었던 친구들의 얘기를 곱씹으며 절로 사죄의 말이 나왔다. “미안해, 그때 네가 이렇게 힘든 줄 몰랐어.” 출산은 과연 내가 속한 우주가 흔들리는 경험이었다. 그동안 나를 중심으로 돌던 행성의 자전축이 변화하고, 평행 우주의 어느 블랙홀에 빠진 듯한 기분. 같은 전쟁을 치르는 전우이자 생존자인 선배 ‘맘’들의 조언은 그야말로 피가 되고 살이 됐다. 그러나 내게 위로를 준 건 단지 동병상련을 느끼는 애엄마 친구들만은 아니었다. 마흔을 맞이해 ‘인생 휴가’ 중이었던 C 선배가 파리에서 보내준 예쁜 아기옷과 손글씨 카드를 받아들고 코끝이 얼마나 찡했던지. 내 아기를 다정히 바라봐 주고, 내 달라진 삶에 평안을 기원하는 친구와 선후배들의 마음에 여러 번 감격했다. 출산 휴가를 마치고 직장에 복귀했으나 삶의 궤도는 전과 같지 않았다. 무엇보다 압도적으로 시간이 부족했다(자녀가 있는 30~40대 기혼 여성이 가장 극심한 시간 빈곤에 시달린다고 통계는 말한다). 미혼 친구들에게 ‘멀어진 느낌’을 주고 싶지 않았으나, 예전처럼 퇴근 후 함께 술을 마시거나 영화를 보러 가기란 쉽지 않았다. 즉흥적으로 해외 여행을 가고, 자신을 위해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그네들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하고, 여전히 생기 넘치고 반짝이는 친구들에 비해 머리 모양도 손톱 케어도 엉망인, 피곤에 찌든 거울 속 내 모습이 씁쓸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밥 한 끼 먹는 약속도 번복하기 일쑤인 내 사정을 헤아려 주고, 잠시나마 내가 나일 수 있도록 환기시켜 주는 그네들이 없다면, 나는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생각한다. 혹여 내 경험이 친구들의 다른 삶을 재단하는 기준이 되지 않기를. 그들이 앞으로 어떤 행로, 어떤 형태로 살아가든 존중할 것이며 진심 어린 응원을 보내겠다고. 더불어 동화책 속에는 없는, 혼자서도 즐겁고 당당하게 사는 이모들의 존재는 내 아이의 가치관 형성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간 남자들의 우정 내지 의리가 더 대우받았던 건, 남자들은 결혼 후에도 친목 도모가 더 용이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매일 반복되는 육체적, 정신적 노동에 기진맥진, 내 혼을 붙들고 있기도 힘든 게 대다수의 워킹 맘과 육아 맘의 현실. 우리의 우정을 가로막고 있는 건 여성에게 출산과 육아의 짐을 전가하는 가부장적 사회의 구조일지니! 비록 예전처럼 서로의 일상을 촘촘히 공유하지 못할지라도, 친구란 그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웃음 짓게 한다. 나이 지긋한 중년 여성이나 할머니들이 함께 어울리고 여행을 가는 모습이 부쩍 정겨워 보인다. 엄마라는 숙제, 여성이란 속박에서 벗어나, 오롯이 ‘나’와 ‘너’로 함께 웃고 떠드는 풍경. 친구야, 우리도 끝까지 함께 가자.김아름(생후 30개월 아들을 육아 중인 워킹 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