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이 변하는 게 마음이라 해도 | 엘르코리아 (ELLE KOREA)

변하는 마음이야말로 물처럼 자연스러운 것 아닐까? | 사랑,발렌타인,밸런타인,커플,연애

사랑은 늘 속였고, 나는 자주 속았다. 모든 관계는 느닷없이 끝나는 것 같았다. 자연재해처럼 속수무책으로, 별다른 예고도 없이 그렇게 됐다. 사랑할 땐 흉한 모습도 그렇게 서로 예쁘더니, 사소한 일로 이상하다 싶을 만큼 흠을 잡을 땐 영문도 모르고 사과했었다. 억울해서 했던 몇 마디는 곧 다툼이 되었다. 사과는 싸우기 싫은 사람이 먼저 하는 것이었다. 모든 사과가 옳은 것도 아니었다. 어떤 사과는 마땅히 갈라져야 할 때가 된 사이를 유야무야 봉합만 해놓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위태롭게 유지하는 관계에도 작은 행복은 있는 법이니까, 그렇게 이별의 징조를 외면한 후에도 관계가 바로 망가지지는 않았다. 관성 혹은 습관. 지내던 대로 지내는 일. 이별을 겪어내는 것보다 이렇게라도 유지하는 쪽이 경제적일 거라는 감정적 계산 같은 것들이 어찌어찌 관계를 유지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더 위험해지는 것 같았다."변했어" 라는 말은 변한 사람이 먼저 하는 말이었다. 처음엔 의아했다. 당연한 말을 왜 하는 걸까? 우리는 사실 지속적으로 변하는 중이 아닐까? 한결 같은 마음이라는 게 있을까? 세상엔 그렇게 지속적으로 깊어지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사랑도 있을 것이다. 모든 연애는 그런 기대 위에서 묘목처럼 시작하는 마음의 상태인지도 몰랐다. 병상에 있는 아내에게 꽃다발을 선물하면서 서로 웃거나, 서로 엉덩이에 손을 대고 설거지를 하는 노년 부부의 사진을 리트윗할 때의 애틋한 판타지. 그런 사랑이야말로 아름답다고 생각하면서, 상상하고 원하면서, 그렇게 강인한 일상을 지탱할 의지나 힘은 아직 없는 채. 하지만 일상의 “변했어”는 다른 말이었다. 그토록 당연한 말을 굳이 선언할 때, 언어는 언어 자체의 의미를 훌쩍 벗어났다. 명확한 의도가 있었다는 뜻이다. 일단 “나는 그대로인데 당신이 변해서 섭섭하다”는 항의의 표현일 수도 있을 것이다. 당신은 이제 변했으니 우리 관계도 변한 것 같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낀다는 의미로서. 혹은 가볍지 않은 투정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떤 식으로든 상대에 대한 기대가 충족되지 않는, 일종의 답보 상태에서 푸념처럼 하는 말. 습관적으로 하는 데이트, 만나야 하니까 만나는 시간, 외로움을 피하기 위한 쉬운 방책으로서의 연애만큼 일상을 구차하게 만드는 것도 없을 테니까. “이런 사람인 줄 몰랐다”는 말을 공격적으로 하고 싶은 마음인지도 몰랐다. 아마 보고 싶은 것만 볼 수 있는 시기가 다 지난 후의 냉랭한 감정이었을 것이다. 상대가 변한게 아니라 상대를 보는 내 마음이 변했다는 의미. 상대를 긍정적으로 왜곡하는 일이야말로 사랑의 효용이니까. 상대가 속인 게 아니라 스스로의 감정에 속아 넘어갔다는 걸 깨달은 후, 그 억울하고 공격적인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한 마디로 표현한 순간일 수도 있었다. 사랑이라고 믿었던 그 감정도 당신을 좋게 보고 싶은 마음의 유통기한도 다 끝났다는 뜻이다. 그러니 누군가 “변했다”고 말했을 때, 혹은 말할 때, 그 한 마디야말로 완곡한 이별의 메시지일 거라고 지금은 생각한다. "응? 뭐가 변했어? 하나도 안 변했어 더 사랑하는데?" 명랑한 듯 멍청한 듯 되묻는 얼굴을 볼 때, 안도보다 권태를 더 크게 느꼈을 사람의 마음은 그때 얼마나 허무했을까? 지긋지긋할 정도로 싸우다 폭발한 마음 그대로 울면서 헤어지고 싶었는데, 싸움이 깊어질 무렵 진심으로 사과하는 사람을 앞에 둔 마음은 또 얼마나 황망했을까? 우리는 오해 때문에 헤어진 게 아니라, 혹시 오해 때문에 사랑이라고 착각했던 관계는 아니었을까? 이미 끝난 관계를 이어가는 마음이야말로 피곤했다. 연인도 친구도 아니고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채 좀비처럼 연명하는 관계였다.요즘은 이별을 두려워하지 말자는 다짐을 습관처럼 한다. 변하는 마음이야말로 물처럼 자연스러운 것. 모든 사랑이 차게 식는 쪽으로 변하는 것도 아니었다. 이별이 두려워서 망설이는 관계도 있었지만 모든 이별이 실패는 아니라는 것도 지금은 안다. 그렇게 새로 시작할 수 있다면, 등 뒤에 죽음이 있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소중한 하루를 독촉하듯이, 내일 당신을 잃을 것처럼 오늘은 오늘의 사랑을 하자고 노래 가사처럼 생각하기도 한다. 어제는 저 앞에서 예쁜 얼굴로 뛰어오는 당신을 문득 보고 있었다. 거의 유일하게 또렷한 순간, 오래도록 변하지 않을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