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들이는 우리의 오랜 풍습 중 하나다. 새집에 들어갈 때 고사를 지낸 후 이웃, 친지들과 함께 술과 음식을 나눠 먹는 문화에서 유래했다. 개인주의가 만연한 현대사회에서 사라질 법도 한 이 오랜 풍습은 불황이 장기화되며 소비 심리가 위축되자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사람들은 축하할 만한 기쁜 일이 생기면 밖에 나가 거나하게 먹고 마시기보다 지인들을 자신의 집으로 불러 소소한 파티를 즐기기 시작했다.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릴 정도로 밤새 유흥을 즐기던 생활 방식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인생에 주어진 대다수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는 북유럽 사람들이 쓰는 가구에 관심을 갖고, 그들의 철학을 집에 담으며, 가꾸기 시작했다.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집에 관심을 쏟으면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이 가꾼 집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어 했다. 나 또한 결혼하며 가장 오래 고민해서 고른 가구가 식탁이었다. 술과 사람을 좋아하는 우리 부부는 신혼집이 20평 남짓한 작은 공간임에도 8인용 식탁을 고집했다. 지난해 낡은 집을 내키는 대로 수리해 들어간 후, 집에 사람을 초대하는 일은 더 빈번해졌다. 사실 그전까지만 해도 무척 가까운 사이가 아닌 이상 남의 집을 방문하는 일은 선뜻 내키지 않았다. 방문할 때 무엇을 가져가야 할지, 낯선 공간에서 어떤 자세로 어떤 역할을 취해야 할지 막막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집을 사람들에게 오픈하면서 그런 불편한 마음도 자연스럽게 수그러들었다. 자신의 취향대로 잘 꾸민 집이라면 그날 함께 나눌 술과 음식을, 취향을 살짝 보태도 되는 집이라면 장식품을 챙겨 가면 될 노릇이다. 마음을 열고 다른 사람의 집을 드나들다 보니 남의 집을 구경하는 재미도 알게 됐다. 인테리어나 홈 파티 팁을 얻고, 다양한 주거 공간을 체험하는 동시에 집주인에 대해 좀 더 깊이 이해해 나간다. 그렇게 남의 집에 사람을 부르고, 남의 집에 놀러 가는 일은 새로운 취미 생활로 자리 잡았다.누군가를 집에 부르고 싶을 때 가장 좋은 핑계는 술이다. 평소 구하기 힘든 술을 손에 넣었을 때 그것을 핑계 삼아 사람들을 부른다. 특별히 축하할 일이 없어도 괜찮다. 이럴 때 술이 특별한 수가 되어준다. 그 술이 해외에서 건너온 희귀한 물건이라면 그 술을 발견한 순간부터 구하는 데 들인 노력, 역사, 향과 풍미, 즐기는 방법 등이 모두 대화 소재로 변한다. 또 그것이 직접 빚었거나 지방에서 구해온 전통주일 경우 세시 풍습으로 꽃핀 대화는 전국 막걸리 이야기로 만개한다. 겨울이면 풍성해지는 해산물이 홈 파티를 여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누군가가 굴, 새우, 꼬막, 방어, 가리비 등을 산지에 직접 연락해 주문하면 사람들은 각자 해산물과 어울리는 술을 들고 그 집을 방문한다. 그동안 미뤄왔던 만남이 성사되는 연말연시에 바다 생물들의 살이 오르니 이만한 핑계도 없다. 최근 어머니 세대보다 오히려 젊은 층에서 성행하는 김장도 집에 사람을 부르고 모으는 좋은 건수다. 여럿이 모여 배추 몇 포기 담근 후 삼겹살을 푹푹 삶는다. 본격적으로 눌러앉아 생김치, 생굴, 수육을 곁들여 막걸리를 나눠 마시며 한껏 고조된 잔치 분위기에 취할 때쯤 김장은 핑곗거리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내게 홈 파티의 묘미를 알려준 이는 이사가 취미인 프로 이사꾼이다. 전세 계약이 만료되는 2년을 주기로 집을 옮겨 다니는 그녀는 이사만큼 요리에 취미를 두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 집들이는 일상이나 다름없다. 2년 내내 집들이를 하다가 새로운 집으로 옮겨 다시 집들이를 이어나간다. 올해 옮겨온 집에서는 방 하나를 아예 술방으로 꾸몄다. 제법 큰 방에 8인용 테이블을 덩그러니 놓았다. 평소에는 썰렁해 보여도 그 방 가득 술과 음식, 음악과 대화 소리가 차면 전혀 새로운 분위기로 변한다. 콘도에서나 볼법한 붙박이장에는 옷가지와 이불 대신 술이 그득하다. 그 문을 열 때마다 사람들이 내지르는 환호성에 그녀는 매번 흡족한 표정을 짓는다. 스위스에서 호텔 경영을 전공했으며, 전통주, 와인, 칵테일 등 다양한 주류 분야의 자격증을 딴 그녀가 이끄는 홈 파티는 몹시 흥미롭다. 그녀는 손님들이 도착하면 식전주로 칵테일 한 잔씩 내준다. 그리고 준비한 음식에 맞춰 와인, 막걸리, 증류주, 사케, 위스키 등을 이불장에서 즉시 꺼내 페어링한다. 나 또한 그 집을 여러 차례 드나들며 칵테일 주조를 어렵지 않게 여기기 시작했고, 집에 손님들이 오면 청량한 진 토닉 정도는 내놓는 수준에 이르렀다. 언젠가는 멕시코로 여행을 다녀온 지인의 집에 초대받아 그녀가 트렁크 가득 싣고 온 메스칼을 마시며 여태껏 전혀 몰랐던 이국의 술에 깊이 빠져든 적도 있다. 저마다 너무 다른 풍미를 지닌 메스칼을 음미하며 그녀가 함께 풀어낸 이야기 보따리에 밤새는 줄 몰랐다. 아이를 낳으면서 멀어졌던 사람들과도 홈 파티를 통해 다시 인연이 닿기도 한다. 자신의 집에서만큼은 아이를 통제할 수 있기에 집으로 친구와 동료들을 불러 가볍게 한잔하며 다시 사회에 발을 디딜 연습을 한다.완벽한 홈 파티를 꿈꾸며 꼭 누군가가 힘들여 만찬을 준비할 필요는 없다. ‘BYO(Bring Your Own)’ ‘BYOB (Bring Your Own Booze)’라는 문구처럼 각자 먹고 마실 술과 음식을 챙겨 가는 포틀럭 파티가 자연스러운 홈 파티 문화로 자리 잡았다. 우리 부부가 연말이면 꼭 찾는 이웃집에는 아예 가스레인지가 없다. 대신 그 자리에는 온갖 잡동사니가 쌓여 있다. 파티에 초대받은 사람들은 알아서 요깃거리를 챙겨 간다. 우리는 그 집에 갈 때면 전을 한가득 부치거나 가는 길에 식당과 빵집에 들러 먹거리를 잔뜩 사 간다. 테이블 위에는 짝이 맞지 않는 젓가락과 잔들, 플라스틱 밀폐 용기, 과자 봉지가 나뒹굴지만 누군가가 차려준 만찬을 받을 때보다 오히려 마음이 편안하다. 손님들이 음식을 준비해 오면 위스키 애호가인 집주인은 찬장에서 자신이 소장한 위스키를 꺼낸다. 거기에는 매번 우리를 놀라게 할 새로운 술이 끼어 있다. 때때로 뜨끈한 무엇인가가 아쉬울 때면 집주인은 전기 포트에 물을 올리고 차를 끓인다. 무엇보다도 그 자리를 위해 애쓰는 사람이 없어 좋다. 집주인이든 손님이든 자리에 느긋하게 앉아 취향과 지난 시간을 공유하는 그 순간이 어느 때보다 더 가치 있게 느껴진다. 누군가는 홈 파티가 인간관계를 확장하는 장이라고 한다. 하지만 내겐 주어진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깊게 하는 기회처럼 느껴진다. 올 한 해 동안 누가 내 마음을 열고 들어올지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