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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이 스토리 5', 새로 쓰는 장난감의 정의와 본분

스마티 팬츠가 웃기고 제시가 울리며 지속 가능성을 증명한 장난감 이야기.

프로필 by 라효진 2026.06.17

장수하는 프랜차이즈에는 힘이 있습니다. 언제나 같은 주인공이 비슷한 행동과 기승전결을 만드는데도 매번 그걸 기다리게 합니다. 하지만 프랜차이즈를 만드는 입장에선 늘 고민이 클 거예요. 그럼에도 새로운 구석이 있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으니까요. 무려 31년 동안 힘을 잃지 않는 이야기, <토이 스토리> 시리즈의 다섯 번째 작품이 나왔습니다. 항상 장난감 세계의 신구(新舊) 대결 서사를 꾸려왔던 <토이 스토리>는 5편에서 제대로 명분을 찾았습니다. 스마트 기기 탓에 정말로 장난감이 자취를 감출 지도 모르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거든요. 갖고 놀던 아이가 자라서, 혹은 새 장난감이 생겨서 벌어졌던 갈등은 귀여워 보일 정도입니다. '아이들은 놀아야 한다'는 대전제가 사라진 것처럼 장난감 이야기도 힘을 잃는 무시무시한 시대가 영화의 배경입니다.


영화 <토이 스토리 5>

영화 <토이 스토리 5>


그래서 <토이 스토리 5>는 사회 고발(?)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스마트 기기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악영향을 미치는지 말이죠. 이런 기기가 있으면 장난감을 산더미처럼 쌓아 둘 필요가 없습니다. 갖고 놀다 질리더라도 처분이 간단하고요. 실제 크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넓은 세상을 제공하고, 가까이 있지 않더라도 사람과 사람을 간단하게 연결해 줍니다. 극 중에 나오는 스마트 기기, 릴리패드(그레타 리)를 손에 쥔 보니(스칼렛 스피어스)가 친구를 사귀는데는 단 15초 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매일 마주치는 옆집 쌍둥이 남매한텐 말 한 마디 건네기까지 수 개월이 걸렸지만요. 양육자 입장에서도 아이에게 스마트 기기를 쥐어 주면 육아가 한결 편해집니다. 집에 한 대 쯤 구비해 둬도 손해날 것이 없는 너무나도 유용한 물건입니다.


대신에 스마트 기기로 시작한 아이의 세상은 납작해집니다. 스크린은 실제로 존재하는 모든 것의 입체감을 느낄 수 없게 만드니까요. 그리고 힘듦이나 곤란함처럼 부정적인 상황 및 감정을 마주하기 어려워집니다. 클릭 한 번으로 맺어진 친구 관계는 클릭 한 번으로 끊어지기 마련입니다. 거기다 스크린 안에서 어떤 돌발 상황에 처해도 전원만 끄면 빠져나올 수 있죠. 그러니 스마트 기기 속 2D 세상에서 3D 세상으로 나오기가 쉽지는 않을 거예요.


영화 <토이 스토리 5>

영화 <토이 스토리 5>


사실 이 모든 건 옛적부터 있던 이야기입니다. 만화책과 패미콤, 컴퓨터와 인터넷이 악마였던 시절도 존재했으니까요. 스마트 기기가 아이의 첫 세상이어서는 안된다는 우려도 질리도록 들어왔습니다. 이 걱정을 더 전문적이면서도 재밌게 듣자면 오은영 박사를 찾으면 될 겁니다. 그런데 <토이 스토리 5>는 스마트 기기를 그저 악마화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제시(조안 쿠삭), 우디(톰 행크스)와 버즈(팀 알렌)처럼 보니의 행복만을 생각하는 새로운 '장난감'의 영역으로 릴리패드를 옮겨 놓습니다. 스마트 기기를 아예 안 쓰고 살 수는 없으니 '잘 써야' 하고, 아이들에게는 먼저 진짜 세상을 보여 주라는 교훈입니다. '너도 옳고 나도 옳다'는 식의 기계적 균형과는 다릅니다. 매끈한 스크린만 쳐다보지 말고 실재하는 거친 표면들도 만져봐야 한다는 거죠.


이처럼 <토이 스토리 5>는 장수 프랜차이즈가 으레 범하는 잘못들을 영리하게 피해 갑니다. 길게는 수십 년, 주인공과 서사 구조가 그대로인 작품이라고 시대를 반영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1976년에 나온 만화 <유리가면>에도 21세기에는 스마트폰을 등장시킵니다. 그런데 근 10년 사이 쏟아지는 기존 프랜차이즈의 신작, 혹은 리부트나 리메이크작 중엔 무조건적인 향수만 주입하며 시대정신에 나태한 콘텐츠가 적지 않습니다. <토이 스토리 5>도 릴리패드가 절대 빌런이라고 주장했다면 이 반열에 들었을 겁니다. 하지만 영화는 서랍 속에 갇힌 1세대 스마트 기기들까지 등장시키며 '장난감으로서의 연대'를 성사시킵니다. 스마트 기기들은 선배(?)들이 지킨 '장난감으로서의 본분'을 다하고요.


영화 <토이 스토리 5>

영화 <토이 스토리 5>


새로운 캐릭터들이 나타나도 제시와 우디, 버즈가 없으면 <토이 스토리>가 아니죠. 사람으로 치면 손주를 봤어도 이상하지 않을 세월을 보내며 뒤통수는 벗겨지고, 몸 곳곳에 지난 주인들의 이름이 새겨진 채지만 영원한 우정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들의 낡아 있는 모습이 관객과 함께 한 세월의 깊이를 더 확실히 느낄 수 있게 해요.


결국 눈물을 쏙 빼게 만드는 대목도 있었습니다. <토이 스토리 5>의 주인공 격인 제시는 자신을 떠난 주인들에게 그리움과 원망을 동시에 느끼는데요. 그러면서도 새로 만난 주인을 매번 온 마음 다해 사랑하는 게 제시예요. 보니에게 외면 당하면서도 보니를 위해 고군분투하던 그가, 우연히 첫 번째 주인의 추억 속에 남은 자신을 발견하는 장면에 이 영화의 주제가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아이가 어른이 되면 같이 놀던 장난감은 곁에 없을지 몰라도 놀았던 기억은 사라지지 않죠. 어른이 되는 걸 '도와주는 것', 그게 제시와 모든 장난감이 공유하는 '본분'입니다. 물론 스마트 기기도 포함해서요.


영화 <토이 스토리 5>

영화 <토이 스토리 5>


이번엔 스마트 기기를 빼고 생각해 봅시다. 장난감이 특별한 건 조금의 실용성도 없기 때문일 겁니다. 없어도 사는데, 또 없으면 못 살 것 같은 감정이 생기곤 하죠. <토이 스토리>의 장난감들은 앤디부터 보니까지 주인과 함께 할 수 있는 순간에 최선을 다합니다. 어른이 되면 멀어질 것을 이미 알면서도 그렇습니다. 이 뭉클한 이야기를 지켜보다 보면 나를 만든 모든 무용한 존재들이 스쳐 지나가는 것만 같습니다.


영화의 또 다른 볼거리는 아이의 배변을 돕는 1세대 스마트 기기 스마티 팬츠(코난 오브라이언)입니다. 풀 차지 상태에선 자의식 과잉의 수다쟁이지만, 배터리가 부족하면 졸린 듯 말이 느려지는 이 장난감이 <토이 스토리 5>의 웃음을 담당합니다. 17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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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라효진
  • 사진 월트디즈니 컴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