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이 스토리 5', 새로 쓰는 장난감의 정의와 본분
스마티 팬츠가 웃기고 제시가 울리며 지속 가능성을 증명한 장난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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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하는 프랜차이즈에는 힘이 있습니다. 언제나 같은 주인공이 비슷한 행동과 기승전결을 만드는데도 매번 그걸 기다리게 합니다. 하지만 프랜차이즈를 만드는 입장에선 늘 고민이 클 거예요. 그럼에도 새로운 구석이 있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으니까요. 무려 31년 동안 힘을 잃지 않는 이야기, <토이 스토리> 시리즈의 다섯 번째 작품이 나왔습니다. 항상 장난감 세계의 신구(新舊) 대결 서사를 꾸려왔던 <토이 스토리>는 5편에서 제대로 명분을 찾았습니다. 스마트 기기 탓에 정말로 장난감이 자취를 감출 지도 모르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거든요. 갖고 놀던 아이가 자라서, 혹은 새 장난감이 생겨서 벌어졌던 갈등은 귀여워 보일 정도입니다. '아이들은 놀아야 한다'는 대전제가 사라진 것처럼 장난감 이야기도 힘을 잃는 무시무시한 시대가 영화의 배경입니다.
영화 <토이 스토리 5>
그래서 <토이 스토리 5>는 사회 고발(?)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스마트 기기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악영향을 미치는지 말이죠. 이런 기기가 있으면 장난감을 산더미처럼 쌓아 둘 필요가 없습니다. 갖고 놀다 질리더라도 처분이 간단하고요. 실제 크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넓은 세상을 제공하고, 가까이 있지 않더라도 사람과 사람을 간단하게 연결해 줍니다. 극 중에 나오는 스마트 기기, 릴리패드(그레타 리)를 손에 쥔 보니(스칼렛 스피어스)가 친구를 사귀는데는 단 15초 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매일 마주치는 옆집 쌍둥이 남매한텐 말 한 마디 건네기까지 수 개월이 걸렸지만요. 양육자 입장에서도 아이에게 스마트 기기를 쥐어 주면 육아가 한결 편해집니다. 집에 한 대 쯤 구비해 둬도 손해날 것이 없는 너무나도 유용한 물건입니다.
대신에 스마트 기기로 시작한 아이의 세상은 납작해집니다. 스크린은 실제로 존재하는 모든 것의 입체감을 느낄 수 없게 만드니까요. 그리고 힘듦이나 곤란함처럼 부정적인 상황 및 감정을 마주하기 어려워집니다. 클릭 한 번으로 맺어진 친구 관계는 클릭 한 번으로 끊어지기 마련입니다. 거기다 스크린 안에서 어떤 돌발 상황에 처해도 전원만 끄면 빠져나올 수 있죠. 그러니 스마트 기기 속 2D 세상에서 3D 세상으로 나오기가 쉽지는 않을 거예요.
영화 <토이 스토리 5>
사실 이 모든 건 옛적부터 있던 이야기입니다. 만화책과 패미콤, 컴퓨터와 인터넷이 악마였던 시절도 존재했으니까요. 스마트 기기가 아이의 첫 세상이어서는 안된다는 우려도 질리도록 들어왔습니다. 이 걱정을 더 전문적이면서도 재밌게 듣자면 오은영 박사를 찾으면 될 겁니다. 그런데 <토이 스토리 5>는 스마트 기기를 그저 악마화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제시(조안 쿠삭), 우디(톰 행크스)와 버즈(팀 알렌)처럼 보니의 행복만을 생각하는 새로운 '장난감'의 영역으로 릴리패드를 옮겨 놓습니다. 스마트 기기를 아예 안 쓰고 살 수는 없으니 '잘 써야' 하고, 아이들에게는 먼저 진짜 세상을 보여 주라는 교훈입니다. '너도 옳고 나도 옳다'는 식의 기계적 균형과는 다릅니다. 매끈한 스크린만 쳐다보지 말고 실재하는 거친 표면들도 만져봐야 한다는 거죠.
이처럼 <토이 스토리 5>는 장수 프랜차이즈가 으레 범하는 잘못들을 영리하게 피해 갑니다. 길게는 수십 년, 주인공과 서사 구조가 그대로인 작품이라고 시대를 반영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1976년에 나온 만화 <유리가면>에도 21세기에는 스마트폰을 등장시킵니다. 그런데 근 10년 사이 쏟아지는 기존 프랜차이즈의 신작, 혹은 리부트나 리메이크작 중엔 무조건적인 향수만 주입하며 시대정신에 나태한 콘텐츠가 적지 않습니다. <토이 스토리 5>도 릴리패드가 절대 빌런이라고 주장했다면 이 반열에 들었을 겁니다. 하지만 영화는 서랍 속에 갇힌 1세대 스마트 기기들까지 등장시키며 '장난감으로서의 연대'를 성사시킵니다. 스마트 기기들은 선배(?)들이 지킨 '장난감으로서의 본분'을 다하고요.
영화 <토이 스토리 5>
새로운 캐릭터들이 나타나도 제시와 우디, 버즈가 없으면 <토이 스토리>가 아니죠. 사람으로 치면 손주를 봤어도 이상하지 않을 세월을 보내며 뒤통수는 벗겨지고, 몸 곳곳에 지난 주인들의 이름이 새겨진 채지만 영원한 우정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들의 낡아 있는 모습이 관객과 함께 한 세월의 깊이를 더 확실히 느낄 수 있게 해요.
결국 눈물을 쏙 빼게 만드는 대목도 있었습니다. <토이 스토리 5>의 주인공 격인 제시는 자신을 떠난 주인들에게 그리움과 원망을 동시에 느끼는데요. 그러면서도 새로 만난 주인을 매번 온 마음 다해 사랑하는 게 제시예요. 보니에게 외면 당하면서도 보니를 위해 고군분투하던 그가, 우연히 첫 번째 주인의 추억 속에 남은 자신을 발견하는 장면에 이 영화의 주제가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아이가 어른이 되면 같이 놀던 장난감은 곁에 없을지 몰라도 놀았던 기억은 사라지지 않죠. 어른이 되는 걸 '도와주는 것', 그게 제시와 모든 장난감이 공유하는 '본분'입니다. 물론 스마트 기기도 포함해서요.
영화 <토이 스토리 5>
이번엔 스마트 기기를 빼고 생각해 봅시다. 장난감이 특별한 건 조금의 실용성도 없기 때문일 겁니다. 없어도 사는데, 또 없으면 못 살 것 같은 감정이 생기곤 하죠. <토이 스토리>의 장난감들은 앤디부터 보니까지 주인과 함께 할 수 있는 순간에 최선을 다합니다. 어른이 되면 멀어질 것을 이미 알면서도 그렇습니다. 이 뭉클한 이야기를 지켜보다 보면 나를 만든 모든 무용한 존재들이 스쳐 지나가는 것만 같습니다.
영화의 또 다른 볼거리는 아이의 배변을 돕는 1세대 스마트 기기 스마티 팬츠(코난 오브라이언)입니다. 풀 차지 상태에선 자의식 과잉의 수다쟁이지만, 배터리가 부족하면 졸린 듯 말이 느려지는 이 장난감이 <토이 스토리 5>의 웃음을 담당합니다. 17일 개봉.
Credit
- 에디터 라효진
- 사진 월트디즈니 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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