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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세라티·애스턴마틴·벤츠 컨버터블 카 시승기

오픈 더 톱! 지금 가장 핫한 컨버터블 카 3대를 직접 시승했다.

프로필 by 박찬 2026.06.04

흔히 컨버터블을 타기 가장 좋은 계절이 봄과 가을이라고 생각하지만, 오픈톱을 제대로 즐겨본 이들은 오히려 지금 같은 초여름을 꼽는다. 아직 부드러운 햇살과 선선한 밤공기. 지붕을 연 채 달리기에 이보다 좋은 시기가 또 있을까. 선글라스 하나쯤 가볍게 챙겨 들고 떠나고 싶어지는 계절이다.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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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초여름을 즐기게 할 세 대의 컨버터블 차와 함께했다. 서울의 여름밤을 가장 화려하게 물들이는 메르세데스-AMG SL 63, 긴 산길 위에서 GT의 낭만을 들려준 마세라티 그란카브리오 트로페오, 그리고 노을 내려앉은 서해 해안도로를 누구보다 근사하게 달려낸 애스턴마틴 밴티지 로드스터까지. 평범한 도로도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만들어내는 컨버터블 카 3대를 소개한다.



AMG SL 63과 함께 달리는 서울 밤

드라이브 코스 충무로 -> 하남시청 -> 신사역

메르세데스-벤츠

메르세데스-벤츠

'SL'이라는 모델명에는 늘 묘한 로망이 있었다. 1954년 300 SL부터 이어져온 메르세데스-벤츠의 대표적인 로드스터이자, 시대마다 가장 아름다운 방식으로 변화해 온 차. 실제로 만난 AMG SL은 언뜻 봐도 존재감이 강렬했다. 바닥 가까이 낮게 깔린 차체와 길게 뻗은 보닛, AMG 특유의 카리스마가 살아 있는 전면 디자인이 먼저 시선을 붙들었다. 전장 4705mm, 전폭 1915mm의 형상은 실제로 마주했을 때 예상보다 훨씬 크고 웅장했다.


시승은 충무로에서 시작해 하남시청을 거쳐 다시 신사역까지 이어졌다. 늦은 저녁의 열기가 아직 도로 위에 남아 있는 시간이었다. 지붕을 열자 실내와 바깥의 경계가 흐려졌고, 평소에는 무심하게 지나치던 서울의 밤이 훨씬 가까워졌다. 한강변의 바람과 도로의 소음, 음악과 엔진 사운드가 자연스럽게 뒤섞였다. 강변북로를 지나 하남 방향으로 도로가 넓어지자 AMG 고유의 성격도 분명해졌다. 4.0리터 V8 바이터보 엔진은 최고출력 585마력, 최대토크 800Nm를 낸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킬로미터까지는 3.6초. 기어를 낮출 때마다 낮고 깊은 배기음이 실내를 채우고, 가속 페달을 밟는 순간 차량 전체가 앞으로 밀려 나갔다.

메르세데스-벤츠

메르세데스-벤츠

AMG가 만들어내는 스릴은 수치상의 속도에서 끝나지 않았다. 엔진의 소리와 진동, 차체가 노면을 눌러가는 감각까지 모두 함께 전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인상적인 건 AMG SL이 지닌 무게감이었다. 차량의 공차중량은 약 1970kg. 약 2톤에 가까운 만큼 결코 가벼운 차가 아니다. 실제 주행에서도 그 묵직한 존재감이 분명하게 느껴졌다. 코너에 돌입했을 때 예민하게 날아다니기보다, 노면을 단단히 누르며 안정적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그 감각은 메르세데스-벤츠라는 브랜드가 지향하는 주행 감성과도 잘 어울렸다. 오래도록 이어져온 정통적인 품위와 여유, 장거리 주행에서 오는 안정감이 그대로 살아 있기 때문이다. 후륜조향 시스템은 긴 차체의 부담을 자연스럽게 줄여주고, 강력한 토크는 무거운 중량을 힘 있게 밀어냈다.

메르세데스-벤츠

메르세데스-벤츠

한편 실내는 또 다른 방식으로 인상적이다. 붉은 가죽 시트와 금속 디테일, 대형 디지털 스크린이 중심을 잡고 있는데, 화려하지만 피로하지 않다. 특히 오픈톱 주행 환경을 고려해 각도 조절이 가능한 센터 디스플레이는 실제로 꽤 유용했다. 물리 버튼을 최소화하면서도 공조 기능은 직관적으로 남겨두었고,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안에서 메르세데스-벤츠 특유의 세밀한 구성이 눈에 띈다.

메르세데스-벤츠

메르세데스-벤츠



그란카브리오 트로페오와 함께한 인제 와인딩

드라이브 코스 강원도 인제 (운두령 -> 구룡령)

그랜드 투어러(GT), 장거리 이동을 위해 설계된 고성능 자동차를 의미한다. 앞서 인지해야 하는 부분은, GT카가 필요로 하는 ‘장거리’의 기준이 우리가 익숙한 방식과 조금 다르다는 점이다. 더 많은 짐과 사람을 태우고, 연료 효율을 계산하며 이동하는 개념과는 거리가 있다. 특히 럭셔리 GT에게 중요한 건 편안한 두 개의 좌석과 긴 시간을 달려도 피로하지 않은 승차감, 그리고 그 여정을 얼마나 우아하게 만들어주는가에 있다. 엔진의 감각과 배기음, 차체의 아름다움과 긴 보닛이 만들어내는 분위기야말로 GT의 핵심이 된다.


마세라티는 오래전부터 그런 럭셔리 GT의 기준을 가장 집요하게 좇아온 브랜드 가운데 하나였다. 대부분의 자동차 브랜드가 그렇듯 레이싱에서 출발했지만, 이들은 그저 빠른 차를 만드는 데 매몰되지 않았다. 스포츠카의 긴장감과 엔진의 감각은 유지하면서도 더 멀리, 더 우아하게 달릴 수 있는 차를 만드는 것에 집중했다. 1947년 ‘레이싱용 엔진을 탑재한 승용차’라는 철학 아래 A6 1500을 선보인 이후, 3500 GT와 미스트랄, 기블리 같은 모델들을 통해 마세라티는 럭셔리 GT라는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해 왔다.

마세라티

마세라티

그란카브리오 트로페오 역시 그런 성정을 고스란히 이어받았다. 강원도 인제의 산길은 이 차를 이해하기에 꽤 좋은 장소였다. 운두령을 지나 구룡령으로 접어드는 순간부터 그란카브리오가 지닌 힘이 분명히 느껴졌다. 구룡령은 국내 와인딩 코스 가운데서도 리듬감이 뛰어난 길이다. 긴 업힐과 중고속 코너가 계속 이어지고, 2·3·4단을 오가며 차의 토크를 길게 끌어낼 수 있다. 속도를 올릴수록 네튜노 V6 트윈터보 엔진의 사운드도 더 짙어졌다. 낮고 금속성 짙은 배기음이 산에 부딪혀 돌아왔고, 패들 시프트를 당길 때마다 엔진은 한층 더 거칠게 반응했다.


그란카브리오 트로페오의 최고출력은 550마력, 최대토크는 650Nm.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는 3.6초 만에 도달한다. 하지만 막상 이 차를 산길에서 몰아보면, 그저 빠른 차라는 인상보다는 넓고 다양한 운전 감각을 포괄한다. GT 모드에서는 차체가 꽤 부드럽고 여유롭게 움직이며, 반대로 스포츠와 코르사 모드로 들어가면 네튜노 엔진의 기민함이 훨씬 선명해진다. 회전수를 높일수록 배기음은 더 날카로워지고, 긴 금속 패들 시프트를 당길 때마다 엔진은 즉각적으로 응답한다. 그 입체적인 주행 과정에서 차는 운전자를 극한으로 몰아붙이기보다, 속도와 사운드를 충분히 즐길 시간을 남겨둔다.

마세라티

마세라티

지붕을 열었을 때의 분위기는 더 특별하다. 숲 냄새와 바람, 엔진 사운드가 한꺼번에 실내로 밀려 들어온다. 특히 구룡령처럼 풍경이 크게 열리는 도로에서는 컨버터블 특유의 개방감이 훨씬 극적으로 느껴진다. 흥미로운 건 생각보다 실내가 꽤 고요하다는 점이다. 바람이 과하게 소용돌이치지 않고, 동승자와 대화를 나누기에도 충분히 편안하다. 그 위로 소너스 파베르 오디오 시스템의 완벽한 사운드가 자연스럽게 깔린다. 음악과 배기음, 바람 소리와 풍경이 서로 겹쳐지면서 긴 산길 전체가 하나의 장면처럼 이어진다.


마세라티는 늘 완벽한 효율보다 감각과 분위기를 더 중요하게 여겨온 브랜드였다. 그란카브리오 트로페오 역시 그렇다. 가장 날카롭고 완벽하게 정교한 스포츠카는 아닐 수 있지만, 달리는 동안 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GT 컨버터블을 꿈꾸는지, 머나먼 여정을 떠날 때 자동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인지 충분히 이해하게 만든다. 지붕을 열고 엔진을 깨우는 순간, 평범했던 이동의 시간이 조금 더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는다.

마세라티

마세라티



해안도로 위의 밴티지 로드스터

드라이브 코스 인천 영종도 -> 잠진도 -> 무의도

애스턴마틴

애스턴마틴

애스턴마틴 밴티지 로드스터는 보기만 해도 소유욕을 자극하는 차다. 낮게 깔린 차체 위로 길게 뻗은 보닛과 과감하게 벌어진 프런트 그릴, 뒤로 갈수록 단단하게 부풀어 오르는 리어 펜더까지. 전체 실루엣에는 마치 웅크린 맹수 같은 긴장감이 흐른다. 특히 측면에서 바라보면 하나의 선으로 길게 이어지는 캐릭터 라인이 유독 아름답다. 앞 헤드램프에서 시작된 곡선이 뒤 테일램프까지 매끈하게 이어지는데, 그 모습이 활시위를 팽팽하게 당긴 형태를 떠올리게 만든다. 지붕을 연 상태에서는 그 비율감이 더욱 극적으로 드러난다. 짧은 오버행과 넓은 차폭, 낮게 눕힌 윈드실드, 매끈하게 떨어지는 리어 데크까지 모든 요소가 하나의 조각처럼 이어진다.


주말 늦은 오후, 인천 무의도로 향하기 위해 밴티지 로드스터의 시동을 켰다. 이 아름다운 조각상 같은 차를 해변 노을 앞에서 기록해보고 싶었다. 영종도에서 잠진도를 지나 무의도로 이어지는 길은 생각보다 한산했고, 서해의 공기는 느리게 식고 있었다. 지붕을 열자 바람과 함께 V8 엔진음이 실내 안으로 기분 좋게 스며들었다.

애스턴마틴

애스턴마틴

맹렬할 것만 같던 밴티지 로드스터는 도로 위에서 의외로 차분한 성향을 드러냈다. 형식 자체는 영락없는 2인승 스포츠카지만, 애스턴마틴이 오랫동안 GT카를 만들어온 브랜드라는 사실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노면의 충격을 지나치게 예민하게 드러내기보다 적당히 걸러내고, 차체의 움직임 역시 여느 세단에 비견할 정도로 생각보다 안정적이었다. 스포츠카 특유의 긴장감, 장거리 드라이브의 안정감 모두 즐길 수 있다는 방증이었다.


영민한 주행 성능의 핵심은 바로 새롭게 다듬어진 4.0리터 V8 트윈터보 엔진이다. AMG의 엔진을 기반으로 하지만 실린더 헤드와 터보, 냉각 시스템과 압축비까지 애스턴마틴 방식으로 다시 손봤다. 최고출력은 665마력, 최대토크는 81.6kg·m. 숫자도 강렬하지만 실제 감각은 훨씬 더 직관적이다. 스포츠 플러스 모드로 바꾸고 스로틀을 깊게 밟는 순간 토크가 폭발하듯 쏟아진다. 회전수가 올라갈수록 배기음도 점점 더 날카롭게 변한다. AMG 특유의 둔중한 저음 위에 금속성 짙은 고회전 사운드가 겹쳐지는데, 그 울림이 마치 오래된 GT 레이스카를 연상시켰다.

애스턴마틴

애스턴마틴

오픈 상태에서의 완성도도 인상적이었다. 여느 컨버터블 카처럼 바람이 실내를 정신없이 휘젓지 않았다. 속도를 높여도 머리카락이 크게 흩날리지 않고, 동승자와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차체 전체의 공기 흐름을 세밀하게 다듬은 덕분이다. 낮게 눕힌 윈드실드와 차체 뒤쪽으로 빠져나가는 공기의 흐름이 실내 난류를 효과적으로 줄여줬다. 덕분에 지붕을 연 상태에서도 피로감이 크지 않고, 오히려 공기와 소리, 풍경이 훨씬 자연스럽게 차 안으로 들어왔다.

애스턴마틴

애스턴마틴

무의도에 진입해 선착장 앞에 당도했을 때는 이미 노을이 바다 위로 길게 번지고 있었다. 붉게 물든 하늘 아래 밴티지 로드스터의 차체에도 빛이 천천히 내려앉았다. 그 순간 이 차가 왜 로드스터여야 하는지 조금 이해됐다. 그저 빠른 스포츠카를 만드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풍경과 공기, 엔진 사운드까지 하나의 경험으로 묶어내기 위해 만들어진 차라는 걸. 애스턴마틴은 오래전부터 GT의 방식으로 스포츠카를 다듬어왔고, 밴티지 로드스터는 그 감각을 지금 이 시대에 가장 우아하게 재현한 결과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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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박찬
  • 사진 GettyImages · 메르세데스-벤츠 · 마세라티 · 애스턴마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