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새 계절에 유행 예감하는 컬러를 보라

새로운 ‘알파 컬러’가 된 퍼플이 다시 런웨이를 장악한 이야기.

프로필 by 임주원 2026.04.17

퍼플은 고대 지중해 연안에서 채취한 조개 ‘푸르푸라(Purpura)’에서 유래한 색이다. 매우 희귀하고 값비싼 염료였기 때문에 오랫동안 권위와 신성함을 상징해 왔다. 하지만 20세기 들어 록 음악과 서브컬처에서 사용되면서 기존 이미지를 벗어나 권위와 반항이라는 상반된 의미를 함께 지닌 컬러로 자리 잡았다. 색의 구조도 독특하다. 레드와 블루가 섞인 퍼플은 따뜻함과 차가움 사이를 오가며 신비롭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그만큼 스타일링에서는 다루기 어려운 컬러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2026 봄 여름 시즌, 이런 고정관념을 깨듯 런웨이는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푸시아에 가까운 강렬한 퍼플부터 부드러운 라일락까지, 다양한 톤으로 확장되며 하나의 컬러라기보다 스펙트럼처럼 펼쳐졌다.


신비롭고 강렬한 보랏빛으로 조형적 감각을 전면에 내세운 발렌시아가는 높이 솟은 각진 모자와 건축적 실루엣의 세트업으로 컬러 자체를 하나의 조형 요소로 활용해 존재감을 극대화했다. 질 샌더 역시 보라색의 미니멀 드레스로 세련미를 더했다.


한편 셀린느는 터틀넥 드레스에 스팽글 장식을 수놓아 보라빛 특유의 화려한 에너지를 드러냈다. 보라색의 몽환적인 분위기를 살린 보헤미언 코드의 버버리, 보라색 파워 숄더 재킷으로 과감한 컬러 블로킹을 즐긴 베르사체는 또 어떤가. 발렌티노는 보색 대비 컬러 블로킹으로 보라색을 무게감 있게 활용했고, 뉴트럴 팔레트 사이에 보라색 쇼츠를 매치해 룩에 리듬감을 더한 프라다 역시 눈길을 끈다.


끌로에는 러플로 로맨틱한 분위기를, 알라이아는 드레이핑으로 관능적인 실루엣을 완성했다. 알렉산더 맥퀸은 다크하면서도 사랑스러운 고딕풍 드레스로 퍼플의 또 다른 매력을 보여줬다. 토리 버치와 메릴 로게의 톤 온 톤 스타일링에서는 뉴트럴 컬러로서의 가능성도 확인할 수 있었다.


“색이 보석의 가치를 만든다.” 크리스챤 디올의 말처럼 이번 시즌 퍼플은 감각을 한층 끌어올렸다. 이처럼 보라색은 더 이상 특정한 상징에 머물지 않는다. 조형적이거나, 로맨틱하거나 혹은 장중한 분위기까지 넘나들며 다양한 컨셉트 속에서 유연하게 작동한다. 이번 시즌, 우리가 신비로운 보라색을 새로운 ‘알파 컬러’로 주목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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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임주원
  • 사진가 런치메트릭스
  • 아트 디자이너 김민정
  • 디지털 디자이너 민경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