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Y

플라워 향수는 더 이상 엄마 아이템이 아니에요

어느 때보다 강한 소장욕구를 불러일으키는 2026 모던 플라워 향수에 대하여.

프로필 by 정윤지 2026.04.09

“꽃이요? 봄에? 그것 참 혁신적이네요(Florals? For Spring? Groundbreaking.).”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편집장 미란다 프리슬리가 회의 중에 던진 유명한 대사지만, 이번 봄에는 향수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녀의 말을 따라해선 안 된다. 냉소 가득한 뉘앙스로 ‘봄에는 플라워’라는 클리셰를 비꼬았다가는 트렌드에 뒤처지는 사람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플로럴 향수가 대세로 떠올랐다. 예전보다 ‘덜’ 로맨틱하고 ‘더’ 도시적인 분위기다. 팬데믹 이후 우리 후각을 사로잡았던 ‘살 냄새’와 각종 과일, 바닐라 등의 ‘구르망’ 계열에 익숙해진 지금, 모던한 플로럴 향이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중! 플라워 향수의 변신, 다음 내용을 읽어 내려갈수록 더 이상 엄마 화장대 위의 플라워 향수가 아님을 알게 될 것!

엘(eLVes), 100ml 51만원, Louis Vuitton.

엘(eLVes), 100ml 51만원, Louis Vuitton.

비올렛 30, 50ml 31만원, 100ml 45만8천원, Le Labo.

비올렛 30, 50ml 31만원, 100ml 45만8천원, Le Labo.

“장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일은 쉽지 않은 도전입니다. 이미 수많은 향수에서 탐구된 꽃이기 때문이죠.” 루이 비통의 수석 조향사 자크 카발리에-벨트뤼(Jacques Cavallier-Belletrud)의 말이다. 그럼에도 그는 기꺼이 도전했다. 루이 비통 ‘엘’은 정교한 조향 작업을 통해 꽃의 여왕이라 불리는 장미를 새롭게 풀어낸 결과물이다. 핵심은 장미와 은방울꽃의 조합이다. 은방울꽃은 그동안 향수에서 향을 포착하기 어려워 ‘침묵하는 꽃’으로 여겨졌지만 마이크로파 추출 기술 덕분에 마침내 향을 구현할 수 있게 됐다. 향료 회사 지보단(Givaudan)이 개발한 새로운 분자 성분으로 공기를 머금은 듯한 가벼움까지 더해져 빛 속에 떠 있는 것처럼 환하게 펼쳐지는 장미 향을 탄생시켰다. “장미의 천연 향은 매우 독특하고 복잡합니다. 재스민이나 튜베로즈에서 느껴지는 동물적인 느낌이 없죠. 장미는 다른 꽃 향의 근원이 되는 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바이올렛(제비꽃)도 다시 등장했다. 르 라보 ‘비올렛 30’이 대표적. 바이올렛이 불타는 열정과 순수함, 강인함과 섬세함 등 상반된 의미를 동시에 상징해 왔다는 데 착안해 하나의 꽃 안에 공존하는 모순된 아름다움에 대한 오마주로서 ‘비올렛 30’을 탄생시켰다. “제비꽃을 중심으로 화이트 티와 우드가 조화를 이룹니다. 단순하지만 복합적인 이 향은 내 안에 존재하는 수많은 모습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관한 성찰입니다.” 성장 중심의 사회를 살아온 많은 ‘엄마’들은 생각지도 못했을 자신에 대한 성찰이라니. ‘비올렛 30’에 대한 설명에서 탈성장 사회를 지향하는 2026년의 감성이 물씬 느껴진다.

임파디아 오 드 퍼퓸, 100ml 40만5천원대, BDK by Liquides Perfume Bar.

임파디아 오 드 퍼퓸, 100ml 40만5천원대, BDK by Liquides Perfume Bar.

리브르 로 뉘, 50ml 19만원, 90ml 26만5천원, YSL Beauty.

리브르 로 뉘, 50ml 19만원, 90ml 26만5천원, YSL Beauty.

‘겉으로 보기에는 플로럴 향이지만 전통적 플로럴과는 차원이 다른 향을 만들어내는 것.’ 글로시에가 ‘유 플뢰르’를 론칭하며 지향한 지점이다. 조향사 도라 바그리슈(Dora Baghriche)는 “오스만투스, 일랑일랑, 바이올렛의 ‘조각’ 같은 요소들을 가져와 전통적 플로럴과는 다른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그라스의 꽃밭에서 피어나는 꽃이 아니라 뉴욕의 콘크리트 틈에서 자라는 꽃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비슷한 발상은 BDK에서 선보인 ‘임파디아’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장미를 도시로 데려오고 싶었어요.” 브랜드 창립자 데이빗 베네데크(David Benedek)와 임파디아를 조향한 조향사 조르디 페르난데스(Jordi Fernández)의 설명이다. “장미의 꽃잎을 탐스럽고 중독적인 프랄린 어코드로 감쌌습니다. 매우 현대적인 해석이죠.” 독창적인 향으로 유명한 이솝 역시 ‘오르너’를 통해 힘과 부드러움 사이의 균형을 탐구한다. 매그놀리아 리프를 사용한 허브 플로럴 향으로 제라늄 노트에 로만 캐모마일, 카다멈, 시더를 더해 완성했다. 조향사 셀린느 바렐(Céline Barel)은 말한다. “이 향은 단순한 플로럴이 아니라 콘트라스트로 이뤄진 추상적인 플로럴입니다.”

오르너 오 드 퍼퓸, 50ml 22만5천원, Aēsop.

오르너 오 드 퍼퓸, 50ml 22만5천원, Aēsop.

콩트르 주르, 50ml 45만원, 100ml 61만원, Editions de Parfums Frédéric Malle.

콩트르 주르, 50ml 45만원, 100ml 61만원, Editions de Parfums Frédéric Malle.

향수에 대한 전위적 접근을 선보이는 톰 포드 뷰티는 새로운 향수 ‘로즈 익스포즈드’를 만들기 위해 ‘로즈-온-로즈(Rose-sur-rose)’로 불리는 독점적인 공동 증류 방식을 사용했다. 장미 꽃잎을 장미수 추출액 속에서 다시 증류하는 방식. 여기에 블랙 레더, 샌들우드, 핑크 페퍼콘 등을 더해 향의 구조를 단단히 잡아주고, 톰 포드의 가까운 친구인 닉 나이트(Nick Knight)가 촬영한 사진 연작 ‘내 정원의 장미들(Roses from my Garden)’에서 영감받은 먼스테드 로즈 부케의 따뜻함까지 더해 야생 장미 향의 진수를 선사한다. 입생로랑 뷰티는 모로코의 전통 뷰티 리추얼에서 영감받은 ‘오일-인-워터’ 포뮬러를 사용한 워터 베이스 향수 ‘리브르 로 뉘’를 선보였다. 모로칸 오렌지 블러섬 꽃은 먼저 건조된 뒤 오일 속에서 침지 과정을 거친다. “오일-인-워터 포뮬러는 같은 향이라도 매우 독특하게 표현될 수 있도록 합니다. 알코올이 첨가되지 않아 방금 꽃을 따온 느낌을 줘요.” 이 향을 만든 조향사 앤 플리포(Anne Flipo)와 카를로스 베나임(Carlos Benaïm)의 설명이다.

아이리스 콘크리트 오 드 퍼퓸, 50ml 16만2천원, 100ml 21만8천원, Nonfiction.

아이리스 콘크리트 오 드 퍼퓸, 50ml 16만2천원, 100ml 21만8천원, Nonfiction.

패러독스 버츄얼 플라워 오 드 퍼퓸, 30ml 15만원, 50ml 24만원, Prada Beauty.

패러독스 버츄얼 플라워 오 드 퍼퓸, 30ml 15만원, 50ml 24만원, Prada Beauty.

자연에 가장 가까운 꽃향기, 때로는 최첨단 기술을 통해야 가능하다. 프라다 뷰티 패러독스 버추얼 플라워에 사용된 재스민이 대표적인 예다. “향수에 기술적 요소를 더하고 싶었습니다. 미우치아 프라다가 컬렉션에서 늘 그러듯이 말이죠.” 조향사 나데주 르 갈란테제크(Nadège Le Garlantezec)는 설명한다. “저는 재스민 노트를 원했지만 실제 재스민을 사용하지는 않았어요. 지보단이 개발한 인공지능 기기를 활용해 꽃향기를 이루는 여러 요소를 입력했더니, 이탈리아 거리를 거닐다 밤에 가끔 맡게 되는 바로 그 재스민 향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정말 놀라운 발견이였어요.” 지방시 뷰티의 ‘랑떼르디 안젤리크 루즈’에서도 새로운 기술이 적용됐다. 중독적인 향을 지닌 안젤리카 꽃은 향을 추출하기 어려워 보통 씨앗이나 뿌리를 사용하는데, 이 향수에는 IFF가 개발한 리빙 플라워(Living Flower) 기술을 통해 재현한 안젤리타 꽃 향을 담은 것. 이 기술은 유리 돔에서 추출하기 어려운 꽃향기 분자를 포착해 분리하는 방식으로, 이렇게 하면 가장 순수한 향을 추출할 수 있다고 한다. 안젤리카꽃에 이 기술을 사용한 건 지방시 뷰티가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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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정윤지
  • 글 비토리아 모우라 기마랑이스
  • 사진가 퀴린 지거트
  • 아트 디자이너 민홍주
  • 디지털 디자이너 민경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