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엑소 카이가 비 젖은 테니스 코트에서 라코스테 쇼를 관람한 사연

라코스테 2026 가을 겨울 컬렉션이 롤랑가로스 스타디움의 필립 샤트리에 코트에서 열렸다.

프로필 by 강민지 2026.03.09
파리 롤랑가로스 스타디움의 필립 샤트리에 코트에서 열린 라코스테 2026 가을 겨울 컬렉션.

파리 롤랑가로스 스타디움의 필립 샤트리에 코트에서 열린 라코스테 2026 가을 겨울 컬렉션.

파리의 쇼장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오렌지색 천막이었다. 천막을 덮은 테니스 코트 한가운데에는 드넓은 런웨이가 펼쳐져 있었다.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신사 숙녀 여러분, 오늘 경기는 우천으로 취소됐습니다.” 라코스테의 2026 가을·겨울 컬렉션의 서사가 흐르기 시작했다.

라코스테 2026 가을 겨울 컬렉션에 참석한 엑소 카이.

라코스테 2026 가을 겨울 컬렉션에 참석한 엑소 카이.


이번 쇼는 1923년 도빌에서 열린 데이비스 컵 경기, 이른바 ‘비에 젖은 경기(Washed-out Match)’에서 영감을 얻었다. 폭우로 코트가 물에 잠겼던 그날, 르네 라코스테가 승리를 거둔 장면을 모티프로 삼아 당시 관중들이 입었던 레인웨어의 이미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테니스 코트를 런웨이로 옮겨온 연출 역시 브랜드의 스포츠 헤리티지를 환기하는 장치였다.

라코스테의 2026 가을 겨울 컬렉션을 연 첫 번째 트렌치 코트 룩.

라코스테의 2026 가을 겨울 컬렉션을 연 첫 번째 트렌치 코트 룩.


라코스테의 2026 가을 겨울 컬렉션을 연 두 번째 스커트 룩. 매킨토시와 협업한 미니 캡슐 ‘The Roots Collaboration’이다.

라코스테의 2026 가을 겨울 컬렉션을 연 두 번째 스커트 룩. 매킨토시와 협업한 미니 캡슐 ‘The Roots Collaboration’이다.

라코스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펠라지아 콜로투로스는 테니스 코트 위에 비라는 변수를 끌어들였다. 컬렉션에 날씨라는 현실적인 요소를 더해 일상적인 드라마를 설정한 셈. 스토리는 곧장 의상에 녹아들었다. 오프닝 룩으로 비바람에 강한 트렌치 코트를 입은 모델이 걸어나왔다. 이어 모델들은 우산을 들고 있거나 바람막이를 걸쳤고, 케이프 형태의 레인코트를 입고 등장하기도 했다. 트렌치 코트와 트랙수트, 판초 폴로 등은 스코틀랜드의 전통 아우터웨어 브랜드 매킨토시와 손잡고 선보인 미니 캡슐인 ‘더 루츠(The Roots Collaboration)’다.


레인웨어의 등장은 브랜드의 스포츠 유산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1933년 테니스 챔피언 르네 라코스테가 설립한 라코스테는 경기복에서 출발한 브랜드다. 통기성과 움직임을 고려한 피케 폴로 셔츠는 스포츠웨어의 역사에서 중요한 장면을 남겼고, 이후 라코스테는 테니스 코트와 일상 사이를 오가는 스타일을 꾸준히 발전시켜 왔다. 이번 컬렉션은 르네 라코스테의 정신을 현대 기술력으로 풀어낸 테크-헤리티지라는 방향을 통해 이러한 전통을 다시 바라본다.


하나의 레드 톤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구성한 라코스테의 2026 가을 겨울 컬렉션.

하나의 레드 톤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구성한 라코스테의 2026 가을 겨울 컬렉션.

대범한 컬러 구성도 눈길을 끌었다. 화이트, 레드, 그린, 네이비, 그레이 같은 비교적 제한된 팔레트가 반복된다. 화이트는 전통적인 테니스 유니폼의 색을 떠올리게 하고, 레드는 경기의 긴장감을, 딥 그린은 브랜드의 상징인 악어 로고와 연결된다. 네이비와 그레이는 도시를 닮은 색채다. 흥미로운 점은 대부분의 룩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나의 톤으로 구성했다는 점이다. 컬러 대비 대신 단색 스타일링을 택하면서 시선은 자연스럽게 실루엣으로 향했다.


라코스테의 2026 가을 겨울 컬렉션 쇼에 참석해 포토월에서 포즈를 취한 엑소 카이.

라코스테의 2026 가을 겨울 컬렉션 쇼에 참석해 포토월에서 포즈를 취한 엑소 카이.

A라인 스커트로 스포티즘을 모던하게 풀어낸 라코스테의 2026 가을 겨울 컬렉션.

A라인 스커트로 스포티즘을 모던하게 풀어낸 라코스테의 2026 가을 겨울 컬렉션.

A라인 스커트로 스포티즘을 모던하게 풀어낸 라코스테의 2026 가을 겨울 컬렉션.

A라인 스커트로 스포티즘을 모던하게 풀어낸 라코스테의 2026 가을 겨울 컬렉션.

허리선이 낮은 로우라이즈 팬츠, 통이 넓은 바지, 넓게 퍼지는 A라인 스커트가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딱 달라붙는 타이트한 실루엣에서 벗어나 한층 여유로워진 실루엣은 1920년대 스포츠 스타일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모던한 인상을 남긴다. 트랙 재킷과 플리츠 스커트를 결합한 룩, 넉넉한 후디 위에 코트를 겹쳐 입은 스타일링 역시 테니스의 에너제틱하고 엘리트적인 면모를 고급스러운 분위기로 마무리한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콜로투로스의 개인적인 배경을 고려하면 컬렉션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뉴욕 퀸스에서 성장한 그는 어린 시절 트랙수트와 스트리트웨어를 자주 접했다. 럭셔리 패션 하우스와 스포츠 브랜드에서 쌓은 경험 덕분에 그는 스포츠웨어와 도시적인 스타일을 자연스럽게 섞는 데 익숙하다. 라코스테에 합류한 이후 그의 컬렉션은 테니스 유산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뉴욕식 스포츠 감각을 더하는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다.

비와 바람에 강한 방수 소재로 완성한 아이템이 컬렉션 곳곳에 모습을 비췄다.

비와 바람에 강한 방수 소재로 완성한 아이템이 컬렉션 곳곳에 모습을 비췄다.


클래식한 스포츠웨어를 살짝 비틀어보려는 의도는 곳곳에서 드러난다. 전통적인 피케 폴로 셔츠는 오버사이즈 비율로 확장되고, 트랙 톱은 판초처럼 크게 변형했다. 플리츠 스커트는 스포츠웨어와 테일러링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을 찾았다. 색다를 변화를 거치니 패션에 테니스 클럽의 문화 코드가 은근하게 드러난다.

라코스테의 2026 가을 겨울 컬렉션에 참석한 신현지.

라코스테의 2026 가을 겨울 컬렉션에 참석한 신현지.


이번 시즌 라코스테는 테니스의 역사와 현대 스포츠웨어를 새롭게 실험하고 탐구했다. '비'라는 날씨를 통해 테니스 코트를 조금 더 현실적인 공간으로 끌어냈고, 단색 스타일링과 새로운 비율을 통해 클래식한 스포츠웨어를 다른 방향으로 풀어냈다. 우천으로 경기가 취소된 테니스 코트 위에서 라코스테의 스포츠 유산이 새로운 형태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Credit

  • 사진 라코스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