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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 마이 러브', 대사 없이 관객의 목을 조르는 광기

산후우울증을 주제로 하지만, 동시에 고립된 인간이 어떻게 미쳐가는 지를 보여주는 린 램지 감독의 신작.

프로필 by 라효진 2026.02.22

오래된 난제가 있다. 사랑은 상대가 좋아하는 걸 해 주는 걸까, 싫어하는 걸 안 하는 걸까? 영화 <다이 마이 러브> 속 그레이스(제니퍼 로렌스)는 남편 잭슨(로버트 패틴슨)에게 이끌려 화려한 도시에서의 삶을 접고 시골에 정착한다. 울창한 숲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낡은 집은 자살한 잭슨 삼촌의 소유물이었다. 잭슨은 뉴욕의 코딱지 만한 방 대신 이 곳에서 새 삶을 시작하고 싶다. 그레이스는 내키지 않는 마음을 억누르고 남편이 좋다는 대로 따른다. 언제부터 쌓였는지 모를 낙엽과 먼지를 치우고 집을 꾸미는 것도 처음에는 나름 재미있었다. 층간 소음, 벽간 소음 신경쓰지 않고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짐승처럼 섹스하는 게 이 부부의 유일한 낙이다. 그러다가 덜컥 아기가 생겼다. 그레이스와 잭슨의 관계가 변화하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다.


영화 <다이 마이 러브>

영화 <다이 마이 러브>


시골에 산 이후로 급격히 단조로워진 그레이스의 삶에 해소되지 않는 스트레스가 파고들었다. 위대한 문학 작품을 쓰겠다는 작가로서의 꿈은 이제 그레이스가 아닌 타인의 기억에만 남았다. 갓 태어난 아기를 돌보면서 글을 쓸 수는 없다. 설거지를 하면서 청소기를 돌릴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한 사람씩 설거지와 청소를 맡는다면 상황이 달라지겠지만, 잭슨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일주일에 사흘을 일하고 집에 와서 생색을 낸다. '무의미한 존재가 되는 느낌'이라 별 구경 하기 싫다는 그레이스 곁에서 천체 망원경을 끼고 산다. 그레이스의 유일한 오락인 섹스조차 보채지 않으면 시작되지 않는다. 잭슨은 그 와중에 고양이를 좋아한다는 아내 앞에 개를 데리고 나타난다. 조용하던 집은 아기 울음과 개 짖는 소리로 가득차 버리고 만다. 그레이스의 발산하지 못한 욕망은 결국 분노로 표출된다. 그런데 좋아하는 것을 해 주지도, 싫어하는 것을 안 하지도 않는 잭슨은 이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한다. 잭슨의 이상한 집착한 그레이스로 하여금 남편의 한계를 시험하듯 자기 파괴로 질주하도록 만든다.


영화 <다이 마이 러브>

영화 <다이 마이 러브>


조실부모해 가족이 없는 그레이스는 시어머니 팸(시시 스페이섹)에게 기대려 해보지만 거기서 확인한 건 남편 대신 총을 끌어안고 사는 자신의 미래다. 임신하기 전에는 주변의 아무도 그 힘듦을 이야기한 적 없지만, 아이를 갖고 나서는 모두가 묻지도 않은 경험담을 늘어 놓으며 참견을 한다. 팸만은 그레이스를 이해한다는 표정을 짓지만 위로는 피상적이다. 그레이스의 근원적 고독을 어렴풋이 읽어낼 수 있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관객 뿐이다.


사실 <다이 마이 러브>는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다. 여성의 임신과 출산, 육아에 수반되는 갈등은 굳이 미디어에서 찾지 않더라도 어느 곳에서든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이 여성을 주저 앉히는 사회적 문제든, 호르몬의 작용 탓에 오는 개인적 문제든 마찬가지다. 다만 이 영화는 산후우울증을 앓는 여성의 특정 서사로 고립된 인간의 권태와, 거기서 말미암은 신경증을 영상화하며 보편적 특별함을 획득한다. <다이 마이 러브>는 그레이스의 고독이 커지는 과정을 아카데미 포맷의 화면비 속에서 시간의 부피로 설명한다. 그의 고립감이 관객 체험의 영역으로 전환되도록 만든 비상한 연출이다.


영화 <다이 마이 러브>

영화 <다이 마이 러브>


영화는 이미 엉망진창이 된 그레이스의 머릿속을 옮겨 놓은 듯 흘러간다. 뒤죽박죽 엉킨 타임라인 위로 기호적인 요소들이 충돌할 때, 현실과 환상의 경계도 모호해진다. 이로써 미쳐가는 그레이스는 영화 그 자체로 화한다. <다이 마이 러브>가 러닝타임에 비해 현저히 적은 대사량에도 질식할 듯한 압박감을 주는 건 캐릭터의 광기가 필터 없이 부딪혀 오기 때문이다. 숨통을 조여 오는 '흔한 괴로움'을 그대로 스크린에 옮겨다 놓은 이 이야기의 결말은 어떨까. 감독의 작품 중 <케빈에 대하여>가 아들 케빈(에즈라 밀러)의 존재로 모성 신화를 박살냈다면, <다이 마이 러브>에서는 어머니가 그 역할을 맡은 걸지도 모르겠다. 3월 4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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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라효진
  • 사진 (주)누리픽쳐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