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NEWS

"날 쏘고 가라": 故 안성기가 남긴 200여 편의 작품 돌아보기

수많은 명대사, 명장면을 남기며 만인의 단골 성대모사 대상으로 자리잡기도 헀던 안성기.

프로필 by 이인혜 2026.01.06

지난 5일, 배우 안성기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오랜 시간 스크린을 지켜온 그의 이름은 한국 영화의 흐름과 자연스럽게 겹쳐지는데요. 아역 시절부터 말년에 이르기까지, 200여 편에 달하는 그의 필모그래피는 한 시대의 기록으로 남았습니다.



#01. 아역 시절, 영화계가 먼저 알아본 스타


영화 하녀 스틸컷

영화 하녀 스틸컷


안성기의 시작은 1957년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였습니다. 다섯 살의 나이에 카메라 앞에 선 그는 곧바로 주목받기 시작했죠. 곧이어 <10대의 반항>(1959)으로는 샌프란시스코 국제영화제에서 소년특별연기상을 수상하며, 한국 배우 최초로 해외 영화제 연기상 수상이라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안성기는 이후에도 <하녀>(1960), <얄개전>(1965) 등 70여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아역배우로 활약했습니다. 특히 <얄개전> 상영 당시에는 당시 같은 반 친구들을 극장에 초청한 일화가 전해져 화제가 되기도 했죠.



#02. 공백 이후, 80년대 필모그래피


병사와 아가씨들 스틸컷

병사와 아가씨들 스틸컷


아역 시절의 성공 이후 안성기는 긴 공백기를 거칩니다. 학업과 군복무로 약 10년간 영화계를 떠나 있었는데요. 당시 대학에서 베트남어를 전공한 만큼 전공을 살려 현지 취업을 준비했다는 후문. 하지만 전쟁이 끝나면서 계획이 무산됐고, 1977년 김기 감독의 <병사와 아가씨들>로 영화계에 복귀하게 됩니다.


바람 불어 좋은 날 스틸컷

바람 불어 좋은 날 스틸컷


본격적인 전환점은 이장호 감독의 1980년작 <바람 불어 좋은 날>이었습니다. 산업화 시대 청년들의 애환을 그린 이 작품에서 안성기는 말 더듬는 중국집 배달부 덕배 역을 맡아 인상깊은 연기를 펼쳤거든요. 이 작품으로 대종상영화제 신인상을 수상하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이후 <꼬방동네 사람들>(1982), <고래사냥>(1984), <깊고 푸른 밤>(1987)>로 이어지는 80년대 필모그래피는 안성기의 진면목을 보여줍니다. 도시 빈민부터 성공에 집착하는 밀입국자까지 그는 다양한 소시민의 모습을 설득력 있게 소화해냈죠. 또한 <깊고 푸른 밤>으로 악역 연기에 도전했다면, <기쁜 우리 젊은 날>(1987)>에선 순정파 로맨티스트로 열연하며 폭 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자랑했습니다.


기쁜 우리 젊은 날 스틸컷

기쁜 우리 젊은 날 스틸컷



#03. 90년대, 장르를 확장하다


영화 하얀 전쟁 스틸컷

영화 하얀 전쟁 스틸컷


안성기는 90년대 들어 코미디와 전쟁, 액션 등 장르를 넘나들며 연기 영역을 더욱 확장했습니다. 특히 이 시기에는 한국 현대사를 다룬 작품에도 꾸준히 참여하며 배우로서의 책임감도 함께 보여줬죠. 영화 <남부군>(1990)에선 빨치산 이태로, <하얀 전쟁>(1992)에선 베트남전 참전 용사 한기주 역을 맡았습니다. 특히 "베트남을 다루는 영화가 나오면 꼭 역할을 맡겠다고 생각하던 와중에 함께 해보자는 제의가 왔다"라고 말할 정도로 <하얀 전쟁>에 깊은 애정을 보였죠. 앞서 ROTC 장교로 베트남 파병을 준비했던 개인사 역시 연기에 진정성을 더했습니다.


영화 투캅스 스틸컷

영화 투캅스 스틸컷


1993년에는 강우석 감독의 <투캅스>로 코미디 연기에 도전하며 대중적 인기를 얻었습니다. 이후 1999년 이명세 감독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선 대사 한 마디 없는 살인범 역을 맡아 또 한 번 과감한 연기 변신에 나섰죠.



#04. 2000년대 이후, 주요 출연작


영화 실미도 스틸컷

영화 실미도 스틸컷


2000년대 이후 안성기는 작품 전체의 무게 중심을 잡아주는 배우로 자리합니다. 한국 영화 사상 최초로 천만 관객을 돌파한 <실미도>(2003)에서 안성기는 북파 공작원들을 훈련시키는 교육대장 최재현 준위 역을 맡았는데요. 냉철한 카리스마 뒤에 숨겨진 인간적인 고뇌를 섬세하게 표현해 몰입감을 더했습니다. 특히 "날 쏘고 가라"는 대사는 극 중 실미도 부대원들과 그들을 훈련시킨 기간병들의 비극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며 깊은 인상을 남겼죠.


영화 라디오스타 스틸컷

영화 라디오스타 스틸컷


이준익 감독의 <라디오 스타>(2006)도 빼놓을 수 없는 작품입니다. 안성기는 극 중 한물간 스타(박중훈)의 곁을 묵묵히 지키는 매니저로 출연했는데요. <투캅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등에서 콤비로 활약했던 박중훈과 오랜만에 호흡을 맞춰 이목을 끌기도 했습니다. 박중훈은 이 배역을 두고 "인간 안성기와 가장 닮은 역할"이라고 말하기도 했죠. 안성기 역시 자신의 출연작 중 <라디오 스타>를 가장 좋아했다고 전해집니다. 이에 따르면 "자극적이지 않고 사람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영화라서 좋다"라고 말했다는군요.


영화 카시오페아 스틸컷

영화 카시오페아 스틸컷


안성기는 2019년 혈액암을 진단받은 후에도 배우 활동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영화 <카시오페아>(2022), <한산: 용의 출현>(2022), <노량: 죽음의 바다>(2023)등에 출연하며 끝까지 현장을 지켰죠. “출연 중인 작품을 중도에 포기한다는 것은 병마의 시련보다 더 큰 고통"이라면서 약을 복용하면서 촬영에 임했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려졌는데요. "영화는 나의 모든 것"이라면서 마지막까지 복귀 의지를 밝혔던 그의 말은 안성기가 왜 '국민 배우'로 불렸는지를 설명해줍니다.


관련기사



Credit

  • 글 이인혜
  • 사진 각 작품 스틸컷 및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