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LE DECOR

골동품 힙하다 힙해

단골만 드나들던 답십리 고미술상가에 젊은 뉴 플레이어들이 등장했다. 골동을 스타일링하고, 만지고, 생활 속으로 끌어들이는 이들이 말하는 또 다른 취향의 세계.

프로필 by 길보경 2025.12.29

지하철 5호선 답십리역 인근, 박물관에서 볼 법한 옛 물건이 모여 있는 고미술상가 일대에 낯선 기류가 흐르고 있다. 한때는 단골들만 찾던 이곳에 젠지 세대와 해외 방문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것. 올해 초부터 젊은 감각의 상점 ‘고복희’와 ‘호박포크아트갤러리’, ‘오프(OF)’가 차례로 문을 열며 이러한 변화에 속도가 붙었다. 세 개의 공간은 골동 수집의 문턱을 낮추고, 오래된 물건을 보다 흥미롭고 친숙한 방식으로 경험하도록 제안한다.



호박포크아트갤러리

답십리 고미술상가 2동에 자리한 ‘호박포크아트갤러리’는 골동에 패셔너블한 관점을 접목한다. 이곳을 운영하는 김정열 대표는 8년 넘게 ‘수박 빈티지’를 운영하며 패션 신에서 감각을 다져온 인물. 비슷한 풍경이 반복되는 빈티지 시장 안에서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싶었던 그는 골동의 세계로 시선을 옮겼다. “고미술품을 다루긴 하지만, 그 방식을 완전히 다르게 가져가고 싶었어요. 연대나 희소성을 강조하기보다는, 지금 우리의 삶 속에서 어떻게 쓰일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게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호박포크아트갤러리는 고미술을 유물처럼 전시하기보다 ‘스타일링’한다. 덴마크 빈티지 조명 아래에 조선시대 소반을 재해석한 조인성 작가의 비정형 소반을 놓는가 하면, 구멍이 난 포탄은 화병이 되어 꽃을 품는다. 조선 시대 채독과 떡살, 권대섭 작가의 분청, 아프리카 조각 등 각기 다른 시공간의 기물이 느슨하게 공존한다. 여기에 빈티지 의류와 호박 ‘굿즈’ 모자, 반다나, 티셔츠 등이 멋스럽게 어우러진다. 김정열 대표는 이를 “정합과 부정합 사이의 균형”이라고 설명한다. “비슷한 것끼리만 있으면 재미가 없어요. 그렇다고 너무 튀어도 안 되죠. 그 중간 어딘가의 긴장이 중요해요.”

이곳의 큐레이션 기준은 ‘정·한·막’이다. 한국 사람들의 ‘정’, 과거 가난했던 생활에 담긴 ‘한’, 그리고 막춤처럼 즉흥적이고 자유로운 ‘막’. 이 세 가지가 어우러질 때 비로소 조선의 미감이 오늘의 언어로 살아난다고 믿는다. “고미술은 모셔두는 게 아니라 써보는 거예요. 직접 써보고, 생활 속에서 경험해야 진짜 매력이 드러나요.” 이곳에는 ‘만지지 마세요’라는 안내문이 없다. 오히려 손에 쥐고, 무게를 느끼고, 쓰임을 상상하도록 권한다.

호박포크아트갤러리의 공간은 스튜디오 힌지가 설계를 맡아 여백이 살아 있는 모던한 구조로 완성됐다. 절제된 공간 안에는 이윤정 작가와 협업한 금속 행어를 배치해 오브제와 공간 사이에 독특한 리듬을 형성했다. 현재는 네이티브 아메리칸 실버 주얼리 브랜드와의 협업 전시가 진행 중이니 참고할 것.

주소 서울 동대문구 고미술로 39, 2동 118호

영업 시간 오후 12시~18시 (일,월 휴무)



고복희

고미술상가에 가장 먼저 변화를 일으킨 이름을 꼽자면 단연 ‘고복희’다. 빈티지를 사랑하는 김성호·김지은 부부가 운영하는 고복희는 장한평 고미술상가에서 첫 아틀리에를 열었고, 현재는 답십리에서 소품 상점도 함께 운영한다. “기물이 살아 있던 시대의 흔적을 공유하는 것, 그리고 실제로 사용하며 함께 호흡하는 것. 그게 골동을 다루는 가장 큰 즐거움이에요.” 김지은 대표의 말처럼, 고복희가 다루는 골동은 현대의 생활 속으로 스며들며 새로운 균형을 만들어낸다 피에르 샤포의 테이블 옆에 조선 시대 찬장을, 알레산드로 멘디니의 의자 곁에는 빌헬름 바겐펠트의 화병을 병치한다. 바우하우스와 미드 센추리 모던, 그리고 조선의 고가구가 한 공간 안에서 각자의 시간을 간직한 채 나란히 호흡한다.

아틀리에는 고복희의 실험이 가장 밀도 높게 펼쳐지는 공간이다. 크고 묵직한 가구들이 중심을 이루며, 실제 생활 공간에 놓였을 때의 장면을 자연스럽게 상상하게 만든다. 최근 이곳에서 ‘미미회’라는 이름의 골동 살롱을 열기도 했다. 레반다빌라와 함께 기획한 이 전시는 동서양의 오래된 기물을 한자리에 모아, 시간이 만들어낸 아름다움을 공유하고자 한 시도였다. “어떤 물건은 정말 아는 사람만 아는 매력이 있어요. 오래된 흔적에서만 느껴지는 미묘한 아름다움이 있죠. 그걸 우리는 ‘맛’이라고 불러요.”


답십리 고미술상가의 소품 상점은 한결 가볍게 다가온다. 집 안에 들이기 좋은 크기의 오브제들이 모여 있기 때문. 고미술을 처음 접하는 이들도 부담 없이 발걸음을 옮길 수 있다. 고미술의 세계에 첫 발을 들이고자 하는 이들에게 김지은 대표는 ‘덕질’을 권한다. “그냥 예뻐서 사는 것에서 시작해도 괜찮아요. 오래 이어가려면 결국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는 게 중요하거든요.”


주소 서울 동대문구 고미술로 21, 1층 158호 (소품 상점)

서울 동대문구 고미술로 100, 2층 (아틀리에)

영업 시간 매주 토요일 오전 11~오후 17시까지 (소품 상점), 아뜰리에는 2026년 봄 오픈 예정



오프(OF)

“새로운 칵테일은 계속 만들어지지만, 결국 클래식한 것이 영원한 법이잖아요.” ‘올드 패션드(Old Fashioned)’ 칵테일에서 이름을 착안한 오프는 오래된 것 안에서 여전히 유효한 아름다움을 탐색한다. 이곳은 성수동 팝업 문화를 이끈 프로젝트 렌트의 최원석 대표가 한국의 디자인을 깊이 있게 공부하기 위해 만든 공간이다. “골동을 수집하면서, 우리가 알고 있던 한국적 미감이 사실은 굉장히 제한적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는 조선 공예 전람회 도록을 들여다보며, 우리가 ‘전통’이라 부르는 이미지가 얼마나 제한적인지 실감했다고 말한다. 일제강점기에 제작된 도록 속에는 지금 보아도 모던한 조형과 감각이 담겨 있었기 때문. “조선의 미감은 결코 하나로 정의할 수 없어요. 500년이라는 시간 동안 수없이 변주됐으니까요. 그 안에는 지금의 시선으로 보아도 아주 우아하고 혁신적인 디자인이 존재하죠.” 대표적인 예가 장죽비다. 양반의 도포 먼지를 털던 도구인 장죽비는 겉보기에는 단순하지만, 손에 쥐는 순간 놀랍도록 안정적인 그립감을 전한다. 또한 상어와 가오리 가죽으로 만든 안경통, 마블 패턴의 연리문, 나무를 엮어 만든 찬합 등 이곳에 놓인 오브제들은 모두 세련된 미감과 실용성을 동시에 갖췄다.

최원석 대표는 골동을 수집할 때 무엇보다 ‘맥락을 이해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박물관처럼 유리 너머로 감상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요. 직접 만지고, 써보고, 생활 속에서 경험해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죠.” 그래서 그는 충분한 시간을 들여 물건을 사용하고, 그 과정에서 축적된 감각을 통해 비로소 그 가치를 읽어낸다. 이곳을 찾는 이들 또한 물건에 담긴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체감할 수 있도록, 공간 전체를 ‘책가도’의 개념으로 풀어냈다. 조선 시대 양반들이 꿈꾸던 이상적인 삶을 한 폭의 그림으로 구현했던 책가도처럼 오프 역시 삶의 태도와 취향을 층층이 펼쳐 보인다.


오프의 기획 전시는 모던하면서도 한국적인 선을 탐구해 온 디자이너 정윤영의 가구 작업으로 문을 열었다. 이이어 키미누, 윤여동 등 동시대 작가들의 작업 또한 함께 소개되며 전통과 동시대적 해석을 폭넓게 보여줬다. 최원석 대표는 앞으로도 이 공간을 통해 과거와 오늘, 그리고 미래의 미의식을 탐구해 나갈 계획이다. “내년에는 미드나잇 페어를 열어보고 싶어요. 평일 퇴근 후에도 누구나 편하게 들를 수 있도록요. 오프에서 만든 칵테일 한 잔을 곁들이며 이야기를 나누는 작은 모임을 상상하고 있어요.”


주소 서울 동대문구 고미술로 39, 2동 196호

영업 시간 매주 토요일 오후 12시~17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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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COURTESY OF 장수인(호박포크아트갤러리) / 고복희 / O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