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LE DECOR

가장 한국적인 모던 퍼니처

이스턴에디션 양태오에게 한국성이란 마르지 않는 영감의 샘이다.

프로필 by 윤정훈 2025.09.22

‘이스턴에디션’은 2021년 태오양스튜디오에서 출발해 양태오, 임대선, 홍혁진 세 명의 공동대표가 이끌고 있다. 함께한 계기나 출범 당시의 생각은 무엇이며, 어떤 공감대가 바탕이 됐나

디자이너로서 오랫동안 ‘전통과 지역성의 동시대화’를 주제로 공간을 설계해 왔다. 그 과정에서 공간의 감성과 철학을 가장 잘 전달하는 요소가 결국 ‘가구’라는 점을 실감했다. 그래서 내가 만든 공간에 직접 디자인한 가구를 배치했다. 작업이 쌓이면서 스튜디오의 미감을 특정 공간에만 국한하지 않고 더 많은 사람과 나눌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임대선 대표와 홍혁진 대표를 만나 ‘한국을 이야기하는 브랜드’에 대한 공감대를 나누고 이스턴에디션을 설립했다. ‘동시대 언어로 해석한 한국의 정적인 아름다움’을 널리 공유하는 것을 목표로 디자인과 유통, 운영에서 서로의 전문성과 관점을 존중하며 브랜드를 성장시키고 있다.


감나무 컬렉션. 예부터 한국의 일상 속에 자리 잡은 감나무가 지닌 고유의 색과 무늬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했다.

감나무 컬렉션. 예부터 한국의 일상 속에 자리 잡은 감나무가 지닌 고유의 색과 무늬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했다.

수많은 가구 브랜드 틈에서 새로운 브랜드를 만든다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다. 이스턴에디션 같은 브랜드가 필요하다고 느낀 이유는

조선시대의 전통문화는 건축과 음식, 옷, 가구, 공예 등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지만 그 모든 것의 근간에는 같은 철학이 자리한다. 과도한 기교나 과시하는 태도 대신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본질적 고민이 그것이다. 선비들의 책상인 서안은 불교의 경대와 다르다. 경대에는 사후 세계나 정신세계를 상징하는 연꽃 장식이 있지만, 서안은 학문 정진을 위해 가장 본질적이고 기능적인 요소만 남겨두었다. 선비들이 단풍나무를 좋아한 이유 역시 월동을 위해 잎을 떨어뜨리는 겸허함 때문이었다. 삶이 유한하다는 걸 알았던 그들은 본질적인 것에 집중했다. 이런 옛사람들의 태도와 정서, 미감을 가구를 통해 현대에 다시 불러오고 싶었다.


이스턴에디션은 올해로 5년 차가 됐다. 브랜드의 근간을 이루는 철학과 방향성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

이스턴에디션은 ‘한국적 내러티브’ ‘자연에서 온 물성’ ‘공예적 태도’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에 두고 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국의 아름다움을 현대 감각으로 풀어내는 일’에 집중해 왔다. 다만 그 흐름이 더 깊어지고 확장될 수 있도록 다양한 실험을 시도하고 있다. 전통 도자기의 미감을 담은 오브제나 향 제품, 3D 스캐닝과 프린트 기술을 활용한 시도는 기존 철학을 더욱 풍부한 감각과 언어로 확장해 가는 과정이다.


최소한의 공간과 자연스러운 삶을 통해 추구했던 선비 정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단순’ 컬렉션,

최소한의 공간과 자연스러운 삶을 통해 추구했던 선비 정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단순’ 컬렉션,

하나의 제품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내러티브’다. 형태보다 먼저 그런 영감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고민한다. 최근에는 ‘단순’과 ‘감나무’라는 시리즈를 선보였는데, 전자는 철학과 태도에서, 후자는 물성과 재료에서 출발한 컬렉션이다. 내러티브나 소재, 만듦새를 균형 있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데, 어떤 재료를 사용하든 제품의 내러티브가 한국적 미감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걸 염두에 둔다.


전통을 현대적으로 구현할 때 중요한 것은? 가령 고가구를 오늘날에 맞게 재해석할 때 어려움이 있는지

예전과 지금의 삶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예전에도 책을 보고 기물을 올려놓았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스케일과 맥락이 조금 바뀌었을 뿐이다. 단순히 전통을 재현하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다. 왜 아름다운지, 왜 그렇게 만들어졌는지 본질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전통을 ‘모티프’가 아닌 ‘철학’으로 받아들인다. 자연과의 조화, 절제된 미감, 관계에 대한 배려 같은 정신을 오늘날의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재맥락화하는 것이다.


이스턴에디션 양태오 공동대표

이스턴에디션 양태오 공동대표

올해 논현동에 새롭게 문을 연 이스턴에디션 아틀리에.

올해 논현동에 새롭게 문을 연 이스턴에디션 아틀리에.

한국성이라는 근간이 자칫 브랜드를 제한하는 틀이 되진 않을까

브랜드를 시작한 지 5년쯤 됐는데, 한국성은 여전히 탐구 대상이다. 도산서원의 완락재라는 방 하나를 모티프로 삼아도 수십 개의 가구나 공간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안에 담긴 철학과 깊이가 어마어마하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한국성’을 개인이 몇십 년 동안 만든 것처럼 착각한다. 하지만 그건 몇천 년에 걸쳐 이어져온 미감과 미학의 결과다. 오히려 제대로 다뤄지지 못하고 사라지는 것이 많아 아쉽다. 수많은 전통 요소 중에서 내 취향과 공명하는 미감을 탐색하며 제품으로 이어가는 편이다.


‘보료 체어’나 ‘사방탁자’처럼 전통 결구 방식을 현대 디자인에 적용하는 시도가 흥미롭다. 실제로 제작은 어떻게 이뤄지나

전통 장인들과 협업하는 경우도 있지만, 일반 가구 제작자들도 공예적 태도를 채택하면 전통 방식의 구현이 가능하다. 손잡이 하나를 만들 때도 한국 전통 고가구의 짜임 방식을 적극적으로 참고한다. 핵심은 태도와 방법에 있다고 본다.


이스턴에디션 아틀리에. 왼쪽에 놓인 데스크는 조선시대 목가구의 미학을 재해석한 ‘수납장 책상(Study Desk with Storage)’. 책을 올려놓는 전통 상을 뜻하는 서안에서 착안한 상판에 켜켜이 쌓인 서랍을 더해 기능성을 높였다.

이스턴에디션 아틀리에. 왼쪽에 놓인 데스크는 조선시대 목가구의 미학을 재해석한 ‘수납장 책상(Study Desk with Storage)’. 책을 올려놓는 전통 상을 뜻하는 서안에서 착안한 상판에 켜켜이 쌓인 서랍을 더해 기능성을 높였다.

쇼룸 외에 이스턴에디션 가구를 만날 수 있는 곳은

리조트나 호텔, 오피스 등 다양한 공간에서 사용되고 있다. 제주 파르나스 호텔, 설해원 리조트, 설해별담, 한솥 사옥, 블루보틀 스튜디오, 마곡의 원그로브 오피스 로비, 바쉐론 콘스탄틴 등에 이스턴에디션의 가구가 들어가 있다.


최근 논현동에 ‘이스턴에디션 아틀리에’를 열었다. 어떤 계기로 마련했는지

컬렉션이 쌓이고 브랜드가 성장하면서 이스턴에디션의 디자인을 한눈에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이에 보다 통합적 경험을 제공하는 아틀리에를 마련했다.


선비들의 절제된 삶의 모습을 간결한 선형으로 재해석한 ‘트리벳 체어’. 원형 구로 만든 월넛 다리에 돌과 유리로 이뤄진 상판으로 독특한 조형을 구현한 ‘그라운드 티 테이블’. 좌식 문화의 중요한 물품인 방석에 높이를 더한 ‘쿠션 스툴’. 전통 보료에서 영감을 받은 ‘보료 소파’.

아틀리에엔 할머니의 다락방에서 영감을 받아 구성한 공간도 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어떤 영향을 줬나

어릴 때 할머니의 다락방은 무섭기도 했지만 신비로운 공간이기도 했다. 어두운 천장과 오래된 책, 가구 냄새, 창으로 들어오던 빛…. 이런 감각들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아틀리에 1층의 아카이브 공간은 이런 기억에서 출발했다. 외부와 단절된 듯한 고요함 속에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사적인 기억이지만 진솔한 경험에서 출발한 디자인이 오히려 더 많은 사람의 정서에 닿을 것 같았다.


브랜드의 다음 챕터에 대한 구상을 들려준다면

출발점을 되돌아보는 시기인 것 같다. 어떤 질문으로 여기까지 왔는지 고민 중이다. 가장 큰 과제는 여전히 ‘한국적’이라는 개념이다. 전통 형식에 갇히지 않고 오늘을 살아가는 감정과 태도, 존재 방식까지 담아낼 수 있길 바란다. 앞으로도 삶의 장면을 제안하는 브랜드로 나아가고 싶다.

Credit

  • 에디터 윤정훈
  • 아트 디자이너 김강아
  • 디지털 디자이너 김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