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동 감성 영화관 '무비랜드' 누가 디자인했을까
함께하는 사람들을 애정하는 마음으로 공간을 짓는 디자인 스튜디오 ‘콩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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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를 때려보세요!” 핫 핑크와 형광 녹색으로 이뤄진 홈페이지 화면 위로 하트 모양의 아이콘이 둥실 떠다닌다. 마우스 커서는 테니스 라켓. 세기말 감성을 연상시키는 이 ‘투 머치’ 컨셉트의 주인공은 디자인 스튜디오 ‘콩과하’. 직장 동료로 만나 2020년 동업을 시작한 김혜빈 · 하진구 대표는 완벽한 호흡을 자랑하는 복식 팀처럼 공간 디자인이라는 코트를 누벼 왔다. 상대는 클라이언트, 경기의 목적은 승패가 아닌 공이 오가며 만들어내는 그림이다.
성수동 영화관 ‘무비랜드’. 기획 단계부터 클라이언트와 촘촘히 논의해 완성했다. 먼지가 두둥실 떠다니는 나른한 오후의 도서관이 모티프로, 따뜻하면서도 레트로한 분위기가 특징.
도예 작가와 협업한 테라코타 벽, 클라이언트의 그래픽 디자인이 어우러져 완성도를 끌어올릴 수 있었던 프로젝트.
콩과하, 한번 들으면 잊기 어려운 이름이다. 콩과하의 시작은
김혜빈(이하 ‘빈’) 연인이 아니고, 순전히 비즈니스 파트너 관계다(웃음). 스튜디오 이름은 지인의 팝업 공간 오픈을 돕다가 즉흥적으로 지었다. 어릴 적 별명이 ‘김혜콩’이라 ‘콩’을 넣었고, 여기에 하진구의 ‘하’를 붙였다. 김앤장처럼 들리지 않나(웃음). 당시에는 본격적으로 동업하게 될 줄 몰랐고, 거창한 의미를 붙이는 걸 좋아하지 않아 가볍게 지었다.
하진구(이하 ‘하’) 사실 ‘하와콩’도 후보였는데, 어쩐지 ‘아담과 하와’ 같아서(웃음). 레이디 퍼스트 차원에서 혜빈 씨가 앞에 오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내가 6개월 동생이기도 하고.
분홍색 테니스 공을 인스타그램 프로필 사진으로 내걸고 정제되지 않은 작업 과정을 분방하게 올린다. 의도적인 촌스러움이 더 매력적이다
빈 둘이 함께할 때 생기는 제3의 취향이다. 서로의 감각이 섞여 만들어지는 ‘콩과하만의 자아’다(웃음).
하 스튜디오를 만들고 인스타그램 프로필용 이미지를 찾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본 분홍색 테니스공이 생각났다. 이후 테니스라는 스포츠에 관해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면서 더 공고한 상징이 된 것 같다. 남녀 복식 경기 때 코트가 더 넓어지고, 경기처럼 둘이 함께 더 넓은 코트를 쓰고, 40:40으로 점수가 동점이 되는 ‘듀스’ 상태가 되면 끝날 때까지 영원히 경기를 해야 되는 룰이 흥미롭다. 네트를 사이에 두고 핑퐁하는 것이 클라이언트와의 소통과도 유사하고. 0:0도 ‘러브 올(Love All)’이라고 부른다. 모든 시작은 사랑에서 비롯된다는 뜻이다.
콩과하 홈페이지에 적힌 ‘We Always Start at Love(우리는 언제나 사랑에서 시작한다)’라는 문구가 생각난다
하 그 문구의 ‘사랑’은 보편적이고 포괄적인 감정을 말한다. 동료로서의 사랑, 클라이언트를 향한 애정, 함께하는 사람들을 존중하는 마음.
빈 프로젝트가 즐거운 이유를 고민해 보면 결국 ‘사랑’ 때문이다. 클라이언트를 사랑하면 일이 힘들어도 즐겁고, 사랑하지 않으면 일이 쉬워도 괴롭다. 결국 즐겁게 일하기 위해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 같다.
강릉 편집 숍 ‘오어즈’를 운영하는 부부를 위한 주택 리모델링 프로젝트. 두 사람이 좋아하는 나무와 연두색.
노란색을 중심으로 붙박이 가구를 제작하고, 거실 창가에는 다양하게 활용 가능한 단을 만들었다. 짙은 네이비 벽과 발랄한 옐로 컬러의 수납장이 만드는 대비가 흥미로운 공간은 식스티세컨즈 김한정 실장의 집.
듀오라서 좋은 점은
하 혜빈 씨는 정말 디자인을 잘한다. 레이아웃과 설계, 소재 선택 능력이 탁월하다. 우린 성격이나 MBTI도 완전히 다르다. 예를 들어 내가 컵의 형태와 색을 본다면, 혜빈 씨는 그 안에 담긴 내용물의 향과 온도를 본달까. 서로 놓치는 부분을 잘 채워주는 관계다.
빈 같이 일하면 재밌다. 매사 장난스러운 것 같아도 일할 땐 굉장히 집중한다. 숫자나 일정 관리, 예산 같은 실무적인 부분을 진구 씨가 잘해준다. 나는 내향적인데, 진구 씨는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에너지를 이끌어낸다. 현장에서 돌발 상황이 생겨도 순발력 있게 대처하고. 둘이 합쳐야 비로소 공간이 완성되는 것 같다. 우리 일은 공간 디자인뿐 아니라 클라이언트와의 소통, 하자 보수, 추후 관리까지 아우르니까.
콩과하를 있게 한 프로젝트는
하 늘 받는 질문이지만 답하기 어렵다. 인원이 둘뿐이라 여러 프로젝트를 동시에 하지 않고 한 번에 하나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모두 의미 있다.
빈 시기나 규모 면에서 본다면 성수동 영화관 ‘무비랜드’가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신축 프로젝트라 밀도 높은 작업이 이뤄졌고, 무엇보다 협업이 빛을 발했다. ‘나이트프루티’ 김소라 도예가와 함께 테라코타 타일을 직접 제작해 벽면을 장식했고, 클라이언트인 ‘모베러웍스’가 그래픽 디자인을 맡았다. 우리에겐 ‘결과물의 통일감’보다 ‘과정의 통일감’이 더 중요하다. 클라이언트를 비롯해 다양한 파트너와 한 팀이 돼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콩과하가 생각하는 좋은 공간이란
빈 특정 용도에 고정되지 않고, 사용자의 여건과 취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공간이다. 주거 프로젝트에서 거실 창 앞에 낮은 단을 설치하는 경우가 그러한데, 어떻게 보면 애매한 스케일의 요소지만 실제 생활에서 사용자가 걸터 앉기도 하고 책장 겸 화분 선반으로 잘 쓰고 있다. 이러한 확장성을 품은 지점을 마련하는 게 디자이너로서 큰 즐거움이다.
하 사용자의 생활방식이 자연스럽게 스며든 공간. 가게든 집이든 결국 그 사람을 닮아야 편안하고,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그래서 우리 생각대로 밀어붙이는 대신 여지를 남기는 편이고, 깊은 인터뷰로 클라이언트의 라이프스타일을 이해하고 설계에 반영한다. 공간은 결국 그 안에 사는 사람을 위한 것이니까.
엔초마리 오픈 소스로 의자 및 테이블을 제작한 ‘샐러드셀러’ 이태원 스토어.
차 도구 수납장으로 벽면을 장식한 ‘산수화티하우스’ 대표의 집.
샐러드라는 메뉴에서 영감을 받아 다양한 색과 소재로 구성한 샐러드셀러 스토어 내부.
콩과하의 디자인은 전체적으로 편안하면서도 경쾌하다. 컬러나 소재 사용 기준은
빈 직감적으로 선택하는 편이다. 현장에서 그림을 그리듯 덩어리감과 색과 소재의 조화를 본다. 너무 자잘한 디테일이 많은 디자인은 선호하지 않는다. 다소 과감해 보이는 색과 소재도 포인트로 쓰는데, 클라이언트가 용기를 내볼 수 있도록 북돋기 위함이다. 최종적인 조화와 비율은 내가 정하지만, 결정하는 과정의 대화가 중요하다.
꿈의 프로젝트가 있다면
빈 아직 해보지 않은 일은 다 욕심이 나는데, 꼭 해보고 싶은 건 ‘숙소’다. 단순히 디자인만 하는 스튜디오를 넘어 우리만의 브랜드나 공간을 운영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디자인적으로 힘을 많이 준 공간이 아니라 좀 더 캐주얼한 분위기로, 우리 작업실처럼 키치한 분위기가 아니라 좀 더 절제된 공간을 만들고 싶다. 마냥 밝고 경쾌하게 보이지만 우리 안엔 다양한 결의 미감이 있기 때문이다. 실은 강릉의 오래된 구축 아파트 한 곳을 염두에 두고 있다. 숙소이면서 갤러리나 팝업 이벤트가 가능하고, 편안한 공간을 그리고 있다. 이건 우리가 말하는 ‘좋은 공간’의 정의와도 맞닿아 있다. 다양한 방식으로 쓰일 수 있는, 열려 있는 공간 말이다.
찻물처럼 차분하고 투명한 색상을 입은 산수화티하우스 대표의 집.
서윤정 작가의 집. 서윤정 작가가 직접 그린 패턴으로 협업 시너지를 극대화한 공간이 완성됐다.
Credit
- 에디터 윤정훈
- 사진가 LEE JOO YEON·KIM NA HUM·PARK SE HEE
- 아트 디자이너 김강아
- 디지털 디자이너 김려은
- COURTESY OF KONG&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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