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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워하고 사랑하는 '은중과 상연' 김고은, 박지현 인터뷰

시간 너머에도 존재하는 우리. 김고은과 박지현이 만든 결코 잊히지 않을 순간.

프로필 by 전혜진 2025.09.07

서로 첫인상은 어땠나요? 아마 유미와 새이란 이름으로 첫 호흡을 맞춘 <유미의 세포들> 촬영 때로 거슬러 가겠죠

지현 저는 김고은의 열성적인 팬이었어요. 원래 그정도로 낯을 가리지 않는데 현장에서 언니를 처음 본 순간 한 마디도 못 걸겠더라고요. 당시 언니는 굉장히 바빴는데 ‘말을 걸까 말까? 방해되면 어쩌지?’ 하다 말았죠. 언니가 결국 말을 걸어줬어요. 고은 편하게 말을 걸었는데 지현이는 ‘수줍수줍’ 했어요(웃음). 그때는 자주 붙는 신이 없어서 짧게 만났거든요. 첫인상이 정말 예뻤습니다.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지만, 늘 연기를 섬세하게 하는 배우라고 생각하고 있던 차였죠.


넷플릭스 시리즈 <은중과 상연>은 20대부터 40대에 걸친 두 사람의 우정을 그립니다. 서로가 ‘은중’과 ‘상연’이라는 걸 알았을 때, 어땠나요

지현 이게 꿈이야, 생시야? 대본이나 제작진도 좋았지만, 좋아하던 선배와 연기한다니 꼭 ‘로또’ 맞은 것 같았어요! 고은 당시 <유미의 세포들>의 이상엽 감독님뿐 아니라 이번에 <은중과 상연>의 조영민 감독님께도 지현이 캐스팅이 정말 잘 어울린다고 말씀드렸어요. 이 작품은 드라마틱한 신이 메인이라기보다 두 배우가 처음부터 끝까지 끌고 가야 하는 잔잔한 이야기 위에 어떤 변주나 감정선을 쌓아 올려야 하기 때문에 연기적인 부분이 너무 중요했거든요. 너무나 든든한 파트너가 생겼다고 생각했어요.


카디건과 슬리브리스 티셔츠, 스커트는 모두 Lemaire.

카디건과 슬리브리스 티셔츠, 스커트는 모두 Lemaire.

김고은은 워낙 다양한 필모그래피를 섭렵했지만 최근 우정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해오고 있는 것 같아요. 근작 <대도시의 사랑법>이 대표적이라면 미스터리 장르인 <작은 아씨들>은 물론 오컬트인 <파묘>에서도 그런 관계성이 두드러졌어요

고은 우연치 않게 그 시기에 <대도시의 사랑법>과 <은중과 상연>을 연달아 촬영하게 됐어요. 긴 시간 동안 우정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죠. 조금 개인적인 이야기일 수 있는데, 유독 그 해가 소중한 존재들에 관한 깊은 생각을 해볼 수 있는 시기였어요. 의도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런 작품들이 제게 온 건지…. 그 시기의 감정을 작품에 잘 옮길 수 있어서 특별한 해였어요.


카디건은 Weekend Max Mara. 보디수트는 Patton. 니트 쇼츠는 Leha. 힐은 Loewe.

카디건은 Weekend Max Mara. 보디수트는 Patton. 니트 쇼츠는 Leha. 힐은 Loewe.

박지현은 상연이라는 복잡한 여성을 연기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나요. 예고편에서도 은중에게 “망가졌으면 좋겠어. 나처럼”이라는 모진 말을 내뱉던데요

지현 저는 타인을 이해하는 기준선이 조금 낮다고 해야 할지, 캐릭터와 대본을 볼 때 대부분 ‘그럴 수도 있겠지’ 하며 이해하는 편이거든요. 그럼에도 상연을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왜 그런 말과 행동을 하는지 톺아보며 느낀 건 ‘인간은 모두 그렇다’는 거였죠. 더 심한 말도 하고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하고 살지만, 작품에서 그 장면이 극적으로 표현되니 자극적인 갈등으로 보이기도 하죠. 그래서 제가 상연을 비로소 이해하게 된 순간, 조금 외롭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어요. 저라도 상연이를 지켜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완성된 작품을 보니 전혀 외로워 보이지 않더군요. 두 사람 모두 같았으니까. 사실 인간관계에서 갈등이란 누구 한 명이 나쁜 마음을 먹어서 일어난다기보다 오해가 쌓이고, 그런 감정에 휘말리며 벌어지잖아요. 마치 나비 효과처럼. 그런 두 사람의 눈빛이나 대사, 호흡, 떨림 하나하나가 사실적이면서도 평범하게 그려져 있어요. 꼭 ‘연프’ 같다는 느낌도 들어요. 고은 시청자들이 은중과 상연, 어느 쪽에만 감정 이입하거나 이해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습니다. 보편적으로 은중이 친구하기 더 편한 성격일지 모르지만, 저도 상연의 행동이나 어떤 면면과 감정이 이해됐거든요. 그러니 이 이야기는 20대와 30대, 40대라는 삶의 관문을 지나며 두 존재가 서로에게 얼마나 영향을 끼쳤고, 얼마나 오롯이 서로를 선망하고 사랑하며 미워했는지 그려져 있어요. 그 과정을 다 겪은 후 “끝내 너는 나를 받아주는구나”라고 말해요. 상연이 은중에게 하는 말이지만, 사실 그 반대이기도 하니까. 온전한 서로를 끝끝내 받아주는 이야기에 가까워요.


김고은이 입은 터틀넥은 Gabriela Hearst. 데님 팬츠는 Recto. 박지현이 입은 슬리브리스 톱과 스니커즈는 모두 Loewe. 데님 팬츠는 Isabel Marant. 이어링은 Tom Wood.

김고은이 입은 터틀넥은 Gabriela Hearst. 데님 팬츠는 Recto. 박지현이 입은 슬리브리스 톱과 스니커즈는 모두 Loewe. 데님 팬츠는 Isabel Marant. 이어링은 Tom Wood.

극중에서 20대부터 40대까지 시간의 흐름을 표현해야 했어요. 거의 20년에 걸친 감정의 증폭을 연기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요

지현 저는 상연의 나이대별 특징이나 나름의 해석을 정해두고 일종의 ‘카피’를 했어요. 시간이 흐르면서 성격이 조금씩 바뀌는 캐릭터라 그 차이를 보여주기 위해서죠. 고은 어려웠다기보다 마지막 회차를 보며 ‘아, 이토록 오랜 기간 서사를 쌓은 것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김고은의 10대부터 30대까지 돌이켜보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죠. 나라는 사람은 어떻게 변했을지, 나의 20대와 30대는 어떤 게 다른지 생각해 보면서요. 사실 그 차이가 외형적으로 두드러지기보다 삶에서 차지하는 것의 비중에 따라 사람이 변하는 것 같아요. 20대 초반은 학생 시절의 영향이 큰 시기라 10대 때 기운이 지배적이라면, 30대는 일의 비중이 크니까 일하는 방식에 따라 말투나 에너지가 바뀌어요. 40대라고 외형적으로 큰 변화를 주는 표현 방향은 지금 시대에 맞지 않는 선택이라고 생각했어요. 주변을 봐도 전혀 그렇지 않잖아요. 은중의 각 시기의 에너지 변화에 집중했던 것 같아요.


 김고은이 입은 톱과 스커트는 모두 Ami Paris. 스트라이프 셔츠는 Gabriela Hearst. 부츠는 Gianvito Rossi. 박지현이 입은 풀오버는 Isabel Marant. 팬츠는 Eenk. 이어링은 Tom Wood.

김고은이 입은 톱과 스커트는 모두 Ami Paris. 스트라이프 셔츠는 Gabriela Hearst. 부츠는 Gianvito Rossi. 박지현이 입은 풀오버는 Isabel Marant. 팬츠는 Eenk. 이어링은 Tom Wood.

동경과 사랑, 질투와 욕망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선을 표현하기 위해 서로 어떤 얘기를 나누었나요

고은 20대와 30대를 연기할 땐 서로 생각을 나누기보다는 주어진 대사와 신에 관해 감독님과 디테일하게 대화했던 것 같아요. 40대를 연기할 때에야 비로소 좀 더 개인적인 시간들, 지현이와 저 둘만의 시간을 갖기도 했죠. 개인적으로 <은중과 상연>은 40대를 향해 가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때를 잘 매듭지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상연이의 마음은 어때?” “은중이의 마음은 어떤 것 같아?” 이런 대화를 지현이와 많이 나누면서 장면을 완성해 나갔어요.


최근 이태원에서 두사람이 함께 ‘데이트’한 기록을 남기기도 했어요. 은중과 상연이 아닌, 고은과 지현이 만나면 무슨 얘기를 하나요

지현 언니에게 먹는 걸 배웠어요. 고은 하하. 지현이가 잘 안 먹어서 걱정됐거든요. 건강에 좋지 않을 것 같아 밥을 잘 챙겨 먹으라고 늘 얘기해 줬어요. 지현 언니는 늘 말했어요. 챙겨 먹어야 된다, 국을 꼭 먹어야 된다, 여기에 가면 식당이 맛있다…. 지금은 덕분에 훨씬 나아졌어요! 잘 챙겨먹는 저만의 방법을 찾았죠.


재킷은 N°21. 슬리브리스 톱은 Isabel Marant.

재킷은 N°21. 슬리브리스 톱은 Isabel Marant.

자매나 모녀 같기도 한데요(웃음)? 두 사람의 변화무쌍한 관계처럼 우리 모두의 시간과 감정은 언제 갑자기 끝날지 모릅니다. 잊지 못할 인연 앞에서 어떻게 최선을 다하나요

고은 크게 생각이 바뀐 부분은 없어요. 저는 원래 관계에 큰 미련을 두는 편은 아니거든요. 대신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관계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죠. 그럼에도 안 되는 부분은 어쩔 수 없는 것 같고요. 사람 사이에 ‘믿음’이 존재할까 싶기도 한데 그냥 그 사람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일 뿐 신뢰가 전제는 아니라고 봐요. 믿음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사랑이 더 포괄적인 개념이라는 거죠. 저도 사람들을 너무 좋아하고, 관계를 위해 자존심을 버리기도 하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았을 때 툭툭 털어내기 위한 저만의 방법인 것 같아요. 지현 저는 관계보단 한 사람의 생애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알게 된 건 삶은 생각보다 거창하지 않다는 것. 삶에서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이 생각보다 대단한 것이 아니라 덤덤해야 하는 과정이라고 말이죠.


촬영하다 생긴 잊지 못할 두 사람만의 추억이 있다면

지현 촬영하며 3년 치 눈물을 다 뺐어요. 고은 쉽지 않았어요. 상연이가 아니라 지현이 ‘본체’가 엄청 눈물을 흘렸거든요. 지현 우는 장면이 아닌데, 언니만 보면 몰입해서 그냥 눈물이 줄줄줄…. 울면 촬영이 지체되니까 그러면 안 되는데, 너무 미안했죠. 고은 충분히 그럴 수 있어요. 눈을 마주치면서 연기하는데, 어떨 땐 제 눈만 보면 오열하니까, 쳐다보지 않는 게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눈을 이렇게 돌리거나 내려도 또 울고…! 지현 일찍 일어나 2시간 동안 미리 눈물도 빼놓고, 목욕하면서 땀도 빼며 온갖 수분을 다 뺐는데, 안 됐어요!


 블라우스와 슬랙스, 벨트는 모두 The Row.

블라우스와 슬랙스, 벨트는 모두 The Row.

그만큼 서로 진심이었다는 뜻이죠. 애틋한 마음으로 함께 보낸 지금, 이 시절이 훗날 어떻게 기억될 것 같나요

지현 언니, 울어? 고은 진짜 왜 그러는지 모르겠는데, 원래 안 그러거든요. 근데 눈물이 나네요. 저를 잘 버티게 해준 작품이었어요. 그래서 고마운 마음이 크게 자리 잡았고, 연기로 잘 표현할 수 있어서 이러는 것 같네요. 사랑하는 친구를 대하는 일에 관해 올바르게 제 감정을 쓸 수 있었어요. 지현 만약에 신이 존재한다면 이 역할을 하게 된 것에 감사드리고 싶어요. 과장 같겠지만, 그만큼 진심을 담은 작품이에요.


김고은이 입은 재킷과 셔츠, 스커트, 팬츠는 모두 The Row. 박지현이 입은 재킷은 YCH. 레이스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김고은이 입은 재킷과 셔츠, 스커트, 팬츠는 모두 The Row. 박지현이 입은 재킷은 YCH. 레이스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두 사람 다 ‘울보’군요(웃음). 소중한 추억을 남긴 서로에게 한마디해 볼까요

지현 언니가 은중이라 너무 다행이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언니 아니었으면 작품을 완성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대본을 보고, 촬영하고, 편집된 걸 보는 내내 소름이 돋았어요. 김고은이라는 배우는 그냥 ‘다’ 하더라고요. 모든 순간 믿고 가는 거예요. 여러분, 이 사람이랑 꼭 작업해 보세요. 제가 투자할게요. AS까지…. 고은 옆에 있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지현이가 상연이어서 좋았어요. 촬영하면서도 그랬지만, 결과물을 봤을 때 내가 생각했던 대로였죠. 연기 잘하는 파트너와 함께할 때의 든든함이 컸고, 지현이가 상연이라 정말 다행이었어요. 지현 저는 이번 기회에 처음으로 연기를 ‘막’ 해봤거든요. 날것의 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아주 좋은 셰프를 만난 거예요. 고은 언니는 던지면 뭐든 뚝딱 요리해 줘요. 고은 셰프는 감독님이 아닐까? 지현 그럼 언니는 좋은 화력? 엄청난 조리 도구라고 해도 돼요? 고은 지현이 하고 싶은 대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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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전혜진
  • 사진가 박종하
  • 스타일리스트 이윤미·김명희
  • 헤어 스타일리스트 이현우·케이트
  • 메이크업 아티스트 안성희·최수지
  • 아트 디자이너 강연수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