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은 동명의 베스트셀러 속 ‘재희’ 편을 모티프로 합니다. 누군가 재희를 연기한다면 그건 김고은이지 않을까 상상한 적도 있었어요
정말요? 저는 원작을 읽어보지 않았는데요. 2년 반 전인가 <대도시의 사랑법> 시나리오를 처음 받고 단숨에 읽었던 기억이 나요. 오래 기다린 작품인데 드디어 세상에 나와요!
시나리오가 무엇을 말해 주던가요? 사랑과 관계에 관해 고민하는 청춘들의 이야기는 흔한 소재인데 <대도시의 사랑법>은 어떤 면이 특별했을까요
담백해서요. 거창하지 않게, ‘쿨’하게 그저 ‘이런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이 있어요’ 하고 툭 내미는 것 같았죠. 보는 이에게 강요하지 않거든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어쩌면 지금도 누군가 겪고 있을 고민들이 투영돼 있어서 특별하지만 특별한 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죠.
노상현이 입은 코트와 셔츠는 모두 Allsaints. 이너 웨어로 입은 슬리브리스는 Circusfalse. 팬츠는 RRL. 스웨이드 부츠는 Saint Laurent. 네크리스는 Bulletto. 김고은이 입은 레더 오버올은 Ernest W. Baker by 10 Corso Como Seoul. 보디수트는 Acne Studios. 다크 브라운 뮬은 Dries Van Noten. 다이아몬드 미니 링은 Chanel Fine Jewelry.
재희는 ‘눈치 보는 법이 없이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소개됩니다. 왠지 실제 김고은의 모습이 여타 작품보다 더 많이 묻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어요. 스스로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생각하나요
글쎄요. 타인에게 피해 주지 않을 정도의 눈치는 보는 것 같고, 지켜야 할 선 안에서 저만의 자유를 누리는 편이에요. 저는 자유분방한 재희의 면모를 일종의 자기방어라고 해석했어요. ‘나는 그런 것들로 상처받지 않아!’ 하며 자존심을 내세우는 것이 일종의 자기최면이자 그녀만의 방식인 것 같았어요.
사실 모두 그렇잖아요. 자유분방하게 살다가도 나이가 들고 어느 정도 사회생활이란 걸 경험하고, 옳다고 믿었던 생각이나 주관이나 치기 어린 면면까지 점점 세상과 타협하기 시작하잖아요. 재희에게도 그런 시기가 와요. 그 나이대에 맞는 성장통을 겪는 과정에서 자유분방하고 과감한 모습이 두드러졌을 뿐이죠.
누구든 그때 고민이 제일 많지 않나요? 30대에는 어느 정도 삶의 대처 방식이란 게 생긴다면, 20대는 답을 모르는 채 온전히 겪어내야 하는 나이니까 내 앞에 마구 닥쳐오는 것들과 속절없이 맞닥뜨려야 하죠. 내공을 쌓아가는 과정이기에 옳게 가고 있는 건지 아닌지 고민하고 일종의 불안함도 느끼는데, 저도 그랬던 것 같아요.
카디건은 Ernest W. Baker by 10 Cosco Como Seoul. 데님 팬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그러고 보니 극중 재희는 김고은이 스무 살이던 시기를 살고 있네요. 지금 30대가 된 당신이 보듬어주고 싶던 면도 있었나요
제가 대학교 1학년 때였던 2010년을 배경으로 하니까 더 반가웠어요. 재희가 겉으로는 좀 되바라져 보여도 굉장히 순수한 사랑을 꿈꾸고, 사랑받고 싶어 하고, 또 연인에게 자신이 늘 1순위이길 바라는 친구예요. 확인받고 싶어 하는 마음을 보듬어주고 싶었어요. 언젠가는 상대에게 자신이 우선순위인지 아닌지가 더는 중요해지지 않는 때도 오지만, 우리 모두 그 지점을 숙제처럼 풀고 싶어 했잖아요.
재희와 동고동락하는 흥수 역의 노상현과는 13년의 ‘찐친’ 케미스트리를 선보이죠. 그에게서 발견한 매력은
처음 봤을 때는 낯을 많이 가렸던 것 같아요. 겉으로는 강해 보이는데, 친해지고 나니까 아이처럼 웃는 모습과 갭 차이가 크더라고요. 그게 매력적이에요. 장난기도 많고. 크랭크인 전부터 이미 친해진 상태에서 촬영을 시작했는데, 자신을 괴롭히며 정말 치열하게 연기하더군요. 그러기 위해 서로 질문도 많이 했죠. 집 세트 촬영이 유독 많았는데, 상현 씨와 대화를 많이 하면서 촬영했어요. 그때 기억이 여전해요.
실제로 13년이 훌쩍 넘은 인연이 많겠죠. 그들은 어떤 사람입니까
늘 똑같아요. 자주 보는 시기가 있고 또 바쁘면 어쩌다 한 번씩 보게 되지만, 그럼에도 늘 어제 본 것 같은 사람들이에요. 오래된 사이니까 각자 싫어하는 걸 잘 아는데, 좋아하는 행동을 하기보다 서로 싫어하는 걸 잘 하지 않게 되는 것 같아요.
김고은이 입은 보디수트는 Acne Studios. 데님 팬츠는 Golden Goose. 스웨이드 재킷은 Arket. 메리 제인 슈즈는 Lemaire. 미니 링은 Chanel Fine Jewelry. 노상현이 입은 레더 재킷은 Lemaire. 이너 웨어로 입은 슬리브리스는 Saint Laurent. 데님 팬츠와 부츠는 모두 Celine.
기본적인 배려가 있는 사람. 그런 건 말하지 않아도 눈에 보이잖아요. 상대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 그런 사람에게 눈길이 가고 호감이 생겨요.
이언희 감독과의 호흡에서도 기대한 부분이 있나요? 전작 <탐정: 리턴즈>나 <미씽: 사라진 여자>처럼 추리와 서스펜스에 가까운 분위기를 잘 냈었으니까
로맨스영화 <…ing>도 있죠! 그래서 음악적인 부분이 기대돼요. 영화음악을 탁월하게 선택하신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역시나 저희 영화가 음악이 참 좋다고 합니다(웃음). 아주 짧은 시간 촬영했는데 감독님 덕분에 모두 자신의 최선을 꺼낼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도시’와 ‘사랑’이라는 키워드의 상관관계에 관해서도 생각해 본 적 있나요
영화에서 이태원이 중요한 지점으로 등장해요. 그만큼 20대 청춘의 유흥이나 볼거리, 술 마시는 장면도 자주 나오는데, 아무래도 시골에서는 이런 걸 하기 쉽지 않으니까(웃음). 도시는 사람을 만나기 쉬운 곳이죠.
김고은이 입은 슬리브리스 브이넥 니트 드레스는 Chanel. 폴라 티셔츠는 Lemaire. 18K 옐로골드로 이뤄진 코코 크러쉬 다이아몬드 미니 링은 Chanel Fine Jewelry. 노상현이 입은 셔츠와 팬츠는 모두 Lemaire.
근작 영화 <영웅>이나 <파묘>에서는 아무래도 카리스마 있고 직업적인 면면이 잘 드러나는 비주얼을 선보였다면, 이번에는 김고은의 내추럴한 면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의상이나 스타일에도 늘 그렇듯 신경 썼나요
재희의 옷차림이 일반적이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언밸런스’하면 좋을 것 같았죠. 예를 들어 연두색 상의를 입고 하의를 생뚱맞은 파란색 스트라이프 패턴으로 고른다든지. ‘저게 뭐야?’ ‘말도 안 되는 것 같은데!’라는 느낌이 드는 옷차림 말이에요. 타인의 시선에서는 노출이 과감해 보일지라도 노출 자체에 방점을 두기보다 재희의 당당한 태도가 보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같은 브이넥 티셔츠를 입어도 인사할 때 조심스럽게 가슴팍을 잡는 사람이 있고,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이 있잖아요. 막 입은 것 같아도 무심하게 입으니까 그게 잘 어울리는 사람처럼 느껴지도록 표현하고 싶었어요.
당신이 사랑을 연기하는 얼굴은 늘 사랑스럽습니다. <유미의 세포들>이나 <유열의 음악앨범>에서 보여준 설레는 로맨스뿐 아니라 <작은 아씨들>에서 동생과 화영을 생각하는 자매애에 가까운 사랑, <파묘>에서 봉길을 향한 동료애도 마찬가지죠. 스스로 그런 얼굴이 마음에 드나요
아무래도 사랑은 인간의 가장 큰 감정이겠죠. 제일 미세하고 다양하니까요. 어릴 때 그런 얘기를 한 적 있어요. 사랑이라는 단어가 하나밖에 없는 것이 아쉬워서, 실낱처럼 미세하게 펼쳐진 가닥 중 바로 앞의 것을 건드리는 것과 조금 더 옆의 것을 건드리는 감정이 모두 다른데 그걸 뭉뚱그려 ‘사랑’이라고 표현하는 게 너무 아쉽다고요. 사랑을 표현하는 제 얼굴이 마음에 드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 미세한 감정을 배우로서 잘 표현하고 싶어요.
그저 진심. 관계 앞에서 늘 후회 없이 임하려고 해요. ‘사이’란 언제든 끝날 수 있고 그것이 얼마나 오래됐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저는 후회하고 싶지 않아서 늘 최선을 다해요. 오해나 불필요한 부분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자존심도 부리지 않는 편이죠. 최선을 다해 노력해도 안 되면 뭐 안 되는 거고요(웃음).
블랙 폴라 티셔츠와 니트 베스트는 모두 The Row.
<대도시의 사랑법>은 꿈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해요. 김고은은 지금 꿈을 몇 가지 이뤘나요
늘 배우가 되는 게 가장 큰 꿈이었어요. 지금 이루었기에 꿈이 직업이 된 게 엄청 감사하죠. 그래서 또 다른 목표를 세우거나 다른 꿈을 꾸지 않아요. 지금처럼 꾸준히 배우 일을 하고 싶어요. 그게 꿈이라면 꿈이고, 또 하나는 그저 하루하루 별탈 없이 보내는 거죠.
20대 한국 청년들, 그러니까 ‘평범’함과 ‘특별함’ 사이에 자신을 놓아둔 채 방황하는 존재들에게 재희의 얼굴로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
어릴 때부터 생각했던 거지만, 누군가의 시선에 기준을 맞추면 불행해지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그 특별함의 기준을 내가, 나로 세우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내가 가진 특별함, 내 안에 있는 특별함을 스스로 아는 게 중요할 뿐. 사람에게 특별한 점만 있을 수 없고, 그렇다고 모두 평범하지도 않잖아요. 모두가 동의하는 특별함을 찾으려 하면 그건 곧 사라져요. 시대가 생각하는 특별함은 금방 바뀌니까. 내년이 되면 기준이 또 달라질 수 있는데 그에 맞추다 보면 자신이 갖고 있던 진정한 특별함이 사라질 거예요. 그러니 타인의 기준에 맞추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맞아요. 인생은 솔직하게 사랑하고 후회 없이 즐기기에도 부족하니까
저는 오늘만 살자는 주의입니다. 그렇다고 막 산다는 건 아니고요(웃음). 오늘을 잘 살면 내일도 살아지는 거니까, 힘든 일이 모두에게 있지만 지나가는 건 분명하니까, 일단 살자. 내일이 어떻고, 모레가 어떨 거고 이런 걸 미리 걱정해 봤자 내가 뭘 어떡할 거야(웃음)? 지금도 오늘 화보 잘 찍고, 다음 촬영도 잘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에요. 오늘만 생각해요, 저는.
「 노상현 "솔직함, 인생을 사는 데 가장 중요한 덕목이죠."
」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 시나리오가 너무 솔직하고 공감돼서 금방 빠져들었다고요
일상에서 실제로 말할 법한 대사가 많거든요. 흥수는 세상과 거리를 두고, 남에게 곁을 쉽게 내주지 않는 인물이에요. 그런 내성적인 성향은 가정사와 말하기 두려운 비밀, 살아가며 겪은 상황과 감정으로 만들어졌겠죠. 제게도 내성적인 면이 있고요. 그래서 공감되는 부분도 있었고, 재미있게 상상하면서 접근할 수 있었어요.
성소수자인 그를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사전조사가 필요했어요. 성소수자들을 만나서 그들이 느꼈을 감정과 커밍아웃하기 전후의 이야기를 들었어요. 이태원 클럽에 가서 현장 분위기를 느껴보기도 하고요. 시나리오에 쓰인 흥수의 생각과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보기 위한 과정이었죠.
흥수는 고양이 같은 기질인 반면 노상현은 어떤 사람인가요
저도 고양이 같은 면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강아지 같은 면도 있어요(웃음).
아이처럼 장난도 잘 쳐요. 장난꾸러기 기질이 있는 반면 조용한 ‘집돌이’이기도 해서 고양이와 강아지의 면모가 공존하죠.
저는 마음만 먹으면 세상과의 거리를 무시한 채 다른 ‘페르소나’를 장착하고 대화할 수 있어요. 물론 다른 페르소나라고 말하기에 애매해요. 그 페르소나도 내 면면 중 하나니까요. 스위치를 켰다 끄는 것처럼 단번에 다른 자아로 오갈 순 없지만, 노력하면 되는 편이라 흥수보다 원래 성향을 숨기고 드러내는 게 유동적인 것 같아요.
김고은이 입은 슬리브리스 브이넥 니트 드레스는 Chanel. 폴라 티셔츠는 Lemaire. 다이아몬드 미니 링은 Chanel Fine Jewelry. 부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노상현이 입은 셔츠와 팬츠, 부츠는 모두 Lemaire.
재희 역의 김고은과는 ‘찐친’ 연기를 선보인다죠. 그에게서 발견한 배우로서의 매력과 인간적인 매력은 무엇입니까
배우로서, 인간으로서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배우로서는 너무 많은 재능을 가졌지만 무한히 노력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 경험해 보고 그 말에 동감했어요. 본인만의 경험과 기술로 재희를 더욱 풍요롭게 표현했어요. 남을 챙기고 신경 쓰지만 때론 여린 면모도 있는 것 같은 고은 배우의 다채로운 매력을 느꼈습니다.
흥수는 곁에 든든하게 머물며 숱한 남성들로부터 재희를 지키기도 하는데요. 재희의 애인으로 허락해 줄 수 있는 남성의 조건을 떠올린다면
일단 천성이 착해야 하고요. 감정 기복이 심하지 않고 안정감을 가진 어른 같은 사람이 여기저기 통통 튀는 재희를 잘 이끌어주지 않을까 싶어요. 휘둘리는 사람은 그냥 끝나는 겁니다(웃음). 재희를 1순위로 생각하는 따뜻한 남자여야 해요.
찐친과 함께하는 파란만장한 청춘이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가족처럼 터놓을 수 있는 관계가 당신에게도 존재하나요
그렇죠. 많지는 않아요. 모든 걸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은 한 명 있는 것 같아요.
모든 걸 말하죠. 다 말하는 데도 큰 용기가 필요해요. 상대가 나를 부정적으로 볼 수도 있고, 내 감정이 상대에게 전염될 수도 있으니까요.
페이크 퍼 재킷과 팬츠는 모두 Ernest W. Baker by 10 Corso Como Seoul. 벨트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 작품을 찍으면서 자주 떠올렸어요. 2010년 배경이니까 스물한 살 때였거든요. 옛 생각을 하니 훨씬 공감됐죠. 제가 생각하는 청춘은 혼란스러운 시기예요.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형성되고, 2차 사춘기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때죠. 저도 그랬어요. 생각을 많이 했지만 또 생각 없이 놀기도 했으니.
모든 면에서 확실히 정리된 것 같아요. 보다 안정적이고 뭘 해야 되는지 아는 상태거든요. 어떻게 하면 나 자신을 위하고 지킬 수 있는지, 내가 나를 부술 수 있는지도 알죠. 도전하고 성장하려면 스스로 부수고 지켜야 하잖아요. 가만히 있으면 갇히니까. 넘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훨씬 많이 사라졌어요.
이 세상에는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 존재합니다. 흥수가 재희를 두고 한 사랑이란 어떤 것이었을까요
가족이자 친구 같은 사랑. 재희는 흥수에게 아주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이고, 둘만이 가지는 특별한 관계성이 존재하죠. 두 사람은 서로에게 굉장한 동질감을 느껴요. 나를 향한 연민을 상대에게 느끼면서 내가 불쌍한 만큼 상대를 불쌍히 여기거든요. 그래서 서로에게 힘이 돼주고 도움을 주죠. 결핍으로 이어지는 둘의 유대감은 그 어떤 관계보다 강하다고 생각해요.
사랑의 종류는 굉장히 많아서 정의하기 나름입니다. 사랑은 아주 사소한 감정부터 엄청 뜻깊은 감정까지 아우르니까요. 지금 당장 가슴에서부터 느껴지는 감정에 이해와 관용, 포용이 뒷받침되면 그건 사랑이죠.
김고은이 입은 보디수트는 Acne Studios. 노상현이 입은 레더 재킷은 Lemaire. 이너 웨어로 입은 슬리브리스는 Saint Laurent.
토론토영화제에 출격합니다. 영화제 경험은 당신에게 어떤 영감을 안겨줄까요
첫 장편영화 주연 작품이 영화제에 초청받았다는 사실이 영광스러워요. <파친코> 시즌2를 토론토에서 촬영해서 더 반갑고요. 오랜만에 가면 감회가 남다를 것 같아요.
지난 8월 <파친코> 시즌2가 돌아왔습니다. 어땠나요
백이삭은 한 회차에 등장하는데, 아주 슬프게 마무리됩니다. 이삭의 긴 여정이 끝나죠.
그렇죠. 지금도 약간 눈물이 나려고 하네요. 선자와 이별하는 신이었는데, 정말 <파친코> 식구 모두와 작별하는 느낌이었죠. 그래서 많이 슬펐고, 실제로 촬영하는 내내 계속 눈물이 흐르더라고요. 물론 그 장면이 아주 슬프기도 했지만요. 아무리 감정 신을 연기하는 중이라고 해도 계속 눈물을 흘리기가 어려운데. 새삼 이삭에게 진심이었다는 생각이 스쳤어요.
백이삭을 연기했을 때 ‘저스틴 전’ 감독님의 “솔직했다”는 말에 위로받았다고요. 이번 <대도시의 사랑법>에서는 어떤 위로의 말이 기억에 남나요
당시 엄마 역할을 하신 장혜진 선배가 “스펙트럼이 넓은 연기를 하고 있다”고 칭찬하셨어요. 평소 존경하던 분이 하신 말이라 인정받은 느낌이고, 용기와 위안을 얻었죠.
극적 상황을 배경으로 하는 <파친코> 시즌2처럼 우리 일상도 작고 사소한 전쟁 같은 일로 이뤄집니다. 그 안에서 노상현이 붙잡고 살아가는 희망의 끈은
지속적인 믿음. ‘잘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을 항상 붙들고 살지만,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이 의심되는 순간에 긍정하고 스스로를 믿으려는 마음이에요. 마음이 좋고 일이 잘 풀릴 때는 누구나 긍정하거든요. 하지만 어렵고 지쳐서 자존감이 떨어질 때 하는 것이 진짜 긍정이 아닐까요. 그 생각을 걸어두고 매일 할 일을 하다 보면 시간이 굉장히 빨리 흐르고 과거와 미래를 생각 안 하게 돼요. 그런 삶은 아주 큰 만족감을 안겨주죠.
김고은이 입은 보디수트는 Acne Studios. 데님 팬츠는 Golden Goose. 스웨이드 재킷은 Arket. 노상현이 입은 레더 재킷은 Lemaire. 이너 웨어로 입은 슬리브리스는 Saint Laurent. 데님 팬츠는 Celine.
당신은 인생을 얼마나 솔직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솔직함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남에게 거짓말할 수는 있어도 자신을 속이는 건 가장 경계해야 하죠. 경계하지 않으면 방심으로 이어지고, 방심하면 스스로 안주하게 돼요. 그래서 끊임없는 자기 검열이 필요해요. 자기 검열을 강박처럼 하니까 솔직하게 살고 있는 것 같네요(웃음).
사랑 안 해본 지가 너무 오래됐는데(웃음). 최대한 솔직하려고 해요. 솔직함 없는 대화는 겉돌기만 하겠죠. 저는 마음에 두고 있지 못해요. 그냥 넘길 수 있지만 넘겨버리면 언젠가 터져버릴 시한폭탄을 미뤄두는 느낌이어서. 현명한 관계를 위해선 서로에게 최대한 솔직하되 정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인생은 사랑 없이 살아가기 힘듭니다. 일과 연애, 이 모든 걸 영위하려면 사랑이 필요한데요. 사랑이 어렵고 서툰 청춘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넨다면
너만 그런 거 아니야. 걱정하지 마. 모두가 겪는 거고, 자연스러운 거야. 그게 인생이야. 마음이 다 으스러지고 찢어질 때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 사라진다. 흥수와 재희처럼 자신을 배우고 찾는 과정이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마음 가는 대로 해보고, 새롭게 도전하며 열심히 살아가길!
아, 너무 오그라들면 ‘파이팅!’ 같은 말로 담백하게 바꿔주세요. 내가 뭐라고 이런 말을 하는 게 웃기기도 하니까요(웃음).
우리 삶은 롤러코스터 같아요. 노상현은 지금 롤러코스터의 어떤 구간을 지나는 중인가요
내려오기 직전. 그때가 제일 재미있는 순간이니까. 그리고 더 재미있어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