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르보이스] 인스타그램에서도 정치 이야기를 하자
우리가 정치 이야기를 인스타그램에서 떠들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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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계엄이 불법 선포된 이후부터 윤석열이 탄핵될 때까지 거의 매주 광장에 나갔다. 총 13개 단체가 모인 ‘민주주의 구하는 페미-퀴어-네트워크’라는 연대체의 활동가로서였다. 동료들과 매주 회의하고, 홍보용 카드 뉴스를 만들고, 광장에서 외칠 구호를 다듬고, 그렇게 만들어진 피켓과 깃발을 들고 집회에 참여했다. 시간과 마음, 에너지를 들여 광장에 나가는 건 체력적으로 지치는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자랑스럽고 고무되는 일이기도 했다. 현장에서 찍은 사진과 영상을 자랑스럽게 인스타그램 스토리와 피드에 올렸다. 나 이렇게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고. 혹시 같이 구호를 외치고 행진하고 싶은 친구들이 있으면 함께하자고 말하고 싶었으니까. 나와 같이 성실하게 집회 출석 도장을 찍던 친구가 어느 날 말했다.“나 인스타그램에 광장 사진을 올리면 팔로어가 엄청나게 떨어져.” 그런 걸로 ‘언팔’을 한다고? 이런 시국인데? 친구가 보여준 인스타그램 통계는 명확했다. 정치 이야기는 그만하라고, 불편하다고 친구의 떠나간 팔로어들이 말하는 듯했다. 그때부터 내가 팔로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 시국 속의 일상을 어떻게 드러내는지 유심히 보게 됐다. 이상하게도 어떤 사람들의 스토리나 피드를 보면 세상은 잠잠한 것 같았다. 2024년 12월 3일 전이나 그 이후나 그들의 매일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SNS에 올리는 편집된 게시물이 그 일상의 전부일 거라고 단정해선 안 되는데도 ‘다른 건 다 올리면서 정치 이야기는 왜 전혀 없지?’라는 못난 의문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문득 하려다 멈춘 연구 주제가 떠올랐다. 대학원 3학기 차에 나는 ‘SNS에서의 자아 연출 노동’에 관해 연구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우리는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에서 ‘나’를 어떻게 드러낼 것인지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고민하며 게시물을 올린다. 사진과 글, 영상, 배경 음악까지 수많은 요소를 동원해 내 모습을 구성하고, 이는 곧 팔로어들과 나의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이 모든 과정은 소위 ‘인플루언서’가 아닌 이상 직접적 소득으로 이어지지는 않기에 노동이라고 잘 인식되지 않지만, 우리가 SNS에서 하는 모든 활동이 결국 거대 플랫폼에 이윤을 가져다준다는 점에서, 또 개인에게는 미래의 수익을 벌어다 줄지도 모르는 잠재적 가능성을 안고 있다는 점에서 노동이다. ‘SNS에서 우리가 수시로 행하는 노동에 관해 연구하려고 한다’는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올리자 많은 사람이 인터뷰에 자원했다. “우리가 여기서 노동을 하고 있다는 지적에 너무 공감하고요, 제가 인스타그램에 가지고 있는 모순적 감정과 입장을 잘 정리해 보고 싶어요”라고 한 인터뷰이가 말했다. 연구를 위해 만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각자의 SNS 속 ‘추구미’는 달랐지만 공통적 지향점이 하나 있었다. 피드에 정제되고 아름다운 사진만 올리든 아니든, 일에 관한 글을 자주 쓰든 아니든 ‘SNS에서 내가 인간임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었다. 그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복잡한 면을 인스타그램에서 보여주려고 한다는 의미였다. 커리어에 관한 이야기만 하면 인간미 없이 느껴질 수 있으니 사생활에 대한 게시물을 사이사이 올린다든지, 성취한 것만 보여주면 팔로어들이 싫어할 수 있으니 실수와 실패에 관한 것도 올린다든지 하는 식이었다. 생각해 보면 나도 마찬가지다. 나는 인스타그램에서 한 가지 키워드로 요약될 수 있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다. 그래서 일 이야기도, 친구들과 노는 이야기도, 그 외 사생활에 관한 이야기도 쓴다. 하지만 인스타그램에서 구현되는 ‘나’라는 인간의 복잡함 역시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들만 취사 선택해서 만든 것이다. 나는 브랜드처럼 보이고 싶지 않지만 팔로어들이 호감을 가지고 계속 팔로할 만한 매력적인 ‘인간’으로 보이기를 원한다. 이런 마음에는 팔로어 수로 대변되는 영향력과 존재감에 관한 욕망, 앞으로 올지도 모를 좋은 기회에 대한 바람, 더 많은 사람과 관계를 형성하고 싶은 욕구 같은 것들이 뒤섞여 있다.

그런 점에서 정치 이야기는 분명 SNS의 좋은 재료는 아니다. 정치는 한국사회에서 되도록 대화를 피해야 할 주제로 여겨져 왔다. 한 마디로 정치적 입장을 밝히지 않거나 정치적 이슈를 모른 척하는 건 어떤 이들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또한 SNS는 오프라인의 생활 세계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친구, 회사 동료와 상사, 클라이언트, 간혹 가족과 친지들까지…. 오프라인 관계들은 SNS에서도 이어지고, 그렇게 정치는 온라인에서조차 다루기 민감한 주제가 돼버린다. 나와 친구처럼 정치적 입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사람들은 누군가에겐 껄끄럽고 불편한 존재로 여겨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가끔 덜컥 겁이 난다. 이러다 ‘평판’이 떨어져 일이 모두 끊기면 어떻게 하지? 그렇지만 우리의 민주주의는 지금보다 훨씬 더 나아져야 한다고, 앞으로 민주주의는 페미니즘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말하기를 멈추고 싶진 않다. 내 모든 일상에는 여러 범위의 정치가 관여돼 있고, 나라는 인간의 복잡성은 정치 활동을 빼고 구성될 수 없다. 인스타그램을 당장 그만둘 수 없다면, 내가 취사 선택한 모습으로 타인과 관계 맺을 수 있다면 기꺼이, 지금보다 훨씬 더 정치적 존재가 되고 싶다. 그래서 인스타그램으로 연결된 친구와 동료에게 더 크게 말하고 싶다. 여기서도 정치 이야기를 하자고. 정치적 이슈에 목소리를 내고, 입장을 드러내고, 서로 갈등하고, 논의하고, 연대해 보자고, 그러지 않으면 앞으로 우리의 민주주의는 점점 더 나빠질 거라고. 우리는 여기서 좀 다른 의미의 ‘인간적’임을 고민하고 실천할 필요가 있다고 말이다.
황효진
세심하고 다정한 시각으로 콘텐츠를 만들고, 때때로 실패하며 배우는 기획자이자 작가. 건강하게 일하는 법을 고민하는 여성 커뮤니티 ‘뉴그라운드’를 운영 중이다.
Credit
- 에디터 이마루•전혜진
- 작가 황효진
- 아트 디자이너 김민정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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