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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준열과 마주한 류준열의 밤, 류준열다운 인터뷰

밤과 낮의 류준열. 답답하지만 날것으로 번뜩이는 사람. 데뷔 10주년을 맞은 류준열의 다채로운 독백.

프로필 by 전혜진 2025.04.27

밤에 마주하니 더 궁금해요. 류준열의 밤은 어떤지

어제는 거의 새벽까지 깨어 있었어요. 흔한 일은 아니고요. 혼자 이 생각 저 생각 하다 보면 잘 시간이 되죠. 말하기 좀 이상한데, 일기도 잠깐씩 써요. 혼자만의 시간이니까, 꽤 감성적으로 변하는데 그걸 제 입으로 말하긴 쑥스러워서 ‘좀 이상하다’고 해버렸네요(웃음). 지금도 밤이니까 주저리주저리 하죠?


무슨 생각이길래. 곧 신작 촬영에 들어간다면서요

다음주부터 시작이에요. 그래서 생각도 많고, 조금 예민한 상태인 것 같기도 해요. 물론 지금은 즐겁습니다. 화보는 새로운 모습을 꺼내 보여주는 일이고, 저 또한 그런 제 모습이 궁금하고 보고 싶거든요. 해보지 않은 것을 이리저리 표현하는 재미가 있으니까. 근데 작품 촬영은 좀 달라요.


그레이 스트라이프 재킷은 Mugler by 10 Corso Como Seoul.

그레이 스트라이프 재킷은 Mugler by 10 Corso Como Seoul.

아무래도 본업이니 책임감이 더 크겠죠

아잇, 저 오늘도 책임감 커요(웃음). 확실히 저는 촬영 들어가기 전에 잔뜩 긴장하고 걱정하다 막상 시작하면 그런 게 사라지는 편이에요. 배우마다 다르겠지만, 하필 지금이 그런 시기네요.


그만큼 괴롭다니. 어떤 작품이길래요

아직 공식 기사가 나지 않아서 밝힐 수는 없는데, 할 얘기가 많아요. 하루하루 준비에 쏟아붓고 있거든요. 어쩌면 가장 에너지를 많이 쓰는 도전일 것 같기도 합니다.


이렇게 말해서 미안하지만, 엄청 재밌을 것 같아요. 배우가 고민하는 만큼 기대는 증폭되니까(웃음)

재밌으시죠? 힘들어요(웃음). 사실 맞아요. 배우가 괴로운 만큼 작품은 재밌을 수 있어요. 적어도 제 경우에는 그랬거든요. 힘든 만큼 새로운 것이 나올 확률이 높은 반면 타성에 젖을수록 쉽게 해버리는 경우가 많으니까.


베이지 체크 스팽글 재킷은 Egonlab by 10 Corso Como Seoul. 데님 팬츠는 Bottega Veneta. 블랙 부츠는 Alexander McQueen.

베이지 체크 스팽글 재킷은 Egonlab by 10 Corso Como Seoul. 데님 팬츠는 Bottega Veneta. 블랙 부츠는 Alexander McQueen.

그렇다면 후련히 끝마친 영화 <계시록> 이야기를 해볼까요? 목사 민찬을 연기하며 류준열이 확실히 ‘더 가본’ 것 같았어요

인물의 감정만으로 나아가기보단 장르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좀 해보려 했어요. 생각한 것 이상으로 표현하면서요. 아귀가 잘 맞아떨어져 좋은 평도 듣게 돼 감사할 따름입니다.


연상호 감독이 “류준열은 질문이 많은데 쓸데없는 게 없어서 좋다”고 했더군요. 귀에 피가 날 지경이었다는데

하하. 계속 질문을 던지는 게 배우의 일 같아요. 궁금함 없이 촬영에 들어간다는 건 어릴 때 공부 다 했다고 말하는 것과 같을 걸요. 공부 다 했다고 하면 혼났거든요. “다 한 게 어디 있냐? 계속해야지!” 그만큼 질문할 시간이 많았나 봐요.


평소에도 질문이 많나요

네, 저는 설득하고 설득당하는 과정과 시간 자체를 즐겨요. 납득되지 않으면 될 때까지 붙잡고 얘기하기도 하는데. 어쨌든 설득의 시작은 질문이에요.


카디건은 Via Plave33 by 10 Corso Como Seoul.

카디건은 Via Plave33 by 10 Corso Como Seoul.

이 작품으로 ‘믿음’에 대해서도 꽤 깊이 생각했겠습니다. 살면서 어떤 믿음이 자신만의 것이었단 걸 깨달은 순간도 있나요

많았죠. 시간이 지날수록 그 깨달음이 크게 다가와서 어디 쥐구멍에 숨고 싶을 때도 있었어요. 내 확신이 오답이라는 걸 알았을 때, 정말 나를 모른 척하고 싶을 만큼.


그럼에도 인간은 다시 새로운 걸 믿잖아요

그렇죠. 믿음이 가짜임을 알게 됐다는 건 결국 또 다른 걸 믿는다는 거니까. 또다시 믿고, 아니라고 확신하고. 그래서 제 마음까지는 절대적으로 믿지 않으려 합니다. 물론 믿을 때가 편해요. 앞만 보고 가면 되니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걸어오는 브레이크가 만만치 않아요. 하지만 알아버렸으니 모른 척할 순 없는 거죠.


밤에 이런 생각을 하는군요

네, 맞습니다(웃음).


데님 베스트 재킷과 팬츠는 모두 Courrèges by 10 Corso Como Seoul. 링은 Maison Margiela. 부츠는 Bottega Veneta.

데님 베스트 재킷과 팬츠는 모두 Courrèges by 10 Corso Como Seoul. 링은 Maison Margiela. 부츠는 Bottega Veneta.

살면서 ‘계시’를 받았다고 느낀 순간이 있나요

늘 받죠. 특히 배우 일에 관해서요. 제게 이만큼 여러 감정을 일깨우는 일이 없는 것 같거든요. 노력한 결과물이 세상에 나오고, 사회적이면서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운 지점이 생기고. 그러니 갈수록 애정이 커져요.


당신이 연기하면 어떤 캐릭터든 현실적인 면을 갖게 되죠. 그런 장점이 가장 두드러진 건 <리틀 포레스트>의 재하라고 생각하는데, 이후 잔잔하거나 소위 ‘힐링’되는 장르에서 자주 못봤어요. 장르성을 이리저리 탐험하는 중인가요

그렇지는 않아요. 그저 여전히 땅에 발 붙은 이야기들이 좋아요. 장르물을 하더라도 인간의 보편적 감정이나 공감대를 찾아내려 하고요. <계시록>도 믿음에 대한 보편적 이야기지만, 사건 자체는 드라마틱하잖아요.


맞아요. 남우주연상 3관왕을 안겨준 <올빼미>의 맹인 침술사 경수만 봐도 그래요

현실감을 추구하는 것이 좋다 나쁘다고 얘기할 수는 없지만, 아무래도 저는 그런 타입의 배우인 것 같아요.


재킷은 Amiri. 데님 팬츠는 Maison Margiela by Tomgreyhound. 스카프는 Adecuver.

재킷은 Amiri. 데님 팬츠는 Maison Margiela by Tomgreyhound. 스카프는 Adecuver.

영화 ‘덕질’도 제대로 하잖아요. 요즘 즐기는 장르가 있다면

소위 ‘예술영화’라고 불리는 것들을 많이 봐왔는데, 요즘은 그런 작품을 ‘마이너’라고 표현하기 모호할 정도로 인기가 많잖아요. 너무 반갑죠. 배우에게도 다양성의 기회가 주어지는 거니까요.


최근 <퍼펙트 데이즈> 촬영지이자 주인공이 청소부로 일한 도쿄 시부야의 공중화장실에도 다녀왔던데요

하하. 여행 가면 원래 본인이 관심 있는 곳만 가지 않나요? 제 친구는 커피숍을 하루에 세 곳씩 가요. 요즘에는 특정 장소보다 창작자들이 창작할 때 영향을 받은 ‘자리’와 ‘풍경’이 있는 곳에 가 보고 싶어요.


얼마 전 <소셜포비아>가 개봉 10주년을 기념해 재상영했습니다. 인스타그램 프로필도 양게의 얼굴이더군요

자축해 봤습니다. 스틸 자체가 참 재밌고, 애정도 추억도 많거든요. 행사 때 스태프는 물론 팬들과 다시 모였는데 깜짝 놀랐어요. 관객석에 오랜 팬들이 앉아 있는 광경을 보는 순간, 꼭 10년 전으로 타임루프하는 것 같았거든요. 필터가 한 겹 쓰인 것처럼, 매일 보던 얼굴도 처음 본 것처럼. 잔상이 깊게 남아요. 저 혼자 영화 찍는 줄 알았잖아요(웃음).


블랙 스웨이드 재킷과 팬츠는 모두 Ferragamo. 부츠는 Alexander McQueen.

블랙 스웨이드 재킷과 팬츠는 모두 Ferragamo. 부츠는 Alexander McQueen.

BJ 양게뿐 아니라 옆집 남사친, 귀향한 청년, 야망 품은 회사원, 어설픈 도사, 맹인 침술사, 광기 어린 목사까지… 참 많은 인물을 거쳐왔는데, 실제로 만나 대화하고 싶은 사람도 있나요

음, 특정 캐릭터보다 양게를 연기하던 류준열을 만나고 싶습니다. 할 얘기가 많아요.


어떤 얘긴가요

비밀이에요(웃음). 힌트는 수많은 조언과 강력한 꿀밤.


그때는 참 많이 들었을 질문이지만 다시 물을게요. 지금 류준열의 꿈은 뭔가요

그저 바람이라면 10년간 연기를 잘해왔으니 앞으로 10년은 쉬지 않고 작품을 하는 거예요. 걷기를 멈추지 않는 거죠.


스팽글 셔츠는 Amiri.

스팽글 셔츠는 Amiri.

오래 당신을 지지해 준 팬들에게 궁금한 것도 있을까요

만나서 인터뷰하고 싶어요. 아주 단출하게 모여 서로 궁금한 걸 허심탄회하게 묻고 대답하는 거예요. 안녕하신지, 왜 나를 좋아하시는지, 왜 나의 팬이신지, 10년을 좋아했음에도 여전히 나를 지지해 주시는지.


그간 배우로서 발견한 기쁨과 슬픔은

매번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점이죠. 성격도 계속 바뀌기 때문에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게 돼요. 한 번도 똑같은 마음으로 작품 해본 적 없습니다. 물론 괴로움도 있어야 하죠. 자기에게 편한 것만 찾지 않고, 적당히 괴로워야 실마리를 풀었을 때 더 큰 즐거움이 오잖아요. 어떨 때는 얼마든지 괴로우라고 스스로를 내버려두기도 해요.


블랙 스웨이드 재킷은 Ferragamo.

블랙 스웨이드 재킷은 Ferragamo.

그 사이를 유연히 오갈 수 있는 능력이 생겼군요

가끔 제게 묻습니다.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좋았겠다 싶은 게 있냐고요. 10년 후 알게 될 것이 있다면 더 빨리 알고 싶고요. 하지만 일찍 안다고 해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면 소용없죠. 스스로 겪지 않으면 그저 말일 뿐이니까. 요즘도 물어요. “너 10년 동안 일하면서 갖게 된 생각이나 마음이 10년 후에도 그대로이면 안 돼. 그러니 이제 어떻게 할래?” 하지만 하루하루가 너무 빨리 흘러가 버리니 계속 생각하긴 참 어려워요.


그러니 ‘류준열답다’는 표현은 분명 존재합니다. 삼십 대의 끝자락, 이 말을 어떻게 정의하고 싶나요

제가 다른 건 몰라도 인내심은 좀 있어요. 잘 견디고, 잘 기다리는 거죠.

Credit

  • 에디터 전혜진
  • 사진가 김희준
  • 스타일리스트 이혜영
  • 헤어 스타일리스트 이일중
  • 메이크업 아티스트 안성희
  • 아트 디자이너 이아람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