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ETY

지금 우리 우정은

이토록 급변하는 세상에서 사랑하는 친구들을 제대로 지킬 수 있을까?

프로필 by 전혜진 2024.12.29
분열의 시대, 우리는 어느 때보다 친구가 필요하지만 현재로서는 보수와 진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미혼과 기혼 간의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는 듯하다. 어떤 면에서 이는 삶의 당연한 변화이자 성장의 일부다. 30대 혹은 그 이상이 되면 누군가는 아이를 갖는 한편, 누군가는 여전히 아이 같다. 어떤 사람은 두 번째 데이트도 못 하는 마당에 어떤 사람은 재혼을 한다. 어떤 사람은 AI 코치와 해외 골프 여행을 떠나고, 어떤 사람은 넷플릭스로 <챌린저스>를 반복감상한다. 다시 말해 삶은 변화하며, 진화한다. 그러니 아직도 친구들과 무리 지어 옷을 바꿔 입고 비밀을 공유하며 지내는 것만 ‘우정’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2025년에도 관계를 지속하고 싶다면 현시대 새로운 우정의 규칙을 따르도록 하자. 아래 네 가지 측면에서 당면한 과제를 두루 살펴보면서.

가장 쉽게 접하는 문제, 바로 경제적 차이에 의한 우정의 균열이다. 흔한 에피소드를 예로 들어보자. A는 자신의 친구 B와 여행을 떠나고 싶다. 마음은 서로 같지만, 주머니 사정이 다른 것이 문제. A는 휴양지에 가는 김에 고요한 휴식을 위한 풀빌라가 필요하고, B는 최고의 가성비 호텔을 찾아 헤맨다. 취향의 문제라 여기며 애써 균형을 맞춰보지만, 과연 이들은 다음 여행 때 서로를 최우선의 파트너로 떠올릴까? C의 술자리 개념은 생맥주 한잔에 감자튀김을 주문하는 것이다. D는 뷰 좋은 곳에서 샴페인과 트러플 뇨키를 주문한 뒤, SNS로 우정을 완벽하게 인증하고 싶다. C는 오랜만에 친구와 보내는 시간까지 계산기를 돌리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다. 예산을 정해두지 않으면 D의 주문은 끝없을 테니까! 2023년 미국의 한 핀테크 기업이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MZ세대 3분의 1 이상은 과소비하게 만드는 친구로 인해 빚을 지거나, 통장 잔고를 지키기 위해 우정을 끝낸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국내 상황도 다르지 않다. 사회 초년생 때야 연애 문제나 상사에 관한 푸념으로 삶이 비슷하다고 느끼지만, 각자 경제활동 경로와 재산 관리 노력 차에 의해 점점 격차는 벌어지게 마련. 물론 서로를 생각한답시고 누군가는 계산서를 몰래 집어 들고, 티켓값을 공짜인 척 대신 지불하겠지만, 배려는 부담이 되고 부담은 결국 ‘회피’로 이어지니 그 틈으로 소외와 긴장이라는 불필요한 감정이 끼어든다. 이 경우 해법은 단순하다. 솔직하게 털어놓기 그리고 타협의 ‘마법’을 잊지 않기. 뾰족한 수 같지 않다고? 속속들이 사정을 친구에게 털어놓고 싶지 않다면 돈을 탓하기보다 우정의 밀도를 탓해 보도록. 일단 털어놓으면 생각보다 함께할 수 있는 것이 많이 보일 것이다. 그럼에도 격차가 좁혀지지 않는다면 안타깝지만 낡은 관계 하나쯤 정리할 기회로 받아들여야겠다.

이제 ‘역할’ 배분 문제를 마주할 차례! 작가로 활동하는 M의 일화를 살펴보자. 그는 싱글일 때 친구들 없이 밤을 보내는 법이 없었다. 그러다 2022년 딸의 육아를 시작한 뒤 그의 시간 개념이나 우선순위, 사회생활은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바뀌었다. 아이가 생기면 다른 엄마들과 어울리는 멋진 ‘맘’이 될 거라 예상했고, 그렇다고 원래 ‘찐친’들을 등한시하는 일도 없을 거라 확신했는데. 하지만 친구들을 만나는 횟수는 점점 줄어들었다. 생일 파티도 웬만하면 불참. 육아로 늘 피곤한 상태였기에 평일 저녁 식사는 대부분 거절. 주말에 베이비시터를 구하더라도 다음 날 피곤하면 육아에 차질이 생기니 나가 노는 일도 드물어졌다. 어쩌다 친구들을 만나도 그들이 여행이나 낯선 사람과의 뜨거운 관계에 관해 이야기하는 반면, 자신은 배변 훈련이나 <사랑의 하츄핑>에 관해서만 늘어놓는다. 친구들도 그가 부모란 사실을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상태. 아이를 매우 사랑함에도 M은 소외감을 느꼈다. 훗날 그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제대로 직면하고 솔직했어야 했다고 털어놨다. 친구들을 멀리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 동시에 육아에 관해서도 친구들에게 불평할 자격이 없다고 판단한 것. 바보 같은 악순환이 아닌가. 다행히 친구들은 그를 포기하지 않았다. M은 그간 친구들에게 소홀했던 감정을 고백하고, 친구들은 그가 겪는 변화를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한 것을 사과했다. 삶에 불시에 찾아드는 변화가 처음에는 어색하더라도 진짜 친구라면 시간이 흘러 결국 상대방의 관점에서 보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M도 다시 친구들과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고, 영화를 본다. 부모 역할이 그의 전부가 아니다. ‘엄마’와 ‘친구’라는 이름을 이분법적으로 나눌 필요가 없다. 친구들은 분명 더 풍성하고 나은 삶을 살게 해주고, 이를 통해 더 좋은 부모가 되는 데 도움을 줄 테니까.

또 하나 중요한 ‘거리감’의 문제를 살펴볼까? 장거리 연애는 까다롭기로 악명 높지만, 최소한의 규칙은 확실하다. 매일 안부 확인하기, 주기적으로 만나기, 함께 살 미래를 상상하기. 그런데 장거리 우정에 관해서는 행동 규칙이 없는 것 같다. 원격 근무와 디지털 노마드가 지배하는 시대에 지구 반대편에 사는 친구를 사귀는 건 특별한 일이 아닌데 말이다. 우리는 분명 경제적 수준과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여러 시간대와 장소에 흩어져 있는 우정 또한 반드시 지켜내고 싶을 텐데, 이때 기억해야 할 것은 굳이 비행기를 타고 친구의 집 앞으로 날아간다고 우정이 유지되는 건 아니라는 것! 초연결 시대의 도구를 적극 활용하자. 예컨대 어느 날 거의 10년 전 연락이 끊긴 친구의 지구 반대편 집에서 맞이한 황금빛 아침을 떠올리며 기상했다면 즉시 친구에게 음성 메시지를 보내 추억을 상기시키자. 몇 시간 뒤 감동받은 친구가 다시 음성 메시지를 보내면 그 관계는 찬란하게 되살아날 테니까. 깜짝 전화를 걸거나, 둘만 알아볼 수 있는 사진을 뜬금없이 보내도 좋다. 별다른 설명 없어도 사진을 보는 즉시 한바탕 웃을 테니. 물론 카톡과 DM이 실제 삶을 대체할 순 없다. 중요한 건 두 사람이 서로 사용하는 ‘우정의 언어’를 정확히 파악하고, 주기적으로 애정을 확인하는 것이다. 옆 동네에 살든 지구 반대편에 살든 만나면 시간이 쏜살같이 흐르고 감정적 거리감이 곧장 사라지는 것, 진짜 우정은 그런 것이다.

시급하게 해결이 필요한 건 이념 차이다. 성별 임금 격차부터 환경 문제까지…. 이 모든 논쟁을 벌인 끝에 친구와 논란이 될 만한 주제에 접근하는 최선의 방법은 ‘공감’과 ‘겸손’임을 깨닫는다. 지난해는 팔레스타인 분쟁부터 트럼프의 당선, 동덕여대 시위부터 계엄령까지 다사다난한 이슈들이 가득했다. 술자리에서 다툼이 잦아지진 않았는가? 이때는 친구가 무엇을 말하든 의견 자체보다 그 뒤편 사정을 바라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갈등 해결의 실마리다. 이 과정을 통해 친구의 ‘불쾌한’ 의견을 이해할 이유를 찾게 될 수도 있고, 그저 무작정 고개를 끄덕이는 것보다 더 진실한 ‘공감’이 된다. ‘겸손’은 친구들이 어떤 결론을 내렸든, 그 추론이 당신의 추론과 마찬가지로 타당할 수 있다는 걸 인정하는 일이다. 하나의 뉴스 매체만 접하던 시절은 지나갔다. 맞춤형 피드 덕분에 우리가 보는 뉴스는 매우 특정적이며, 철저히 개인화돼 있다. SNS에서 당신이 목격한 ‘사실’이 친구들의 ‘사실’과 상반되는 일은 흔하다. 그러니 “네 말은 헛소리야”라고 정의하는 대신, 두 사람 다 헛소리를 하고 있을 수 있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함께 ‘사실’을 찾아보라. 그 여정은 꽤 재미있고 유익할 것이다. 한계 설정도 분명 필요하다. 아무리 친한 친구의 의견일지라도 그것이 당신의 영혼을 망가뜨린다고 느껴진다면 스스로 자문해 보라. ‘이 친구의 신념을 알면서도 내 인생에 둘 수 있을까?’ 우정은 소중하지만, 당신의 원칙도 중요하니까.

덧붙여 적어도 2025년에는 모든 친구를 같은 ‘우정’의 카테고리에 넣을 필요가 없다. <엘르> UK가 소개한, 더 나은 관계를 위해 재편된 열 가지 우정의 새 이름을 보자. 첫 번째는 ‘현실 친구(The IRL Mutual)’다. 2년에 한 번 보든, 친구의 친구든 마주치면 늘 이야기가 통하는 기분 좋은 사이. 두 번째는 ‘인친, 트친(The URL Mutual)’이다. 실제로 만난 적은 없지만 음악 취향과 패션, 웃음 코드까지 서로를 기막히게 이해하고 취향을 무한 지지한다! ‘밤의 방랑자(The Goof)’도 있다. 밤마다 밖으로 불러내는 친구인데, 생각해 보면 낮에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다. ‘역사 공유기(The Shared Historian)’와의 시간은 언제나 즐겁다. 과거 에피소드를 100번쯤 반복해도 100번 다 웃기다. 요즘은 ‘오피스 와이프(The Work Wife)’가 강세. 사무실에 마음이 잘 맞는 동료만 있으면 평일도 주말 같다. 커피 마시러 가는 것부터 잡담까지, 그들이 없을 때의 쓸쓸함은 상상조차 어렵다. ‘밈의 여왕(Meme Queens)’은 완벽한 친구! 의미 있는 안부 문자는 필요 없다. 이들은 매일 장난스러운 밈으로 메시지 함을 가득 채워주니까. ‘탐정(The Detective)’은 필수. 이들은 당신에게 ‘썸남’이 생기면 이미 상대의 9년 치 인스타그램 게시물에 대한 조사를 끝마친다. ‘위기 관리자(Crisis Management)’를 찾는 순간도 많아질 것이다. 이들은 함께 웃기만 하려고 당신 곁에 있는 게 아니다. 나쁜 일이 벌어졌거나 뼈아픈 조언이 필요할 때 빛을 발한다. ‘언어의 마술사(The Composer)’는 업무 메일부터 절친과 다툼, ‘썸녀’로부터 온 의뭉스러운 메시지까지 까다로운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언어의 마술사인 셈. 마지막으로 ‘비행기 조종사(Hype It up)’를 놓치지 말자. 사람들 앞에서 늘 비행기 태워주는 당신만의 홍보 담당자인 친구는 셀피 한 장에도 무한 이모지를 붙여줄 것이다.

Credit

  • 에디터 전혜진
  • 일러스트레이터 서소연
  • 글 ALEXANDRA JONES / MADELEINE GRAY / PHOEBE LOVATT
  • 아트 디자이너 구판서
  • 디지털 디자이너 김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