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6일까지 호암미술관에서 개최되는 전시는 지난 5월 6일 12점의 작품을 새롭게 교체했다. 그중 하나인 ‘구마노관심십계만다라’. 우측 하단에 ‘월경혈’과 ‘출산혈’의 지옥에 빠진 여성들의 모습이 묘사돼 있다.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Unsullied, Like a Lotus in Mud>이라는 전시명은 불교의 가장 오래된 경전으로 꼽히는 <숫타니파타>에서 따왔다. 여성은 성불할 수 없는 미완의 존재로 취급됐던 때, 그 진흙 같은 시기에도 신앙을 잃지 않고 피어난 여성을 연꽃에 비유한 것이다. 2023년 대대적인 레너베이션을 거친 호암미술관은 재개관 기념 전시로 불교와 여성을 한가운데에 뒀다. 동아시아는 물론 유럽과 미국에 흩어져 있던 소장품까지 찾아내 불교미술 걸작품 90여 점을 세계 최초로 한자리에 모은 이 전시는 규모와 기획, 배치까지 신경 쓰지 않은 게 없다. 작품과 유리 사이의 간격이 15cm밖에 되지 않게 제작한 쇼케이스가 좋은 예다. 덕분에 관객은 습도와 빛에 예민한 고미술을 최대한 가까이서 볼 수 있게 됐다. 소형 불상과 백자 조각상도 일관성 있게 매력을 드러낼 수 있도록 높이가 비슷한 대리석 기둥 위에 하나하나 개별 쇼케이스를 짜는 공을 들였다.
비단에 채색한 가마쿠라 시대의 ‘석가여래오존십나찰녀도’. 부처의 설법을 접한 후 신으로 거듭난 나찰녀는 인기 있는 소재였다.
특유의 미소가 돋보이는 7세기 중반의 백제 금동 관음보살 입상. 해방 후 오랫동안 자취를 감추었던 작품은 이번 전시를 통해 국내 최초로 일반에 공개된다.
충남 청양군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에서 발견된 고려시대의 비단 번. 국보로 지정됐다.
삼국시대부터 한국의 문화유산으로 자리 잡은 불교와 불교미술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괘불전은 올해로 19번째를 맞이했고, 불교박물관과 미술관, 무엇보다 전국의 사찰들이 있다. 정확히 그 지점에서 이번 전시의 지향점은 독보성을 띤다. 이번 전시가
“불교를 믿고 불교미술을 후원한 대다수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자리를 돌아보는 전시는 없었다는 깨달음에서 시작됐다”고 털어놓은 기획자 이승혜 책임연구원의 말처럼 불교미술을 여성의 시선에서 조망한 전시는 없었다. 이는 불교미술을 공부한 연구자이자 큐레이터, 워킹 맘으로서 자연스럽게 내재된 물음이기도 했다.
“여성들의 이야기는 여성이 발벗고 나서기 전에는 듣기 어려울 수 있다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이번 전시가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여성들을 신앙과 창작의 주체로 호명하고, 그녀들을 통해 불교미술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런 진심에 감응하듯 상반기 내내 전시 개최에 힘이 되는 바람이 불었다. 영화 <파묘>의 흥행은 토속신앙과 영적 문화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뉴진스님(윤성호)의 ‘극락왕생’이 울려 퍼졌으며, 2024년 서울국제불교박람회는 전년 대비 3배 넘는 현장 방문자를 기록하며 성공을 거뒀다. 이 성공은 AI 부처님의 고민 상담과 ‘중생아 사랑해!’가 새겨진 굿즈, 비건 푸드인 사찰 음식에 이끌린 2030 세대가 견인한 것으로 드러나 더욱 고무적이다.
망자를 극락정토로 데려가기 위해 맞이하러 오는 아미타여래삼존을 자수로 표현한 13~14세기 일본 작품. 성별이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화려하게 묘사된 여래와 보살 그리고 하단의 젊은 여성과 노비구니가 눈에 띈다
3월 27일에 시작을 알린 전시 또한 탄탄한 내러티브를 구축했다. 관람자들의 피드백이 관람과 큐레이터 토크를 통해 쌓였고, 지난 4월 18일에는 한 일 석학 네 명이 자리한 포럼 ‘불화 속 여성, 불화 너머 여성’이 개최되기도 했다. 3회에 걸쳐 진행된 고려와 조선시대 불교 조각 및 불교사 전문가의 강연 시리즈와 함께 어느덧 중반에 접어든 전시에 5월 6일, 신규 유물 12점을 교체하면서 전시장을 한 번 더 찾아야 할 이유를 만들었다.
인목황후의 발원으로 제작됐던 조선의 금동 불상군들. 높이 12cm의 작은 불상 20점이 한데 전시됐다. 전시를 찾은 RM이 사진을 촬영해 올리기도.
새롭게 모습을 드러낸 작품 중에서 이승혜 연구원이 각별하게 여기는 작품은 1378년에 인쇄된 고려시대 경전 <불설대보부모은중경>과 국내에서 처음 공개되는 일본 불화 ‘구마노관심십계만다라’다.
“<불설대보부모은중경>은 부모의 은혜를 칭송하는 한편 불효한 자식은 지옥에 떨어진다고 가르칩니다. 본문에는 잉태와 출산, 수유와 양육 등 자식을 염려하고 사랑하는 어머니의 열 가지 은혜를 판화로 묘사했죠.” 임신 중 몸가짐을 조심하고, 아이에게 젖을 먹이며, 장성한 자식을 염려하는 판화 속 어머니의 모습에서 이승혜 연구원은 시대를 뛰어넘는 모성을 느꼈다고 했다. 반면 에도시대 작품인 ‘구마노관심십계만다라’는 일본 비구니들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포교할 때 사용했던 그림이다.
“바람피운 남성이 부인과 바람 상대인 두 여성에게 휘감겨 죽는 묘사는 ‘양부지옥’을 나타냅니다. 중국 경전 <혈분경>에 의하면 여성들이 월경혈과 출산혈로 땅을 더럽힌 죄로 피로 가득한 연못에 떨어져 괴로워하는 ‘혈분지지옥’이 있다고 해요. 그 옆에는 공덕으로 구제돼 연꽃 위에 앉은 여성의 모습도 함께 그려져 있어요. 모성을 칭송하는 경전이 있는 한편, 정작 어머니가 될 가능성을 품은 여성의 몸을 터부시하는 경전도 있다는 게 흥미롭죠.” 과연 두 작품이 교차하며 이루는 대비는 흥미로웠으나 의문도 남겼다. 원대하고 긴 불교미술사에서 여성의 초상이 등장한 것 자체에 감탄해야 한다면 다소 빈약한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었다. 전반부 전시에서 전시장 초입을 장식한 ‘석가탄생도’와 ‘석가출가도’도 마찬가지다. 4월에 개최된 포럼에서 일본의 석학 이데 세이노스케 교수는 일본과 독일에서 빌려온 귀한 작품이 조선시대 한글로 된 불교 문헌 <석보상절>에 의해 조성됐다는 견해를 제시한 바 있다. <석보상절> 자체가 세종대왕이 왕비인 소헌왕후의 죽음을 애도하며 편찬하도록 한 일대기인 만큼 왕실 남성의 시선이 반영됐을 것으로 추론되는 두 작품에서 여성은 석가모니의 어머니 마야 부인(‘석가탄생도’)과 붓다의 출가 후 비탄에 빠진 태자비(‘석가출가도’)로 모습을 드러낼 뿐이다. 또 다른 전시작으로 원나라 때 작품인 ‘이모육볼도’는 불교 최초의 여성 출가자로 꼽히는 인물인 대애도를 묘사했으나 작품 속의 대애도는 ‘비구니’라기보다 마야 부인의 여동생이자 석가모니의 양모로서 모성이 강조된 모습이다. 그러나 이승혜 연구원은 그 안에서 한 겹 더 의미를 찾는다.
“여성에게 주어진 역할이 모성으로 수렴되는 걸 보며 전통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을 상상하는 일이 한계가 있음을 다시금 느꼈습니다. 그런 한편 이런 시대였기에 주체적으로 자신이 택한 종교를 믿고, 그림을 발원하고, 사찰을 후원한 여성들의 의지가 얼마나 강했는지 추측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런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가 신도이자 후원자, 제작자로서 여성의 존재를 발굴한 전시 2부 ‘여성의 행원(行願)’이다.
공덕을 쌓기 위한 마음으로 제작한 <감자금니 묘법연화경>. 후원자로서 여성들의 활약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2부의 시작을 여는 핵심 작품은 고려사경의 걸작으로 꼽히는 총 7권의 <감지금니 묘법연화경>이다. 권당 길이가 펼치면 10m에 육박하나, 모든 글씨를 금으로 써 내려갔다.
“이미 목판인쇄술이 발달했던 고려시대에 이렇게 사경을 한 권 한 권 만들었다는 것은 제작 목적이 공덕을 쌓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재력과 네트워크를 갖고 있었다면 상당한 고위층이었겠죠.” 사경에는 발원자의 이름이 ‘진한국대부인 김씨’라고 분명히 명기돼 있다. 어떤 사람이었을까?
“고려시대 지체 높은 여성에게 하사했던 ‘국대부인’이라는 봉작명을 받은 인물이었음에도 별다른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은 숙청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아마 원나라와 가까운 남성의 부인이나 어머니이지 않았을까요.” 국대부인은 숙원했던 대로 다음에는 성불할 수 있는 남성의 몸으로 태어났을까? 여성의 몸으로 태어난 것이 이전 겁의 업보이며 여성은 성불할 수 없다는 믿음이 팽배했던 시기, 여성 신도들의 마음은 <법화경> 속 용녀의 설화에 이끌렸다. 용왕의 여덟 살짜리 딸로 등장하는 용녀는 축생인 용이자 여성, 어린이라는 점에서 미숙한 존재를 압축한 캐릭터나 다름없다. 그러나 부처가 용녀의 구슬을 헌사받음으로써 남자의 몸이 된 용녀는 남쪽 세계로 가 설법을 하게 된다. 이 이야기를 들은 여성은 용녀에 자신을 이입하며 다음 생을 꿈꿨으리라.
투명한 베일이 여성적인 이미지를 더한 14세기 고 려의 '수월관음보살도'
백자 백의관음보살 입상. 연꽃과 물보라가 어우러진 대좌에 올라탄 입상을 감싼 선과 손이 섬세하다.
조선시대 최강의 불교 수호자인 문정왕후(1501~1565)가 발원한 불화 석 점 또한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어린 나이에 보위에 오른 아들을 대신해 1553년까지 수렴청정을 했던 그는 불화 400폭을 조성한 조선시대 불화의 독보적 후원자로, 이번 전시에서는 ‘영산회도’ ‘석가여래삼존도’ ‘약사여래삼존도’가 전시된다.
“조선의 억불숭유정책 틈바구니에서도 불교가 명맥을 유지하고 수준 높은 불화를 탄생시킬 수 있었던 것은 여성들의 깊은 신앙 덕”이라는 김정희 원광대학교 명예교수의 말처럼 조선시대 불교미술의 중흥을 이끈 문정왕후는 서자도 벼슬길에 나설 수 있는 정책을 펼쳐 신분 때문에 좌절했던 이들에게 호응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고위직 남성들이 써 내려간 실록은 문정왕후를 ‘집안을 망하게 한 암탉’으로 기록한다. 2부 2섹션명이 ‘암탉이 울 때: 유교사회의 불교 여성’이라고 붙은 이유다. 일본의 황녀 쇼잔 겐요의 ‘일엽관음보살도’도 눈길을 끈다. 복숭아처럼 탐스러운 연꽃 위를 여성의 형상을 닮은 관음이 밟고 서 있는 작품이다. 아버지 천황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불교론 수업을 받은 그는 1680년 비구니가 돼 1000여 점 이상의 관음도를 수행의 일환으로 그렸다고 한다.
전시 전경. 유리와 작품의 간격을 15cm로 특별히 제작해 가까이에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송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에서 발견된 17세기의 복장물들. 저고리 안쪽의 발원문에 적힌 여성의 이름은 ‘노예성’. 왕족을 살핀 나인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높은 신분의 여성들 말고 다른 여성들은 어떻게 공덕을 쌓고, 자신의 자리를 찾았을까? 전시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여공(女工): 바늘과 실의 공덕’ 섹션은 불교 자수와 복식을 만들며 제작자로 활동했던 여성의 활동을 예술의 관점에서 새롭게 살핀다. 머리카락으로 자수를 놓은 족자, 434체의 불좌상을 비단에 새긴 외투, 침선 담당 궁녀들의 솜씨가 돋보이는 대한제국의 번…. 불심과 여성의 노동력이 한데 어우러진 화려한 전시품 사이에서 마치 반전처럼 의류와 인쇄본, 직물 조각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영화 <헤어질 결심>에 등장해 잘 알려진 순천 송광사의 목조관음보살좌상에서 나온 17세기 복장품은 옷과 조각보를 만들고 남은 천 조각이 당시로서는 귀한 공양품이었음을 감안하더라도 수수하게 느껴진다. 그중에서 눈길을 사로잡는 저고리는 이 관음보살상을 사주한 나인 노예성의 것이다. 발원문에 선명하게 이름이 기록된 그는 아버지 인조와 반목했던 소현세자의 막내아들 경안군을 어린 시절부터 돌봤던 나인으로 추측된다.
“저고리의 흰색 안감 위에 쓰인 발원문을 보면 가슴에 뜻을 품었다는 관용적 표현처럼 그의 마음에 품은 불심이 그대로 전달되는 기분이 듭니다. 주변인의 평안을 기원한 한편 나인 노씨는 ‘이 공덕이 나를 비롯해 일체 중생에게 미쳐 모두 함께 불도를 이루길 바란다’는 내용도 적어 넣었습니다. 여성의 불심이 남편이나 자식의 안녕을 바라는 기복신앙일 것이라는 추측과 달리 불자로서 더 큰 가치를 품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죠.” 이 말을 할 때 이승혜 연구원은 400년 가까운 시간을 뛰어넘어 조선시대의 나인과 연결된 것처럼 보였다. 이번 전시가 시간과 공간을 가로질러 과거와 지금의 여성이 연대할 수 있길 바란다는 그의 바람처럼 말이다.
은에 도금을 한 마리지천 좌상은 고려시대의 것. 마리지천은 전란과 여행길의 위험을 비롯해 갖가지 고행에서 구해주는 여신으로, 인도의 토속 신에서 유래했다.
찬란한 불보살, 금으로 새긴 경문보다 진열된 작은 직물 조각의 모습에 마음을 빼앗긴 채 전시장 밖으로 나오니 미술관의 자랑인 정원 희원이 눈부신 녹음을 내뿜으며 계절을 전하고 있었다. 희원은 올해 83세를 맞은 국내 1세대 조경가이자 대표 여성 아티스트인 정영선의 1997년 작품이다. 자연이 선사하는 경치를 빌려온다는 ‘차경’의 원칙에 따라 꾸며진 정원을 바라보며 자신의 번민을 정원처럼 가꿔온 오래전의 여성들을 떠올렸다. 지금 여성들의 자리 또한 합당한 곳에 마련되기를 바라는 마음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