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로장의 지시에 따라 숭어의 진로를 막아선 가덕도 어부들의 모습.
‘어부들은 무슨 고기든, 그저 그물이 넘쳐나게 잡혀야 힘이 들어갑니다.’ <사진 낚는 어부, 바다를 담다>에는 이와 비슷한 문장이 몇 번이고 등장한다. 던지거나 친 그물을 걷어 올리는 일을 의미하는 단어인 ‘양망’. 그 양망의 순간, 어부들은 팔뚝에 전해지는 무게로 오늘의 성공 혹은 실패를 가늠할 것이다.
“예전에는 아귀나 곰치 등 다소 못생긴 생선들이 그물에 걸리면 바다에 던져버렸다는 말에 어부들은 코웃음 치실 겁니다. 먹어서 몸에 탈 나는 생선이 아니라면, 돈이 되지 않아도 어상자에 챙겨 놓고 보는 게 어부들의 생리거든요.” 김상수의 말이다.
갯마을은 여성 어부 숫자가 훨씬 많다. 장암 아낙네들이 뻘배를 타고 훑고 다닌 흔적. 예전에는 여성이 어선에 승선하는 것을 금기시하던 때도 있었으나 일손이 귀한 지금은 소형 어선일수록 부부 동승 조업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1965년 고급 장교로 월남에 파병된 부친이 ‘귀국 박스’에 담아 가져온 것은 에어컨도 냉장고도 아닌 당시 최신형 SLR 필름 카메라였던 미놀타 SR-1, 그리고 교환 렌즈 두 개였다. 그렇게 고등학교 시절부터 취미로 시작한 사진 촬영. 군시절을 포항에서 보내며 몇 차례에 걸쳐 사진공모전에 입상했고, 그게 계기가 됐을까. 수산전문기관에 입사한 김상수는 <월간 새어민>(추후 <우리바다>로 제호를 바꾼 이 잡지는 현재 폐간됐다)의 사진취재기자로 직장 생활을 시작한다. 한 달 중 12일을 촬영을 위해 어선에 동승하거나 갯벌을 오갔다
. “오징어잡이 배를 타고 나가 촬영을 마치면 그때부터 빈 물레를 맡아 오징어를 잡아내곤 했죠. 선장들에게 “기자 그만두고 내 배 타라”는 농담도 제법 들었습니다. 갯벌에 들어가면 채취 양이 조금 부족한 아낙네 옆에서 바지락 잡다가 보태 준 일도 여러 번이에요. 소위 ‘갑바’라 불리는 방수 작업복은 필수 장비입니다. 악천후가 예상되는 겨울철 어선 촬영현장이나 깊지 않은 갯벌 촬영 때 특히 유용해요.” 잡지를 떠났다고 바다를 찾는 발길을 멈추지는 않았다. 오히려 칼럼니스트이자 사진가로 자유롭게 국내외 어부들의 바닷살이를 기록 중인 그가 해가 갈수록 피폐해지는 어촌의 현실을 목도하게 된 건 당연한 일이다.
바다에서는 다채로운 것들이 탄생한다. 수산전통식품명인 1호 김광자 할머니가 2020년에 선보였던 어란.
“기자와 취재원으로 만났다가 막역해진 어부들과 술자리에서 듣는 허심탄회한 어촌 현실은 암담합니다. 고령화와 젊은 일손의 회피로 현장 일손 부족이 심각하고, 외국인 선원 아니면 출어조차 불가능해요.” 해마다 쪼그라드는 갯마을의 현실을 겪으며, 예부터 이어져온 우리 어업이 사라지거나 변형이 되기 전에 책으로 남겨야겠다는 자각이 생겼다. 그렇게 2022년, 세상에 등장한 것이 <사진 낚는 어부, 바다를 담다>(민속원) 시리즈다. 슬라이드 필름 시대부터 디지털카메라까지, 30년 넘는 시간 동안 담아온 방대한 기록 중 게재할 사진을 선정하는 기준을 정하는 것은 오히려 쉬웠다.
“작품성보다 장차 어업에 뜻을 둔 사람들이 사진만 보고도 조업 방법을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골랐어요. 어부의 시선으로 촬영하고 기록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작품성을 우선시하지 않았다지만 책장을 넘길 때마다 튀어나오는 투박하면서도 생생한 어촌 풍경에 겨울바다 바람을 맞은 듯 정신이 든다. 지금은 사라진 전통어업 방식에 대한 기록은 흥미진진한 모험담에 가깝다. 한껏 예민한 숭어를 잡기 위해 힘을 뭉치고는 했던 부산 가덕도 숭어잡이 어로 장인과 망지기들의 이야기가 그렇다. 최근 몇 년간 신공항 건설 소식으로 언급돼던 가덕도에 이런 시절이 있었다니.
대규모 토목 공사는 물길과 뻘의 생태계에 거대한 영향을 미친다.
“우리 바다에서 행해진 모든 간척 매립사업은 충격 그 자체입니다. 그중에서도 전북 부안군 계화도 물막이 공사 사례가 가장 가슴 아파요. 건강한 주변 갯벌 덕에 백합조개 등 돈 되는 패류의 주 생산지로 알려지면서 살만한 섬마을로 주변의 부러움을 샀던 곳이거든요. 그러나 새만금간척매립사업의 일환으로 2006년 물막이 공사가 완공되고 바닷물 유입이 차단되면서 그 너른 갯벌이 황무지로 변하고 말았어요.” 그럼에도 새만금간척매립사업의 미래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상상조차 못했던 또 다른 재난은 오염수 방류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후쿠오카 원전의 오염수를 처리한 물을 바다로 방류하는 것은 IAEA 안전성 기준에 부합하다’면서도 ‘발생할 수 있는 결과에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다’고 적시합니다. 이게 대체 무슨 의미일까요.” 일반 소비자들에게 해산물은 수많은 선택지 중 하나지만 어민들은 다르다. 실제로 최근 경기도지역 초등학교 급식용 수산물 가공업체를 취재한 김상수는 관계자들로부터
“날이 갈수록 어린이들이 튀김이나 조림, 볶음 등 어떤 형태의 수산물 음식을 잘 먹지 않아서 큰일”이라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방사능 오염수 방류 보도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면서 학부모들이 자신들은 ‘어쩌다가’ 수산물을 먹어도 굳이 아이들에게 먹이지는 않겠다고 생각한 결과인 거겠죠.” 이런 상황에서 우리 수산업에 과연 미래가 있겠냐고 김상수는 반문한다.
물속을 보는 어구로 쓰이는 사다리꼴 모양의 창경. 주로 나이 든 어부들이 사용하곤 한다.
은빛 비늘 생생한 거문도 채낚기 갈치는 어물전에서 최상품으로 취급된다.
해양 다큐멘터리 <씨스퍼러시>(2019) 감독 알리 타브리지는 기후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심대하게 영향을 주는 바다를 ‘기후조절자’라고 표현한다. 바다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기후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편 그는 해양생태계 파괴 주범으로 상업 목적의 어업을 지목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어업 방식은 어떨까. 남획이나 대규모 선박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이 문제라는 정도의 답변을 기대했으나 돌아온 대답은 보다 근원적인 의미에서 절망스럽다.
“어업 현장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던 1980년대 초부터 대부분의 어부에게 들었던 말이 있습니다. 자식들에게 이 일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말이죠. 부푼 가슴으로 ‘살기 좋은 어촌건설’에 일조하겠다며 찾아간 초보 기자의 각오를 여지없이 무너뜨린 얘기였습니다. ‘어업은 힘들고 위험하다, 수산업은 내일이 없다’ 등등 여러 고민에서 나온 결론일 테니까요. 이런 분일수록 그물코가 작은 어망 등 불법어구를 사용하고, 조업 중 올라온 폐어구를 다시 바다 속으로 투기합니다. 뭍으로 가져가 봤자 처리하기 곤란하다는 이유도 있습니다만, 근본적으로 자손에게 물려줄 마음이 없으니 바다를 함부로 취급하는 것 아닐까요.”
서천의 특산물인 자하. 자하잡이 어부가 족대를 들어올렸다. 아랫쪽에 잔뜩 달라붙은 자하가 보인다.
그렇다면 ‘전국 유일’ ‘제철’ 등의 명칭으로 늘어나는 지역 축제와 별미, 특산품을 즐기는 수준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없을까.
“‘바다 폭염’이라고 불릴 정도의 고수온에 따른 해양 환경 변화에 주목해 주세요. 명태가 우리 바다에서 사라진 것도, 처음 보는 생선이 판장이며 어시장에 오르는 것도, 양식장 물고기들이 폐사를 거듭하는 일도 고수온 탓이고, 해마다 반복되는 해파리로 인한 피해도 결국 수온이 높아져 다량 번식한 결과거든요. 수온 상승에 따른 식량 생산성의 감소가 식량 위기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으니 남의 문제가 아닌 거죠.” 김상수는 당부한다.
한겨울 거제 바다에서 잡혀 판장에 깔린 대구.
한때 우리 바다를 대표하는 수산물이었던 명태는 언감생심 구경조차 어려워졌다. 오징어의 어획량도 형편없이 줄어들기는 매한가지지만 밤바다 위에서 집어등을 밝히고 밤샘 조업하는 채낚기 어선들이 늘어선 풍경, 덕장에 오징어를 널어 말리는 활기띤 모습은 그래도 어떤 희망이다. 김상수는 얼마 전에도 경북 울진 후포의 대게잡이 배를 타고 바다에 다녀왔다. 책의 겨울편에 등장하는 ‘삼창호’ 선주와 다녀온 나들이였다. 이처럼 수없이 바다를 찾았을 그가 가장 좋아하는 바다가 궁금해졌다.
“미항으로 꼽히는 강원도 양양 남애리 포구입니다. 마을 서낭당이 있는 당산에 올랐을 때 펼쳐지는 동해와 어우러지는 포구의 풍경에 매번 위안을 받아요. 다양한 어업을 이어가는 어부들이 많은 까닭에 연중 어느 시기에 방문해도 이야깃거리가 풍부해서 더 좋아라 했죠.” 김상수는 우리 어부들의 갯살이와 해조류 이야기도 10년 넘게 취재와 촬영을 이어가고 있다.
“더 변하기 전에 마무리해야죠.” 예상보다 가파른 변화 앞에 기록하는 마음은 항상 다급할 수 밖에 없다. 그렇지만 멈출 생각은 없다. 여전히 그에게 바다는 미래이므로.
김상수
현재 한국해양문화연구원 소속 프리랜서 사진작가이자 어촌 민속을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는 칼럼니스트. 1980년대부터 2013년까지 어촌과 어부들의 바다 생활을 다루는 해양수산 전문 월간지 <우리바다>에서 30년을 취재기자이자 편집장으로 보냈다. 바다별미와 귀어촌, 사진 촬영에 대한 노하우뿐 아니라 뱃놀이와 풍어제, 넋굿 등 바다에서 펼쳐지는 민속까지 글과 사진으로 기록해 수많은 책을 펴냈다. 2022년 봄?여름, 가을, 겨울 총 세 권으로 출간된 <사진 낚는 어부, 바다를 담다>는 40년 넘게 동해안 어촌을 찾아다니면서 헤아릴 수 없이 오르락내리락했던 7번 국도를 포함해 전국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지금은 사라진 우리 전통 어업을 비롯한 어촌 현장을 생생하게 담아낸 보고서다. 바다와 가장 가까운 어부 그리고 그 어부들과 가장 가까운 사진가 김상수의 기록은 그래서 각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