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뮤다 팬츠의 까다로운 스타일링 | 엘르코리아 (ELLE KOREA)

무릎 바로 위에서 끝나는 팬츠를 뜻하는 ‘버뮤다 팬츠’는 눈속임이 쉽지 않은 아이템이다. 자칫 스타일링의 한끗 차이로 ‘버뮤다 삼각지대’로 쓸려 나가기 쉬운 은근히 까다로운 이 아이템을 우리는 어떻게 입어야 할 것인가. :: 트렌디,미니멀리즘,스포티즘,패션,트렌드,팬츠,엘르,엣진,elle.co.kr :: | :: 트렌디,미니멀리즘,스포티즘,패션,트렌드

아니 이건 뭐 곤충도 아니고, 어떻게 이렇게 보이나 싶다. 머리, 가슴, 배로 3등분된 곤충도 아닌데 어떻게 인간의 몸이 이렇게 못생겨 보인단 말인가. ‘세일’이라는 푯말을 보고 또 한 번 충동적으로 구입한 인디언 핑크 컬러 버뮤다 팬츠에 화이트 티셔츠를 입고는 넣고 빼어 보기를 반복하며 거울을 바라보다 생각했다. 엉덩이 부분이 살짝 낙낙한 항아리 형태의 버뮤다 팬츠. ‘이거, 좀, 너무한데? 몸이 정확히 3등분됐어. 더구나 작은 키가 더 작아 보이잖아….’ 가지고 있는 슈즈 중 가장 굽이 놓은 샌들을 신고, 바짓단을 돌돌 말아올려본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줄기차게 입고 다니는, 허벅지의 70%가 훤히 드러나는 쇼츠 정도로 짧아지자 그제서야 프로포션이 좀 괜찮아 보인다. ‘뭐가 문제지? 항아리형 실루엣? 아니, 그건 배기 팬츠를 수십 번 입어보며 터득한 실루엣이라고 생각했는데. 무릎선 길이? 저지 소재의 타이트한 펜슬 스커트를 줄기차게 입어온 나인데. 그럼 허리와 골반쯤 어중간하게 걸쳐지는 허리선? 단지 그것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 그럼 허리부터 밑까지 타이트하게 줄일까? 길이만 자를까? 아니, 그냥 내 몸의 프로포션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밀란에서 2010 S/S 런웨이를 보고 온 뒤에 일어난 일이었다. 미우치아 프라다가 프라다 런웨이에 선보인 버뮤다 팬츠들을 보고 탄력 좀 받았더랬다. 오랜만에 돌아온 미니멀한 ‘프라다식’ 버뮤다 팬츠를 당장 지르기엔 약간의 망설임이 있었고, 늘 입는 가볍고 캐주얼한 스타일이라면 만만하려니 싶었다. 찬바람이 이미 불기 시작한 순간이었지만 시즌리스가 득세한 2010년 아니던가. 고백하건대 버뮤다 팬츠가 이렇게 어려운 아이템일 것이라곤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다. 그런데 거울 속의 난 ‘프로포션 재앙의 폭격’을 온몸으로 맞고 있었다. 그때부터다. 온갖 컬렉션을 탐닉하며 ‘버뮤다 삼각지대 탈출’을 찾아나선 건. 2010 S/S, minimal or sportyModern Tailored Bermudas 미니멀한 디자인의 테일러드 버뮤다 팬츠는 톱 역시 심플하고 미니멀한 디자인으로 고르는 것이 가장 스타일리시해 보인다. 셔츠, 베스트, 재킷 등을 적극 활용할 것.버뮤다 팬츠를 들고 돌아온 디자이너들이제는 익숙한 용어지만 버뮤다 팬츠가 ‘버뮤다’라는 이름을 갖게 된 건 이의 시발점이 영국령인 버뮤다 제도(버뮤다 삼각지대가 주변 해안에 있는 그 섬 말이다)였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중 버뮤다에 거주하던 영국인들은 열대 사막 기후에서 더위와 뜨거운 햇빛을 이겨내기 위해 디자인된 군복에서 힌트를 얻어 수트 팬츠를 무릎 길이로 자르고, 여기에 얇은 니삭스를 신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업차 버뮤다를 방문한 영국인들이 이들의 스타일리시함에 감명받아 본토에 돌아가서 이를 시도하기 시작했고, ‘버뮤다 팬츠’가 공식적인 패션 용어로 사용되게 되었다. 그리고 약 55년이 흐른 2010년. 지난 몇 시즌간 쇼츠와 테일러드 팬츠의 그늘에 가려 주목받지 못했던 버뮤다 팬츠가 슬그머니 다시 트렌드 전선에 돌아왔다. 금의환향한 두 개의 키 트렌드, 미니멀리즘과 스포티즘의 영향 덕이다. 이를 다시 불러들인 대표적인 디자이너들은 프라다의 미우치아 프라다, 루이 비통의 마크 제이콥스, 에르메스의 장 폴 고티에, 마르니의 콘수엘로 카스틸리오니. 이 넷의 이름만 들어도 왜 우리가 이 낯설고도 반가운 아이템에 주목해야 하는지 이유가 분명해지지 않는가? 그중에서도 가장 도드라지는 프라다의 미우치아 프라다는 재해석된 미니멀리즘에 입각한 두터운 실크 소재의 테일러링이 돋보이는 버뮤다 팬츠와 몸에 밀착되는 스판 소재의 스포티한 팬츠를 동시에 내놓았다. 또 마크 제이콥스는 자신의 런웨이와 루이 비통의 런웨이 두 곳 모두에 각양각색의 패턴 프린트가 더해진 타이트하고 스포티한 버뮤다 팬츠를, 에르메스의 장 폴 고티에는 군더더기 없는 라인의 엘리건트한 버뮤다 팬츠를, 콘수엘로 카스틸리오니는 니트 소재의 심플한 버뮤다 팬츠를 내놓았으니, 센세이셔널하진 않지만 트렌디한 아이템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 2010 S/S, minimal or sportySporty Skinny Bermudas 이번 시즌 스포티즘의 영향을 받아 돌아온 버뮤다 팬츠는 사이클링 팬츠를 연상시킬 만큼 탄성 좋은 소재로 디자인되어 몸에 밀착되는 것이 특징. 낙낙한 톱으로 프로포션의 리듬감을 만들 것.현명하게 버뮤다 팬츠를 입는 법그러나 앞서 말했듯 버뮤다 팬츠는 몸의 프로포션을 일절의 눈속임 없이 드러내는, 어찌 보면 다리 실루엣이 훤히 드러나는 쇼츠나 스키니 팬츠보다 더 어려운 아이템이다. 허리부터 무릎까지 딱 몸의 중간 부분을 차지하는 아이템이기 때문에 자칫 몸을 정확히 3등분해 롱 앤 린(Long & Lean)은 커녕 쇼트 앤 처비(Short & Chubby) 실루엣으로 둔갑시키는 위험성을 가득 안고 있기 때문. 하지만 분명히 체형에 따른 각각의 현명한 솔루션은 존재한다. 우선 어떤 체형이든 ‘기본 이상’ 어울리는 아이템은 프라다 런웨이에 나온 것과 같이 잘 재단된 테일러드 버뮤다 쇼츠들. 버뮤다 팬츠의 원류에 가장 가깝게 맞닿아 있는 이런 디자인은 확실히 체형 보정 효과가 가장 뛰어날뿐더러 심플한 셔츠만 매치해도 ‘미니멀리즘’ 트렌드를 몸소 완벽히 실천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루이 비통과 마크 제이콥스 런웨이 등에 등장한 타이트하고 스포티한 디자인의 버뮤다 팬츠는 ‘서양형 체형(상체는 통통하고 하체는 가는)’을 가진 이들을 위한 베스트 아이템. 이를 엉덩이를 간신히 가리는 길이의 박시한 톱(맨투맨 티셔츠, 빅 니트)과 매치한다면 체형의 장점은 극대화되고 동시에 ‘스포티즘’ 트렌드를 스타일리시하게 소화했다는 인상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또 마르고 볼륨감 없는 ‘모델형 체형’이라면 리처드 채의 런웨이에 등장한 것과 같은 루스한 실루엣의 버뮤다 팬츠를 택해 부드럽게 흐르는 톱과 조금 센 디자인의 슈즈를 매치해볼 것을 추천한다. 다른 체형으로는 연출하기 힘든 모던하고 내추럴한, 멋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또한 가브리엘르 콜란젤로가 선보인 룩처럼 살짝 낙낙한 테일러드 버뮤다 팬츠와 같은 톤의 날렵한 재킷을 매치하거나 마르니 런웨이에 등장한 룩처럼 버뮤다 팬츠의 헴라인에 아슬아슬하게 이르는 슬림한 롱 카디건을 매치하는 식의 스타일링은 체형의 특징을 막론하고 가장 손쉽게 ‘가는’ 라인을 만들 수 있는 현명한 해법이 될 것이다. 또한 스킨 톤의 연장선상에 있는 밝은 컬러들을 택하는 편이 시선을 연장시켜 안전할 수밖에 없겠지만 블랙이나 네이비 등 딥한 컬러로 마음을 정했다면 하이웨이스트 디자인을 택하거나 상의 역시 딥한 톤으로 골라 상하의의 연결감을 주는 것으로 함정을 비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수십 개의 컬렉션을 탐닉하며 각종 시도를 번복하던 나의 결론은? 어느 날 문득, 몇 년 전 파파라치 컷에 등장한 케이트 모스의 스키니 팬츠를 처음 보고 혹해서 샀던 인디고 데님 팬츠가 떠올랐다. 원하는 만큼 종아리 부분이 밀착되지 않아 처박아두었던 그 팬츠. 스판기 가득한 소재에 하이웨이스트 디자인이 버뮤다 팬츠로 자르면 딱이겠다 싶었다. 가위를 들었다. 그리고 잘랐다. 티셔츠를 넣어 입고, 거울 앞에 섰다. 인디언 핑크 항아리 버뮤다 팬츠의 악몽에서 벗어난 내가 서 있었다. 햇살이 좀 더 따뜻해지면 마음에 쏙 들게 변신한 이 인디고 버뮤다 팬츠에 칼라가 작고 날렵한 화이트 셔츠를 입고 옥스퍼드 슈즈를 신거나 심플하고 짧은 박시한 그레이 맨투맨 티셔츠에 레이스업 샌들을 매치해 스포티즘 트렌드를 즐겨 보려 한다. 그리고 마감이 끝난 뒤엔 날렵하게 재단된 테일러드 버뮤다 팬츠를 꼭 하나 구입할 것이다. 처음 봤을 때 눈독 들인 그 디자인의 버뮤다 팬츠를.*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4월호를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