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나는 피렌체의 일본 장인

남성복의 기둥인 영국과 이탈리아의 클래식 복식 장인들이 사라지고 있다. 얼마 남지 않은 장인들의 기술과 영혼과 철학을 계승하는 젊은이들 중에는 뜻밖에도 일본과 중국 출신이 많다. 피렌체의 구두 장인 히데타카 후카야가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프로필 by ELLE 2010.07.08

인류가 풀어야 할 글로벌 이슈 리스트에 환경 오염이나 기아 극복, 전쟁과 이념 같은 정치적인 문제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어느 나라의 리더십도 신경 쓰지 않지만, 역사적이고 예술적인 제품을 만드는 장인들이 점점 줄고 있다는 지구 차원의 팩트도 사실 문화적으로는 심각한 문제다. 여전히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는 패션은 시대의 대세지만, 반복되는 패션을 넘어 우리 마음 속에 감동과 추억과 철학을 가져다주는 건 언제나 전통 기술로 만드는 클래식 제품들이었다. 하지만 최고의 수트와 구두를 제조할 수 있는 장인들은 안타깝지만 점점 화석처럼 늙어가고 있다. 이것은 이탈리아든 영국이든 한국이든 전세계적으로 평등하게 전개되고 있는 현상이다. 역사적인 의미를 가진 수트를 만드는 테일러의 가치를 모르니, 당연히 그 직업에 헌신하기를 두려워 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기술 보유자는 늙어가고, 그 보석 같은 기법들을 전수할 계승자는 나타나지 않아 마침내 시대를 이겨내며 쌓은 클래식 복식의 노하우 그 자체가 점점 사라져 갈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다.
영국과 이탈리아는 여전히 남성복의 근간이라고 할 만한 국가지만, 그런 복식 선진국조차 이런 흐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강고한 가족간의 연대를 통해 내밀하게 지켜지던 클래식의 가치들이 냉혹한 비즈니스 현실 앞에 좌절되기도 했고, 브랜드와 수익보다는 품질과 철학을 따지는 이들이 시대 착오적인 몽상가들로 여겨지기 일쑤다. 독보적인 기술을 가진 장인들은 묵묵히 자신들의 제품을 생산해왔지만, 당면한 불경기 앞에서 인내의 시간과 적지 않은 투자가 필요한 클래식 제품들이 소비자들에게 외면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질식 현상에 맞서 국가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대응하는 중국과 일본이라는 국가에 대해 나는 (그들의 정치와는 상관없이) 경의를 표한다. 이탈리아 유수의 수트 공장이나 구두 공방에서 돈을 받지 않으면서 일을 배우는 사람들은 그토록 문화적 기상이 뛰어나다는 이탈리안이나 프렌치가 아니라 일본과 중국의 젊은이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한민국 클래식 복식의 미래를 생각하면 가끔 두려워진다. 시간을 넘어 역사가 된 유럽 장인들의 노하우를 계승하는 새로운 별들이 모두 일본이나 중국에서 출현할 것 같아서다.
장인정신에 관한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피렌체가 유일하게 받아들인 아시아의 구두 장인 앞에서도 나는 묘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일본인으로 혈혈단신 이탈리아로 떠나 무뚝뚝하지만 실력만은 출중한 구두 마스터들로부터 사사받고, 다시 자신의 이름을 건 맞춤 구두 가게를 피렌체에서 운영하고 있는 히데타카 후카야는 1974년생이다. 아직도 충분히 젊고, 앞으로 펼쳐 보일 세계가 더욱 광대한 그는 차세대를 기약한 스타 구두 장인이다. 우리가 고무 바닥 구두와 불광 낸 검은 구두를 신고 있는 이 시대에 일본 장인은 글로벌 무대에서 최고 제품을 찾는 고객을 직접 만나고 있었다.   

* 히데타카 후카야는 이탈리아 장인에게 배운 구두 기술에 파리, 런던 등을 둘러보고 박물관에서 얻은 정보를 결합해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었다.



일본의 매체는 물론 이탈리아나 미국의 미디어에도 소개가 되고 있죠? 물론 오늘은 인터뷰라기 보다는 구두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의 대화라고 해야겠지만.
아, 저는 구두 장인입니다. 인터뷰는 항상 불편합니다. 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고, 사진을 찍는 일도 서투릅니다. 그냥 구두만 만들었으면 좋겠지만, 언제나 하고 싶은 것보단 해야 할 일들을 먼저 하라고 제 아내가 말해요.
일본의 젊은 장인이 이탈리아의 심장과도 같은 피렌체에서 최고의 구두를 제작하고 있다는 점이 몹시 인상적입니다. 피렌체에 오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두 가지 생각에서 출발했습니다. 첫째는 새로운 언어로서 이탈리아어를 배우기 위해서였고, 두번째는 역사적으로 피렌체에 아주 실력이 뛰어난 장인이 많았다는 이유였죠. 지금 제가 하고 있는 구두 장인말고도 수트나 타이, 유리, 가죽 등 다른 분야의 장인들도 많습니다. 그 장인들을 만나고 또 직접 배우고도 싶어서 피렌체에 오게 되었습니다. 처음 피렌체에 왔을 때, 약 11년 전쯤이군요, 당시에도 아주 많은 구두 장인들이 있었어요. 지금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하지만 나는 그 장인들을 정말 많이 찾아 다녔고, 오래도록 설득했으며 결국 내 인생에서 가장 필요로 했던 것들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피렌체의 장인들은 당신의 꿈을 실현시켜준 분들이군요.
물론이지요. 저는 정말 중요한 구두 장인들을 만나고 그 분들에게 배웠다는 것을 가장 큰 행운으로 생각합니다. 지금은 모두 돌아가셨지만. 저는 원래 오래된 물건에 애정이 많았습니다. 여기 제 매장과 작업실을 보시면 제가 얼마나 고풍스러운 취향을 좋아하는지 아시겠죠. 테이블이든 램프든 모두 1940~50년대 물건입니다. 저는 오래된 것에서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구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현대적인 구두보다는 고집을 가진 구두 장인이 아주 전통적인 방식으로 만드는 기술을 배우고 싶었습니다.
피렌체와 이탈리아 장인들. 음, 둘 다 고집이나 자존심에서 만만치 않은 존재들인데요. 그들이 이방인에게 노하우나 기술을 쉽게 가르쳐주던가요?
정말 어려웠습니다. 거의 불가능 했다고 볼 수 있죠. 나이 많은 이탈리아 장인들은 직접 무언가를 만드는 건 도사들이지만, 대부분 가르치는 방법은 전혀 모릅니다. 의사 표현을 위해서 대화를 하기 보단 그냥 막 소리치고 말아요. 목소리는 좀 큽니까. 소리칠 때 목에 핏줄은 어떻구요. 저는 시에나의 보테가(공방)에서 구두 장인 알레산드로 스텔라 선생 밑에서 일했습니다. 물론 스텔라 선생도 제게 아무 것도 직접 가르쳐 주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어깨 너머로 보고 생각하고 느끼면서 배운 것이지요. 토스카나의 끼안띠 지역 구두 장인들과도 같이 일했는데, 그분들 역시 남을 가르치는 방법을 전혀 몰라서 저 스스로 터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최고의 장인들 옆에서 그들의 작업 과정을 눈으로 지켜보는 것만큼 훌륭한 공부는 없죠.
지금 당신이 만드는 구두는 그런 공부에다 자신만의 취향을 섞은 것인가요?
그렇죠. 구두 장인들에게서 오래도록 공부한 후, 전세계를 여행했습니다. 주로 구두에 대한 정보들을 모으고, 경험해보기 위한 여행이었어요. 일단 이탈리아에서 구두를 배웠기 때문에 이탈리아 구두와 다른 나라 구두의 차이를 비교해보는 방식으로 접근해 나갔어요. 파리, 런던, 부다페스트 등에서 오래도록 머물며 그곳의 구두 장인들을 만나보고, 가능한 많은 구두 가게들을 방문하고 신어보고 그리고 도서관이나 박물관에서도 오랜 시간을 보냈습니다. 물론 일본 구두와의 차이점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나의 구두는 나름대로 ‘이탈리아식 구두는 무엇인가’에 대한 저만의 답입니다.
평생의 업으로서 구두를 선택하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까?
저는 일본에서 패션 디자이너였습니다. 대학에서 패션 디자인을 공부했는데, 나름대로 아주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죽이라는 소재를 아주 좋아해서 패션 공부를 하면서도 나고야의 작은 구두 공방에서 구두 만드는 기술을 배웠습니다. 졸업 후에는 도쿄에서 아베 켄쇼의 디자이너로 일했지요. 하지만 어느 순간, 패션 디자이너에게 창조력이란 어떤 멋진 아이디어의 문제지 특별한 기술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남들이 하지 않는 일,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높은 수준의 기술이 필요한 구두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피렌체까지 오게 되었고요.
당신이 그토록 열심히 그리고 어렵게 배운 이탈리아 구두를 어떻게 생각하나요. 제게는 장점과 단점이 너무 분명하게 느껴집니다만. 
이탈리아 슈즈는 한마디로 ‘엘레간차’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물론 엘레간차에 대한 여러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겠지요. 다른 나라 구두와 비교해봤을 때 이탈리아 구두는 디자인적인 감성이 아주 풍부합니다. 영국 슈즈는 100년이 지나도 애초의 스타일이 그대로 이어지고, 프랑스 슈즈는 항상 섹시함만이 강조되고 있지만, 이탈리아 슈즈는 뭐랄까 좀 특별하고 다양하다고 할까요. 규칙보다는 자유로운 분위기가 많죠. 이탈리아에는 창의성을 존중하고 그것을 즐기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래서 구두도 어떤 특정한 형식으로 치우치기 보다는, 장인의 성격이나 도시의 특성마다 디자인 측면에서, 자유로움 그 자체입니다.
구두의 스타일과 퀄리티는 순서를 가리기 힘든 문제 아니겠습니까. ‘영국 구두의 퀄리티, 프랑스 구두의 스타일’ 이라는 말도 있는데요.
영국 구두도 좋은 품질을 가지고 있지만 이탈리아 구두, 특히 피렌체 구두들은 매우 높은 퀄리티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탈리아 구두는 높은 품질과 자유로운 스타일이 조화를 이루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세계적으로 봤을 때 이탈리아를 포함한 다른 나라들의 슈즈 퀄리티는 10년 전에 비해 모두 공평하게 낮아졌습니다. 지금은 각국의 구두 제조 수준이 모두 비슷합니다. 이처럼 퀄리티가 낮아진 이유는 당대의 훌륭한 구두 장인들이 대부분 나이가 들어 더이상 일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구두 뿐만이 아니죠. 수트와 타이, 셔츠까지 전체적으로 이탈리아의 문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되도록 많은 젊은이들이 그 장인정신과 전통 기술을 계승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모노 염색 기술이나 세라믹 페인트 기술 같은 일본 전통 기술은 배우기 힘들고 어렵다는 이유로 일본 젊은이들이 꺼린다고 합니다. 이상하게도 프랑스나 핀란드의 젊은이들이 이런 전통 기술을 배우러 일본에 옵니다. 이탈리아도 그렇잖아요. 외국인들이 이탈리아의 전통 구두나 수트 기술을 배우려 하지, 정작 이탈리아의 젊은이들은 기피하니까요.

* 히데타카 후카야의 수제화를 맞추려면 총 5백 시간이 필요하다. 완벽한 무두질을 마친 후 납기까지 포함한다면 길게는 1년까지도 걸린다. 



이 도시, 피렌체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구두를 떠나 도시만 보았을 때, 런던, 파리가 좋다는 친구들도 많지만, 피렌체만큼 저에게 맞는 도시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피렌체는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500년이 지나도 그 아름다움은 영원이 지속될 도시입니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뿐만 아니라 잠시 머무르는 사람에게도 풍성한 영감을 주는 곳. 
피렌체 사람은 어떻습니까?
사람이요? 하하하 꼭 진실을 말해야 합니까? 피렌체 사람들은 한마디로 완전 미친 사람들이죠. 자존심 세고, 아주 비판적이고, 가끔 어이없는 행동들을 하죠. 피렌체에서는 손바닥 세 개 만한 피오렌티나나 고르곤졸라 치즈 같은 정말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고, 비싸지 않으면서 훌륭한 와인도 마음껏 마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피렌체는 비즈니스를 하기에는 정말 추천하고 싶지 않는 도시입니다. 반면 공방을 운영하기에는 좋은 곳이죠. 
당신의 구두는 무엇을 지향하나요. 컨셉트라고 할까 철학이라고 할까. 어떤 구두를 만들고 싶습니까.
나는 구두라는 특정한 아이템을 만드는 사람이지만, 그 구두는 엘레간차를 지향하는 남자를 위해서 존재했으면 합니다. 구두 그 자체건 그 구두를 신는 사람이건 항상 엘레건트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엘레간차를 추구하는 사람은 옷에 따른 자연스러운 연출을 생각하고 세부를 변화시킵니다. 수트에 어울리는 구두를 선택할 줄 알게 되면, 청바지나 면바지와 잘 부합하는 구두도 분명히 고를 수 있는 것처럼. 그런데 제 구두는 이탈리안 테이스트의 포멀한 수트에도 어울리지만, 심지어는 청바지에도 매치가 될 수 있을 만큼 자유로운 구두이기도 합니다. 어떤 구두는 포멀 뿐만 아니라 청바지나 면바지에도 스타일링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요. 제 구두에는 어떤 룰이 존재하지 않는 자유로움, 그리고 섹시하면서 편안한 분위기를 담습니다. 물론 제작 방법은 100년 전과 동일한 핸드메이드 방식입니다. 100년 전에는 기계가 없었으니까 모두 손으로 바느질을 했습니다. 손으로 작업을 하기 때문에 느리지만 더 세밀하며 정확하게 제작할 수 있습니다.
일본의 투모로우랜드에서 산 당신의 구두를 신어보니, 발볼이 좁고 발등 부분이 낮은 특성을 가지고 있더군요. 개인적인 취향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피렌체식의 특성일까요. 혹은 일본?
투모로우랜드와는 오랫동안 같이 일해왔지요. 아주 중요한 파트너입니다. ‘HIDETAKA FUKAYA per TOMORROWLAND’라는 라벨로 제작되는 기성 구두는 투모로우랜드의 젊은 고객들을 생각하고 제작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일본적인 취향을 담고 있어서 그런 느낌을 받았을 겁니다. 일단 이탈리아 남자의 발모양과 일본 남자의 발모양은 전혀 다릅니다. 이탈리아 사람은 보통 길고 가늘지만 동양인은 짧고 두터운 편입니다. 같은 아시아에서도 한국과 일본은 또 다르죠. 한국인의 복숭아뼈는 일본인에 비해 낮습니다. 구두의 옆 부분에 주의해야 하죠. 그리고 발볼 둘레가 일본인에 비해 두텁습니다. 이곳 피렌체에 있는 제 구두들은 스타일을 말하자면 제 머리 속에 있는 어떤 이상적인 형태나 모델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고, 실제로 개인 고객들을 위한 맞춤 구두를 만들 때는 각각 형태를 다르게 제작합니다. 제 구두의 스타일은 아주 오래된 40년대 영국 구두들로부터 영감을 받았습니다. 영국 여행에서 본 니콜라스 투크제크라는 분이 수집했던 빈티지 구두들인데, 정말 아름다웠기에 항상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구두는 어떤 가죽을 사용하고 있습니까?
가죽 퀄리티는 구두 기능에 많은 영향을 줍니다. 아마도 구두 장인마다 이 부분에 대한 어떤 취향은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저는 소가죽(vitello)은 프랑스산, 스웨이드는 영국산을 사용하고 있으며, 구두의 안쪽 부분, 예를 들면 안쪽 밑창은 독일산을 사용합니다. 이상하게도 이탈리아산을 사용하지 않아요. 이탈리아 소재는 소가죽이든 스웨이드든 여성용 혹은 패셔너블한 브랜드의 남성 구두를 만드는 데 적합한 소재거든요. 하지만 엘레건트하며 장인들의 특성이 드러나는 최고급 퀄리티를 위해서는 특별한 소재가 필요합니다. 특히 프랑스산 소가죽은 겉표면이 깨끗하고 부드럽습니다. 작업하는 손에 붙는 느낌이 정말 최고였습니다. 스시에서 생선의 퀄리티 같은 것이죠.
오래도록 인내해야만 비로소 자신의 것이 되는 게 맞춤복이나 맞춤 구두입니다. 경험적으로 맞춤이란 특정 고객을 만족시키는 동시에 더 많은 대중들을 소외시키는 측면도 있더군요. 왜 굳이 그렇게 힘든 길을 선택했나요.
이 세상에서 단 하나만 존재하는 구두를 제작자인 나와 소비자인 그가 동시에 기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 구두를 맞추려면 총 500시간이 소요됩니다. 완벽한 무두질을 마친 후 납기까지 포함한다면 길게는 1년 정도 걸릴 수도 있습니다. 맞춤 구두를 시도하는 고객은 처음 매장에 오셔서 먼저 발의 정확한 사이즈를 잽니다. 그리고는 가죽 종류와 마음에 품고 있던 스타일이나 모델, 그리고 디테일에 대해서 토론을 하죠. 두 세 달 정도 후에 가봉용 구두가 나오면, 다시 고객을 만나 아주 세밀하게 착용감을 체크합니다. 만약 착용감이 괜찮다면 거기서 바로 구두를 완성하고, 때로는 어느 부분을 수정하기도 하죠. 외국에 사는 고객이라면 이처럼 가봉에 소요되는 시간 때문에 최대 1년이 걸리기도 합니다. 물론 1차 가봉이 빨라지면 6개월 정도로 단축시킬 수 있습니다.
맞춤이라는 프로세스에 익숙해지면 오히려 그 기다림이 즐거워지지만, 그런 경험이 없는 분에게 6개월이란 정말 오랜 세월이죠. 성질 급한 이탈리아 사람들이 과연 6개월 이상 기다리나요?
맞춤 수트를 경험해보신 분들이 맞춤 구두의 가치도 높이 평가해주시는 것 같습니다.진짜 좋은 건 서로 통하는 법이니까요. 어떤 이탈리아 고객들은 정말 참을성이 없죠. 사이즈를 잰 후에 2~3주마다 찾아와 준비가 되었는지 확인한다니까요. 일본 고객은 비교적 참을성이 많아 묵묵히 기다립니다. 아직 한국의 고객은 없는 것 같네요. 일본에 사는 한국 고객은 다섯 분 정도 있지만. 
아름다운 아내가 항상 옆에 계시더군요. 어떤 일을 하시나요.
전 구두만 만들고요, 그걸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아내가 도와주고 있습니다. 고객관리, 구두 발송, 마케팅 등등 모든 것을 그녀가 하죠. 특히 돈을 잘 셉니다. 하하.
이제 곧 당신의 구두가 한국의 고객들에게 소개될 텐데 어떤 말을 해주고 싶습니까?
이름을 보지 말고, 구두를 보시란 말. 브랜드, 그러니까 구찌나 루이뷔통을 먼저 보지 마세요. 퀄리티와 스타일을 봐주세요. 솔직히 일본 고객들 머리가 빈 것 같습니다. 너무 브랜드를 밝힙니다. 이제 바뀌어야 할 것 같습니다.

* 히데타카 후카야는 오래된 것에서 아룸다움과 애정을 느낀다. 그의 작업실에 있는 테이블과 램프는 모두 1940~50년대 물건이다.


* 자세한 내용은 루엘 4월호를 참조하세요!


Credit

  • 에디터/ 송원석
  • 글/ 남훈(란스미어 브랜드 매니저)
  • 포토그래퍼/ 신선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