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스커트의 시크함과 과함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아찔하리만큼 짧아진 길이의 미니스커트들로 S/S 런웨이를 수놓은 디자이너들. 한 끗 차이로 ‘시크함’과 ‘과함’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이 아이템을 패셔너블하게 소화하기 위해 우리는 아주, 아주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 아찔한,섹시한,쇼트,칼럼,엘르,엣진,elle.co.kr :: | :: 아찔한,섹시한,쇼트,칼럼,엘르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짧은 헴라인에 대한 나의 첫 번째 기억은 이렇다. 네 살 즈음이었다. 1960년대 끝자락에 처음으로 ‘수영복’이라는 아이템을 대면했다. ‘스피도’의 네이비 컬러 원피스 수영복. 가슴팍엔 화이트 앤 레드 스트라이프가 그어져 있고 마치 ‘그곳’을 가리기 위한 의도라도 배어 있는 듯 허리 아래쪽으로 팔랑거리는 러플들이 스커트처럼 달려 있던 수영복. 당시 내 눈엔 그 러플들이 그렇게 쓸데없어 보일 수 없었다. 그 시절 나를 포함한 이웃집 아이들은 이미 모두 병원놀이, 소꿉놀이 등을 열심히 하다가 아무런 악의 없이 서로의 가장 사적인 부분을 보여주곤 했으니까. 시간이 흐른 뒤 내가 내린 결론은 이랬다. 그 러플 스커트는 결국 어른들이 마음 편하기 위해 장식했던 거라고. 사실 10세 이하의 아이들이 서로의 성기를 ‘성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은 드무니까. 서로의 옷차림에 날카롭게 신경 쓰는 일은 더더욱. 그렇게 나의 유년기는 흘러갔다. 두 번째 기억은 1980년대 중반으로 넘어간다. 뉴욕으로 거처를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어느 날. 이자이아(Isaia)의 라이크라 미니드레스를 본 순간, 저걸 입고 움직이다 실수로 나의 두 다리 사이가 만천하에 공개된다 할지라도 상관없겠다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들었다. 허나, 그 시절의 난 스쿨 걸의 상징과도 같은 니삭스와 허벅지 중간쯤 오는 플리츠 스커트에 충성을 맹세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나 뉴욕 나이트라이프의 화려함은 나의 단정한 룩에 대한 신념을 단번에 깨부실 만큼 강렬했다. 마이크로 미니스커트는 없어서는 안 될 아이템이었다. VPL(Visible Panty Line 옷 위로 드러나는 팬티 실루엣)이 사회적 신조어로 대두됐던 시절이다. 잊을 수 없는 날들이 이어졌다. 늘 클럽에 함께 다니던 친구 데니스는 어느 날 “라이크라 소재의 미니드레스 위로 팬티 라인이 드러나지 않게 멋지게 소화하는 법은 아래위 속옷을 모두 생략하는 것 아닐까?”라고 웃으며, 그렇지만 진지하게 속삭였다. T팬티가 막 하나 둘 출시되기 시작하던 때였고, 데니스의 말은 상당히 일리 있어 보였다. 이 클럽에서 저 클럽으로 옮겨 다닐 때 택시에 타고 내릴 때마다 혹여 그곳이 보일까 조심조심 움직이며 걱정하긴 했지만 팬티 라인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엉덩이로 비웃음을 사고 싶진 않았던 난 팬티를 입지 않은 채 밤 외출을 단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나와 데니스가 그럴 수 있었던 건 그 시절의 클럽이란 팬티 하나 입지 않은 것 따윈 아무것도 아닌 광란의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반쯤 벗은 채 춤추며 뛰어다녔고, 화장실 변기 위에서 섹스하는 것쯤은 일반적인 일이었으며, 때로는 환호하는 관중들 앞에서 남녀가 사랑을 나누기도 했으니까(클럽 ‘Bentley’의 수요일 밤이 특히 그랬다). 혹시라도 우리의 그곳이 보였다 할지라도 그 누구도 놀라지 않는 시절이었고(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그랬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어렸다. 낮에는 속옷부터 블랙 혹은 그레이 타이츠, 로버트 클레제리의 펌프스를 꼼꼼히 챙겨 입고 신은 채 오피스에 앉아 있다가 밤에는 살을 에는 한겨울 추위 속에서도 속옷과 스타킹을 생략한 채 훤히 드러난 허벅지로 거리를 쏘다니는 무모한 짓을 감행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런데도 린지 로한과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사적인 부위가 공개된 파파라치 사진엔 나 역시 흠칫 놀랐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그들은 진정 ‘과함’과 ‘수용 가능함’의 경계선을 몰랐던 것일까? 조금의 망설임, 아니 약간의 예의라도 있었다면 자신들을 향한 수십 대의 카메라 앞에서(비록 팬티는 서랍 속에 놓고 나왔을지라도 그들에겐 오른쪽과 왼쪽 ‘손’이라는) 치마를 살짝 눌러 그곳을 가려줄 수 있는 훌륭한 도구가 있었다. 나는 여성뿐 아니라 남성의 누드까지도 종종 마주할 수밖에 없는 직업에 종사하고 있지만 엉덩이와 성기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공공장소 옷차림이라는 건 분명 ‘과함’의 선을 넘어가는 일이다. 이 말인 즉슨, 스트리퍼들조차 그곳을 보일 때와 보여줘선 안 될 순간과 장소를 알고 있다는 말이다. 19세기 영국의 보수파 정치인이었던 로드 바푸어(Lord Balfour)는 스커트와 연설을 비교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 둘은 모두 주제를 충분히 커버할 수 있을 만큼 길어야 하며, 동시에 대중의 흥미로움을 자아낼 수 있을 만큼 짧아야 한다고.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나는 런웨이를 바라볼 때면 늘 쇼가 끝난 뒤 과연 이 아이템 중 어떤 것이 쇼룸의 행어에 웨어러블하게 순화된 버전으로 걸려 바이어들의 많은 러브콜을 받게 될지에 대해서 고민한다. 그리고 디자이너들이 과연 이 쇼를 통해 리얼웨이로 ‘무엇을 어떻게 입으라’고 말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나처럼 런웨이와 리얼웨이를 동일시하지 않는 디자이너 중 하나인 제이슨 우는 이렇게 말한다. “런웨이가 데일리 웨어를 있는 그대로 제시한다고 말할 수는 없죠. 런웨이는 “어떻게 입을 것인가’에 대해 영감을 주는 대상일 뿐이에요. 이를 데일리 웨어에 적합하도록 만드려면 마치 음식에 각종 조미료로 간을 맞추듯 적절한 조리 과정이 필요하죠.” 그래서일까. 이번 시즌 런웨이에 대거 등장한 허벅지가 다 드러나는 미니스커트, 보디수트, 그리고 쇼츠들은 내게 향수와 불안감을 동시에 선사했다. 일부 디자이너들의 의상은 “어떤 종류의 팬티이든 입기를 포기하라!”고 외치는 듯했고, 나는 끈임없이 ‘리얼웨이’로의 변환을 고민했으니까. 그렇다면 왜 디자이너들은 너도나도 극단적으로 짧은 헴라인을 선보인 걸까? 무엇보다 확실한 것은 런웨이에 이런 바람이 부는 데는 분명 사회적인 분위기가 한몫했다는 것이다. 계속되는 경제 불황으로 살아남기조차 힘든 요즘의 상황에서 컬렉션 라인 중 재킷과 톱에 집중하는 것은 디자이너들이 선택한 나름의 대안이다. 여성 소비자들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상황에선 보다 눈에 잘 띄는 재킷이나 톱을 구입해 이미 옷장에 구비돼 있는 팬츠, 스커트와 매치하는 편이 현명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그들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울트라 미니 헴라인’으로 대변되는 시즌 트렌드를 체화하기 위해 먼저 시도해본 것은 쇼츠였다. 각양각색의 쇼츠를 입어본 결과 스포티한 쇼츠야말로 가장 손쉽게 시도할 수 있는 아이템일뿐더러 오피스에도 가장 잘 어울린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바람이 잔뜩 들어간 듯한 블루머나, 펄럭이는 탭 팬츠, 이번 시즌 유난히 도드라진 V 커팅 쇼츠의 보디수트들도 시도해봤다. 그러나 이들을 내가 걸쳤을 때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점은 ‘예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영화 의 캐롤 베이커 같은 분위기는커녕 성형외과를 주제로한 미국 TV 시리즈 수술대에 당장이라도 올라야 할 환자 같았다고 할까). 그러나 이 아이템들을 나의 어시스턴트들이 입는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다. 거울에 비쳤던 나의 모습과는 달리 생기발랄한 그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예쁘고 사랑스러울 것이다. 디자이너 데렉 렘은 이번 시즌의 이러한 가볍고 ‘영’한 무드로 가득한 아이템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흥겨운 수영장을 연상시키죠. 아니면 글래머러스한 몸을 가진 패롯 케이(Parrot Cay)가 여유롭게 캐러비안 해변가에서 브런치를 즐기는 장면이랄까요.”그렇다면 이번 시즌 더 넓은 선택권을 제공하는 미니스커트의 경우는 어떨까. D&G의 라피아 뷔스티에 미니드레스, 디올의 란제리 슬립 드레스, 샤넬의 시폰 플로럴 프린트 드레스, 지방시의 저지 소재 러플 드레스 등은 보기만 해도 눈이 휘둥그레지는 아름다운 아이템들은 쭉 뻗은 매끈한 다리를 가지고 있지 않은 이들에게조차 도전의식을 재고시킬 것이다. 하지만 시도하기에 앞서, 너도 나도 이런 질문을 던질 것이 분명하다. 다리 사이가 보일 만큼 짧은 헴라인은 오피스에서 속옷이 보인다 할지라도 태연할 수 있는 워너비들에게나 어울리는 것 아닐까? 뭐,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도 의견 대립이 심했던 것이 바로 이 ‘미니스커트’라는 아이템 아닌가. 1966년 전미여성기구를 설립한 베티 프리던(Betty Friedan)이 20세가 넘은 이들이 미니스커트를 입는 것은 품위 없는 일이라며 격렬히 반대하는 동안에도 글로리아 스테이넘(Gloria Steinem)은 미니스커트를 유니폼처럼 입어댔으니 말이다. 그리고 지금은 21세기다. 요즘의 쇼퍼들도 과연 최신 트렌드를 논하며 섹슈얼한 옷차림의 정치성에 대해 이야기할까? 이에 대해 묻자 “고루한 사고방식이죠.”라고 제이슨 우는 짧게 대답한다. 문득 지난여름 어느 날에 대한 기억이 떠오른다. 인턴 에디터 중 한 명이 폴카 도트 프린트의 아주 짧은 점프수트 차림으로 출근했다. 그녀가 걸어갈 때마다 사람들의 고개가 돌아갔고, 미간엔 주름이 잡혔으며, 출근 복장을 어디까지 허용하는 것이 옳을지에 관한 이야기가 몇날 며칠 계속됐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나는 그녀 편을 들었다. 패션 잡지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서로의 퍼스널 스타일에 대해 옳고 그름을 왈가왈부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 나의 입장이었다. 그것도 아직 학생 신분인데다가, 돈도 거의 받지 않고, 클로젯 룸에서 하루종일 샘플 제품들을 챙기느라 여념이 없는 인턴에 대해서 말이다. 그녀가 저지른 유일한 실수는 그저 어떤 슈즈를 매치할지 몰랐다는 것뿐이다. 플랫 슈즈를 선택했다면 의 오드리 헵번이 보여준 앙큼한 사랑스러움과 활동성을 함께 보여줄 수 있었을 것을, 그녀는 의 헤더 그래험을 연상시키는 청키한 플랫폼을 선택했고, 그게 모든 이들의 입에 그녀의 이름을 오르내리게 만든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이러한 사소하지만 중요한 스타일링의 차이는 이번 시즌의 ‘울트라 미니’와 옛날 옛적 퇴폐적인 클럽 문화를 대변하던 미니를 구분 짓는 결정적 요소이기도 하다. 이번 시즌 디자이너들이 선택한 미니는 훨씬 건강하고, 스포티하며, 아름다운 감성으로 가득하다. 이번 시즌의 미니스커트와 드레스들은 날카롭게 재단된 테일러드 재킷, 베스트, 톱들과 매치하면 그 매력이 배가되며, 이는 이번 시즌의 미니 아이템을 관통하는 스타일링 키워드이기도 하다. 이렇게 해석된 미니 아이템들은 ‘밤의 여인’들을 연상시키기는커녕 오피스 룩으로도 훌륭한 위력을 발휘한다. 그래도 의심과 걱정이 앞선다면, 데이 타임에는 플랫 슈즈를, 이브닝 타임에는 파워풀한 샌들이나 관능적인 스틸레토힐과 매치해 보는 것은 어떨까. 물론 아무리 이러한 공식을 적용해도 ‘해가 진 뒤에만’ 입을 수 있는 아이템들도 있다. 린지 로한과 함께한 웅가로의 마이크로 미니드레스(프런트로에 있는 이들도 식겁했다!), 하나의 아트 작품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아름다웠지만 ‘상의’와 ‘드레스’ 경계를 무색하게 만든 질 샌더의 미니드레스 등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겠다. 그러니 부디 눈이 튀어나오게 만들 만큼 아찔한 드레스들을 무슨 일이 있어도 입고 싶다면, 당신이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계속해서 고개를 돌릴 거리의 수많은 사람들, 온갖 휘파람 소리, 주변인들의 입에 수없이 오르내릴 긴 시간들에 대해 철저한 마음의 준비를 하기를. 허나, 이를 모두 이겨낼 자신이 충만하다면, 즐겁게 그 순간을 즐기는 것이 최고의 솔루션일 것이다. 결국 2010 S/S의 온갖 미니 아이템들을 보고, 또 보고, 입어 보고, 또 입어본 나의 선택은 지방시다. 딱 좋을 만큼 우아하고 세련된, 리카르도 티시의 미니드레스. 길이도, 실루엣도, 딱 두 다리 사이가 드러날 걱정을 안해도 좋을 마지노선을 지켰다. 옛 시절처럼 속옷을 입지 않은 채 집을 나서는 일은 일어날 리 없지만 그 드레스를 몸에 걸치는 순간 나는 혹여 드러날 나의 두 다리 사이에 대한 모든 걱정만큼은 잊을 것이다. 자신감 없이 움츠러들면 빛바랠 그 드레스의 아름다움이 너무나 아까우니 말이다.*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4월호를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