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하고 대담한 포스의 다이앤 폰 퍼스텐버그 | 엘르코리아 (ELLE KOREA)

패션계에서 다이앤 폰 퍼스텐버그는 살아 있는 아이콘으로 통한다. 아주 섹시하고 대담하며 강하게 내뿜는 포스는 감히 넘볼 수 없는 것들이다. 62세라는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활력 넘치는 그녀를 <엘르>가 만났다. :: 다이앤 폰 퍼스텐버그,열정적인,섹시한,아름다운,엘르,엣진,elle.co.kr :: | :: 다이앤 폰 퍼스텐버그,열정적인,섹시한,아름다운,엘르

긴 테이블에 20여 명 남짓한 스태프들, 다이앤 폰 퍼스텐버그는 이들에게 둘러싸여 디자인 스튜디오에 앉아 있다. 스튜디오를 걸어다니는 타이트한 블랙 드레스 차림의 모델은 머리에 커다란 블랙 리본을 달고 있다.“저 어때요? 예뻐요?” 모델이 히프에 손을 얹은 채 한 바퀴를 회전한다. “그래, 굉장히 예뻐.” DVF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나단 젠덴(Nathan Jenden)이 먼저 고개를 끄덕인다. “내 생각엔 백이 필요할 거 같은데.” 다이앤의 말이다. “글쎄, 리본만으로 충분하지 않나요?” 그 말에 다이앤은 테이블 위에서 주름 장식의 퍼플 가죽 백을 들어 보인다. “너무 여성스러워지지 않을까요.” 젠덴의 투정스러운 반응에 다이앤은 의자 깊숙이 나른하게 몸을 기댄다. 그녀의 눈은 퍼플 백을 든 모델을 응시한다. “이게 완벽해!” 제법 무더운 6월의 오후, 밖은 도로마저 녹일 정도로 이글거리지만 뉴욕 미트패킹에 있는 DVF 사무실만큼은 에어컨 덕분에 영하의 서늘함이 느껴진다. DVF 팀은 2010 리조트 컬렉션 피팅 때문에 분주했다. 35벌의 옷들은 생 트로페즈 요트에서 이제 막 빠져나온 듯하다. 대개 피팅할 때는 적지 않은 의견 충돌과 언짢은 기분 그리고 때로는 눈물 등이 이어질 때가 있지만 이 정도면 무난해 보인다. 다만 스키니 진을 입은 영국 디자이너 젠덴, 에지 있는 블랙 차림에 브로그 슈즈를 매치시킨 스타일리스트 그레이스 콥(Grace Cobb)만이 모델들 사이에서 무심하게 튀어 보인다. “날 따라올래요?” 피팅 과정 혹은 퍼플 주름 백에 시들해졌는지(이 백은 다음날 쇼에서 블랙 드레스를 입은 모델과 함께 재등장했다) 다이앤이 앞장선다. 몇 분 후 우린 빌딩의 맨 위층인, 사방이 유리로 된 다이아몬드 형태의 펜트하우스로 올라갔다. 단번에 눈에 들어오는 밀리터리 스타일의 고급 텐트, 그 안에는 침대가 놓여져 있는 이유는 아침마다 쏟아지는 햇살을 피하기 위한 것이다. 만난 지 겨우 5분 만에 침실이 공개됐다. 더군다나 옷장과 욕실까지 보여준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만 여기에서 프라이버시라 불릴 만한 건 아무것도 없다. 1층 스토어에서 디자인 스튜디오와 오피스 그리고 다이앤이 살고 있는 맨 위층 공간에 이르기까지 건물의 모든 것들이 DVF 브랜드의 연장이니 말이다. 회사와 그녀의 옷, 이미지 그리고 라이프 스토리는 늘 그렇듯이 복합적으로 연결돼 있다. 이 룰은 항상 적용되기 때문에, DVF 의상을 구입하는 것은 곧 그녀의 스토리를 사는 셈이다. 유리창을 통해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을 바라보면서, 다이앤이 뉴욕의 허공을 향해서 손을 들어올린다. “이곳이 바로 내 세상이에요!”그녀의 스토리를 간략하게 소개하면 벨기에 이민자인 다이앤 폰 퍼스텐버그는 극적인 성공 스토리의 소유자로, 23세엔 드레스 비즈니스를 시작했고 29세엔 커버를 장식하는 거물이 됐다. 게다가 오스트리아 왕족과 결혼, 연이은 이혼도 뜨거운 이슈였다.드레스는 경이로운 수치로 팔려나갔다. 도처에서 눈에 띄었기 때문에 1970년대 후반 DVF 드레스는 더 이상 특별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다 20여 년이 지난 후, 딸 세대들이 다시 찾기 시작했다. 빈티지 숍에서 이들은 어머니의 오래된 랩 드레스들을 사들였다. 컴백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고, 1997년 다이앤은 비즈니스로 다시 복귀했다. 1 지인들과의 사진이 한쪽 벽면에 모아져 있다.2 다이아몬드 형태로 된 펜트 하우스 내부.3 흑인 모델을 유난히 많이 기용하는 다이앤.4 늘 즐거운 무드가 감도는 DVF의 쇼장.5 컬렉션을 준비하는 분주한 풍경.다이앤 폰 퍼스텐버그는 어떻게 DVF가 될 수 있었을까? 그녀를 이해하려면 먼저 배경부터 들여다봐야 한다. 1945년 다이앤의 어머니는 나치 대학살에서 살아남았다. 강제수용소에서 풀려나왔을 때 몸무게는 불과 23kg, 의사는 임신이 불가능하다고 경고했지만 1년 후 새해 전날에 다이앤이 태어났다. “말하자면 생존자의 딸이에요. 내가 어떤지를 설명해주는 것이지요.” 다이앤은 벨기에에선 특권층으로 자라났고, 틴에이저 때는 스위스와 영국의 기숙 학교를 다녔다. 패션에 눈뜨기 시작했던 때가 열다섯 살 때, 예거에서 캐시미어 스웨터를 사들이고 옥스퍼드의 백화점 엘리스톤 앤 카벨스에서 처음으로 힐을 장만했다. 그녀의 갈망은 늘 그렇듯이 ‘독립적인 여성’이 되는 거였다. “어릴 적 친구의 엄마가 비즈니스 우먼이었어요. 그 애의 생일 파티 때 수트 차림으로 서둘러 온 듯한 그 모습이 정말 근사해 보였죠.” 다이앤은 18세 때 첫 남편 에곤을 만났다. 제네바 대학에서 처음 만났는데 그는 뉴욕에서 거침없는 자유로움을 누리고 있었다. “하룻밤에 그는 세 군데의 칵테일 파티, 디너, 두 곳의 무도회, 그리고 게이 바에 들릴 수 있었어요. 나 역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면서 그 중앙에 서게 됐고요.”이 커플은 다이앤이 22세 때 결혼했지만 에곤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는 건 그다지 매력적인 삶이 아니었다. “결혼은 내 목표가 아니었어요. 무엇보다도 커리어를 갖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모델 일에 발을 디뎠다가 당시 이탈리아 코르티나에서 니트 공장을 운영 중이던 친구 안젤로 페레티(Angelo Ferretti) 밑에서 견습 과정을 밟기 시작했다. 22세 때 아들 알렉산드르가 태어난 지 두 달 후, 다이앤은 미국 편집장 다이애나 브릴랜드에게 직접 디자인한 드레스 컬렉션을 보여주었다. 브릴랜드는 드레스들을 무척 마음에 들어 했고, 1970년, 뉴욕에서 작은 쇼를 열었다. 허리 라인이 강조된 심플한 셔츠 드레스들이었다.처음엔 회사가 없었기 때문에 모든 걸 스스로 헤쳐나갔다. 이탈리아에서 선적이 들어오면 공항으로 뛰어나가 각 스토어별로 주문들을 체크했다. 1971년 패션에 대한 열정이 확고하고 일에도 열심이었던 그녀에게 둘째 타티아나가 태어났다. DVF는 다시 창고 안으로 물러나는 듯했지만 1973년 디자인한 랩 드레스는 그야말로 획기적이었다. 그 해에만 일주일에 1만5천여 벌의 드레스가 팔려나갔으니 말이다. 저녁 무렵 다이앤과 에곤은 여전히 뉴욕 사교계의 중심에 서 있었다. 앤디 워홀과 팩토리 피플, 팔로마 피카소, 룰루 드 라 팔레즈 등이 친구였다. 파티를 열지 않을 땐 클럽에 갔다. “스튜디오 54는 환상적인 나이트클럽이었어요. 1~2년 정도밖에 지속되지 않았지만, 정말로 소중한 순간들이었죠. 처음 스튜디오 54로 향하던 날, 할스톤이 그의 집에서 비앙카(재거)의 생일 파티를 열어주고 있었어요. ‘자, 그럼 다들 클럽으로 몰려가자고!’ 할스톤의 말에 비앙카가 앞장섰고, 우린 다들 그곳에 있었죠.” 다이앤은 당시 그렇게 와일드하게 즐기진 않았다고 털어놓는다. “온갖 종류의 약물들이 있었지만 깊숙이 빠져들진 않았어요. 대개 마리화나를 피우는 정도였으니까.” 랩 드레스의 성공은 에곤과의 파국과 동시에 일어났지만 이들은 여전히 친구 사이로 지내고 있다. 다이앤은 늘 그렇듯이 에곤을 존중하고 애정을 담아 얘기한다. 의 라이언 오닐과 시절의 리처드 기어를 비롯해 그녀의 애정사 역시 전설의 일부다. “다이앤이라는 이름은 사냥의 여신이라는 뜻이에요. 난 늘 이런 판타지가 있었죠. 여성의 몸에 깃든 남성적이고 수렵적인 강인함 말이에요. 그 일부가 바로 헌팅이라 할 수 있어요.” 다이앤은 젊은 시절 ‘남자 사냥꾼’으로 묘사되는 걸 즐겼다고 한다. “내가 원치 않는 여성상 중 하나가 그가 내일 전화를 걸어올까?’라며 안절부절하는 거예요. 그런 걱정은 남자들 몫으로 남겨둬야 하니까.” 에곤과 두 번째 남편 배리 딜러(Barry Diller) 그리고 세 번째를 비롯해 그녀의 삶의 세 로맨스에 대해 묻자 다이앤이 잠시 머뭇거린다. “세 번째는… 비밀스러웠죠. 아마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를 텐데. 그는 내게 굉장히 중요했고 그를 정말로 사랑했어요. 이름은, 마크 페플로(Mark Peploe)예요.” 40대 중반 다이앤의 연인 마크는 각본을 맡았던 영국의 시나리오 작가다.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죠. 처음 듣는 얘기일 거예요.” 다이앤의 화제는 파라마운트픽처스의 CEO였다가 지금은 IAC(InterActiveCorp)의 회장인 배리 딜러에게로 넘어간다. 그녀에 따르면 그는 의외로 조심스러운 성격이었다고. “굉장히 부끄러워했어요. 처음 만났을 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내성적이었으니까요. 그러다가 나중엔 완전히 마음을 열었죠.” 1975년에 만난 이들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거물급 젯셋족다운 삶을 즐겼다. 5년 후 다이앤은 딜러를 떠났다. “젊은 나이인데도 핍스 애비뉴에 아파트와 교외에 저택이 있었어요. 게다가 예쁘고 부유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 재밌는 세상을 꿈꿨죠.” 이들은 몇 년간 어울려다니면서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했다. 이런 이유로 딜러와 다이앤이 2001년 결혼했을 때 언론의 반응은 그다지 곱지 않았다. 하지만 는 이를 ‘전략적 합병’이라 불렀지만 다이앤만큼은 ‘내 인생 최고의 남자’라 칭했다.아침부터 무더운 맨해튼의 어느 날, 미국의 패션 기자들은 DVF 2010 리조트 쇼를 취재하느라 분주했다. 미풍이 불어오듯 경쾌하고 섹시하지만 저속하지 않은 옷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매끄럽게 진행된 이 날의 쇼를 뒤로한 채 다이앤은 팀원과 친구들 그리고 몇몇 저널리스트들을 위층으로 초대해 점심 모임을 가졌다. 나단 젠덴과 그레이스 콥은 발코니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들에게 전설의 디자이너와 일하는 것이 어떤지 물어봤다.“신뢰와 충실함, 그녀를 설명해주는 말이죠.” 지난 5년간 DVF 쇼 스타일리스트로 일해온 콥의 말이다. “쇼가 시작되기 일주일 전, 일곱 개의 옷장엔 옷들이 가득해요. 내 손길을 기다리는 디자인들인데 느낌이 아주 특별하죠. 다른 어디서도 느낄 수 없는 묘한 감정이에요. 다이앤은 누군가를 신뢰하면 그야말로 전폭적으로 일을 맡겨버리거든요.” “그녀는 늘 당신의 안부를 물어요.” 거의 8년 가까이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젠덴이 입을 연다(다이앤은 그의 딸 대모이기도 하다). “회사의 누군가가 아프면 최고의 의사를 부르죠. 관대함과 후함이 넘쳐나요!” 젠덴에 따르면 다이앤은 여럿이 어울리는 걸 굉장히 좋아한다고 한다. “뉴욕에서 이 건물을 찾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이애나 로스나 제니퍼 로페즈도 자주 방문해요. 어쩔 땐 마치 연예계 최고 스타들이 출연하는 유명 토크 쇼인 ‘파킨슨 쇼’의 배우 대기실에 있는 것 같아요. 최고의 게스트들이 모인 디너 파티가 어디서 열리느냐고 묻는다면? 바로 여기에요! 다들 이곳으로 모이니까.” 이런 점은 다이앤이 젠덴을 팀으로 끌어들인 과정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처음 만났을 때 신예 디자이너였던 젠덴은 다이앤을 잘 알지 못했다. 아는 것이라곤 유일하게 그녀의 랩 드레스뿐이었으니 말이다. “다이앤은 이랬어요. ‘디너에 같이 갈래요? 날 더 알고, 내 친구들도 만나보지 않을래요?’ 난 승낙했고 해리슨 포드, 믹 재거, 블론디 등을 만날 수 있었죠. 그리곤 6개월 후부터 여기서 일하기 시작했어요.”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이 무엇인지 물었더니 흔한 대답 대신에 의외의 말이 들려온다. “난 장수거북이 같은 느낌이에요.” 다이앤은 일주일에 두 번 요가를 하고 형틀을 연상시키는 필라테스 기구를 이용한다. 최근 보르네오 섬에서 휴가를 보낼 때는 매일 바다 수영을 하고 정글을 하이킹하기도 했단다. “사람들이 왜 성형하지 않는지를 물어요. 하지만 한 번 시작하면 내가 불안정해질 거 같아요.” 지금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이앤이 은퇴할 준비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것들… 내게 얼마나 많은 시간이 남겨져 있을지는 몰라도 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서예요. 이걸 다하려면 앞으로 20년은 더 걸릴 테니까요!” *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4월호를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