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된 노래, 밥 딜런 | 엘르코리아 (ELLE KOREA)

한번쯤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뮤지션 혹은 시인. 전설을 향해 순항 중인 밥 딜런에 관한 이야기.::알베르토, 알베르토몬디, 비정상회담, 알차장, 록뮤직, 록뮤직추천, 밥 딜런, 비틀즈, 로큰롤, elle.co.kr, 엘르:: | 알베르토,알베르토몬디,비정상회담,알차장,록뮤직

“이해하지 못 하는 것을 비판하지 말라” Don't criticize what you can't understand.  밥 딜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가 개명했을 때, 유행에 편승하지 않은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개척해나갈 떄 때, 음악 스타일을 완전히 바꿀 때, 그리고 2016년에 노벨 문학상 수상식에 참석하지 않았을 때···. 이해하기 어려운 그의 태도는 화제가 되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가문의 영광으로 여길 노벨상 수상식에 선약이 있다며, 참석하지 않은 그를 이상하게 보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가 살아온 인생을 아는 이라면 그다운 행동이라 여길 것이다. 그는 남의 눈치를 보는 스타일이 절대 아니었다. 밥 딜런은 개인과 모든 인간들의 자유를 위해 투쟁하며 살아온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1941년 미네소타주에 위치하고 있는 둘루스(Duluth)라는 작은 마을에서 로버트 앨런 지머맨(Robert Allen Zimmerman)이란 이름으로 태어난 밥 딜란은 대학 진학 전까지 미네소타주에서 살았다. 친가는 우크라이나 출신이며, 외가는 리투아니아 출신의 유태인이라 유대인식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성공한 사람은 아침에 일어날 때부터 밤에 잠을 잘 때까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사람이다” A man is a success if he gets up in the morning and goes to bed at night and in between does what he wants to do.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리틀 리차드와 엘비스 프레슬리의 커버 밴드에 참여하면서 가수 활동을 시작했다. 20살 때 미네소타 대학교에 입학해 캠퍼스 근처에 있었던 ‘텐어클락 스콜라(Ten O’Clock Scholar)’라는 커피숍에서 공연하면서 인지도를 쌓으면서 ‘밥 딜런’이라는 예명을 쓰기 시작했다(개명 이유를 물어보니 그는 “사람들이 잘못된 이름으로, 잘못된 부모님 밑에서 태어날 수도 있잖아. 이럴 때는 스스로 원하는 이름을 고르면 돼. 여기는 자유의 땅이니까"라고 대답했다). 60년대 초반은 록앤롤 역사가 시작되고 있었던 때였으나 밥 딜런은 그보다 조금 더 진지하고 현실적으로 느껴졌던 포크 뮤직을 선택했다. 미네소타대학에 다니던 1년간 그는 기타와 하모니카를 연주하면서 노래를 했는데, 이내 학교를 그만 두고 당시 뉴욕의 모든 예술가들이 모여 살았던 그리니치 빌리지로 이주했다. 그러다 22살 때 컬럼비아 레코드에 스카우트 되면서 <밥 딜런>이라는 이름의 첫 번째 앨범을 발매했다. 하지만 그의 앨범은 5천장 밖에 팔리지 않았고 레코드 사는 딜런을 버릴 생각이었지만, 전설적인 가수인 조니 캐시(John R. ‘Johnny’ Cash)가 딜런의 잠재력을 알아보면서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레코드사의 지지를 얻어 그는 공식적으로 이름을 바꾸고 알베르트 그로쓰만(Albert Grossman)이라는 새로운 매니저를 고용해 더 열심히 활동을 시작했다. 그때 밥 딜런은 사랑하는 이도 만나게 되었다. 이미 유명한 스타였던 동갑의 가수 조앤 바에즈(Joan Baez)와 사귀며 함께 같은 무대에서 서면서 능력 있는 뮤지션으로 인정 받기 시작했다.“나에게는 흑백, 우파나 좌파는 더 이상 없다. 위와 아래만 있고, 아래는 바닥에서 정말 가깝다. 내가 정치 같은 사소한 일에 신경 쓰지 않고 내 갈 길을 가려고 노력한다. 그것은 정치와 아무 상관도 없다. 나는 보통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고 특히 그들이 받는 고통에 대해 생각한다.” There's no black and white, left and right to me anymore; there's only up and down and down is very close to the ground. And I'm trying to go up without thinking about anything trivial such as politics. They has got nothing to do with it. I'm thinking about the general people and when they get hurt.1962년 12월 두 달 동안의 런던 생활 후 두 번째 앨범인 <자유분방한 밥 딜런(The Freewheelin’ Bob Dylan>을 발매했다. 이 앨범은 처음부터 큰 관심과 인기를 얻게 된다. 대부분 노래들은 서구 사회를 비판하거나 인권 이슈에 대해 거리낌없이 말하는 민중 가요였기에 밥 딜런의 인권 운동가로서의 이미지를 창출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 ‘Blowing in the Wind’와 ‘A Hard Rain’s Gonna Fall’라는 곡이 인권 운동가들을 위한 대표적인 곡이 될 정도였다. 첫 앨범과 비교하면 두 번째 앨범부터 밥 딜런의 작사 능력이 향상되고 문학적인 수준도 확연히 높아졌다. 이 변화가 당시 사귀었던 여자친구 수즈 로톨로(Suze Rotolo)때문이라고 여기는 팬들도 많다. 그때 밥 딜런이 여자친구와 동거를 했는데 미국공산당 당원인 부모님 밑에서 자랐던 수즈의 좌파 정치적 가치관은 그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현실 사회 인식과 깊고 풍부한 의미를 담은 문학적인 가사 덕분에 결국 그는 노벨 문학상까지 수상하게 되었다.“내가 누구인지 상관없이 자기 자신 그대로 사는 것을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All I can do is be me, whoever that is. 밥 딜런의 전설이 시작된 건 <자유분방한 밥 딜런>부터였다. 당시 20대들은 딜런이 가수라기 보다 그들의 가치관과 입장을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노래 가사 속에는 반전, 핵무기 철폐, 인권 등 이 전에는 자유롭게 말하지 못했던 주제들이 등장한다. 전세계적으로 제일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던 비틀스도 그의 두 번째 앨범을 듣고 사랑에 빠져 음반이 망가질 정도로 자주 들었다고 한다. 서로의 팬이었던 밥 딜런과 비틀스는 1964년 8월 뉴욕의 델모니코 호텔에서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이때 밥 딜런은 마약을 접해본 적이 없었던 비틀스에게 마리화나를 건냈고 이는 비틀스의 음악적 변신을 돕는 계기가 되었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반면 그는 살면서 처음으로 굉장히 맑은 정신으로 깨어 있다며, 자신의 말을 다 기록하라고 매니저에게 말할 정도였다. 이들의 만남 이후 비틀스는 기존의 대중적인 음악 스타일에서 벗어나 보다 깊이 있는 음악 세계를 보여주게 되었다.“바람이 어느쪽으로 부는지 알기 위해서 기상예보관이 필요하지는 않다” You don't need a weatherman to know which way the wind blows. 비틑스와 마찬가지로 그 역시 1965년 3월 발매된 앨범 에서 처음으로 전자 악기를 사용하면서 음악적인 변신을 꾀했다. 1965년 뉴포트 폴트 페스티벌에 선 그가 전자 악기를 사용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야유를 했다. 그의 새로운 음악 스타일에 대한 팬들의 반발이 많았지만, 새 싱글인 ‘Like a Rolling Stone’은 미국 차트에서 2위까지 오르는 등 지금까지도 전설적인 노래로 남아있다. 1966년에 발매된 앨범 는 포크 문화와 실험적인 록 음악을 섞어 밥 딜런이 새롭게 시도한 음악적 스타일이 담겨 있다. 그때부터 콘서트 때마다 1부는 포크 음악, 2부는 밴드와 같이 록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포크를 저버렸다며 그에게 실망한 팬들은 있었지만 그는 여전히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60-70년대는 딜란의 황금기였다고 볼 수 있는데 그 자신의 인생은 무대와 레코드실의 반복이었다. “많은 관심은 부담이 된다. 예수 역시 사람들의 지나친 관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종종 사라진다”  Being noticed can be a burden. Jesus got himselg crucified because he got himself noticed. O I disappear a lot. 많은 사람들은 관심 얻기 위해서 노력을 하는 이 시대에 그는 오히려 더 조용히 살아 왔다. 여전히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음악을 하고, 가사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투어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 그들에게 영감을 주면서 말이다. 자유와 투쟁의 상징, 노래하는 시인, 반전 운동가 등 그를 수식하는 단어는 많지만 그를 온전히 표현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음악이다. 그 속에는 시대와 사람들의 생활이 투영돼 있다. 현실과 밀접한 관계를 맺은 그의 음악은 그의 인생, 나아가 현대사의 한 부분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Must Listen Mr. Tamburine Man (Bringing It All Back Home, 1965) Don’t Thing Twice, It’s All Right (The Freewheelin' Bob Dylan, 1963) It Ain’t Me, Babe (Another Side of Bob Dylan, 1964) Legendary Songs Blowing in The Wind (The Freewheelin' Bob Dylan, 1963) Like a Rolling Stone (Highway 61 Revisited, 1965) Knockin’ On Heaven’s Door (single,1973) Albe’s Favorite Subterranean Homesick Blues (Bringing It All Back Home, 1965) Hurricane (single, 1975) Tangled Up In Blue (Blood on the Tracks, 1975)PROFILE 본명인 ‘알베르토 몬디’보다 알베르토, 알차장, 알오빠와 같은 별칭으로 더 잘 알려진 마성의 이탈리안 가이. 중국에서 만난 와이프를 쫓아 한국에 왔다 정착하게 된 사랑꾼. 평화와 사랑을 믿고 인간의 따뜻한 본성을 지지하는 대인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