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로운 이나영 | 엘르코리아 (ELLE KOREA)

남프랑스의 고즈넉한 들판에서 만난 배우 이나영. 그녀의 시적인 패션 판타지아 스토리를 공개한다::이나영,배우,이나영화보,엘르화보,화보,루이비통,남프랑스,고성,들판,세벤느,커버,엘르,elle.co.kr:: | 이나영,배우,이나영화보,엘르화보,화보

모두가 알고 있듯, 삶의 여정에는 피할 수 없는 종말이 찾아오는 법이며, 그래서 우리는 잠시나마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 이나영과 원빈이 강원도의 한 밀밭에서 가족들과 국수를 나누며 치렀던 수수한 예식 소식을 전해 왔을 때, 전례 없이 아름답게 싱글의 종말을 알린 이들의 사진을 보며 푸릇푸릇한 자연 속에 둘러싸인 이 신중하고도 조용한 커플이 또 얼마나 오랫동안 우리에게 모습을 보이지 않을까, 생각한 적 있다. 더 많이 혹은 더 자주, 대중에게 잊히지 말아야 한다는 배우들의 조급함과 강박을 누구보다 잘 다스려온 고수들의 만남이었기에 그들의 시너지가 얼마나 더 커질까 가늠해 봤다. 때문에 놀랐다. 아들을 출산했다고는 믿기지 않은 모습으로 서둘러 카메라 앞에 선 이나영을 보고. 공식적인 일거수일투족 외엔 별로 알려진 게 없었던 그녀의 이야기가 몇몇 사실을 기초로 몽글몽글하게 피어나고 있을 무렵, 그녀는 공식적인 활동으로 그간의 공백을 깨면서 자신을 향한 지극히 개인적인 관심으로부터 오히려 자유로워진 게 아닌가 싶다. 그 무렵, 한 브랜드를 대표하는 모델을 넘어 자신이 선보이고 싶은 이미지를 <엘르>와의 화보 작업으로 이루겠다는 기획과 명분도 세워졌다. 예외 없이 신중했던 이번 프로젝트에서 놀라웠던 건 그녀가 적극적으로 제안한 장소에 대한 접근이었다. 에디터조차 닿아보지 못한 자연의 지점들을 그녀를 통해 물색하면서 우리는 이나영이 가진 풍경에 대한 시선이 지금 하고 싶은 이야기와 맞닿아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사람들의 스타일과 그 스타일에 반응하는 행동방식에 관심이 많은 이 여배우는 그간 작품을 할 때마다 역할과 비슷한 의상을 입고 지내려 노력해 왔던 터라 이번 <엘르>와의 작업 속 캐릭터의 배경 설정에 고심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공간의 열쇠는 그녀의 결혼식 사진과는 반대의 무드를 지닌 ‘메마르고 탁 트인 풍경’. 다 가진 여자의 아름답고도 우아한 귀환이 될 줄 알았던 이나영의 또 다른 막은 드문드문 키 작은 호손나무가 고개를 치켜든 거친 들판에서 시작된다. 그것도 프랑스 남부의 한 고성을 배경으로.지난 11월 초, 인천을 출발해 파리에 도착한 우리는 곧 프랑스 남부 도시 몽펠리에로 가는 작은 비행기에 올라야 했다. 어둑한 몽펠리에 공항에서 미리 준비해 놓은 차로 갈아타고 1시간 남짓 달려 그 옛날 고흐가 머물렀던 작은 도시 아를(Arles)에 짐을 풀었다. 그리고 날이 밝기를 기다려 다시금 차로 1시간 30분을 이동하고서야 목적지인 세벤느(Cevennes) 초입의 작은 동네 포르트(Porte)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곳엔 모서리가 둥근 중세의 건축양식과 십자군 전쟁을 치르며 이웃 마을을 겨냥하기 위해 뾰족한 모서리로 제방을 다시 쌓은 두 얼굴의 샤토 드 포르트(Chateau de Porte)가 해발 555m의 높이에 아스라이 서 있었다. 관광지와는 결을 달리하는 동네의 성향상 이 고성의 문은 1년 중 절반밖에 열리지 않고, 주변 탄광조차 문을 닫은 2002년 이후엔 주민들의 삶이 더욱 척박해졌다는 얘기를 이곳 토박이에게서 전해들을 수 있었다. “C’est La Vie!” 프랑스인들이 마치 습관처럼 내뱉는 이 말은 때로는 서글프지만 꽤 ‘쿨’해 보인다. ‘그것이 삶’인 것을 응당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공교롭게도 2002년 당시 이나영에게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숙명적인 삶과 캐릭터와의 만남이 펼쳐지고 있었다. <네 멋대로 해라>의 경진을 기꺼이 맞이하던 때였으니까. 그녀의 오랜 커리어 중에서도 이 시점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된 건 마침 프랑스 시골 마을의 운명과 시간적인 평행선에 놓인 그녀의 기념비적인 작품. 그로 파생된 ‘네멋폐인’들의 문화를 곁에서 지켜본 경험 때문이다. 당시 팬 카페의 리더를 인터뷰하고 한동안 그와 친구로 지내면서 촬영장을 순례하고 책으로 만든 대본을 되새김질해 읽으며 OST에 참여한 뮤지션의 공연을 찾아다니는 골수 팬들의 문화에 잠시 동화된 적 있었다. 드라마가 대중을, 대중이 드라마를 이런 방식으로 만나기도 하는구나, 거리를 두고 보는 것에 익숙했던 에디터라는 직업에서 이나영이 키를 쥔 <네 멋대로 해라>는 독특한 여주인공의 탄생을 지켜보는 것만큼이나 새로운 경험을 선사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 해묵은 스토리를 꺼내지는 않았다. 파워플했던 지난날의 커리어는 그녀에게 꽤 큰 숙제를 안기기도 했을 것이므로. 어떤 배우들은 얘기한다. 상대를 알고 싶다면 그 사람의 실제 모습과 만들어진 이미지 사이를 구별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하지만 구축해 놓았거나 앞으로 새롭게 구축해 나갈 캐릭터나 이미지로 존중받고자 하는 배우도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녀와는 육아의 고충이나 결혼 후 변화된 삶 혹은 얼마 후 아이가 수다스럽고 궁금한 것도 많은 나이가 됐을 때 엄마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어떻게 얘기할 건지 하는 개인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했다. 데뷔 18년 차, 그간 그녀 앞엔 여러 개의 문이 닫혔고 또 여러 개의 문이 새로이 열렸다. 그리고 여전히 그녀에게 믿음직한 제안들이 이어지고 있는 건 자신의 일을 즐겨왔기 때문일 것이다. 불현듯 등장한 동양인들로 떠들썩해진 동네를 등지고 산등성이에 오른 그녀는 해가 질 때까지 자신이 그린 풍경 속에 있었다. 그 모습을 널찍이 지켜보면서 그간 뭔가 균형이 어긋난 매력을 지닌 사람인 줄 알았던 이나영이 스스로 치열하게 찾아낸 듯한 균형의 역사를 목도한 것 같다. 하지만 이국적인 풍경에서 비주얼로 이야기를 써내려 가기로 한 그녀는 이 순간의 떳떳한 진실만 전하고 넘치는 말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