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욤 앙리가 이룬 소녀 시대 | 엘르코리아 (ELLE KOREA)

현실과 낭만이 공존하는 옷을 만드는 남자. 니나리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기욤 앙리는 낭만시대에 살고 있다. | 패션,디자이너,니나리치,기욤앙리,엘르

배우 시프카가 입은 레이스 드레스는 5550달러, Nina Ricci.화이트 버튼다운 셔츠와 테일러드코트를 입은 흠잡을 데 없이 단정한 모습의 기욤 앙리의 첫인상은 과거에서 방금 도착한 사람처럼 독특한 아우라를 풍긴다. 깔끔한 용모에 잘생긴 얼굴, 이마 위로 빗어 넘긴 굵은 머리칼은 20세기 초 파리 남자의 모습을 그대로 응축해 놓은 듯하고 얼핏 이브 생 로랑의 젊은 시절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촬영 내내 열정과 감정, 위엄이라는 추상적인 단어를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그는 “모든 사람이 각자 품고 있는 시적인 아름다움을 사랑해요. 저는 완전히 클래식함에 빠져 있는 낭만주의자이고 굳이 모던한 사람이 되려고 애쓰지 않죠”라고 했다.지난 10여 년 동안 앙리는 패션계에서 조용히 입지를 다져오면서 ‘로리타’가 어색하지 않은 앳된 여자들이 열광하는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로 자리 잡았다. 프랑스의 작은 마을 랑그르에서 태어나 아홉 살 때부터 줄곧 패션 디자이너를 꿈꿔온 그는 2003년 프랑스패션학교(Institut Francais de la Mode) 졸업 이후, 지방시 디자인 팀에 합류해 두명의 사수, 줄리앙 맥도날드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리카르도 티시 밑에서 경력을 쌓았다. 그리고 2009년, 당시 카르벵 브랜드를 막 인수한 투자자 앙리 세바웅으로부터 함께 일하자는 제의를 받게 된다. 그가 카르벵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후 약 4년 동안 카르벵은 기존의 올드함을 완전히 벗어던졌다. 파격적으로 선보인 상큼한 캔디 색상의 스커트 수트와 파스텔 톤의 오버사이즈 코트는 60년대 향수를 자극하는 동시에 프랑스 특유의 매력을 발산하면서 리한나부터 알렉사 청까지 떠오르는 스타일 아이콘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핫’한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이 같은 마법은 앙리가 2015년 디자이너로 합류한 니나리치에서도 재연되고 있다. 이탈리아 태생인 디자이너 마리아 니나리치와 브랜드의 비즈니스를 책임진 그녀의 아들 로베르트가 설립한 니나리치는 로맨틱하고 여성스러운 드레스와 향수로 오랫동안 사랑받아왔다. 이 우아한 하우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앙리는 몽테뉴 가와 프랑수아 프레미에 가에 있는 니나리치 부티크의 아카이브를 둘러본 후 귀부인스러운 브랜드의 모든 이미지를 뒤엎고 다시 시작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리고 2015년 가을 컬렉션부터 드라마틱한 변화가 시작됐다. 런웨이 위의 섬세한 드레스 위에 걸친 큼직한 남성 코트는 연인의 집에서 밤을 보낸 후 급히 떠나면서 손에 잡히는 대로 걸친 건 아닐까 하는 상상을 불러일으켰다. “니나리치의 여성은 슬립 드레스에 남성용 코트를 걸치고, 니나리치의 고혹적인 향수 ‘레르 뒤 탕’ 향기를 풍겨요. 길에서 그런 여성을 보면 ‘지금 그녀는 어디로 가는 걸까?’라는 질문보다 ‘그녀는 어디서 오는 걸까?’라는 질문이 떠오르기 마련이죠. 드레스의 상태는 어떨까요? 약간은 망가져 있겠죠. 밤새 춤이라도 춘 것처럼. 그녀의 일상은 낭만과 현실이 공존해요. 아름답지 않나요?” 앙리가 말한다. 레이스 디테일의 실크 드레스와 레이어드한 브라, 퍼 코트는 모두 가격 미정, Nina Ricci.앙리가 그리는 니나리치 걸은 젊고, 지적이며 자유분방하다. 또 “소녀 같으면서도 강인한” 여성으로 묘사된다. 이를테면 다코타 패닝(Dakota Fanning)이나 오늘 함께 촬영한 여배우 키어넌 시프카(Kiernan Shipka) 같은. 시프카는 여섯 살 때 아역으로 활동을 시작했고 최근, 드라마 <매드맨>에서 복합적인 성격을 띤 캐릭터를 완벽히 소화하며 연기력을 인정받은 10대 배우다. 사슴같은 눈망울을 가진 아역배우는 이제 레드 카펫 위의 이브닝드레스가 자연스러운 어엿한 숙녀로 성장했다. 시프카는 니나리치 드레스가 아직 투표권도 없는 어린 나이에도 어른스럽고 차분해야 하는 자신의 일상과 닮았다고 말한다. “늘 교묘하게 균형을 맞춰야 해요. 제 나이처럼 보이면서 클래식하고 섬세한 옷이 필요하죠. 바로 이 드레스처럼요.” 촬영 막바지에 접어들었을때, 시프카는 바닥까지 끌리는 빨간 스팽글 드레스를 입었다. 그녀는 거울 앞에서 살짝 어깨를 흔들며 움직이고 맨발 위로 옷단을 들춰보며 “앙리의 옷은 전부 반짝반짝 빛을 발하는 것 같아요”라고 만족스럽게 말했다. 그리고 이 모습은 영락없이 또래 여자들이 완벽한 프롬 드레스를 발견했을 때의 표정처럼 사랑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