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밥의 기술

오늘 아침 먹은 밥이 진정한 밥맛일까? 밥 짓는 도구와 쌀을 바꿨더니 태어나 처음 ‘밥맛’으로 미각을 경험해 본 여자가 여기 있다.

프로필 by ELLE 2016.05.23



맛있는 쌀밥을 짓는 일은 단순하다. 뜨겁게 달군 웍에서 현란하게 볶거나, 비법 소스로 간을 맞추는 재능이 요구되지 않는다. 깨끗하게 씻은 쌀과 물을 냄비에 담고 불에 얹는 게 전부다. 그리고 이 정도 과정으로도 밥은 적당히 맛있다. 대부분은 여기서 고민을 멈춘다. ‘국 끓이고 반찬 만들기도 바쁘니 밥은 전기밥솥이 알아서’라고 타협하기 때문이다. 만약 여기에 몇 가지 기술이 더해진다면 식탁의 품격이 달라진다. 완벽한 밥 한 그릇에는 국도 반찬도 필요 없다. 쌀밥이 그 역할을 전부 한다. 그런 밥을 식탁에 내려면 몇 가지 기술이 필요하다. 밥 짓는 도구와 주재료인 쌀, 이 두 가지를 다르게 보는 기술 말이다. 오래전부터 나는 쌀알이 하나하나 숨 쉬는 고슬고슬한 쌀밥이 좋았다. 전기밥솥으로 지은 찰떡같이 쫀득쫀득한 밥은 조금만 먹어도 배가 불러 식사용으로 맞지 않다고 판단했다. 결혼 후 부엌 살림을 갖추면서 전기밥솥은 과감히 버렸다. 대신 지름 18cm짜리 프랑스 산 무쇠솥을 들였다. 씻은 쌀 300g, 물 330g을 계량해 센 불에서 3분, 중간 불에서 15분 끓이면 샤워하는 동안 밥이 완성되는 솥이다. 이 18분의 원리는 간단하다. 냄비의 빈 공간에 생긴 열기와 스팀은 무쇠의 압력 때문에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한다. 그 안에서 뜨거운 고문을 견딘 쌀알은 팔팔 끓어올라 탱탱하고 힘 있게 익는다. 뜸을 들일 때는 절대 주걱으로 꾹꾹 눌러 담지 않는다. 궁중 춤사위처럼 나긋한 손놀림으로 가볍게 저어야 밥알과 공기 층을 함께 씹는 입체적인 식감을 경험할 수 있다. 만약 밥을 지을 때 배추나 무, 가시를 완벽히 제거한 병어포나 가자미포, 조갯살 같은 부재료를 한 가지쯤 더 넣는다면 식사는 더욱 즐거워진다. 부재료가 뱉어낸 자연의 단맛이 곧 반찬이 되기 때문이다. 밥 짓는 도구 말고도 하나의 기술이 더 있다. 쌀을 고르는 기술이다. 쌀은 파운데이션이나 속옷을 살 때처럼 따져볼 게 많은 품목이다. 품종을 묻고, 도정한 날짜를 확인하고, 쌀의 맛과 특징에 대해 심사숙고하다 보면 결정장애가 올 정도다. 일본 도쿄에는 라이프스타일 스토어처럼 쌀을 파는 쌀 편집 숍이 있다. ‘아코메야’나 전국에 체인이 있는 ‘치노 그레인’ 같은 쌀가게에서는 북해도, 혼슈, 시코쿠, 규슈 4개 섬을 대표하는 쌀을 갓 도정해서 판다. 세련되게 포장한 250g 선물용 쌀도 있고, 용량별로 소분한 쌀도 있다. 원하는 만큼 계량해서 구입하는 것도 가능하다. 쌀가게의 점원은 어떤 요리를 할 건지 친절하게 물어본다. 카레할 때, 스시할 때, 주먹밥 만들 때 쓰는 쌀이 다르다고 했다. 아쉽게도 우리나라에는 이렇게 ‘즐거운’ 고민이 가능한 쌀가게가 없다. 그래서 쌀을 탐험하려면 발품을 팔아야 한다. 그럼에도 쌀에 대한 우리의 질문은 더욱 구체적이고 절실해야 한다. 그래야 누군가는 더 맛있는 쌀을 팔기 위해, 누군가는 더 맛있는 농사를 짓기 위해 좀 더 고민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한다고 확신하는 이유는, 일본 쌀가게 점원의 진지한 설명에 이끌려 구입한 북해도 쌀 ‘유메피리카’로 서울에서 솥밥을 지어 먹어 보았기 때문이다. 찰기는 있지만 찐득거리지 않았다. 물을 좀 적게 넣으라는 지시를 따랐더니 밥알은 촉촉하고 씹을수록 달았다. 100만 개의 작고 부드러운 구슬이 치아에 부딪혀 맛있는 소리를 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식감 그리고 쌀밥의 진정한 맛이었다. 


RISE TIPS 

쌀을 탐험하기 전에 가장 기본적으로 숙지해야 할 부분은 혼합미는 구입하지 말라는 거다. 수입쌀, 품질 나쁜 쌀을 섞어도 확인할 방법이 없다. 거창한 브랜드 네임은 좋은 쌀을 증명하는 필수 요소가 아니다. 추청이나 고시히카리, 맛드림 등 단일 품종이 적혀 있는지가 중요하다. 아키바레라고도 쓰는 추청 쌀은 일본이 원산지다. 쌀알이 기름지고 단단해 오랫동안 우리나라에서 ‘국민 쌀’로 사랑받았다. 일본의 국민 쌀 고시히카리는 쌀알이 투명하고 질이 좋아 전 세계에서 최고 품종으로 친다. 여기서 파생된 신품종이 맛드림이다. 고시히카리와 비슷하지만 가격이 저렴해 경쟁력 있다. 오대미는 밥이 식어도 밥알이 흩어지거나 뭉치지 않아 볶음밥이나 주먹밥을 만들기 좋다. 단 조생종이라 가을에 먹어야 맛있다. 히토메보레는 여주 지역에서 승승장구하는 품종이다. 쌀알이 작고 입 안에서 부드럽게 씹히는 맛이 좋다. 


WHO'S SHE?

중앙일보 <강남통신>의 음식담당 기자 이영지. 무쇠솥에, 일본 여행에서 사온 북해도 쌀로 지어 먹은 밥이 그야말로 ‘선비의 맛’임을 경험한 그녀는 서울에서도 맛있는 쌀을 찾아 나서고 있다.






Credit

  • photographer 이수현
  • writer 이영지
  • editor 김은희
  • art designer 이상윤

이 기사도 흥미로우실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