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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달수라는 페이소스

영화 <대배우>의 주인공을 넘어 자신의 신을 책임지며 살아온 오달수가 만들어내는 페이소스는 관객에 대한 이해로 빚어낸 성과이자 27년 차 배우의 보폭이 됐다.

프로필 by ELLE 2016.04.04

촬영할 때 보니 뭐랄까, 희극배우의 프로포션을 타고난 것 같습니다 

음, 뭐 꼬라지 대로, 생겨 먹은 대로 연기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희극배우라는 얘기를 많이 듣는데 그 덕에 페이소스랄까요, 이번 영화 <대배우>를 보시면 그런 페이소스가 많이 보일 거예요. 상황은 웃긴데 비극적이어서 웃는 게 웃는 게 아닌 장면들 말입니다. 


<대배우>는 20년간 연극만 하던 배우 장성필이 영화에 도전하면서 겪는 좌충우돌을 그린 휴먼 드라마예요. 올해로 27년 차, 배우 오달수의 이야기와 얼마나 닮았나요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마치 제가 겪었던 것을 보고 쓰지 않았나 싶었을 정도였어요. 연극을 주로 해 온 정성필이란 인물이 우연한 기회에 예전에 같이 연극했던 선배 설강식을 만나요. 최고 잘나가는 배우 설강식은 설경구, 송강호, 최민식에서 따온 이름이고요. 그러면서 생각지도 못했던 분야에 도전할 생각을 갖는 거예요. 그리고 무모하게 도전하죠. 


시나리오에 직접적인 영감을 주신 건가요 

석민우 감독님과는 속속들이 잘 아는 사이에요. <박쥐> 찍을 때였던 것 같은데 당시 조감독이었던 석 감독이 “시나리오를 드리면 같이 하겠냐” 그래서 “그러자” 했는데 진짜 들고 왔더라고요(웃음). 그런데 제가 깜짝 놀란 건 연극판의 생리를 너무나 잘 알고 썼다는 거예요. 시나리오는 굳이 저를 놓고 썼다기보단 연극 배우들이 영화 쪽에서 활동을 많이 하다 보니 들은 얘기도 많았을 거예요. 원제는 ‘연기의 제왕’이었는데 ‘대배우’로 바뀌었어요. 잘 바꾼 것 같아요. 


‘대배우’라는 단어에도 어떤 페이소스가 있나요 

장성필이 무모한 도전을 하는 와중에 부인하고도 트러블이 생겨요. 친구와 통화하는 걸 들은 아내가 다음 날 친정 집으로 가버리거든요. 이 남자는 아무것도 모르고 부인에게 전화를 하는데 그 전화기에 ‘누구 아빠’가 아니라 ‘대배우’라는 이름이 뜹니다. ‘가난하고 힘들어도 우리 남편은 대배우다’ 그런 의미였겠죠. 이번 영화를 휴먼 코미디라고 홍보하고 있긴 한데, 가족의 소중함도 많이 부각될 거예요. 


포털 사이트 검색 창에 ‘대배우’라고 치니까 ‘천만 요정 오달수의 첫 단독 주연 영화’라는 제목의 기사가 수두룩하더라고요 

부끄럽습니다. 하기야 제가 주연을 처음 했으니까 그렇게 이슈가 되겠죠. 근데 주연, 조연 가리는 건 저에게 그렇게 큰 의미가 없습니다. 영화에는 매 신마다 그 신을 책임져야 하는 역할이 있거든요. 그게 주인공일 수도 있고, 아주 단역이 해 내야 하는 경우도 있어요. 조연이 주인공을 어떻게 받쳐주느냐에 따라 영화가 잘 만들어지기도, 아니기도 하고요. 서로 역할들이 있기 때문에 ‘단독 주연’이라는 말은 아무래도 부끄럽죠. 거부감이 들기도 하고요. 


자료를 보니 배우가 된 과정이 참 자연스러운 배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정말 자연스러웠죠. 재수할 때 인쇄물 들고 배달을 자주 가던 극단에서, 어떻게 하다 보니 연극을 하게 됐고, 또 어떻게 하다 보니 사람들이 좋아서 쭉 하게 됐고, 어떻게 하다 보니 영화를 하게 됐고, 어떻게 하다 보니 ‘요정’ 소리도 듣게 됐죠(웃음).



라이더 재킷은 Diafvine. 화이트 셔츠는 Customellow.


예전 연극 <오구> 연출가인 이윤택 선생과 함께 한 인터뷰가 기억이 납니다. 특히 오달수 씨를 ‘피드백이 좋은 배우’라고 했던 칭찬이요. 이번에 연기 경력 30년 차 이경영, 연기 경력 20년이 넘는 윤제문, 이 두 배우에게 받은 피드백은 어땠나요 

편했습니다. 윤제문 씨는 같은 극단 연희단거리패 후배이고 <오구>에도 같이 출연했던 굉장히 좋은 친구예요. 아까 말씀 드렸듯이 연기라는 게 연기하는 사람보다 리액션이 어땠는가에 따라 그 신이 죽고 살고 하는데 이경영 선배는 말할 필요도 없고, 제문 씨의 리액션도 워낙 좋기 때문에 수월하게 했죠. 


이경영 씨 말로는 “오달수 씨는 연기할 때 누구를 이기려 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한때는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관객은 코뿔소다’, 그래서 ‘코뿔소의 뿔을 잡고 공연을 버텨야 한다’고요. 어리석은 생각이었죠. 결국 관객을 이기겠다는 거였어요. 그런데 그럴 필요가 없더라고요. 관객을 설득하려면 먼저 상대 배우를 아주 적극적으로 설득해야 해요. 상대 배우가 이해를 못하는데 어떻게 관객이 이해하겠어요. 그러니 누굴 이기려 한다든지, 내가 좀 더 튀어야지, 하는 생각은 버린 지 좀 됐죠. 


계기가 있었나요 

연극한 지 10년 차 즈음 됐을 때 연극이 뭔지 조금 알겠더라고요. ‘어디까지나 인간이 인간을 만나는 과정이다’라는 생각 말입니다. 배우와 배우, 배우와 관객의 만남이 중요한 거지 ‘잘하겠다’는 건 아무런 쓸모가 없더라고요. 대신 제 장점이자 단점이 연기를 잘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 뽐내지 않는다는 것, 멋있어 보이려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만(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 이전에 상대 배우를 설득하기 위한 전술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만 

앙상블이라고 하잖아요. 그건 연습 과정에서 나오죠. 각자 자기 대사만 외워서 공연 일주일 정도 남겨놓고 동선 짜고, 이야기를 섞는 경우가 왕왕 있거든요. 스케줄이 안 된다든지 하면요. 그건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연습 기간 동안 서로 막 부대끼고 만나고 이야기하고 술 마시고…. 그러다 보면 서로 이해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앙상블이 생기고 더 좋은 의견이 나오게 마련이죠.



데님 셔츠는 True Religion. 데님 팬츠는 Armani Jeans.


지난달에도 ‘10년의 법칙’에 대해 얘기한 배우를 만났어요. 데뷔한 지 딱 10년 차 되던 해에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 출연하게 된 배우예요
라미란이구만(웃음)! 공자님이 말씀하셨어요. 어떤 일이든 하려고 마음먹고 앞으로 쭉 해도 되겠는가, 안 되겠는가를 가늠하려면 3개월 정도 해 보면 알 수 있대요. 그런데 공자는 워낙에 천재잖아요. 그런 성인들은 한 3개월 해 보면 답이 나오지만 우리 같은 범인들은 어떤 분야든 적어도 10년쯤 해 봐야 그 일이 좀 보이고, 자신이 지금 어떤 길을 가고 있는지에 대한 깨우침을 얻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저는 배우생활 10년 차에 ‘관객은 즐겁게 만들어야 하는 대상이지, 버거워하고 힘들어할 대상이 절대 아니다’라는 걸 알게 됐어요.

2002년 <해적, 디스코 왕 되다>에서 ‘뻘쭘남’ 역으로 영화계에 입문했어요. 1990년 연극 <오구>에서 ‘문상객 1’로 데뷔한 지 13년째 되는 해였어요
제 경우엔 영화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없이 소개로 갔다가 운 좋게 작업을 하게 됐어요. 지금까지 오디션을 본 적도 없습니다. <해적, 디스코 왕 되다>를 한 이후로 박찬욱 감독님을 만나게 됐죠. 당시 박찬욱 감독 조감독이 전작을 보고 저를 추천해서 <여섯 개의 시선>의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 편에 파출소장 역으로 잠깐 나왔어요. 그러고는 한참 지난 후에 박찬욱 감독님한테 직접 전화가 왔는데 “<올드보이>라는 작품을 쓰고 있는데 7월쯤에 스케줄이 어떻게 되냐”고 하시더라고요. 연극하는 저에게 스케줄 물어본 사람은 박찬욱 감독님이 처음이었어요.

‘판’이 달라진 데 따른 충격은 없었나요
처음에는 완전히 헤맸어요. 연극과 영화는 시스템 자체가 워낙 다르니까요. 시간이 좀 지나니까 관객 대신 카메라가 있다는 것, 내가 소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 스태프들이 좀 더 많다는 것 같은 차이일 뿐 연기자에게 요구하는 건 똑같구나 싶더라고요.

점점 비중이 높아지면서 대사량도 많아졌어요
제가 워낙 기억력이 안 좋다 보니 친구들이 “너는 도대체 대사를 어떻게 외우니?” 그래요. 근본적으로는 가슴으로 연기해야 하는 거라 대사 외우는 게 그닥 힘들진 않아요. 대신 외국어 대사 할 때는 죽죠. <도둑들>에서 그 몇 줄 안 되는 중국어 하느라 한 3~5kg은 빠지더라고요(웃음).



패턴 프린트의 수트는 Kimseoryong. 화이트 티셔츠는 Vete. 슈즈는 Converse.


배우 그리고 사람 오달수의 인생은 예감한 대로 흘렀나요 

‘연극이 아니면 나는 죽어. 그게 아니면 나는 살 의미가 없어. 내 인생의 모든 의미가 연극이야’ 전 이런 생각으로 살진 않았어요. 극단에 가면 좋은 선후배들이 있었고, 직장인들 출근하는 시간에 포스터도 붙이고 연습도 하면서 재미있게 잘 놀았어요.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면 한심할 수 있는 인생이죠. 그런데 그런 생각이 무색할 만큼 일을 열심히 했어요. 손으로 무대를 만들어서 한 편의 극을 올리기까지 절대 설렁설렁하지 않았어요. 다만 삶의 태도는 설렁설렁 재미있게, 단원들과 정말 좋아서 했죠. 그게 이 일을 훨씬 더 오랫동안 할 수 있었던 힘이었어요. 만약 ‘연극은 나의 모든 것’이라 생각하며 발버둥쳤다면 힘들고 지쳐서 쓰러졌지, 여기까지 못 왔을 거예요. 취미 삼아 해서 그런 것 같아요. 


취미 삼아 할 수 있는 역량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고요 

아무 생각이 없어서 그래요(웃음).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없을 수는 없죠. 그렇지만 그런 생각들을 약하게 했다고나 할까요? ‘미래가 도대체 뭔데? 내가 지금 이렇게 하고 싶은 거, 신나는 거 하고 있으면 됐지. 뭐 하러 먼 미래까지 생각해서 마음을 불안하게 만드나’. 이런 아무 생각 없는 삶의 태도?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강했던 덕분 아닐까요 

그렇게 얘기해 주시면 감사하죠. 저는 가십에 그렇게 놀아나지 않거든요. 개봉 후에 들어야 할 말은 많겠지만요. 


누군가 내게 해 준 한 마디 중에 아직 기억나는 게 있다면요 

<타짜>에 출연한 주진모 선배는 제 정신적인 지주예요. 같이 공연도 하고 술자리에서 인생 이야기도 하고 책에 안 나오는 연기도 알려주신 저의 멘토예요. 2000년대 초반에 선배랑 같이 공연하면서 “어떻게 하면 연기를 잘할 수 있죠?”라고 물었더니 “연기 그냥 대충 해. 그냥 해. 그냥 하면 돼.” 그러셨어요. 근데 이 ‘그냥’이란 말이 엄청나게 무서운 말입니다. ‘그냥 해 그냥’. 그 그냥이 그냥이 아닌 거죠(웃음). 지금 돌이켜 보면 그 말에 답이 있었던 거예요. 그런 가르침과 깨우침이 없었다면 지금 제가 ‘그냥 하는 사람’처럼 안 보이겠죠. 


스스로에게 완고한 편인가요 

아니에요. 저한테 참 관대한 편입니다(웃음). 그래서 더 게으른 거죠. 


이미지 캐스팅에서 영화 감독들이 오달수라는 배우를 떠올렸다면 그건 어떤 이미지일까요 

글쎄요. 영화를 이완시켜주는 이미지가 강하겠죠? 저는 악역을 해도 그렇게 잔인하게 안 하거든요. 나쁜 놈일수록 연민 같은 걸 억지로라도 만들어야 해요. 악역을 많이 했어도 ‘저런 쳐 죽일 놈’ 싶은 잔인한 역은 안 들어왔어요. 좀 웃긴다든지, 연민이 간다든지, 당하는 역할들로 주셔서 감사하죠.




오달수만의 희극적인 터치는 어떻게 완성되나요 

아무래도 텐션이 강한 영화들은 좀 풀어줘야죠. 관객을 두 시간 동안 꼼짝달싹 못하게 하는 영화는 힘들어서 잘 못 봅니다. 이완되는 포인트가 필요해요. <달콤한 인생>을 보시면 정확하게 영화 중간에 제 역할이 나와요. 그렇게 한 번쯤 관객들의 정서를 환기하고 다시 몰아가고 클라이맥스로 치닫는 거죠. 이제는 감독님들이 저에게 악한 역이어도 여기선 희극적 터치를 더해달라는 디렉션을 많이 주시는 편이에요. 


지금 오달수라는 배우가 가진 사명감이 있을까요 

참 어렵네요. 글쎄요. 관객이죠, 관객. 어차피 배우라는 게 관객의 사랑을 먹고 살고 작품이 만들어지는 것, 연기하는 이유도 궁극적으로 관객을 위한 거잖아요. 최종적으로 관객의 희로애락이 제 사명감이라면 사명감일 겁니다. 관객이 나를 보고 기뻐하면 저도 좋고, 나를 보고 슬퍼하면 그것도 좋고요. 


<국제시장> <베테랑> <암살> 외 배우 개인이 쓰는 필모그래피의 중심점은 어디인가요 

‘명구’라는 인물인데 <달콤한 인생>에 딱 3신 나옵니다. 그 사람 입장이 되어보니까, 사람이 참 안됐더라고요.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유난히 그 인물에 신경 쓰이고 마음이 가더라고요. 


<대배우> 개봉을 앞두고 있는 지금까지도요? 

하아, <대배우>는 워낙 많은 신들을 소화해야 했어요. 영화의 약 90% 분량에 제가 나와요. 이러다 관객들이 질리겠다 싶어요(웃음). 그러니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매일 촬영해야 했던 걸 넘어 짊어져야 하는 무게와 책임감이 더해진 작품이었으니까요. 이번 경험으로 ‘주인공 아무나 하는 거 아니구나. 아직 나는 깜냥이 안 된다’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개 분장도 하셨다고요 

장성필이라는 인물이 20년 동안 연극판에 있으면서 주로 아동극을 하거든요. <플란다스의 개>에서 ‘파트라슈’로 나옵니다. 분장이 필요한 역할이죠(웃음). 


얼마 전에 우연히 20년 전 일기장을 봤는데 지금 고민과 바람이 과거와 얼추 비슷하더라고요. 배우 오달수의 고민과 바람도 연속적인가요 

근본적인 부분은 크게 바뀌지 않았어요. ‘연기를 계속 할 거다’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여러 가지 고민들이요. 물론 중간에 ‘그만둘까’라는 생각을 왜 안 해 봤겠습니까. 수없이 많이 해봤죠. 하지만 연기를 계속할 거라는 그때의 생각을 살펴보면 하나도 변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제작발표회 때 생각해 보겠다고 하신 ‘대배우’에 대한 정의는 언제쯤 끝맺을 수 있을까요 

배우생활 하는 내내 그리고 죽기 전까지 하면서 살아가겠죠. 배우라면요.

Credit

  • photographer 김도원
  • EDITOR 채은미
  • ART DESIGNER 변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