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석, 미지의 남자
도달한 적 없는 미지의 풍경을 쫓고 있는 조정석은 여정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 아직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그 길이 더욱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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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금요일 밤에 뭘 했나 <꽃보다 청춘 아이슬란드>를 봤어요. 거의 본방 사수하고 있어요. 아이슬란드의 경이로운 밤하늘을 보고 온 후 서울의 밤하늘을 바라보면 그러고 보니 서울 하늘을 유심히 본 적이 없네요. 돌아오자마자 남은 영화 촬영 마무리하고 뮤지컬 <헤드윅: 뉴 메이크업>을 준비하느라 생각도 못했어요. 그렇지만 아이슬란드에 대한 기억은 매일 떠올라요. 아무것도 모르고 갔지만 정말 좋았어요. 거기에 오로라가 있는지도 몰랐어요.
이제까지 경험한 것들로 아름다움의 순위를 매기면 오로라는 몇 위인가 1등! 아이슬란드에서 짜릿한 순간들이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오로라가 최고였어요.
압도적인 자연을 마주하면 ‘멋지다’ ‘웅장하다’는 표현을 했지만 속으로는 내가 한없이 작은 존재구나, 하는 겸허한 마음이 들었어요.
아이슬란드 여행 내내 짠돌이 면모를 보이다가 마지막 날 기타 욕심을 냈는데 기타 치는 걸 좋아해요. 취미 수준이지만 아이슬란드에 다시 간다면 음악여행이 될지도 몰라요. 아이슬란드는 음악적 영감을 받기에 완벽한 곳이에요. 동서남북 어디를 가도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져요. 그래서 아이슬란드 뮤지션들의 음악이 때묻지 않은 것처럼 순수하고 서정적인가 봐요.
아이슬란드에서 받은 음악적 영감은 그럴 겨를이 없었어요. 네 명이 회의를 하루에도 수십 번씩 했거든요(웃음).
아이슬란드에서의 모습과 뭔가 달라 보이는데 ‘꺼벙이 안경’을 안 써서 그런 건가
<헤드윅>에서 여장을 해야 하기 때문에 살을 빼고 있어요.
요즘 식단은 덴마크 다이어트 식단이라고 해서 아침 점심으로 삶은 달걀 1개, 토스트 1장, 자몽 1개, 블랙커피를, 저녁에는 샐러드를 먹어요. 식단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어요.
그렇게 잘 가꾼 몸을 작품이 끝나고도 유지하는 편인가 그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세상에는 맛있는 게 너무 많아요(웃음)! 그보다 내가 원한다 해도 안 되는 게 다음 역할에 따라 근육을 빼거나 <건축학개론>의 ‘납득이’ 역처럼 체중을 불려야 하기도 해요.
트랜스젠더 록 가수인 주인공이 극의 대부분을 혼자 이끌어가는 <헤드윅>은 배우들의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키기로 유명한데 2006년 처음 ‘헤드윅’ 역을 맡은 이후 네 번째 오르는 무대예요. 할 때마다 어려운 숙제가 주어지지만 그것을 풀어가면서 정답에 가깝게 작품을 만들어가는 희열이 있어요. 그래서 나중에 또 하고 싶어져요. 이 작품을 다시 한다는 것 자체가 나자신을 시험해 보고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는 열정을 느끼게 해요. 마흔이 넘어서도 헤드윅을 하라면 할 거예요.
10년 전과 지금 조정석의 헤드윅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전에는 헤드윅이란 인물을 잘 표현하려고 했다면 지금은 굳이 표현하지 않더라도 절로 드러나는 헤드윅을 꿈꿔요. 주워들은 바에 따르면 ‘드러내는 연기’보다 ‘드러나는 연기’가 더 훌륭하다고 해요. 이걸 한번 경험해 보고 싶어요.
드라마와 영화를 주로 하다가 오랜만에 뮤지컬 무대를 찾았다 어떤 장르를 하든 준비하는 자세는 똑같은데 확실히 설레는 마음이 커요. 명절을 맞아 고향에 가는 심정이랄까. 집에 가면 가족들 얼굴 보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잖아요. 나는 무대라는 곳에서 데뷔했어요. 고향과 같은 무대에서 나를 그리워해 주는 관객들을 빨리 만나고 싶어요. 무대가 여전히 좋은 이유는 드라마나 영화와는 달리 무대에선 배우와 관객이 함께 소통하고 공감하며 놀 수 있어요. <헤드윅>은 그런 매력이 극대화된 작품이에요. 최선을 다해 놀아보려고요.
누군가 <헤드윅>을 보고 “어떻게 하면 당신 같은 배우가 될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다면 솔직해지라는 조언을 건네고 싶어요. 내면에 있는 마음 그대로를 얼마나 표현할 수 있는지가 중요해요. 예전에 제니퍼 로렌스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으러 나가다 넘어진 뒤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F로 시작하는 단어가 떠올랐다고 했어요. 누가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말하겠어요. 자기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다 보면 ‘지금 내 기분이 이런데 어떡해’ 하는 당당함이 생겨요. 나는 ‘아이고, 연기하고 있네’ 이런 뉘앙스는 좋아하지 않아요. 왠지 거짓말하고 있다는 것처럼 들려요. 물론 연기는 사람들에게 허상을 보여주는 거짓이에요. 하지만 그 허상을 믿도록 만들려면 진심을 다해야 해요. 그래서 연기는 진짜예요.
자신의 속마음을 가장 잘 알아주는 사람은 가까운 친구들이죠.
<꽃보다 청춘 아이슬란드>를 보면서 느낀 건데 진정한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오래 알고 지낸 사이,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 것 같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속마음을 알아줘야 해요. 어릴 적에 친구에게 생일선물을 받으면 나도 꼭 챙겨줘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잖아요. 이런 의무감이 드는 게 아니라 선물을 주는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진정한 친구가 아닐까 해요. 나는 스마트폰 주소록에 친구 번호를 저장할 때 그룹 별로 분류하지 않고 별명 같은 것도 안 써요. 그 친구의 이름 석 자 안에 모든 게 담겨 있어요.
‘이 사람이 내 사람이다’ 싶은 기준이란 게 있나 기쁜 일이 생겼을 때 함께 웃어주는 사람은 많지만 슬프고 힘든 시간을 함께 보내줄 수 있는 사람은 드물어요. 그래서 그런 사람들이 더 소중하게 느껴져요. 그런데 희한하게도 나이가 들수록 진심으로 기뻐해 주는 사람이 적어지는 것 같아요. 나도 그렇지만 사람은 시기와 질투를 할 수밖에 없어요. 이제는 인간관계를 잘 다듬어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요즘 친구들에게 자랑할 거리는 아이슬란드 여행이죠. ‘내가 너희들보다 먼저 여길 다녀왔어’라고 하면서(웃음). 사실 자랑 같은 거 잘 안 해요. 얼마 전에 영화 <동주>를 봤는데 ‘부끄러워할 줄 알기 때문에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대사가 기억에 남더라고요. 괜찮은 사람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도 좋은 향이 난다고 생각해요.
괜찮은 배우, 괜찮은 사람 말고 어떤 괜찮은 남자가 되고 싶나 결혼한 친구들이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사는 모습이 멋져 보여요. 절대로 허튼 짓을 하지 않아요. 친구들은 “정석아, 네가 우리들의 자랑이야”라고 하지만 그들이 내 자랑이고 인생의 스승이라고 생각해요. 나보다 먼저 결혼하고 아빠가 되어 더 많은 경험을 하고 있잖아요. 친구들을 통해 가장의 무게를 느끼기도 하고, 먼 훗날 내가 죽을 때 누가 옆에서 작별 인사를 해 줄지도 상상해요. 사람에게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그 상처를 치유해 주는 것도 사람이에요. 한 번 뿐인 인생을 좋은 사람과 함께 사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해요.
배우로서 경계하는 건 겁내거나 두려워하지 않으려고 해요. 할 수 있는 건 다 해 보자는 주의예요. 실패 경험이 적은 것도 별로라고 생각해요. 원래 성격이 그래요. 무언가를 해야 할지를 놓고 갈등하는 친구가 있으면 답답한 마음에 “일단 해 봐야 알지!”라며 닦달해요. 중학교 땐 옆 반 여자아이를 짝사랑하는 친구가 있어서 ‘우린 옆 반’이라는 제목의 노래를 만들어주기도 했어요.
지금까지 부른 뮤지컬 넘버 중 조정석의 OST는 아직까진 <헤드윅>의 오프닝 곡인 ‘Tear me down’이 어울릴 것 같아요. 세상을 향해 나를 부숴보라고, 덤벼보라고 외치는 노래예요. 무엇이 끝에 있을지 모르지만 앞으로 계속 나아가려고 노력 중이에요. 솔직히 10년 뒤에 이 질문을 받아도 똑같이 이야기할 것 같아요. 그때도 지금처럼 연기에 대한 갈망과 열정이 식지 않았으면 해요.
Credit
- PHOTOGRAPHER 김도원
- EDITOR 김영재
- STYLIST 정혜진
- HAIR STYLIST 미영(Encloe)
- MAKEUP ARTIST 화영(Encl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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