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질만 버린 여자 VS 비겁해진 남자 | 엘르코리아 (ELLE KOREA)

2010년 키워드 중 하나는? 바로 젠더(Gender) 코드다. 차이를 인정하라는데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 남녀 모두 서로에게 기대하는 성 역할은 과거 시점이요, 당장 맞닥뜨리는 건 변화한 뉴 젠더이므로. 그래서 이건, 평등화와 고등교육의 은총을 받아 잘 자란, 열심히 자기 몫 했지만, 정작 얻은 건 많지 않고 성질만 버린 여자. VS 아직 기득권을 부여잡고는 있지만, 상대적으로 비겁해진 남자. :: 남자다운,여자다운,칼럼,엘르,엣진,elle.co.kr :: | :: 남자다운,여자다운,칼럼,엘르,엣진

이 비겁한 남자야“현대 여성의 능력과 성공을 인정하지 않는 현대 남성은 비겁하다.” 의 ‘미아’는 ‘편집장의 글’에 이렇게 썼다. 그녀는 잡지 의 편집장, 아니 이제 발행인이다. 그의 약혼자는 같은 회사 편집장이었다. 발행인 승진을 앞두고 서로 한 치의 양보도 없던 중, 미아가 승리한 것. 약혼자가 깨끗히 승복하고 자신을 축하해줄 것으로 생각했으나 그의 반응은? “내가 이길 줄 알았다. 당신은 실망하겠지만 우리 결혼에만 신경 쓰면 되니까. 그런데 그 반대가 됐고, 내가 설자리를 모르겠다.” 그는 이별 통보와 함께 회사도 그만두면서 커버에 남자를 잡아먹는 여자의 사진을 썼다. 미아의 ‘꼭지’가 돈 건 당연지사. 미아가 편집장의 글에 분노를 휘갈기는 동안, 그녀의 절친 ‘줄리엣’은 이사회에서 언성을 높였다. 그녀는 럭셔리 호텔 체인의 CEO. 이사회는 그녀에게 호의적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업무 방향과 자신의 입지에 대해 손 놓고 있을 순 없으니까. 옳다구나! 여자들끼리 수다떨 때(친한 친구들과의 브런치는 물론 회사 안팎의 미팅 자리에서도) 빠지지 않는 얘기. “요즘 남자들은 몸 사린다.” “더 이상 여자를 최우선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자신의 손해를 줄이려 한다.” 그건 다 남자들이 비겁해졌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간 잘난 여자들이 쏟아져 나오는 현상을 ‘쿨’하게 받아들이는 듯했지만 사실 그들은 ‘꽁’해 있었다. 슬슬 반응이 나온 건 지난해부터다. 여자들이 자리를 잡으니 자기들의 위치와 권위를 지키려는 본능이 솟아난 것. 그러면서 여자들의 전투력(?) 상승에 따른 손해를 최소화하려고, 똘똘 뭉쳐 남자 바로 세우기 모드에 돌입했다(반론을 하고 싶어서 혹은 변명을 위해 입이 근질근질한 남자들은 잠시 워워~. 뒤에 가면 얘기할 기회가 충분히 있다). 그래서 의 ‘남보원(남성인권보장위원회)’이 그렇게 인기인가 보다. 지난해 10월, 젠더 컨설턴트 아비바 위텐베르크-콕스, 비즈니스 저널리스트 앨리슨 메이트런드는 에서 “여자는 기업의 미래”이며 “여자가 경제와 소비의 결정권자이며, 여자를 공략한 비즈니스로 돈이 흐른다.”고 말했다. 감성 코드가 대세인 시대, 여자 득세 맞다. 하지만 고충은 있다. 사회적 압박 때문이다. 경제에 먹구름이 끼면서 기업들이 인원 감축을 할 때 여자들이 먼저 리스트에 오르는 건 공공연한 비밀, 그 와중에 “저출산 시대가 걱정되니 애를 낳으라.”고 때 아닌 출산 장려 운동이다. 저출산의 원인을 일방적으로 여자에게 미루고, 전통적인 어머니상을 들먹이는 묘한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다. 어떤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부드럽기를 바라는 시선도 여전하다. 조금만 목소리를 내면 “여자가 왜 이리 까칠해?”하면서 쑥덕거리기 일쑤. 한마디로 조직과 규범, 의식은 여자들의 변화 속도를 따라오지 못했다. 크리스토퍼 이셔우드(Christopher Isherwood)의 소설 (톰 포드가 감독을 맡아 지난해 영화화 됐고 올해 국내 개봉 예정)에 이런 장면이 있다. 대학교수인 남자 주인공의 영문학 수업 시간. 그리스 신화 를 모티프로 한 소설 에 대해 토론하던 중 소수집단에 관한 얘기가 나온다. 교수의 설명은 “소수 집단은, 실제로든 상상으로든 간에 다수에게 위협이 될 때만 소수집단으로 여겨진다. (…) 소수집단은 모두 경쟁관계에 있다. 소수집단이 모두를 미워할수록 더 큰 박해를 받고, 소수집단은 더 험악하게 변한다.” 이 얘기에 남녀 사이를 대입해보면 소수집단은 여자다. 그런데 다수집단인 남자에게 위협이 되고 있는 것. 여자끼리의 경쟁, 남자들의 견제로 여자들은 자의 반 타의 반 거칠어진다. 흔히 “빡세다(사전에 없는 말이지만 이만큼 어감을 표현할 어휘가 없다. 유사어로는 ‘드세다’ ‘거칠다’ ‘만만치 않다’ 등이 있겠다)”는 소리를 듣는 여자들이 늘어났다. “사회생활 을 하는 여자가 끝까지 우아하고 고상하게 남기란 쉽지 않다.” 젊은 나이에 외국계 회사의 수장이 된 여성이 쓸쓸한 눈빛으로 남긴 말이 새삼 생각난다. 우아하게 살고 싶지만…지난 1월 말, 와 취업 전문 포털 ‘잡코리아(jobkorea.co.kr)’는 남녀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다. 3년차 이하 여자 직원의 성향을 물었을 때 ‘남성적’ ‘여성적’ ‘중성적’이라는 답이 대략 3분의 1씩 고만고만하게 나왔다. 하지만 “입사 3~5년차 대리급이 되면 입사 초기와 달리 성향이 변한다.”가 65%, “여성 직원의 경우 드세진다.”는 답이 65%(게다가 여자들이 같은 여자에 대해 “드세진다”고 답한 비율이 조금 더 높았다). 그 다음으로는 “여성 직원도 남성적인 척한다.”는 답이 20%였다. 일터에서 우아하기란 정말 어렵다. 사회는 애초부터 여자에게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었다. 여성의 사회적 목소리는 1800년대에 처음 등장했고, 사회 참여 기회를 보장받은 건 1900년대 들어서다. 이런 과거 얘기는 해서 뭐하겠는가. 중요한 건 남자 판에 끼어들어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계속 도전하고 노력하는 입장이었다는 점.현재 우리 사회가 반응한 건 1995년 10월, 정부가 첫 ‘남녀고용 평등의 달’을 정한 것. 당시 동아일보 기사를 보면 정부는 “1인당 국민소득 1만 불, OECD 가입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여성 인력을 묻어두고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건 무리”라 판단했고 “일손이 부족해 연간 경제 손실이 17조를 넘는데 여성이 1%만 참여해도 메울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실렸다. 기사는 “40대 남성 사망률이 세계1위인데 남성에게만 무거운 짐을 준 결과라는 반성”(?)으로 끝을 맺는다. ‘여자를 본격적으로 좀 많이 뽑아보자’는 움직임이 시작된 것도 불과 10여 년 전인데 아뿔싸, 그 사이 IMF가 있었다. 90년대 후반은 ‘IMF 학번’들의 어둠의 그림자가 짙었고, 당연히 여자라고 뭘 해보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그리고 2000년대. 2004년엔 역대 최다 여성 사시 합격자가 나왔고, 이듬해 8% 이상 증가해 또 기록을 세웠다. 단편적일지 몰라도 우먼 파워 시대의 전조였을 거다. “학교를 보내면 남자애들이 여자애들한테 치인다.” “회장, 반장은 다 여자가 한다.” 아들 둔 어머님들의 걱정이 쏟아져 나오던 것도 그때다. 학교에서 실력의 여고남저는 좀 더 뚜렷한 징조였다. 이들이 수 년 후 사회로 나오면 여성 파워는 더 견고해질 테니까. 이들은 이미 학교에서 남자를 이겨본 여자들이다. 2005년 한국여성개발원의 얘기, “이런 변화에 대해 남성이 박탈감을 느끼고 적응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예언과도 같았다.그리고 2007년. 그 유명한 알파 걸, 골드미스, 스완족(Strong Women Achiever, No Spouse)이란 신개념이 쏟아진다. “1981년 광고에서는 순결한 여성을 아름답게 여겼는데 2006년엔 욕망을 성취한 여성상이 아름답게 그려진다.”는 논문()이 나오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남자에겐 ‘초식남’이란 신조어가 붙었다(최근 ‘짐승돌’이 대세를 이루는 것도 맨송맨송한 남자들에게 질린 여자들이 강력한 남성상을 원했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 아닐지). 어쨌거나 “걸즈, 비 앰비셔스!”를 외치는 여자들은 파이팅이 넘쳤다. 하지만 산 넘어 산. 앞서 언급한 와 잡코리아 리서치 결과를 보면 여자들은 “동성 경쟁이 더 심하다.”는 의견이 반(56%), “이성 경쟁이 더 심하거나 심해지고 있다.”는 답이 나머지 반(44%). 동성?이성 나눌 것 없이 무한 경쟁을 안고 가고 있다(남자는 아직까지 여성과의 경쟁을 크게 의식하지 않았다. 남자끼리의 경쟁이 주를 이룬다는 답이 68%였다). “어차피 여자는 구색 맞추기인 경우가 많다. 남초나 여초보다 적당히 섞인 게 좋잖아. 여성 임원 발탁? 빚 좋은 개살구다. 대외 이미지 홍보용인 경우가 많다. 이렇게 이미 여자들이 ‘적당히’ 있는데 굳이 여자 인재를 키울 필요가 있을까? 또 공석이 생겼을 때 동등한 능력이라면 남자를 뽑는다. 여자의 전문성은 인정해도 리더십이나 조직 융화력에 의문을 가지기 때문이다.” 10년차 헤드헌터의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여자들의 재사회화가 과도하게 이뤄질 수밖에 없다. 재사회화가 무엇이냐, 생활환경과 지위가 변해서 행동 규범을 다시 익히는 과정이라 배우지 않았던가. 사회에서 잘하려 애쓰다 보니 자연스레 ‘드센’ 행동규범이 체화되기 마련. 처음에 초롱초롱한 눈으로 사회에 나와서 적자생존, 약육강식을 목격하고, 된통당하면 “달라지리라!” 두 주먹 불끈 쥐게 된다. 상대가 떽떽거리면 지지 않고 받아치고, 아닌 건 아니라고 목청 드높인다. 처음엔 전화도 소곤소곤했지만 이제는 사무실에 누가 있건 말건 고함을 지르고 수화기를 부서져라 내려놓기도 한다. 물론 쭉 강성으로 가는 건 아니다. 한참 질러대는 분노의 계절이 지나면, 웃으며 따지고 웃으며 화내는 내공(?)을 얻을 수 있다. 인정 사정 볼 것 없다지난해 취업대란을 기억하는지. 남녀 중 취업이 더 잘된 쪽은? 통계청 집계에 따르면 20대를 놓고 봤을 때 여성이 남성을 앞질렀다(물론 취업의 질과 지속성, 고용 조건의 차별 여부 등이 문제다. 하지만 남자보다 여자 신입사원이 더 늘어난 것 자체가 유사 이래 처음이니 의미 없는 통계는 아니다). 그해 12월 잡코리아의 리서치에서 여자들은 “승진 관련해 여성에게 불리한 제도?관행이 있다.”(71%)고 답했다. 구체적인 예로는 “여성은 승진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다.”(40%)가 제일 많았고 “능력?실적이 비슷해도 남성 인사 고과가 높다.”(29%)가 그 뒤를 이었다. 보다시피 여자들이 밀물처럼 사회 곳곳에 들어오지만 여전히 인식과 규범의 기본 틀은 변하지 않았다. 직장에서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빡빡한 경쟁, 아니 전쟁이 이뤄지는 게 당연하다. 우리 회사는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다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거칠어진 여자들, 여성 득세 소용돌이에 휘말렸거나 강 건너 불 구경 중인 남자들의 이야기를 참고하길. 여초 집단의 마이너리티 “우리 회사는 여자가 90%다. 남자들에게 가드 역할도 기대하는 것 같다. 전구를 갈거나 책장을 옮기는 건 기본, 차 사고 났다는 전화에 긴급 출동한 적도 있다. 물론, 주중이다. 업무 외 시간에 불려간 적(?)은 없다. 사소한 불만을 더 꼽자면, 점심 메뉴를 너무 여자들 입맛에 맞는 것 위주로 고른다는 것. 생태찌게가 먹고 싶은데 얘기하지 못한 적도 많다. 그리고 업무에 적정 선이라는 게 있는데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경우가 많다. ‘여자라서 무시받을 수 있다’는 심리적 압박에 일부러 세게 나가는 것 같다. 의도적으로 메이크업을 세게 하고 다니는 여자들도 있다. 일 자체는 인정한다. 남자들보다 잘한다. 하지만 여자 식으로 일하는 걸 배우다 보니 남자 조직과 일할 때는 좀 부딪친다.” (조성하, 29세, PR)유명무실 홍일점 “영업 파트 60명 중 여자는 단 2명이다. 그나마 부서가 나뉘어 우리 팀엔 나 혼자. 회사는 완전히 남자 위주의 군대 문화다. 출근할 때 여성성을 버리고 들어간다. 3년차인 지금은 선배들과 “오빠?동생”이 아니고 호형호제한다. 이제는 너무 여자로 봐주지 않아서 좀 섭섭할 정도. 회식 자리도 많은데 빠지지 않으려고 한다. 2차, 3차, 끝까지 남는다. 인원이 적은 술자리일수록 고급 정보가 많이 오가기 때문이다. 내가 완전 남자가 된 건 아니다. 밖에서 클라이언트를 만날 때는 섬세함과 여성스러움으로 어필한다. 전국 영업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가끔 “여자가 영업하는 거 힘들지 않느냐?” 이런 질문하면 짜증난다. ‘우리 사회가 아직 안 됐구나.’ 싶다. 차라리 “영업 업무가 어렵지 않냐?”고 물어봐주면 낫겠다. 반면에 우리 회사의 사무직 여자들은 진짜 여자다. 남자들이 말하는, 고분고분하고 참한 여자들. 그녀들이 나를 이상하게 보기도 한다.” (고원재, 27세, 제약 영업)무적의 여성 부대 “우리 회사는 전부 여자다. ‘어차피 너도 여자, 나도 여자. 능력, 심리, 건강 어느 하나 약점을 보이면 끝.’ 다들 이런 생각으로 일했다. 다같이 야근해도 먼저 일어설 수 없다. 업무량도 많지만 처지도 비슷해서다. 아프면, “너만 아프냐? 나도 몸 힘들다.” 가족 행사엔 “나도 내 새끼 집에서 혼자 잠들었다.” 이러니 열외는 통하지 않는다. 남자 동료? 있긴 있다. 다만 오래 버티지 못하고 금세 그만둘 뿐. 남자가 오면 너나 할 것 없이 심부름을 막 던진다. 여자끼리 시키기 눈치 보이는 것도 남자에겐 왠지 더 쉽게 시킬 수 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큰다 싶으면 그새 또 시샘이 쏟아진다. “이 업계에 남자가 없으니 가진 것에 비해 과대평가받고 주목받는다.”는 비판을 쏟아내면서. 내가 보기엔 이랬다 저랬다 하는 여자들 등쌀에 남자들이 버티지 못하는 것 같다.” (최지현, 34세, 의류회사)남녀 반반, 실권은 남자에게 “조직 자체엔 남녀 불평등이 있다. 예를 들면 여자 임원이 한명도 없다. 의사결정권은 결국 남자에게 있는 건데 반대를 위한 반대가 많고, 관료제도 끝내준다. 그리고 출산 휴가, 육아 휴직을 쓴다지만 TO를 남겨두지 않는다. 자리가 나지 않아 돌아지 못하거나 다른 부서로 가야 할 수 있다. 남자들끼리 “또 쉰대.” “또 육아 휴직한대.” 수근거린다. 그냥 능력만 놓고 보면 우리 회사 여자들은 전부 ‘알파 걸’ ‘슈퍼 우먼’들이다. 일을 깔끔하고 명확하게 한다. 하지만 얄미울 때와 신기할 때가 있다. 얄미울 때는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이 여전히 남자를 돌쇠로 부린다는 것. 짐 옮기는 건 그렇다 쳐도 컴퓨터에 휴대전화 고장까지 나한테 징징거리면 어쩌라고. 신기할 때는 다음날 와보면 새벽 1시, 2시 넘은 시각에 이메일을 보냈다는 것. 그때까지 야근했다는 소리인데 그럼 집에는 언제 간 걸까? 그 가정은 안전할까? 내 여자라면 싫을 것 같다. (이동민, 29세, 대기업)이것 참, ‘빡세게’ 일하라는 건지 적당히 하라는 건지 알쏭달쏭하다. ‘내 남자도 아닌데 여러 남자들이 날 어떻게 보든 말든’이라면 상관 없다. 하지만 원만한 관계에 집착하는 타입이거나, 회사에 마음에 드는 남자가 있거나, 혹은 남자 동료에게 소개팅이라도 얻어내고 싶다면 갑자기 이미지 관리의 불안감을 느낄 것. 나도 여자랍니다?“남자친구가 이별 통보를 하면서 그러더라. 내가 직장생활을 시작하더니 기가 세지고 목소리가 커지면서 자기 통제를 벗어났다고. 또 일을 하다보면 못 만날 수도 있잖아. 그런데 내가 자기보다 일을 우선으로 생각한다면서 결혼해서도 그럴 게 뻔하다고 화를 내더라고.” 입사 후 줄곧 일에 쫓기다 3년 사귄 동갑내기 남자친구에게 차인 S의 울분 섞인 한탄이다. 그녀의 사연처럼 사회생활을 하고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해서 얻은 것은 약간의 연봉과 승진, 잃은 건 애인이라는 여자들의 피 끓는 외침이 메아리치고 있다. 남자들이 겁쟁이가 되고 비겁해지고 약해 빠졌다는 그녀들의 불만이 용틀임을 한다.하지만 남자들은 어리둥절하다. 남자친구 앞에서는 ‘여자’로 보이고 싶은 건 이해하지만 커리어를 지키느라 종종 진통을 겪는 일상 불균형이 연애까지 고스란이 이어진다는 게 문제. “여보쇼, 그렇게 짐승남 타령을 하는데 아마조네스와 짐승남이 만나면 전쟁!”이라는 남자들의 얘기를 들어보자.나름대로 그들도 입장을 표명한다. 회사에서 기 세고 까칠하고 도도하고 쌀쌀맞은 히스테릭 환자한테 놀란 가슴, 진정되지 않아서 그렇다고. 직장 내에서 능력이 뛰어난 여자들과 경쟁하고 여자 상사에게 시달리느라 어깨가 잔뜩 움츠려들고 작아졌는데 밖에서까지 남자가 뭐 대단한 직책이냐며 핀잔 놓는 최 대리, 하루도 빠짐 없이 윽박지르는 박 부장과 오버랩되는 여자를 만날 생각이 추호도 없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 나보다 연약한 여자를 만나야 무참히 짓밟힌 자존심이 회복되고 남자다워질 수 있을 것 같아.” 이제 막 서른 줄에 접어들었으면서도 때 묻지 않은 여대생만 골라 사귀는 J의 말처럼 연애 권력마저 잘난 여자에게 내주기 싫은 것이 남자의 심사다. 그러니 시대가 바뀌었다고 해도 남자들은 지고지순한 천상 여자를 선호한다. 꼬치꼬치 잔소리하지 않고 따지지도 묻지도 않고 화 내지 않는, 말 잘 듣고 고분고분한 여자를 눈에 쌍심지를 켜고 찾는다. 소주도 점점 순한 것을 찾는 세상, 그들에게 맵고 독하고 질긴 여자는 술안주로 딱일 뿐. 남자도 할말은 있다 VS 그럼 어쩌란 말이냐남자들의 행태를 두고 여자들은 전통적인 성 역할이 전복되는 시대에 쓰개치마라도 뒤집어쓴 조선시대 양갓집를 규수를 찾는다며 분개할 수 있다. 그러나 남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여자들은 남자 능력, 경제력 다 따져보고 따라가잖아. 자기보다 돈 잘 벌고 직업 좋은 남자들 골라서 말야. 거기에 배경까지 좋으면 탱큐지. 결국 여자 스스로 강한 남자한테 의지하고 리드당하길 자처하는 거 아냐?” 연봉 높기로 소문난 증권사에서 일하며 주변 여직원들의 결혼 풍속을 분석한 P의 지론이다. “영혼의 짝을 만나고 싶다.”는 여자들의 말 속엔 ‘나 고생 시키지 않는’ 이 말이 생략돼 있다는 걸 남자들도 안다. 이는 곧 남자가 주도하고 여자가 따르는 전통적인 연애관계를 더욱 견고하게 만든다. 이번 달 결혼정보회사 ‘비에나래’가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미혼 여성의 절반 가까이 “결혼을 통해 경제적 안정을 꾀하고 싶다.”고 답했다. 비록 과거처럼 여자들이 나약하고 경제력이 없는 건 아니지만 여전히 남자에게 기대고 의지하려 한다는 분석이다. 남자들이 고리타분하게 케케묵은 여성상에 목을 매고 있다고 핀잔을 늘어놓는 그녀들 또한 손가락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게 해줄 마음은 머슴같고 직책은 정승같은 남자를 찾고 있는 셈이다. 그야말로 남자 입장에서는 ‘돈 많은 남자들만 사랑받는 이 더러운 세상’이라고 외칠 수밖에 없는 서글픈 노릇이다.꼭 돈 얘기만 하는 건 아니다. 어쨌든 ‘강한 놈’을 고르겠다는 마음, 남자들은 간파했다. “여자 차장이 남자 과장 만날 수 없다.”는 속마음 말이다. 그러니 요즘 남자들, 연애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어차피 그들 눈에는 꼬리 치고 간 보고 자기 기준에 들어맞지 않으면 내뺄 여자들이니 적극적으로 달려들지 못한다. 사랑의 경계에서 꼬물꼬물, 얍쌉하고 비겁하게 구는 초식남을 보고 ‘수컷성이 거세된 약한 남자’라고 비꼬는데 따지고 보면 여자들이 만들어낸 돌연변이인 셈이다. 지난해 7월, ‘야후 코리아’가 네티즌 2천여 명에게 초식남 현상의 이유를 물었을 때 ‘어려운 경제력’ ‘자신감 위축’이 1순위로 꼽힌 이유가 따로 있지 않다. 여자들이 “회사에서 에너지를 다 소진했는데 연애할 때까지 내가 앞장서고 계획해야겠나?” 호소해도 남자들은 꿈쩍도 안 한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남자들도 직?간접적으로 드센 여자들을 이미 겪어 내성이 생겼다.물론 자신만만하고 똑부러지고 자신보다 잘난 여자를 포옹하고 싶은 남자들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기업컨설턴트 지윤정의 말을 들어보길. “우리 딸이 힐러리 같으면 자랑스럽지만 내 아내가 힐러리 같으면 골치 아프다.” 남자를 손등 위의 공깃돌 튕기듯 들었다 놨다 할 수 있는 여장부는 애인으로는 괜찮지만 결혼 상대자로는 골치 아프다. 일을 소홀히 할 수 없다며 아침 일찍 출근 카드 찍고 동 틀 때까지 꼬박 야근하고 퇴근 카드 찍는 아내를 생각해 봐라. 막상 나와 결혼할 여자라고 생각하면 솔직히 한숨부터 먼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고로, 직장에서 그러하듯이 사랑놀이에서도 남자에게 한 수 접어주지 않고 당당히 주도권을 요구하는 여자들, 남자의 품에 안길 수 있어도 그 가슴의 영원한 주인이 되기는 어렵다. 사회적인 자아를 감추고 일부러 부드럽고 다정다감한, 남자보다 뛰어나지 않는 ‘척’을 하는 영리한 여자들도 있다. 까다로운 남자들의 마음에 쏙 들기 위해 타협하고, 다른 사람들한테 까칠하고 도도하다가도 애인 앞에서는 약해지는 식. 이런 연애 유전자를 가진 여자들이 일찌감치 ‘품절녀’가 되는 건 그런 이유다. 때문에 직장 조직 내에서 남녀 관계가 역전될 수 있을지언정 남자가 여자를 리드하는 연애관계 모델의 오랜 관성은 생각보다 훨씬 견고하다. 결국 그 모델 하우스에 들어갈지 말지의 선택은 전적으로 여자의 몫이다. 사회적으로 강한 자신과 여자다운 나를 철저히 분리해 안고 살아가거나, 그 잘난 자존심을 지키려 기 세고 드센 여자에 겁 먹지 않은 호기로운 젊은이를 기다려보거나. 청일점의 딜레마여자 일곱에 남자는 달랑 하나. 어느 광고 마케터의 고백.“여자 많아서 좋지 않아요?” 사무실에 남자가 나 하나라면 다들 호기심 반, 부러움 반 버무려 던지는 질문이다. 내 대답은 다음과 같다. 벌레 보고 심장이 멎어버릴 것 같다는 여자들도 뭉치면 무서운 조직이 된다. 입사 초기엔 아예 맥을 못 췄다. 고등학교 때 10:1로 붙을 만큼 ‘깡’도 있는데 이상하리 만큼 음기 가득한 사무실에 들어서면 어깨가 쪼그라들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남자 입사 동기가 하나 있었는데 일이 적성에 맞지 않다며 한 달도 안 돼 꼬리를 감췄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여자들 기에 눌린 게 분명했다. 말 상대도 없고 딱히 할 말도 없어서 조용히 있으니 내가 물로 보였나 보다. 조금이라도 근육 쓰는 일이 있으면 생각할 것도 없이 램프의 지니 불러대듯 나를 찾는다. 그러면서 매일 헬스장 출석 체크하는 건 뭔지 싶다. 물론 점심 메뉴 선택권은 꿈도 못 꿨다. 가끔 뭐 먹고 싶냐고 묻지만 말 그대로 그냥 물어본 거다.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라고? ‘114’ 상담원 톤으로 친절, 상냥하게 통화한 뒤 수화기 내려놓으면 방금 누가 어쨌다는 둥 어이가 없다는 둥 하이파이 스테레오로 씹는 걸 보면 나도 제물이 될까 엄두가 안 나는 걸 어쩌나. 그렇게 꾸역꾸역 1년을 버텼다. 날 버리고 내뺐던 동기의 책상은 지금도 비어 있다. 중간에 남자 동지가 생기나 싶었는데 역시 적성에 맞지 않는다며 그만뒀다. 그러는 나? 영화 있잖아. 거기 보면 외계인에 동화되는 주인공처럼 나도 그녀들을 닮아가고 있다. 밥 그릇 비우는 속도도 비슷해졌고 여자들 수다 삼매경에 끝까지 동참하는 인내심도 생겼다. 아직까진 빛의 속도로 치고박는 여자들의 말에 함부로 끼어들지 못하지만 딴 생각을 하며 경청하는 ‘척’하는 기술을 체득했다. 시침 한 번 돌아갈 때마다 급변하는 그녀들의 기분도 눈치껏 알 수 있다. 남자 조직에서 일을 해봤는데 여자 그룹에 있는 지금이 훨씬 편하다. 쓸데없는 군대식 문화도 없고. 여기도 직급이 있지만 상명하복의 위계질서까지는 아니니까. 동틀 때까지 이어지는 회식이 없는 것도 좋다. 영화 보고 전시회 보고 맛집 찾아 다니는 편이 훨씬 영양가 있다. 물론 여자에 대한 환상 따윈 박살난 지 오래다. 애초 눈길 가는 사람도 없었지만 더 이상 여자로 느껴지지 않는다. 다행이다. 요즘 새로운 고민이 하나 생겼다. 나는 모르겠는데 말할 때 말투가 부드러워지고 손동작이 섬세해졌다는 지인들의 충격 보고가 잇따르고 있다. 그녀들이 내뱉은 공기를 마시는 동안 알게 모르게 여성스러움이 오장육부에 배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일부러 목소리도 깔고 더 남자답게 보이려고 하면서도 자신의 여성성을 뒤늦게 커밍아웃한 게이들의 사례가 남 얘기 같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이러다가 나도 언젠가 ‘드센 언니’가 되는 건 아닐까 모르겠다.비겁한 남자들에게 고함“얼마 전 취업한 남자친구가 일은 다 자기시킨다고, 선배가 사이코라고 이제 어떻게 일하냐며 칭얼대기 시작했다. 사회생활을 먼저 시작한 내가 듣고 있자니 신입사원이라면 누구나 다 겪는 일이거늘 그것도 못 참냐 싶다. 남자친구니까 듣고 앉아 있는 거다.” (익명 요구, 28세, 교사)“비겁하고 약한 남자? 주변에 널렸다. 나 하나 먹고살기도 힘든데 여전히 여자 하나는 먹여 살릴 수 있어야 할 것 같은 사회의 기대치는 남아 있고 ‘가오’ 하나에 죽고 사는 것이 남자건만 도무지 그럴 기회가 없으니 그저 상처나 받지 않도록 얌전하게 죽어 지내는 게 상책이겠지.” (김현숙, 30세, 칼럼니스트)“학생 시절엔 평생 데리고 살 것처럼 말하고, 졸업하면 바로 결혼하자고 징징댔다. 정작 취업하더니만 경제적인 여력이 안 된다며 내빼고, 회사 일로 바쁘니까 자기 좀 내버려두라고 짜증낸다. 사람이 의지박약이었다.” (공은혜, 28세, 공무원)“요즘 남자애들 왜 그리 맥아리가 없는지? 조금만 야근하면 눈 풀리고 멍해져서 얼굴 표정에 ‘저 좀 제발 집에 보내주세요’라고 써 있다. 녹용즙인지 자라즙인지 아침마다 뭔가 쪽쪽 빨고 있는 모습이라도 안 보이면 밉지는 않을 텐데.” (남은하, 31세, 디자이너)“소개팅했다. 미리 서로에 대해 많이 듣고 나간 터라 분위기가 괜찮았다. 데이트 코스도 잘 준비해오고 나름 성의를 보였다. 하지만 전화는 절대 하지 않고 문자로 찔끔찔끔 연락하는 데다가 사귀자 말자 정식 프러포즈도 없었다. 답답해서 때려치웠다.” (남기원, 27세, 세일즈)“우리 팀에 남자 동기가 하나 있다. 그런데 거래처와의 회식에서 “몸이 안 좋다.”면서 혼자 내빼더라. 당시 상황은 양쪽 부장님들 이하 모든 직원들이 곤드레만드레. 그날 술 취한 사람들 뒤치다꺼리하느라 새벽에 들어갔다. 남자 동기야, 너 혼자 따뜻한 집에서 일찍 자니 좋더냐? 못~난~놈.” (정원희, 28세, 은행원)“거래처 사람과 전화 미팅 중 언쟁이 있었고 각자 회사에 보고했다. 상대편 회사에서 들은 바에 따르면 그가 이랬다더라. “흥분만 하고 논리가 없더라. 나중엔 분에 못이겨 울먹거려서일부러 져줬다.” 웃기고 있네. 남자가 화내면 정당하고, 여자가 화내면 이성적으로 제어를 못해서 그런 건가?” (권보현, 26세, PR) 남자들의 빡센 여자 체험기“갑 위치에 있다고 어깨에 힘 팍 넣고 안하무인 태도를 보이는 여자 선배. 거래처 미팅할 때 내가 다 죄송하고 민망할 정도로 함부로 군다. 남자한테 쌓인 감정 다 푸는 거 아닐까? 딱 봐도 나이가 더 있어 보이는 분들한테 그럴 필요는 없는데.” (익명 요구, 31세, 대기업)“이 바닥에 오래 있으면서 느끼는 건데 거래처 사람들 중에 때도 안 묻고 예의도 참 바르던 친구들이 3~4년만 지나면 확확 바뀐다. 업무상 ‘밀당’도 할 줄 알고 나랑 맞먹으려 한다. 요령 있게 일하는 거라지만 가끔 보면 섬뜩하다.” (이기훈, 35세, 의류 영업)“우리 지점장님, 딱 보면 그냥 아줌마다. 그런데 일할 땐 카리스마 ‘작살’이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다는 식으로.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돈 타내려는 고객 때문에 쩔쩔매고 있으면 어디선가 달려와 똑 부러지게 설명하고 쫓아내는 모습을 보면 여자로서 그 자리까지 오른 이유를 알겠더라.” (박승철, 32세, 증권사)“나의 엑스와이프. 둘 다 야근과 주말 출근이 많은 직업이었다. 퇴근해도 휑한 집에서 혼자 맥주 한 캔 마시고 잠들고, 어쩌다 주말에 같이 쉬면 서로 짜증내기 바쁘고. 그러다 보니 왜 같이 사나 싶더라. 감정 싸움 같은 것도 없이 서로 ‘별개의 삶’을 인정하고 갈라섰다.” (정현우, 37세, 무역업) “클라이언트와 골프 약속을 잡았다. 여자 동료가 불같이 화를 내면서 “나를 따돌리는 거냐” “반칙이다” 해서 결국 골프장에 동행했다. 내가 놀란 건, 그녀가 저녁 후 2차로 룸살롱을 준비해뒀다는 것. 여자들이 더 무섭다.” (박상진, 33세, 세일즈)“여자 팀장 밑에서 일하고 있다. 하루 24시간을 어떻게 쓰나 궁금할 정도로 슈퍼 우먼이다. 그러니 감정이 하루에도 열두 번씩 오르내리는 건 상관하지 않는다고 치자. 프레젠테이션이 있는 날이면 대체 왜 어깨가 45도로 솟은 파워 재킷을 입고 올까? 계약 안 해주면 그걸로 치겠다는 메시지인가?” (김현욱, 29세, 광고AE)“전에 있던 회사의 여자 상사가 딱 그랬다. 자기만 믿고 따라오라는 식으로 앞뒤 안 재고 밀어붙이는 식이었으니까. 보통 남자든 여자든 기획안 들고 가면 이리저리 체크하고 계산하는데 무조건 지르고 보는 스타일, 참 피곤하지. 회사 풍비박산날 뻔했다니까.” (성정욱, 35세, 프로듀서)*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3월호를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