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의 D데이
휘파람을 불 것 같은 소년의 이미지로 기억되던 그가 새로운 욕심과 고민에 휩싸였다. 배우 김영광의 참 좋은 역사가 시작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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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사이즈 코트와 셔츠, 데님 팬츠는 모두 Ami.
안에 입은 티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스니커즈는 Paul Smith.
블랙 레더 셔츠는 Heich es Heich.
스웨이드 트렌치코트와 트위드 와이드 팬츠는 모두 Kimseoryong.
머스터드 컬러 브이넥 니트는 Wooyoungmi.
굿 보이 김영광이 변했다. 매일 ‘즐거운 재난’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9월 JTBC에서 방영 예정인 <디데이>는 서울에 대지진이 일어난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활약하는 재난의료 팀의 이야기를 다룬 메디컬 드라마. TV 드라마로 만나기 쉽지 않은 소재, 초대형 블록버스터로 주목받는 이 작품에 김영광이 주연으로 캐스팅됐다는 소식을 듣고 ‘드디어!’라는 느낌표가 떠올랐다. <아홉수 소년>과 <피노키오>에서 눈에 들어오던 배우 김영광의 어떤 변화가 더욱 극적으로 드러날 D데이를 만난 듯했다. 전날에도 보조 출연자 150명이 투입된 현장에서 늦은 촬영을 마친 그의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카메라 앞에서 그는 여전히 보기 좋은 피사체였고 셔터 소리는 멈추지 않았지만, 의사 가운을 입고 있지 않아도 온통 작품에 열중한 상태란 걸 눈치챌 수 있었다. 기대와 흥분, 고민이 동시에 튀어나왔고 어떤 것을 물어도 결국 연기와 <디데이> 현장에 대한 이야기로 흘렀다. “진짜 잘하고 싶어요.” 간절해진 김영광의 눈빛을 응시했다.
또 의사 역할이다. 의사 가운이 어색하진 않겠다 <굿 닥터>에서 레지던트 4년차로 나왔고, 이번 드라마에서는 집도의다. 레지던트 4년차가 집도의가 될 만큼, 실제 시간도 딱 그만큼 흘렀다.
<디데이>의 주인공 ‘이해성’ 역을 맡았다 이왕 연기를 시작했으니 멋있는 배우가 되고 싶은데, 그럴 만한 작품을 못 만난 아쉬움이 늘 있었다. 따뜻하고 어리숙한 이미지, 친구나 첫사랑 상대 같은 비슷비슷한 역할을 많이 했다. 나는 언제쯤 주인공다운 주인공을 하나, 갑갑했다. 이번 작품은 처음 얘기 들었을 때부터 내게 참 좋은 역사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신나서 무조건 하겠다고 했는데, 감독님이 대답을 안 주시더라. 나중에는 꼭 하고 싶다고 내가 매달렸다.
어떻게 매달렸는데 이해성은 불같은 캐릭터다. 감정적이고 흥분도 잘한다. 나랑 비슷한 점이 많고,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어필을 많이 했다. 감독님이 “그래, 하자”고 하셨을 때 정말 기뻤다.
이제 배우로 산 시간이 모델이었던 시간보다 길겠다 두 배 가까이 된다. 그런데 배우로서 아직 덜 다듬어졌다. 아까 영상 인터뷰를 하면서 ‘배우 김영광입니다’라고 말하는데 어색하더라. 모델로서는 나름 잘했는데, 배우로서는 왜 그만큼 되지 못할까 고민도 했지만 이제 그런 생각은 버렸다. 그럴 시간에 앞에 있는 것에 더 열중해야지.
<아홉수 소년>과 <피노키오>에 이어 <디데이>까지, 상승세처럼 보이는데 그런 기대는 안 하려고 한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 <아홉수 소년>부터 스스로 좀 편해지긴 했다. 평소 내 모습 그대로 연기했고, 즉흥적으로 나온 대사도 많았다. 편집이 안 됐으면 코미디였을 거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작품이 JTBC 드라마라서 더 좋다. 실험적으로 새로운 것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고, 예전에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로 한 번 인연을 맺은 터라 좀 더 편안하다. 이상하게 공중파에 출연하면 떨리더라. 지레 내가 기죽는 경향이 있다.
모델 출신 배우들이 공감하는 애로사항이 있었을까 모델은 각자의 이미지로 승부하는 사람들이다. 자기 이미지를 키워온 사람들이라 ‘왜? 나는 그렇지 않은데?’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예를 들어 우는 연기를 할 때, 마음속으로 ‘여기서 꼭 울어야 할까?’ 의문이 드는 거다. 영화는 드라마보다 감정의 수위를 올려야 시청자에게 전달되니까, 그런 면에서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어떤 때는 내 느낌이 맞을 때도 있다.
지진, 태풍, 화재, 홍수 등 여러 재난 중에서 가장 상상하기 싫은 건 화재로 죽진 않았으면 좋겠다. 불타 죽는 건 너무 고통스러울 것 같다.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두려움은 일이 없는 것? 그게 가장 무섭다. 피곤해도 계속해서 작품을 이어오고 있는 이유다. 그리고 일이 없으면 하루가 너무 길다. 운동하고 친구들이랑 밥 먹고 커피 마시고, 집에 와서 TV 보다가 잠들면 ‘아, 오늘은 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스물아홉이 되니 마음이 분주해졌나 보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지. 20대를 돌아보면 확실히 일하거나 놀지 못하고, 어중간하게 보낸 것 같아 아쉽다. 20대에만 할 수 있는 것들이 꽤 있지 않나. 모델 일 할 때 영어 한 마디 못해도 외국에 가서 쇼에 섰던 것처럼, 그런 경험을 더 많이 해볼걸. 감독님한테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얘기를 들었는데, 한번 가보고 싶어졌다. 감독님이 인생을 재미있고 즐겁게 살라며 이것저것 부추기신다.
감독님이라면 <디데이>를 연출하는 장용우 감독님, 요즘 내 스승이다. 본인이 경험했던 다양한 것들을 노트북에 담아 보여주셨는데,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흥분되더라. 클래식 기타도 잘 치시고, 젊은 세대 못지않은 얼리어답터다. 그리고 결혼 예찬론자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건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할 수 있는 가장 기쁜 짓 중 하나라고 얘기하신다. 말도 참 멋지게 하신다.
영향을 주는 사람들을 좋아하는구나 내게 뭔가 알려주고 자극을 주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이번 드라마에 함께 출연하는 차인표 선배님도 가까이에서 볼수록 대단한 분이다. 굉장히 친절하신데, 남자로서 카리스마도 지니셨다. 만나면 항상 따뜻하게 손잡고 격려해 주신다. 그리고 감독님한테 들었는데 좋은 일을 정말 많이 하신다고 하더라. 저런 배우의 삶도 있다는 것, 나도 열심히 해서 좋은 배우가 되어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어린 시절에 스쳐간 꿈 중에 혹시 의사도 있었나 의사는 한 번도 꿈꿔본 적 없다. 만화를 워낙 좋아해서 만화방 주인이 꿈이었다. 동네 만화방에 한 달 용돈을 다 갖다 바쳤다.
소박한 꿈이었네 아니, 나한테는 소박하지 않았다. 제일 좋아하는 꿈이었다. 고등학교 졸업해서 빨리 가게를 차리려면 책을 미리 조금씩 사둬야겠다 싶어서, 폐업한 만화방에서 싸게 파는 책들을 사들이기도 했다. 인천 어머니 집에 있는 것까지 합치면 500권 정도 될 거다. 요즘에는 IP TV로 애니메이션을 즐겨 본다.
혼자 살고 있나 혼자 산 지 8년 정도 됐다. 처음에는 집이 엉망이었는데 이제는 집안일도 익숙해졌다. 알아서 잘한다. 아침에 촬영 나가기 전에 쓰레기 내다 버리고, 늦게 들어와서 피곤해도 설거지할 게 있으면 대강 하고. 그런데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건 여전히 고역이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요리를 선보이기도 했다 예전에는 무조건 시켜 먹었는데 이제는 배달 음식이 맛있지 않더라고. 이따금 직접 요리를 한다. 차돌박이나 대패삼겹살을 사서 청경채, 미나리 같은 채소를 넣고 된장이랑 볶아 먹으면 맛있다. 밥 한 공기 먹고, 캔 맥주 한 잔 마시고 자는 거지.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보고 싶은걸 안 그래도 곧 출연하기로 했다. 그런데 냉장고에 든 게 별로 없다. 예전에 홈쇼핑으로 산 옥돔 정도? 되게 맛있어 보여서 샀는데 결국 거의 다 어머니 집으로 보냈다.
살뜰한 아들인가 거의 매일 통화한다. 어머니가 걱정이 많으신지 자주 뭘 물으신다. 솔직히 귀찮을 때도 있지만 다투진 않는다. 어머니랑 만나면 둘이 함께 커피도 마시고 공원도 거닐며 잘 논다. 그런데 서울 올라오시면 자꾸 등산복 매장에 가자고 하신다. 언젠가는 어머니 친구들보다 더 밝은 색 모자를 갖고 싶으셨는지, 사이즈가 살짝 작아 보이는데도 끝끝내 괜찮다고 놓지 않으셨다(웃음).
어머니 말고 곁에 두고 싶은 여자는 아직까지 혼자인 게 더 편하다. 이성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이 안 생긴다. 지금은 열심히 나를 몰아붙여야겠다는 생각뿐이다.
이미지처럼 밝고 태평한 사람인 줄 알았다 맞다, 그런 사람이다. 지금은 너무 잘하고 싶으니까 고민이 많아져서 그렇다. 행복한 거다. 촬영하는 게 정말 재미있다. 솔직히 예전에는 힘들면 편하게 가려 한 적도 있는데, 지금은 매 장면마다 시간을 들여 몇 번이라도 더 찍었으면 좋겠다. 특히나 내가 매달려서 하게 된 작품이고, 극을 끌어나가는 주인공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끝까지 부여잡고 싶은 욕심이 난다.
인생의 로망이 있나 뭔가를 정해두는 성격이 아니라 딱히 없지만 집에 대한 로망은 좀 있다. 남들보다 키가 큰데 원룸에 오래 살면서 침대도 작고 싱크대랑 세면대도 낮아 불편함이 많았다. 좋은 집에서 커다란 테이블에 앉아 식사하고 싶다. 친구 집에 원목으로 된 롱 테이블이 놓인 걸 봤는데, 기억에 남더라. 또 다른 로망이라면 쉰 살에 혼자 스카이다이빙하기? 몸으로 하는 건 다 자신 있다. 다치는 것도 별로 안 무서워하고. 다음에는 액션영화, 마초적인 역할을 해보고 싶다.
상남자의 매력,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나 물론이지. 남자라면 다 있다. 잘 꺼내지 않아서 그렇지(웃음).
Credit
- EDITOR 김아름
- PHOTOGRAPHER 정지은
- HAIR STYLIST 김영주 (AZURE)
- MAKEUP ARTIST 혜진 (AZURE)
- ART DESIGNER 이상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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