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젠더리스 스타일

페이스북과 구글은 가입 절차의 선택 항목에서 성별을 제외했고, 새로 오픈한 휘트니 뮤지엄엔 ‘All Gender’ 화장실이 생겼다. 지금 패션계 최고의 화두 역시 여자 또는 남자가 아닌 바로 당신 그 자체다.

프로필 by ELLE 2015.06.19



1 셀프리지 백화점이 기획한  ‘A Gender’ 팝업숍.
2 휘트니 뮤지엄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 ‘올 젠더 화장실’의 표지판.





3 니콜라 포미체티의 젠더리스 브랜드, 니코판다.
4 ‘A Gender’ 캠페인 비주얼.





5, 6 트랜스젠더에 주목한 영화들. 자레드 레토가 출연한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존 카메론 미첼 주연의 <헤드윅>.





7 전설적인 젠더리스 스타일의 아이콘, 데이빗 보위.





8 젠더리스 스타일의 아이콘, 커트 코베인.
9 젠더리스적인 접근이 돋보인 에이치 에스 에이치의 캠페인 비주얼.
10 에디 레드메인이 주연을 맡은 내년의 기대작 <대니시 걸>.


베이식한 스니커즈와 투박한 슬라이드만 신으면 제법 스타일리시해 보이는 놈코어가 지겨워지기 시작할 때쯤, 패션이 향할 다음 행보에 궁금증이 커져만 갔다. 이번 시즌의 빅 트렌드로 떠오른 조니 미첼 스타일의 느슨한 70년대 히피 무드가 패션 월드가 꿈꾸는 유토피아일까? 무엇이든 그랑 팔레에 뚝딱하고 지으면 메가 트렌드가 되는 칼 라거펠트가 주목한 우아한 카페 컬처는? 둘 다 이번 여름과 다가올 가을, 멋쟁이들이 빠질 만한 메가 트렌드인 건 분명하지만 패션 월드라는 거대한 배가 정박해야 할 다음 목적지는 조금 의외적인 곳이다. 2015 F/W 패션위크 이후, 패션 인사이더들은 패션 페리가 더 이상 성의 구분이 존재하지 않는 젠더리스 구역에 안착했다는 것을 실감했다(돌이켜보면 놈코어의 핵심인 편안한 유니섹스 스타일 또한 젠더리스를 향해 가기 위한 하나의 단계에 불과해 보인다). 새로운 시대에는 반드시 상징적인 모멘트와 인물이 존재하기 마련인데 2010년, 모던 미니멀리즘의 시대를 연 모멘트가 피비 파일로의 셀린 데뷔 컬렉션이었다면, 젠더리스 시대의 상징적인 모멘트는 밀란 컬렉션의 포문을 연 알레산드로 미켈레(Alessandro Michele)의 구찌 데뷔 쇼에서 이뤄졌다. 알려진 것처럼 올해 초, 구찌의 전 디렉터 프리다 지아니니가 계획보다 빨리 하우스를 떠나면서, 액세서리 디렉터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불과 한 달 만에 남성복과 여성복, 두 개의 컬렉션을 만들어냈다. 이 두 개의 컬렉션은 남성복과 여성복 패션위크 사이에 있었던 한 달이라는 시간차가 전혀 느껴지지 않을 만큼 꼭 닮은 데자뷰였는데, 더욱이 모델들은 성별 구분 없이 비슷한 옷을 입고 등장했다. 남자들도 프릴이 달린 숙녀 스타일의 리본 블라우스를 입거나 빈티지 핸드백과 베레로 멋을 냈고, 종종 어깨와 소매 부분이 지나치게 끼도록 의도적으로 맞지 않게 연출해 마치 여동생이나 여자친구의 옷을 빌려 입은 듯한 위트를 불어넣었다. 그건, 그녀 또는 그만 입을 수 있는 옷이 아니라 멜랑콜리한 로맨티시즘을 꿈꾸는 모두를 위한 컬렉션! 깜짝 놀랄 만큼 신선하고 섬세한 동시에 가슴 뭉클하도록 아름다웠다. 무엇보다 매우 동시대적이라는 점에서 알레산드로는 성공적인 데뷔 컬렉션이라는 호평을 얻었다. 70년대 데이빗 보위와 80년대의 보이 조지, 90년대의 커트 코베인으로 이어져온 젠더리스 스타일의 계보를 떠올려보면 컨셉트 자체는 새로울 것 없지만, 일부 서브 컬처가 아닌 하이패션의 메인 스트림에 등장했다는 것, 더욱이 이런 일이 일어난 곳이 소호나 쇼디치의 신진 디자이너 레이블이 아닌, 이탈리아 하이패션을 상징하는 유서 깊은 럭셔리 하우스라는 점에서 의미하는 바가 크다. 톰 포드의 손에서 시작돼 프리다 지아니니로 이어져온 구찌의 아이코닉한 글램 시대가 끝나고 새 시대가 열렸다는 하우스만의 이슈뿐 아니라, 패션의 현재와 미래를 보여주는 중요한 모멘트라는 점에서 말이다. 알레산드로는 구찌를 소유한 케링 기업의 프랑수아 앙리 피노 대표가 물색하던 ‘훨씬 더 위험한 쇼’를 보여줄 적임자 그 이상의 인물, 다시 말해 동시대적인 패션 히어로로 단번에 패션계를 사로잡았다. 물론 이런 무드는 알레산드로 이전부터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강력하게 젠더리스 메시지를 전해온 J. W 앤더슨과 에디 슬리먼, 리카르도 티시에 의해 뜨겁게 달궈졌다. 이미 남성복 패션계에선 ‘남성복의 종말’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떠돌 만큼 젠더리스가 커다란 이슈로 떠올랐으니. 남자들을 스커트에 익숙하도록 만든 리카르도 티시가 <WWD>와의 인터뷰에서 언급한 얘기는 시대가 얼마나 변했는지 실감하게 한다. “이제 여자들은 남성복을, 남자들은 여성복을 자유자재로 갖고 놀 수 있을 만큼 자신의 관능미와 섹슈얼리티에  자신감이 넘쳐요. 더 이상 남자들이 여성스러운 옷을 입으면서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 거죠. 그건 표현의 자유를 의미해요.” 변화는 단순히 옷의 디자인과 스타일에 그치지 않는다. 일례로 런웨이의 풍경도 이전과 많이 달라지고 있다. 남성복과 여성복의 런웨이가 하나로 통합되고 있는 추세. 이런 변화가 가능했던 건 남성복 컬렉션과 여성복의 프리 컬렉션이 오버랩되는 시점의 문제와 디자이너들의 젠더리스적 접근이 가능해진 덕분이다. 이미 프라다와 J. W 앤더슨은 프리 컬렉션을 남성복 컬렉션과 통합했고, 남성복 패션위크 기간 중 지방시와 라프 시몬스, 버버리 프로섬 등의 런웨이에 동일한 스타일의 옷을 입은 남녀 모델이 함께 등장한 지 오래다. 이런 추세라면 머지않은 미래에 남성복과 여성복 패션위크가 하나로 통합될 가능성이 크다(때문에 오는 7월부터 독립적으로 분리될 뉴욕의 남성복 패션위크는 시작도 하기 전에 시대를 역행하는 선택이라는 부정적인 말을 듣고 있다). 하이패션에서의 변화는 최근 몇 년 사이에 눈에 띄게 이뤄졌지만, 젊은 힙스터들 사이에선 이렇게 자유로운 표현 방식이 무척 익숙해 보인다. 나이, 성별, 문화, 지역을 배제한 것을 컨셉트로 한 로스앤젤레스의 데님 브랜드 69월드와이드(69Worldwide)와 일본 특유의 ‘가와이’ 취향을 가진 남녀 모두를 위한 옷을 만들기 시작한 니콜라 포미체티의 니코판다(Nicopanda)처럼 난해한 젠더리스 브랜드들이 힙스터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는 걸 보면 말이다. 지나치게 비슷비슷한 놈코어풍의 유니섹스 스타일이 넘쳐나는 서울의 인디 패션 신도 조만간 젠더리스 스타일과 방식으로 변화하게 될 거다. 자연스럽게 쇼핑의 형태와 숍의 풍경도 바뀌게 마련이다. 더 이상 카니예 웨스트와 지디 같은 특별한 패션 아이콘들만이 셀린의 여자 셔츠를 쇼핑하는 건 아니니까. 이제 남자들도 여자들의 섹션을 기웃거리며 쇼핑하는 걸 어색해하지 않고 여자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던 아이템들과 꽤 익숙해졌을 뿐 아니라(2015 F/W 시즌, 생 로랑 남성복 컬렉션에 등장한 8cm 힐의 앵클부츠는 매장에 당도하기 전부터 힙스터들의 주문 요청이 쇄도 중) 여자들처럼 쇼핑 자체를 즐기게 됐다. 이들에겐 기존의 쇼핑 방식이 오히려 불편한데, 그런 변화의 상징적인 예가 최근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동시다발로 일어났다. 런던의 럭셔리 패션을 상징하는 셀프리지 백화점이 기획한 팝업 숍 ‘A Gender’와 글로벌 온라인 리테일 숍 더코너스(www.thecorners.com)의 ‘No Gender’ 섹션이 그것이다. 말 그대로 휘트니 뮤지엄의 ‘All Gender’ 화장실처럼 남녀의 구분을 없앤 이 쇼핑 방식은 현재로선 꽤 혁신적인 시도로 보이지만 얼마 후면 무척 자연스러워질 미래적인 쇼핑 형태로 주목받고 있다.
이런 혁신을 통해 영향력 있는 디자이너들과 리테일 숍의 기획자들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전에 없던 새로운 것이 아닌 무척 평범한 얘기다. 그저 당신이 입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입으라는 것! 분명한 건, 앞으로 생겨날 수없이 많은 트렌드와 새로운 패션 비즈니스계에서 ‘젠더리스’라는 코드를 빼놓는다면 동시대적으로 어필하긴 곤란할지 모른다는 것.

Credit

  • editor 주가은 photo IMAXtree.com(컬렉션)
  • GETTY IMAGES/멀티비츠 design 최인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