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세 미중년의 조건, 콜린 퍼스
이미 우리는 멋진 영국 신사들을 봐왔다. 하지만 영국식 악센트로 매너를 말하고, 수트를 차려입은 몸을 우아하게 날려 악당을 제압하는 콜린 퍼스를 볼 땐 심장이 뛸 거다. 이런 남자가 또 어디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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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코트와 그레이 컬러의 라운드 티셔츠, 데님 진은 모두 Tom Ford.
 
 
 
 
 

 
재킷과 화이트 셔츠는 모두 Tom Ford.
 
 
 
 
 

 
울 소재의 카디건과 데님 진은 모두 Tom Ford. 화이트 컬러의 코튼 톱은 James Perse. 안경은 콜린 퍼스의 소장품.
 
 
불굴의 정신을 다룬 고귀한 드라마가 지루하거나 제인 오스틴이나 브리짓 존스가 자신의 취향이 아니라 해도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쥔 콜린 퍼스의 연기를 폄하하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그를 아는 이들은 한결같이 그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았다. 그가 암살 기술을 훈련받기 전에도 말이다. 지난 2011년 <킹스 스피치>로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이 54세의 배우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매력적이었다. 그는 지난 수개월간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의 베테랑 요원 역을 소화하기 위해 강도 높은 트레이닝을 전수받았다고 했다. 술집을 가득 메운 동네 불량배들을 맥주잔과 우산 하나만으로 간단히 전멸시키는 젠틀맨 스파이! 콜린 퍼스의 오랜 팬들 입장에선 미스터 다아시가 이처럼 폭력적인 코믹 북 스타일의 액션물에 등장한다는 것에 충격을 받을지도 모르겠으나 <스타더스트>와 <킥 애스: 영웅의 탄생>,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를 연출한 매튜 본 감독은 오히려 이런 기대감을 배반함으로써 거둘 수 있는 쾌감을 겨냥한 것 같다. “날 캐스팅한 이유 중 하나가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싸움을 못할 것 같은 사람을 원했기 때문일 거예요.” 콜린 퍼스의 설명도 그렇다. “예의 바르게 버튼을 꽉 채운 신사지만 변두리 동네 불량배로부터 ‘이봐, 노친네. 다치기 싫다면 빠지시지?’란 소릴 듣고 손을 쓰게 되면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지죠.” 물론 눈앞에 있는 콜린 퍼스는 노친네도, 훈련받은 킬러도 아니었다. 정신없이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소문대로 긴 다리 덕분에 낮은 테이블에 자꾸 무릎이 부딪히는 걸 볼 수 있었다. 그때마다 그는 얼굴을 찡그리지도 않고 잠시 침묵했다가 말을 이어나갔다. <오만과 편견>, <싱글맨>,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에서 봤던 정중한 매력은 그의 모습 그대로였다. 게다가 중간중간 자신을 아는 사람에게 팔을 흔들며 인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야말로 친절한 동네 주민이었다. “모든 액션을 진짜 다 소화했나요?”라고 묻자 그는 장난기가 발동한 듯 찌푸린 표정을 보이며 말했다. “모든 액션이라! 당신은 날 믿지 못하는군요!” 그리고 말을 이어나갔다. “웬만하면 직접 소화해 보려 했지만 사실 모든 고통을 다 경험하진 못했어요.” 그래도 대역 없이 80%의 액션을 소화하기 위해 그는 장장 6개월 동안 싸움의 기술을 익혔다. 액션 수업을 위해 그의 집 정원으로 다양한 기술을 지닌 남자들이 찾아왔다. 성룡의 액션을 맡았던 트레이너, 태국의 킥복싱 챔피언, 올림픽 체조선수, 총기 전문가 등등. “솔직히 약간 두려웠어요. 처음엔 온몸의 근육들이 다 삐그덕거리는 것 같았죠. 내가 스무 살이 아니라는 건 누구보다 잘 알지만 심지어 스무 살 때조차 이런 경험은 없었거든요.” 그리고 그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들의 뛰어난 재능에 놀라기도 했고, 나와 완전히 다른 길을 걸어왔다는 사실에 당황했어요.”
 
콜린 퍼스는 영국 햄프셔에서 태어났다. 세 아이 중 장남이고 부모는 모두 교육자였다. 선교사인 조부모와 여행을 자주 다니는 부모 덕에 유년 시절은 나이지리아에서 보냈고, 미국을 거쳐 다시 햄프셔로 돌아왔다. 학업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그는 학교에 쉽게 적응하지도 못했다. “부분적으론 여행을 많이 다닌 탓일 수도 있어요. 학교가 바뀌고, 나라가 바뀌고, 런던 드라마 센터에서 공부하기까진 이런 과정이 수시로 반복됐죠. 그러다 이런저런 이유로 나처럼 수업을 불편하게 느끼는 학생들에게 둘러싸이게 된 거죠. 드라마 스쿨은 이상함 혹은 특이함에 대한 관용이 높은 세상이었거든요.” 다행히도 그는 거기서 영감을 주는 교사를 만났다. “드라마 선생님은 역설에 대해 말하곤 했죠. 그녀는 진실을 찾아내는 과정에 대해 말하면서 우리가 완전히 틀릴 수도 있음을 상기시켜 줬어요. 일부 반박하는 학생도 있었지만 완전한 모순이라는 것 자체가 제겐 흥미진진했어요.” 콜린 퍼스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유명세를 얻은 스타가 아니다. 그는 다채로운 호기심을 바탕에 둔 연기 경험을 서서히 쌓으면서 완성된, 연기적 깊이로 다져진 배우다.
 
“물론 이렇게까지 고고한 역할을 자주 맡게 되리라곤 생각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귀족적인 캐릭터로 굳어지더군요. 학창 시절엔 그런 전형이 될 수 있으리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때는 단지 배역을 맡았다는 사실만으로 흥분됐으니까요. 게다가 내가 다니던 학교의 학생들은 대부분 평범한 중산층 가정의 아이들이었고요.” 1995년, BBC 드라마 <오만과 편견>의, 바로 그 젖은 셔츠를 입고 호숫가를 걸어 나온 미스터 다아시를 연기하며 수많은 팬들을 만들어낸 그는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서 미스터 다아시를 연상시키는, 무뚝뚝하지만 로맨틱한 마크 다아시 역을 통해 다시 한 번 진중하면서도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발휘했다. 그는 그때 이미 ‘품절남’이 돼 있었다. <발몽>에 함께 출연했던 동료 배우 맥 틸리(Meg Tilly)와 결혼해 아들을 낳았고, 이후 그녀와 결별했지만 이탈리아 출신의 영화제작자인 리비아 지우지올리(Livia Giuggioli)와 재혼해 두 아들을 얻었다. 사실 그는 정치와 인권에 대해 강한 목소리를 내는 배우다. 덕분에 그로부터 망명자 보호와 수감시설의 개선에 대해, 지금까지 지지해 온 자유민주당에 대한 실망감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측근에 따르면 그는 망명 신청자나 난민의 권리와 환경 문제에 관한 운동에 참여했는데 <가디언>지의 난민 기사를 읽은 직후에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도울 방법을 물어봤다고 한다. 그가 누구인지도 몰랐던 기자는 그가 보낸 갈색 봉투에 가득 담긴 기부금을 난민에게 전달했다.우린 자연스럽게 패션 디자이너이자 <싱글맨>의 감독인 톰 포드로 화제를 옮겼다. 극중에서 콜린 퍼스는 인생의 파트너를 잃은 동성애자 대학교수로 분했다. 그에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라고 말하자 반갑게 화답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예요. 혹자는 지나치게 미학적인 영상과 스타일이라 비판하지만 그건 감독 의자에 앉은 디자이너의 머릿속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특별한 설득력을 지녔기 때문이에요. 난 그곳에 있었어요. 사실 많은 감독들이 배우에게 시각적인 지시사항을 전달하곤 하죠. 턱을 오른쪽으로 혹은 왼쪽으로 돌리길 요구하거나 원하는 효과를 얻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는 결코 그러지 않았어요. 톰은 삼각대에 카메라를 올려놓은 뒤 배우들의 연기를 지켜봤죠. 그는 간섭을 최소화하며 조용히 권위를 쌓아나갔어요. 실제로 <싱글맨>은 21일 만에 촬영을 마쳤고, 대부분의 가구나 소품들은 <매드맨>에서 빌려온 것이었죠. 좀 더 깊숙이 바라보면 단순히 ‘패션 필름’으로 치부될 작품이 아니란 걸 깨닫게 될 거예요.”
그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면 근사한 영국 귀족의 이미지를 벗어난 현실 속의 콜린 퍼스에게도 충분한 애정을 품을 가치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지금의 그가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든 ‘또 다른 성공’을 거뒀든 간에 확실한 건 캐스팅 디렉터들의 상상력을 깨는 일은 없을 것이란 사실이다. 그를 영화 속에 앉혀놓는 것만으로도 그의 ‘수트발’이나 무뚝뚝하면서도 로맨틱한 영국식 악센트보다 가치 있는 세계관을 얻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국왕이든, 스파이든, 동성애자이거나 이성애자이거나, 연인이든 킬러이든, 어느 누가 된다 해도 당신은 콜린 퍼스를 사랑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매너를 아는 남자가 영화 속에서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걸 안다면 더욱 빠져들 수밖에. 어쩌면 그 매너가 콜린 퍼스라는 배우를 만든 것 아닐까?
 
 
 
Credit
- writer sophie heawood
- photographer robert harper
- stylist michelle duguid
- DESIGN 오주희
엘르 비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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