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iful as you
말수 적은 신비로운 미소년처럼 보이던 엠버가 변했다. 변화는 안에서 밖으로 도미노처럼 일어났다. 여전히 서툰 우리 말이지만, 새로워진 엠버가 세상에 전하고픈 메시지는 또렷하다. "우리 모두는 지금 이대로 아.름.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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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팽글 재킷은 Kimseoryong. 레터링 프린트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목걸이는 Mzuu. 피어싱은 모두 엠버 본인의 것.
 
 
 
 
 
 
숏 레더 패딩 재킷은 Duvetica by Geekshop. 광택 소재의 톱은 COS. 실버 컬러 팬츠는 Pushbutton. 볼드한 디자인의 목걸이는 Blackmuse.
 
 
 
 
 
 
프린지 장식의 레더 재킷은 Saint Laurent by Hedi Slimane. 스프라이트 톱과 디스트로이드 데님 팬츠는 모두 H&M. 슈즈는 Namuhana.
 
 
 
 
 
 
여유 있는 핏의 화이트 재킷은 Kimseoryong. 스팽글 장식의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올해 나이 스물넷, 본명은 엠버 조세핀 리우(Amber Josephine Liu). 5인조 아이돌 f(x)의 엠버는 현존하는 걸 그룹 멤버 중에서 가장 도드라진 매력을 지닌 한 명이다. 화려한 메이크업과 의상으로 한껏 단장한 소녀들 사이에서 쇼트커트 헤어와 팬츠 차림의 보이시한 스타일은 엠버만의 개성으로 자리 잡았다. 신비로운 미소년 같은 이미지, 자연스레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임에도 다른 멤버들에 비해 개인 활동이 적어 그녀의 진면목을 알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요즘 “엠버를 다시 봤다”는 말들이 많다. MBC <진짜 사나이-여군특집>에서 서툰 한국어 실력에도 진지하고 열정적인 태도로 임하는 모습이 대중의 호감을 산 것이다. “영어 속어 중에 ‘butt-kicking’이란 말이 있어요. 한 대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죠. 그동안 너무 편하게 살았던 것 같아요. 나와 전혀 다른 일을 하는 분들을 진심으로 존경하게 됐어요.” 열혈 군인에서 현실로 복귀한 엠버는 털털하고 장난기 많은 톰보이 같다. 포토그래퍼에게 꾸벅 인사하고 건넨 첫 말은 “이따가 저 막 대하셔도 돼요”였다. 오자마자 준비해 둔 한식 도시락을 뚝딱 해치우고, 스태프들과 ‘다나까’식 말투를 주고받으며 즐거워했다. 옷을 갈아입고 테스트 컷을 확인할 때는 예쁜 척 대신 최대한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엠버의 SNS에 오른 사진들도 마찬가지다). “친한 친구들이랑 유치한 장난을 많이 쳐요. 서로 재미있는 몰카도 찍고요. 일하면서 친해진 가수 친구들도 있고, 외국인 커뮤니티를 통해 만난 일반인 친구도 많아요.” 촬영을 준비하는 중간중간 휴대폰을 받는 엠버는 한국어와 영어, 중국어를 번갈아 구사했다. 한국에 전혀 연고가 없는 ‘대만계 미국인’인 엠버를 아직도 한국말이 서툰 재미교포쯤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고향 LA를 떠올리면 자유로웠던 어린 시절이 생각나요. 친구들과 농구하거나 아이스크림 가게에 몰려가던 기억. 천방지축이었어요, 헤헤. LA는 1년 내내 따뜻해서 한국에 처음 왔을 때 겨울 날씨에 적응하기가 제일 힘들었어요. 집에 전기장판이 네 개나 돼요.” 가수가 되기 위해 멀고 낯선 나라에 온 지 7년째. 1주일에 한두 번 한강 둔치에서 달리기를 하고, 친구들을 집에 불러 게임을 하거나 강아지 ‘짹짹’, ‘공주’와 놀아주는 서울 하늘 아래서의 소소한 일상이 익숙해질 만한 시간이다. “연습생 시절에는 힘들다는 생각도 들었죠. 한 시간에 한 번씩 지갑에 꽂아둔 가족 사진이나 LA 친구들이 써준 메시지를 꺼내봤어요. 이제는 괜찮아요. 통신기술이 발달해서 어디서든 서로 연락할 수 있고, 가족들도 자주 놀러 오거든요. 아, 오늘도 아빠가 비즈니스 때문에 한국에 오세요!” 화제는 급히 ‘가족’으로 전환됐다. “아빠랑 영어로 말하고 엄마와는 중국어로 이야기해요. 물론 정신없는 상황도 생기죠(웃음). 전 ‘대디스 걸(Daddy’s girl)’이에요. 아빠와 친구처럼 지내요. 언니랑도 얘기를 많이 나누고요. 그런데 제가 정말 힘들 때 찾는 사람은 엄마예요. 연약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마음속 믿음이 강한 분이에요. 오직 엄마만이 해 줄 수 있는 위로가 있어요.” 자애롭고 개방적인 부모님은 엠버가 엠버답게 성장하게 해 준 일등공신. 뛰어놀기 좋아하는 왈가닥 막내딸은 집을 떠나 한국이란 나라에서 가수가 됐고, 또 한 번의 데뷔를 앞두고 있다. f(x) 멤버 중 처음으로 솔로 앨범 <Beautiful>을 선보이게 된 것. 동료들이 드라마나 뮤지컬로 활동 영역을 넓히는 동안, 엠버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음악에 대한 깊숙한 열정을 키웠다. 지난 몇 년간 일상 속 생각들과 기쁘고 아팠던 일들을 음악으로 기록해 왔고, 이번 앨범은 그렇게 차곡차곡 쌓인 두툼한 일기의 요약본이라 할 수 있다. “앨범에 들어갈 곡을 고르면서 제 음악의 뿌리가 뭔지 생각했어요. 사운드나 장르보다 메시지에 집중했고요. 내가 어떤 생각으로 이 곡을 만들었고, 듣는 사람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을지를요.” 팀의 래퍼인 줄만 알았던 그녀가 싱어송라이터로 진화하고 있었을 줄이야. 이번 앨범에서 엠버는 직접 한글 노랫말도 지었다. “한국어가 서툴다고 해서 겁먹고 물러서고 싶진 않았어요. 실수하더라도 도전해 보겠다고 했죠. 저를 잘 아는 주변 친구들이 많은 도움을 줬어요.” <진짜 사나이>에서 알아듣기 어려운 군대 용어를 일일이 물어가면서 각종 훈련을 악착같이 해낸 것처럼 ‘포기하지 않는 마음’은 엠버가 지닌 가장 강인만 면모다. “하나에 꽂히면 끝까지, 완벽하게 하고 싶어 해요. 의상이나 메이크업에는 별로 신경 안 써요. 대신 내가 진짜 사랑하는 것에는 아주 집요해요. 이번에 음반 작업을 하면서도 프로듀서 오빠랑 많이 싸웠어요(웃음). 제 머릿속의 비전이 분명했거든요. 이번 앨범을 통해 나를 다시 소개하고 싶어요.”
 
그녀의 표현처럼 이번 미니 앨범이 ‘새로운 자기소개’라면 본론에 해당하는 곡이 바로 ‘Beautiful’이다. “3년 전 생일에 만든 곡이에요. 진짜 제 이야기를 담은 노래죠.” 최대한 자신의 마음을 전하려는 듯 엠버가 눈을 맞추며 말을 이어갔다. “지금까지 살면서 ‘넌 왜 여자답지 못하냐?’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여자는 이렇거나 저래야 한다는 얘기들. 그러다 보니 제 자신이 밉고 창피하게 느껴졌어요. 숨고 싶고, 혼자 있고 싶은 시간들이 있었죠. 그런데 어느 순간, 억지로 내가 바뀔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아름답다’는 말을 내 안에 잡아보려고 했어요.” 마음의 변화는 안에서 밖으로 도미노처럼 일어났다.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생겼고, 자연스러운 나를 드러낼 용기가 생겼다. 회사에 그간 작업한 곡들을 들려주며 앨범을 내고 싶다고 말한 것도 엠버였다. 늘 멤버보다 조금 뒤에 서는 걸 편히 여겼던 그녀인데. “어릴 적 제게 여러 롤 모델이 있었다면, f(x)를 통해 이제 제가 누군가의 롤 모델이 될 수 있는 위치에 가까워진 것 같아요.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여성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를 심어주고 싶기도 하고요. 남과 비교할 필요 없이 우리는 누구나 그 자체로 아름답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요.” 아름다움에 이어 ‘행복’에 대한 엠버의 정의도 곱씹을 만하다. “진짜 행복을 찾기보다 눈에 보이는 것에만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요. 돈 없고 집 없어도 좋아하는 일을 하거나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잖아요. 저는 스스로 축복받았다고 생각해요. 부모님의 보살핌 아래 걱정 없이 자랐고 가수의 꿈도 이뤘어요.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요.”
 
며칠이 지난 2월 9일, 정식 앨범 발매에 앞서 ‘beautiful’의 리릭 비디오가 공개되는 날, 엠버는 자신의 트위터에 한국어와 영어로 다음과 같이 올렸다. “3년 동안 가지고 있었던 곡입니다. 누가 뭐래도 여러분은 있는 그대로 아름답습니다.” 유년 시절부터 현재까지 엠버의 다채로운 모습을 모은 영상 위로 흐르는 노랫말, “고갤 숙인 채 하늘을 피해 숨지. 어두운 마음속 밤은 한없지”로 시작하는 곡은 점점 고조되면서 이렇게 노래했다. “두려움 없이 더 높이 날 수가 있어 어둠 속에 갇혀도. 그 어떤 상처마저도 내겐 아름다워.” 인터뷰 원고를 쓰기 앞서 촬영한 사진들을 다시 들여다봤다. 왼쪽 팔목에는 십자가, 오른쪽 팔목에는 오선지와 음표 문양의 타투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언제, 어떤 다짐을 떠올리며 살갗을 파고드는 아픔을 참았을까. 더 솔직한 모습으로 용기 있게 내디딘 발걸음이 그녀의 인생에 새기고픈 또 다른 의미를 만들어주길.
 
 
 
Credit
- editor 김아름
- photographer 김형식
- stylist 김봉법
- DESIGN 오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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