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한 해는 ‘한식 세계화’가 사회적인 화두였다. 농림수산식품부는 ‘2017년까지 한식을 세계 5대 음식으로 만들겠다’는 한식 세계화 프로젝트를 발표하며 포문을 열었다. 다양한 한식 관련 행사는 프라임 타임 시간대 뉴스를 장식했고 각 방송사는 한식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 및 다큐멘터리를 앞다투어 제작했다. 서울시는 이례적으로 스타급 외국인 셰프와 해외 주재 양식당 한국인 요리사를 한식 세계화 프로젝트에 초청해 서울 소재 특급 호텔에서 한식 주간까지 마련하는 적극성을 보이기도 했다. 요리의 섬세한 세계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주최측이 업적 쌓기에 급급해 더 많은 한식 재료를 레서피에 활용해달라고 무리하게 주문한 탓에 준비해온 레서피를 부리나케 수정하는 ‘미션’ 같은 이벤트를 수행한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고 한다. 유명 셰프 몇명이 한식을 세계화시킬 수 있다면 얼마나 쉽고 편할까? 하지만 음식 문화야말로 각 민족의 삶, 생활 양식, 그리고 문화가 유구한 세월에 걸쳐 자연스레 스며들어 내려온 문화적 결정체이므로 하루 아침에 성과를 올릴 수 있다고 기대하는 건 무리다. 어서 빨리 세계화가 되기를 원하는 쪽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이방인 사이에는 분명 간극이 존재한다. 한식 세계화 사업은 이명박 대통령 취임 후 연구 기관이나 학계에서 산발적으로 시행되어 왔다. 그러던 것이 영부인 김윤옥 여사가 직접 프로젝트를 챙기면서 급물살을 탔다. 영부인이 진두 지휘하는 모습은 그 추진력에 있어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몇 년 전까지 필자에게 걸려왔던 기자들의 도움 요청 전화 대부분은 서양 요리의 특성이나 재료 설명, 서양 테이블 매너, 외국 셰프들의 동정 등에 대한 것들이었다. 반면 요즘은 한식에 관한 이런저런 질문이 쇄도한다. 필자 역시 한식 세계화 추진위원회 위원으로 임명장까지 받아들었다. 한식 전문가도, 한식 요리사도 아니지만 해외파의 한 사람으로서 스타급 셰프들과 인연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 아닌가 싶다. 지난 1년 동안 한식 세계화를 위한 노력은 다각도에서 이뤄졌다. 전문가 집단, 학계, 재계는 물론 떡볶이 연구소 같은 ‘뜻밖의’ 연구 기관도 만들어졌다. 한식당 오너들도 의기투합, 열심들이다. 대통령 해외 순방길의 만찬 메뉴도 한식, 해외 주재 공관의 행사 주제도 대부분 한식이다. 하지만 나는 그에 앞서 지금 이 시점에서 세계화된 한식을 즐기는 우리의 모습은 과연 어떤지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식 세계화란 단순히 세계인의 입맛에 맞게 조리된 한국 음식을 세련된 분위기로 치장해 외국인 스스로 지갑을 열어 사먹게 한다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다. ‘몇년도까지 전세계에 몇개의 한식당을 열겠다’는 산술적인 계획도 그다지 중요하다고 보지 않는다. 우리의 음식이 세계에 우뚝 선다면 그와 함께 다양한 소재의 숟가락과 젓가락, 식기, 우리 고유한 식자재나 향신료, 전통 주류나 음료, 다과와 차 문화, 레스토랑 안에서 울려퍼질 우리의 선율(노래), 웨이터나 웨이트리스가 입을 우리의 의상이 함께 세계로 뻗어나가야 한다. 그렇게 돼야 우리 식문화와 관련된 기업체도 해외로 함께 나갈 수 있고, 밭에서 구슬땀을 훌리는 농부도 보람을 찾을 것이며, 평생 우리 것을 지켜온 장인도 자부심을 느낄 것이다.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모든 문화가 함께 어우러져 세계에 전파되면 대한민국 국가 브랜드는 자연스레 상승한다. 해외의 고급 레스토랑을 자주 체험한 사람은 레스토랑에 가기 전부터 그곳의 멋진 분위기에 걸맞는 의상과 소품을 미리 준비하는 노력도 마다하지 않는다. 우리는 어떤가. 지금까지 한식을 대표해온 불고기를 먹을 수 있는 ‘고깃집’을 보자. 외국인들은 고깃집에 가기 전, 멋진 의상을 챙겨입기는 커녕 나중에 드라이크리닝을 맡겨야 하는 수고를 덜기 위해 집에 돌아가 세탁기로 세탁할 수 있는 편한 옷을 갈아입고 나타나곤 했다. 고기 냄새 때문이다. 한 외국인은 일본의 어느 회사가 개발한 화로를 설치한 동경의 야끼니꾸 전문점에서는 환기 시스템이 훌륭해 음식 냄새 걱정 없이 식사했다는 말을 들려주었다. 종주국인 우리가 ‘김치냐 기무치냐’로 정통성을 논할 때 일본은 ‘불고기냐 야끼니꾸냐’를 따지기보다는 불편한 환경을 기술 개발로 보완해 완벽을 기해가고 있다. 우리가 그들에게 보여주는 친절한 시식 이벤트나 외국인 초청 세미나로는 한계가 있다. 그들의 소매 끝을 끌어당기기보다는 그들 스스로 마니아가 되도록 만들기 위해 입에서 느끼는 즐거움 이상의 것을 선사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파악하고 느끼기 전에 외국인 입맛을 맞추는 데 급급하다.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계파간 원조 논리를 펴고, 자신의 연구가 더 진보적이라고 자찬하기 바쁘다. 불고기 전문점은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의 고급 한정식 문화는 어떠한가? 식사 후 자리를 떠나며 뒤돌아 본적 있는지 묻고 싶다. 이제 한식 세계화를 위해 우리 개인의 자세부터 뒤돌아봐야 한다. 유럽에서는 자신이 주문한 음식을 제대로 먹기 위해 어려서부터 가정 또는 학교에서 커트러리(포크, 나이프, 스푼)를 정확하게 사용하는 법을 교육받는다. 하지만 포크를 어떻게 들고 나이프를 어느 손에 잡느냐 하는 디테일보다 더 중요한, 그리고 가장 훌륭한 식탁 예절 중 하나는 자신 앞에 놓인 테이블 크로스 위에 음식물을 흘리지 않고 처음 상태처럼 깔끔하게 식사를 마무리하는 태도다. 물론 서양 음식과 동양 음식은 주식이 다르고, 정서가 다르지만 인간의 기본 자세는 서로 통한다. 잘근잘근 씹다 밥그릇 뚜껑에 뱉은 게장 껍데기, 그릇에 벌겋게 얼룩진 찌개와 김치 국물 자국들, 아무렇게나 흐트러져 내팽겨쳐진 숟가락과 젓가락…. 한식 세계화에 선행되어야 할 것은 식사 예절 선진화다. 우리는 타인이 먹여주는 이유식을 거쳐 스스로 숟가락을 휘두르며 반은 흘리고 반은 입으로 가져가는 시기를 끝마치면 부모로부터 젓가락 쥐는 법을 배우게 된다. 한국의 코흘리개 아이는 또래 서양 아이들이 배우는 포크질보다 아마 백 배(?)는 힘든 젓가락질 마스터에 도전하는 셈이다. 서양 아이가 포크로 음식을 쿡 찍어 입에 넣을 때 한국 아이는 다섯 손가락 사이에 젓가락 두 개를 끼워 일곱개의 도구로 현란하게 음식을 날라 입으로 가져간다. 여기까지는 훌륭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보다 남을 배려하는 따뜻한 매너를 배울 기회가 적었다. 우리 부모, 조부모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그들 역시 젓가락질 기술 이상의 교육을 받고 자란 여유 있는 세대는 아니었다. 필자도 이른 해외 생활과 직업상 접하게 되는 동서양의 품격 있는 식사, 그리고 오히려 젓가락 문화를 연구하는 해외 전문가로부터 젓가락 사용을 교정받았다. 그런 과정에서 깨닫게 된 올바르지 못한 젓가락 사용법과 태도를 적는다. 다 아는 내용이겠지만 식사 시간에 한번쯤 상기해보시라.
첫째, 얘기하면서 젓가락을 입보다 높이 올려 흔드는 모습. 둘째, 입 안에 먹고 있는 반찬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다른 반찬으로 젓가락을 옮기는 모습. 셋째, 젓가락으로 그릇 안쪽의 음식을 비집어 끌어내는 모습. 넷째, 젓가락 끝에 남아 있는 국물이나 양념을 흔들어 털어내는 모습. 다섯째, 무엇을 먹을까 젓가락을 들고 이리저리 헤메는 모습. 여섯째, 젓가락 끝에 묻은 음식을 입으로 뜯어 먹는 모습. 일곱째, 식탁 먼 곳에 있는 음식 접시를 젓가락으로 접시째 끌어 당기는 모습 여덟째, 젓가락을 한 쪽씩 나눠 쥐고 음식을 자르는 모습. 아홉째, 젓가락을 손에 쥔 채 그릇을 입에 대고 마시는 모습. 열번째, 집어 들기 힘든 음식을 젓가락으로 찔러서 먹는 모습.
역시 우리 모두 다 아는 얘기다. 하지만 필자가 함께 식사해본 남녀노소 한국인의 90%는 이 열 가지 중 적어도 두 세 가지 모습을 습관적으로 행하고 있었다. 한식 세계화를 외치면서 외국인에게 젓가락 사용법만 가르쳐주기보다는 젓가락을 포함한 우리의 식사 문화에 대한 올바른 자세와 마음가짐도 음식과 함께 알려줘야 할 시점이다. 한식 세계화를 누구 한 사람, 혹은 정부 기관의 프로젝트로 치부해 잘하나 못하나 팔짱끼고 구경만 하는 것보다는 우리 한 명 한 명도 마음과 뜻을 모아 동참하는 기분을 가졌으면 한다. 세계화된 한식이 품격 있는 이미지로 전세계로 뻗어나가고 세계인들이 한식 체험을 통해 한국 문화에 경외감마저 느낄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글/ 송희라(음식 평론가, 세계미식문화연구원 원장)
* 자세한 내용은 루엘 본지 2월호를 참조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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