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LYE

평양에서 만둣국 먹을 날을 그리며

'서울에서 평양까지 택시요금 XX만원 소련도 가고 달나라도 가고 못 가는 곳 없는데 광주보다 더 가까운 평양은 왜 못 가~' 미슐랭 스리 스타 레스토랑에 앉아 맛보고 싶은 궁극의 맛 못지않게 평양 시내를 굽어보며 평양냉면과 만둣국을 원 없이 먹고 싶다. 지치도록 물릴 때까지.

프로필 by ELLE 2010.03.01


[Profile]
이름: 낭만식객
성별: 스테레오 타입을 거부하는 양성성 소유자
취미: 한 종목에 꽂히면 석 달 열흘간 한 놈만 팬다.
특징: 사주팔자에 맛 미(味) 자가 있다고 용한 점쟁이가 일러줌
과제: 어지러운 중원에 맛의 달인, 진정한 고수 찾기

우리 아바지 고향이 이북이다. 식성도 까다롭고 고집도 불통이시다. 고향을 잃었다는 것이 어느 정도의 슬픔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아버지가 기억하는 고향은 많은 부분 맛에 달려있다. 아버지는 곧잘 어린 시절 당신이 먹었던 음식들을 자세하게 묘사하며 손수 시범을 보이기도 하셨다. 서울에서 먹는 빈대떡은 빈대떡이 아니라며 순수하게 녹두만을 갈아 아기 손바닥만하게 부친 녹두부침을 최고로 치셨다. 해서 명절이면 빠지지 않는 음식이 바로 녹두부침과 만두, 그리고 냉면이었다. 추운 겨울 시린 손 불어가며 만들던 큼직한 만두는, 정성스럽게 빚어 밖에 내놓으면 얼마 안되어 꽝꽝 얼어 두고두고 꺼내 국도 끓여먹고 찜도 쪄먹고 큼직한 냄비에 귀한 재료 올려서 전골을 끓일 때 만두를 올려 먹기도 하는 활용도 높은 음식. 여하튼 만두는 정초에 먹는 시절음식이었다. 만두뿐만이랴. 양지와 사태를 넣고 오래 끓인 육수를 차갑게 식혀서 배나 무채 같은 간단한 고명에 계란 반쪽만 올려서 먹는 냉면은 우리 집의 모든 식구가 열광하는 메뉴였다. 어머니가 밤에 육수를 만들고 계시면 어린 나는 아침부터 냉면을 먹기 위해 졸린 눈을 부비며 일어나 '엄마, 냉면~'하고 외쳤다. 평양냉면이 무슨 맛이냐고 그 심심한 맛을 의아해하는 사람도 많지만 삼시 세끼를 냉면으로 먹어도 지치지 않는 내 인생 최고의 음식은 역시나 냉면이다. 냉면은 원래 겨울 음식. 추운 겨울 이를 덜덜 떨며 얼음 살살 떠 있는 육수에 면을 말아먹으면 뜨거운 여름 땀 뻘뻘 흘리며 삼계탕 먹는 쾌감을 느낄 수 있다. 만두와 냉면. 그 소박하고 대중적인 메뉴의 고수를 찾아다니느라 서울 시내 이름 알린 만둣집들을 순례하듯 돌아다녔다. 이틀 걸려 한번씩 만둣국을 먹다보니 좀 물릴 법도 한데 태생때문인지 매번 감사한 마음으로 마지막 육수까지 모두 들이켰으니 조상님께 감사해야 할까. 심지어 명절 앞두고 집에서 석 달은 넉넉히 먹을 만두를 빚어놓고 주식, 간식으로 몇 개씩 꺼내 끓여먹는 맛은 또한 남 주기 아까운 맛이었다.

만두. 제갈량이 운남 지역을 정벌하고 돌아오는 길에 풍랑을 만나 사람 머리 49개로 제사를 지내면 풍랑이 멎는다 해서 사람 머리 모양의 반죽을 만들었던 것이 시초라고 알려졌다. 일화에서 알 수 있듯 중국에서 시원을 찾을 수 있는 음식이지만 우리나라에서 더욱 발달했던 음식이다. 남쪽지방처럼 재료가 풍부하지 못했기에 다양한 재료와 화려한 모양새를 자랑하지 않는 것이 이북음식의 특징이다. 대신 재료 본연의 맛을 최대한 살리고 정갈한 담음새와 깐깐한 이북사람들을 닮아 완성도를 높인 음식들은 고급스러운 기품을 느끼게 한다. 만두, 그 중에서도 평양만두에는 소고기, 돼지고기, 두부, 숙주, 그리고 김치가 들어간다. 김치의 빨간 속을 씻어내고 아삭한 질감을 느낄 수 있게 송송 썰어 재료들을 꼭꼭 다져 물기 지지 않게 뭉쳐낸 속이 만두의 키 포인트. 대파, 양파, 당근, 잡채 등등 이것저것 말 되는 것은 모두 다져넣어 복잡한 맛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담백하고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고유의 질감이 살아있다. 김장 끝물에 독을 부셔내면서 나오는 김치 우거지나 바닥에 남은 김치를 씻어내 하얀 김치를 사용하거나 아예 배추 다진 것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질감은 아무래도 김장김치를 씻어낸 것이 가장 아삭한 맛인 듯.
서울 시내 만둣집들 중에서 본 식객이 내 마음대로 순위를 매긴 베스트 3는 다음과 같다. 대망의 1위부터 발표하면 광화문 식당과 상가와 오피스텔이 밀집된 바로 그곳 지하상가에 자리한 '평안도 만두집'이다. 깔끔한 육수, 일체의 삿된 맛이 없는 담백한 평양만두의 원형이 살아있는 집이다. 두부의 함량이 비교적 높은 편이고 과하지 않게 들어간 김치의 질감으로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첫 맛이 강하지 않기 때문에 두고두고 먹을수록 더욱 감칠맛이 난다. 부드럽고 얇은 만두피도 우수한 점수. 주인장은 실향민 2세대임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맛을 재현해내는 데 성공했다. 마지막에 한 두개는 큼직한 만두를 쪼개 국물에 풀어 밥을 말아먹기도 한다. 잘 익은 김치 척 올려놓고 먹으면 이 또한 별미. 왜 이북에서 만둣국 못지 않게 만두국밥이라고 불렀는지도 알 만하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있다면 장조림처럼 퍽퍽한 살코기 고명을 올려놓은 것 정도. 창의문 근처에 있는 손만두집의 고기 고명이 결을 잘 살려서 잘게 찢어 곱게 올린 새침한 서울 애기씨의 여문 손끝을 느끼게 하는데 이곳의 마지막 끝맛이 다소 투박하게 느껴지는 대목.  

2위는 압구정 '만두집'. 하루가 다르게 생겨나고 망하는 압구정 번화가 골목길 한켠에서 만두라는 단일 메뉴로 명맥을 잇고 있는 집이다. 작은 매장 옆으로 그만한 크기의 만두 빚는 주방이 따로 있을 정도로 수요가 많다. 명절에 만두 빚기 귀찮은 근처 아파트 사모님들이 대량으로 주문해가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보기에는 맹물처럼 보이는 육수는 바닥에 고춧가루 다대기가 깔려있어 잘못 들이켰다간 목에 사래 걸리기 십상이다. 기본 재료 외에 부가 재료와 후추 맛이 강한 편이나 힙합바지 입은 날나리부터 명품백 옆에 차고 밍크코트 입은 아가씨, 지팡이 짚은 할아버지까지 지리적 이점 때문인지 그야말로 다양한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 점심시간이 지나면 오로지 만두를 먹기 위해 혼자 와서 조용히 만둣국을 먹고 가는 사람들까지. 3위는 평양면옥의 만둣국. 동대문, 강남점에 이어 분당점까지 분점을 내다보니 실향민 1세대 할머니가 깐깐하게 맛을 체크할 때보다 맛이 떨어졌다는 평도 많지만 아직까지도 나이 드신 어른들이 잊지 않고 찾을 만큼 예스러운 맛을 간직하고 있기는 하다. 본점은 큰아들에게 맡기고 둘째아들과 함께 강남점에 주로 있다가 분당점을 오픈. 본점은 기우는 추세, 강남점도 예전 만큼 손님이 많진 않다. 요즘은 분당점이 뜬다. 실향민 1세대가 모두 돌아가시면 서울에 남아있는 평양만둣집들은 다 어떻게 될까. 음식은 시대에 따라 변한다. 사람들이 각박해지고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질수록 양념은 더욱 화끈하게, 질감은 더욱 강하게. 서울에서 맛보는 평양만두의 맛이 조금씩 변해갈수록 평양에 있는 평양만두도 변화를 거듭하겠지. 우리 아바지 다리 힘 빠지시기 전에 평양에서 만둣국 한 상 크게 차려놓고 오래 들어 귀에 딱지 앉은 그 옛날 얘기 다시 들으며 먹을 날이 언제쯤일까. 택시 요금은 자꾸 올라만 가는데.

Information
평안도 만두집 723-6592. 광화문 경희궁의 아침 맞은편 대우빌딩 지하 1층 위치. 상가 지하라고 우습게 보지 마시길. 드물게 제 맛을 내는 집이다. 지하철을 이용할 경우 5호선 광화문역 1번 출구가 가깝다. 매장이 큰 편이 아니라 점심시간은 피하는 것이 좋다.



* 자세한 내용은 엘라서울 본지 2월호를 참고하세요!

Credit

  • EDITOR 김혜진
  • ILLUSTRATION 최경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