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Y

잠 못 드는 밤

잠자는 것만큼 행복한 일도 없지만, 잠자리에 드는 순간부터 불안감과 초조함이 엄습해 온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 ‘잠 못 드는 밤’과 홀로 싸우던 에디터는 결국 온몸에 센서를 붙이고 카메라 앞에서 잠들기를 시도하는데…. ‘꿀잠’을 꿈꾸는 에디터의 숙면 고군분투기가 지금부터 시작된다.

프로필 by ELLE 2014.11.21

 

언제나 그랬다. 학창 시절부터 서른이 된 지금까지 아침에 개운하게 일어난 적이 드물었다. 푹 자고 상큼하게 잠에서 깨는 건 알람 없이 오전 내내 잔 주말 정도. 잠드는 데 20~30분은 기본, 길게는 1~2시간까지 뒤척이는 생활이 지속됐다. 마감 시즌이면 한 달에 일주일씩 어김없이 새벽에 퇴근하는 직업을 가진 이후부터는 아버지가 발을 끌며 걷는 소리에도, 어머니가 아침에 어항 물을 갈아주는 소리에도 잠이 달아났다. 그럴 때면 늘 머리맡에 놓아둔 주황색 3M 이어 플러그를 귀에 꼭꼭 밀어넣고 다시 잠을 청했다. 상태가 심각하다고 느낀 건 지난여름,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깬 날들이 반복되면서부터였다. 보통의 여자들이 공포영화를 보며 내지르는 하이 톤의 “꺄악”이 아니었다. 굵고 낮은 갈라진 목소리로 내지르는 괴성. 내 목소리에 놀라 나도 잠에서 깨고, 가족들이 달려오기도 했다. 스토리는 기억나지 않지만 험한 꿈을 꾼 게 분명했다. 소리를 지르며 잠에서 깨는 동시에 순간적으로 온몸이 경직되며 상반신을 벌떡 일으켜 세웠던 그날, 생각했다.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진짜 불면증인가? 베개 높이를 낮추고 수면 양말도 신어보고 숙면에 좋다는 라벤더 향 제품도 써봤지만 아침이면 몽롱한 상태로 일어나는 패턴이 반복됐다. 점심을 먹거나 택시만 타면 하품이 나고 집중력도 떨어져갔다. 결국 낮에 활동하기 위해 잘 마시지 않는 커피의 힘에 의존하게 되면서 더 이상 이를 방치하면 안되겠다 싶었다.

 

나는 불면증일까?
불면증 관련 서적을 몇 권 읽었다. 불면증이 아닌데 불면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불면증인지 아닌지를 판단한단 말인가? ‘수면 클리닉’의 존재를 알게 됐고, 한걸음에 서울스페셜수면의원으로 달려갔다. 건네받은 수면진단표에는 40여 개의 질문지가 적혀 있었다. 습관으로 파악하는 수면의 질과 잠자리에 들기 어렵거나 자주 깨는 불면증 외에도 코골이, 하지불안증후군 등 숙면하지 못하는 원인을 확인하는 설문이었다. 모든 질문을 담을 수는 없기에, 서울스페셜수면의원의 도움을 받아 간단한 불면증 자가진단표를 준비했다.

 

 

CHECKLIST 불면증 자가진단표

 

비슷한 고민을 갖고 있다면 지난 1개월 동안 위의 항목들을 얼마나 자주 겪었는지 체크해 볼 것. ‘거의 없다’부터 ‘거의 주로’를 0에서 3점으로 두고 계산했을 때 0점이면 정상, 1~3점은 불면증 초기(수면 위생, 즉 생활 패턴 점검 요망), 4~7점은 중증도의 불면증(한 달 이상 지속 시 수면 전문의를 찾아가볼 것), 8점 이상은 심각한 불면증(수면 다원 검사 후 치료 요망)이 의심된다. 물론 몇 개의 문항만으로 정확한 진단을 할 수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숙면하지 못해 괴로움을 느낀다는 사실이다.

 

 

밤에 하는 건강검진, 수면 다원 검사
설문을 토대로 간단한 증상을 토로하고 ‘수면 다원 검사’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수면 도중 발생하는 이상 요인은 주간 검사로는 발견할 수 없기에 잠을 자며 진단해야 합니다.”  한진규 원장의 설명이다. 수면 다원 검사는 크게 세 가지로 구성된다. 1, 2단계의 얕은 잠, 3, 4단계의 깊은 잠, 그리고 꿈을 꾸는 렘(REM) 수면으로 구분되는 수면 단계를 분석하는 수면 구조 검사, 각종 센서를 부착해 호흡의 원활한 정도를 측정하는 수면 호흡 검사, 팔다리의 움직임과 수면 자세를 관찰하는 수면 움직임 검사가 그것. 공지대로 측정 당일은 낮잠은 자지 않았고, 카페인과 술을 자제했다. 세면도구를 챙겨 저녁 9시쯤 센터를 찾았고 배정받은 침실에서 준비된 잠옷을 갈아입으니 검사를 판독하는 수면기사가 문을 두드렸다. 가슴과 복부 움직임을 측정하는 벨트 외에도 뇌파와 호흡, 심장박동 등을 측정하는 각종 센서를 온몸에 부착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이제 카메라 앞에서 자면 되나 싶었더니 침대에 앉아 30분 동안 다리를 움직이지 말란다. 다리 움직임, 즉 하지 불안 측정을 위한 것.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때우니 다시 수면기사가 들어와 잠자리에 들라고 했다. 미리 측정했던 목 높이에 맞춘 베개에 누웠고, 걸리적거릴 줄 알았던 센서들도 금세 익숙해졌다. 똑바로 누워 자라는 지시에 따라 잠이 든 지 얼마 지났을까? 수면기사가 방에 들어와 왼쪽으로, 잠시 후 다시 오른쪽으로 누워 자라며 몸을 돌려주었다. 잠결에 몸을 반대로 비틀면 다시 자세를 고쳐주기도! 새벽 다섯 시 반, 예정대로 일어나 몸에 붙였던 센서를 떼어냈고 두피에 고정하기 위해 모발에 붙였던 끈적한 검(Gum)까지 모두 씻어냈다.

 

좀처럼 숙면을 이루지 못한다. 원인은?
일주일 뒤 검사결과를 듣기 위해 다시 찾은 수면 센터. 안내 데스크에서 위층 이비인후과 진료를 권했다. 카메라로 코 속을 촬영하며 박치열 원장이 하는 말. “양쪽 콧구멍 사이의 경계가 되는 물렁한 벽을 비중격이라고 합니다. 이 비중격이 왼쪽으로 살짝 휘어 있네요. 왼쪽 공간이 작아지니 호흡이 원활하지 않고, 숙면에 문제가 됐을 거예요.”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가 한진규 원장을 만났다.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충격적인 이야기가 또 들려온다. “그날 몇 번 깬 것 같나요? 한 시간에 최대 53번 깼어요. 수면시간 전체를 평균으로 계산하면 27번 깼고요. 5초 이상 깨어 있으면 뇌가 잠에서 깬 걸 인지하지만, 1초라면 100번을 깨도 몰라요. 7번 정도 깨야 잤다는 느낌이 드는데, 마이크로한 ‘깸’이 너무 많네요. 아마 일상생활이 굉장히 피곤할 거예요.” 악몽을 꾸는 것 역시 얕은 잠에 머물러 있는 것이 원인이었다. 숙면을 취하면 리듬이 자연스러워 렘 수면 상태일 때 편안한 꿈을 꾸는데, 그렇지 않으니 악몽을 꾸다가 소리를 질러댄 것. 심하면 자다가 일어나 음식을 먹거나 몽유병처럼 돌아다닐 수도 있단다.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원인이 코 때문이냐고 물었다. “저호흡뿐이 아니에요. 다리 근육이 이완돼야 숙면을 취하는데 종종 수축되네요. 하지 불안 증후군이라고 하는데 심각하진 않지만 다리가 쉽게 긴장하는 경향이 있어요. 유전적인 요인, 철분 부족, 과도하거나 부족한 운동량이 원인일 수 있죠.” 평소 잠들기까지 가만히 있는 게 답답해 다리 사이에 베개나 이불을 끼고 잤던 게 근육이 쉽게 이완되지 않는 탓이었다니. 그밖에도 불규칙한 심장박동, 스트레스 등 복합적인 원인이 숙면에 해를 끼치고 있었다. 수면 중 무호흡, 즉 코골이나 수면 중 각성이 불러오는 이갈이 역시 잠을 잘 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한 증거이니 전문의의 상담을 받아보기를 권한다.

 

생활 습관부터 고쳐라!
그렇다면 수면제와 같은 약물치료나 코 수술 외에는 방법이 없는 걸까? 수면 장애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호흡 문제는 코에 비강 마스크를 쓰고 잠을 청하고, 이를 정상화하는 양압치료를 통해 극복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수면 위생을 잘 지키는 생활 습관을 바꾸는 것으로 어느 정도 개선이 가능하다. 서울스페셜수면의원 한진규 원장이 제안하는 방법은 이렇다. 첫째, 최소 30분 이상 햇빛을 쏘일 것. 낮 동안 받은 빛은 멜라토닌 호르몬 분비를 촉진시켜 숙면을 돕는다. 이때 자외선차단제를 바르는 것은 괜찮지만 선글라스를 쓰거나 챙이 있는 모자를 쓰는 것은 금물. 둘째는 규칙적인 운동. 적당한 운동은 혈액순환을 돕고 긴장을 완화해 준다. 단 취침 직전에 과도한 운동을 하면 몸과 뇌가 모두 각성되니 잠들기 5시간 전까지는 마무리해야 한다. 족욕이나 반신욕도 효과적이다. 취침 두 시간 전 체온을 높여 근육을 이완하고 긴장을 완화시키면 잠잘 때쯤엔 체온이 내려가 졸음이 찾아오고 잠들기 쉬운 조건이 갖춰진다. 마지막은 자려고 노력하지 말 것.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위의 모든 사항들을 지켰더라도 ‘잠이 오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강박관념을 갖고 잠들기 위해 몰두하면 각성호르몬이 분비돼 오히려 잠을 방해한다. 잠이 오지 않을 땐 침대에 누워 뒤척이지 말고 앉아서 TV를 보거나 책을 읽자. 누운 상태로 핸드폰을 보는 등 다른 일을 하면 뇌는 침대를 잠자는 곳이 아닌 깨어 있는 곳으로 착각한다. 등을 대고 눕는 것은 오직 잠을 자려는 행동임을 각인시켜야 한다는 뜻. 다양한 원인의 집합체로 고칠 게 한두 가지가 아닌 에디터 역시 수면제 복용이나 수술은 최후의 수단으로 미루고 그 전에 할 수 있는 노력들을 먼저 기울일 예정이다. 평생 이렇게 살아온 만큼 이미 적응된 뇌와 몸이 쉽사리 고쳐지지 않을 거라는 건 잘 안다. 하지만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다. 이런 생각 자체가 모두 숙면의 적이니까. 그리고 뇌에 최면을 걸듯 믿음을 갖기로 했다. 언젠가는 나도 머리만 대면 쿨쿨 자는 날이 올 거라고!

 

 

 

Credit

  • editor 천나리
  • photo GETTY IMAGES/멀티비츠
  • design 하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