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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춤꾼, 김설진과 최수진의 이야기

<댄싱 9> 시즌 2의 김설진과 최수진은 어떻게 최고가 됐나.

프로필 by ELLE 2014.10.26

 

김설진의 슬리브리스 톱은 Kimseoryong. 배색 하의 슬랙스는 Greedilous. 최수진의 슬리브리스 원피스는 Christian Dior. 아코디언 랩스커트는 Surreal but Nice.

 

 

 

 

 

 

 

 

 

김설진처럼
<댄싱 9> 갈라 쇼 도중 손가락이 탈골됐다고 들었다 첫날 공연을 하다가 손가락이 ‘ㄱ’자가 됐다. 얼른 다시 끼워 맞춰서 괜찮은 줄 알았는데 오늘 좀 아프네.

 

부어 있다 야구 방망이 같지?

 

오늘 촬영은 세계적인 무용수 피나 바우쉬의 예술 세계를 다룬 영화 <피나>에 등장하는 한 장면처럼 환경에 노출된 댄서의 본능적인 움직임을 붙잡는 게 컨셉트였다 피나 바우시의 댄서들은 몸이 좋은데 내가 몸이 안 좋아서 어쩌지(웃음)? (최)수진이 몸이 진짜 예쁘지 않나. 김설진의 몸도 매력이 있다 나에겐 인간미가 있지.

 

스트리트 댄서였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춤을 췄다. 그땐 유행이었다. 마침 사촌형이 스트리트 댄서 팀에 있어서 형 따라 다니면서 많이 배웠다. 고등학교 땐 춤 그만해야지 했는데 선배들이 또 같이 추자고 하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제주도에서 서울로 올라와 백업 댄서로 방송 춤 추고, 서울예술대학에 들어가면서 무용을 배웠다.

 

정말 춤만 춘 인생이네 딴 짓도 많이 했다. 먹고살아야 하잖아. 춤이 ‘살’길이 되려면 힘들지 둘 다 춤추면 못 먹고살 것 같아서 와이프는 춤을 그만뒀다. 지금은 무대의상을 만든다.

 

벨기에 피핑 톰 무용단을 선택한 이유 나를 건드리는 뭔가가 있었다. 현대무용계에서 피핑 톰 무용단이 무용과 다른 장르와의 융합을 가장 활발하게 시도하는 곳이다.

 

<댄싱 9>의 무대에선 감정 표현이 굉장하더라. 동작 하나하나에 진정성이 담겨 있달까 그렇게 봐주니 고맙지. 근데 “저게 춤이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반응이 나뉜다. 모든 사람이 다 좋아하는 일을 할 순 없으니까 괜찮다. 신을 싫어하는 사람도 많잖아. 요즘 우리나라에 오디션 프로그램이 너무 많은 것 같다. <나는 가수다> 할 때 보니 관객들이 노래를 즐기는 게 아니라 비평가가 된 것처럼 누가 잘하나 못하나를 평가하기 위해 보는 것 같았다.

 

<댄싱 9>도 블루 아이와 레드 윙즈가 경쟁하는 구도인데 그래도 다른 장르의 춤을 배울 수 있잖아. 한편으로 춤의 세계를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어 출연하게 됐다. 지금 이 얘기 진짜 많이 했다! 티셔츠에 새겨서 입고 다닐까 보다.

 

백업 댄서 생활 이후 타국살이를 시작했으니 오랜만의 방송 출연인 셈인데 어땠나 그걸 느낄 틈이 없었다. 감기 몸살이 심해서 사이판으로 해외 평가전 가기 전에 기억은 거의 나지 않는다. 방송에선 편집됐지만 병원에 실려갈 정도였다. 컨디션 난조인지 전혀 몰랐다 특히 생방송 땐 나뿐 아니라 모두가 힘들었다. “야, 오늘 많이 잘 수 있어” 하면 5시간 정도? 방송 후반으로 갈수록 몸이 성한 애들이 없었다.

 

부상 문제 때문에 시즌 1에 비해 시즌 2에선 방송 회차를 줄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제작비 문제도 있었겠지. 시청률이 잘 안 나올 수 있을 테니까. 비단 무용수만 생각했다면 이런 스케줄은 아니었을 거다.

 

실제 무용수의 생활은 어떤가 댄서들에겐 먹고 자는 일이 연습만큼 중요하다. 그만큼 몸 관리가 필수다. 물론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도 일을 하는 거니까 일부러 혹독한 스케줄을 잡는 건 아닐 거다. 모두 열악한 환경에서 일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인 거지.

 

상대 댄서를 많이 배려하는 것 같더라 안 그래도 방송 보니까 내가 상대방을 배려해 춤춘다는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역으로 생각하면 되게 재수 없는 것 같다. ‘아무나 같이 해도 된다’ 이런 느낌이잖아(웃음).

 

팀 미션 땐 조원 각각을 ‘어벤저스’ 멤버라 칭하는 리더였다 지금 들으니 손발이 오그라드네! 내가 안무 작업을 할 때 모든 무용수의 움직임을 나와 똑같이 맞추려 한 적이 있다. 예를 들어서 우리 팀의 한 댄서가 모자를 잡는 동작에서 자꾸 끄트머리를 붙잡아서 내가 손가락을 깊숙이 빼서 잡으라고 몇 번이나 지적했었다. 공연이 끝나고 나서 한참 뒤에야 그 친구 손가락이 나보다 짧다는 걸 발견했다. 결국 나와 다른 걸 인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과물이 딱 내 머릿속에 그려져 있는 수준 이상 안 나온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다 우연히 ‘Education’의 어원을 찾아보다 알게 됐는데 교육이 많은 걸 가르친단 의미가 아니라 자기 안에 있는 걸 찾아준다는 의미더라. 피핑 톰에 있으면서 각자 다른 개성을 찾고 발전하는 방법을 많이 배운 것 같다.

 

여전히 완벽주의인가 주위에서 힘들어하니까 유해지려고 노력 중이다. 우리 팀이 바르셀로나에서 100회 넘게 공연을 했다. 그때 화가 나서 엉엉 울었다. 한 번도 완벽한 순간이 없었다고 느꼈거든. 그때 안무가인 가브리엘라가 나한테 그러는 거다. “무대에선 완벽이란 단어가 존재할 수 없다. 차라리 매 순간 살아 있으려 노력해라.” 이젠 그때그때 살아 있는 연습을 더 한다.

 

감정의 맥을 쫓으려면 집중력이 강해야겠다 만일 슬픈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데 지금 내가 너무 기쁜 거다. 그럴 땐 슬픈 영화를 보거나 슬픈 생각을 하면서 감정을 잡는다. 근데 그 방식으로 계속하다 보니 덤덤해져 아무렇지 않은 거다. 그래서 거꾸로 엄청 기뻐했더니 즐거움에서 나오는 눈물이 있더라. 각기 다른 감정의 교차점들이 만난다고 할까. 하나의 감정도 디테일하게 파고들면 여러 가지 갈래가 있잖아. 요즘 그런 감정 표현법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한국엔 얼마 만에 온 건가 2008년에 벨기에로 가서 올해 처음으로 오래 머물고 있다. 그전엔 1년에 2번, 4주간의 유급 휴가 때만 와서 쉬었다. 요즘엔 주로 와이프, 딸과 시간을 보낸다. 어딜 가더라도 같이 다닌다. 물론 하루에 2~3시간 정도는 혼자 보내야 한다.

 

해외에서 활동하기 더 편하지 솔직히 한국은 댄서를 온전한 직업으로 인정하지 않잖아. 옛날에 스승님이 그랬다. “내 연봉이 300만원이야.” 그래서 다들 레슨으로 빠지는 거다. 해외에서 댄서들은 춤만 추면 된다. 그 외엔 담당 스태프들이 다 알아서 챙겨주니까.

 

 

댄서로 사는 것에 후회는 없나 후회하면 안되나. 다들 후회하는 것에 대해 안 좋게 생각한다. 후회해야 한다. 그래야 더 좋은 게 생긴다. 후회하는 게 두려워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하는 게 더 바보 같다.

 

네 살짜리 딸이 있는 아빠다 신기하게도 TV 보고 내가 춘 춤을 따라 하더라. 딸이 춤추는 건 괜찮나 나와 와이프가 세워 놓은 몇 가지 육아 철학이 있다. 상황 벗어나기 위해서 거짓말하지 않기. 약속 어기지 않기. 모든 결정은 본인에게 맡기기. 나중에 애가 혼란스러워할지 모르겠지만 뭐든 물어보고 결정하려 한다.

 

<댄싱 9> 이후의 변화 얼마 전에 서울역에서 공연을 했는데 공연 끝나고 사람들이 자기 핸드폰 주면서 내 셀카를 찍어 달라고 하더라. 그런 문화가 새로웠다.

 

다시 벨기에로 돌아갈 예정 외국 나가기 전에 같이 활동하던 친구들이 있다. 그 친구들과 다시 팀을 꾸려 한국에서 처음부터 차근차근 작업해 볼 생각이다. 팀 이름은 ‘무버(Mover)’다. 안 그래도 무용단에선 2016년 프로젝트 계획을 물어왔는데 그때까지 살아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데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고민이다.

 

 

 

 

김설진의 블랙 톱은 Rookiebud. 도트 팬츠는 Dior Homme. 최수진의 화이트 탱크 톱과 누디 핑크 팬츠는 모두 Ralph Lauren Collection.

 

 

 

 

 

 

 

최수진처럼
20년 동안 춤을 췄다 처음 발레 시작한 게 초등학교 열살 때다. 발레리나 사진 보면 공주님처럼 예쁘잖아. 이렇게 힘든 줄은 몰랐다(웃음).

 

예원학교, 서울예술고등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를 거쳤다. 무용수로서 엘리트 코스만 밟아왔다 갑갑하지?(웃음) 뉴욕에 간 건 대학교 4학년 때 ‘서울국제콩쿠르’에서 1등을 했고 뉴욕 ‘앨빈 에일리(Alvin Ailey)’ 스쿨에 장학금을 받고 6개월간 공부하러 가기로 결정됐다. 때마침 뉴욕에 공연을 하러 갔다 친한 오빠 추천으로 시더 레이크 현대무용단 오디션을 보게 됐다. 여자 무용수만 거의 300명 가까이 왔는데 자꾸 잘하면 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거다. 가운데 서서 크게 동작하면서 보란 듯이 열심히 췄더니 최후의 3인에 뽑혔다! 단장이 학교 대신 무용단에 출근할 생각 없냐고 묻길래 당연히 좋다고 대답했지.

 

졸업식을 하기도 전에 취업했네 공부하러 가서 직장을 구한 거니까 앨빈 에일리 스쿨에선 난리가 났지. 우여곡절 끝에 무용단에서 배려해 줘서 6개월 뒤에 무용단에 들어갈 수 있게 됐다. 대신 시간 날 땐 연습실 가서 무용단 레퍼토리를 배웠다.

 

아무나 그렇게 기다려줄 것 같진 않은데 무용단 단장이 프랑스 사람인데 동양인에 대해 신비감을 갖고 있더라. 흔히 동양인 하면 선이 고운 특유의 이미지를 떠올리잖아. 그래서 내가 오디션 장에 들어가니 그 사람이 깜짝 놀란 거다. 당시 무용단에 나 말고 동양인은 일본 단원 1명뿐이었는데 그 친구는 귀여운 인상이었거든. 나는 얼굴이 창백하고 눈도 약간 옆으로 길게 찢어져 있으니까. 아마 ‘백지’ 상태로 다양한 걸 ‘그리기’ 좋은 이미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단장이 예뻐해 줘서 그 덕을 많이 봤다.

 

뉴욕이란 장소가 주는 특별한 기운이 있잖아. 다이내믹한 사람들이 분출하는 에너지가 자극이 됐겠다 나한텐 신세계였다. 내가 원래 부지런하다. 가만히 못 있고 늘 새로운 걸 찾아 다니는 스타일이다. 뉴욕은 내가 항상 배워야 한다고 ‘푸시’하는 느낌을 줬다. 내 나라가 아니라 그런지 남의 눈치를 안 봐도 된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나만 잘하면 모든 일이 잘 풀리는 곳이었다. 한국에선 춤 외에도 이것저것 신경 쓸 게 많잖아.

 

시더 레이크 현대무용단에서 주역으로 활동했다는 건 얼마나 대단한 의미인가 사실 현대무용엔 주역이 따로 없다. 굳이 말하자면 캐릭터가 가장 도드라지는 주요 역할을 맡는다는 걸 의미한다. 시더 레이크 현대 무용단은 레퍼토리 컴퍼니라서 현재 시점에서 유럽, 미국을 통틀어 최고라 불리는 여러 안무가가 짠 다양한 공연을 연기한다. 보통 하루에 30분짜리 세 편의 작품을 공연한다고 치면 스토리와 성격이 다른 그 세 편의 작품에 내가 거의 퍼스트 캐스팅이 된다. 보통 공연 포스터엔 무용단의 간판 무용수 4~5명 정도가 함께 등장하는데, 갑자기 나 혼자 나오는 포스터로 바뀔 정도였다. 한국 간다고 했을 때도 가지 말라고 엄청 붙잡았지.

 

무용수로서 절정을 달리던 중 왜 한국에 돌아왔나 내 춤을 추고 싶단 생각이 간절했다. 물론 내가 출연한 작품이 모두 내 작품이긴 하지만 어찌 됐든 무용단 소속의 내가 안무가가 짠 작품을 연기한 거잖아. 보통 무용수를 평생 직업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좋은 무용단에 소속돼 활동하려 한다. 어디 가서 무용수가 그만한 돈을 벌겠나. 잘리지 않게 경력 관리해서 되도록 오래 무용단에 머무르려고 하지. 나는 그보단 5~6년 뒤 무용단으로 초대받아 오는 안무가가 되고 싶었다. 빨리 한국에 가서 나를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외국에서 날고 뛰어도 한국 사람들은 내가 뭘 했는지 잘 모르잖아. 솔직히 <댄싱 9>이 아니었다면 ‘수진 초이(Sujin Choi)’의 춤을 한 번도 못 봤을 것 아닌가.

 

<댄싱 9> 보니 안무를 한번 보고 외우더라 원래 순서를 빨리 외운다. 무용단에서 다양한 무용을 많이 접해서 그런 것 같다. 새로운 작품 들어갈 때마다 무용단 안에서도 끊임없이 오디션을 보거든.

 

블루 아이와 레드 윙즈에서 모두 마스터 키를 받았다. 왜 레드 윙즈를 선택했나 사실 블루 아이의 이용우 마스터와는 대학 때부터 같이 공연을 다녀서 굉장히 친하다. 친오빠 같은 존재다. 오빠는 당연히 내가 블루 아이를 선택할 줄 알았고 다른 마스터들도 마스터 키를 써서라도 수진이를 데려와야 한다고 선전포고 했다더라. 나한테 <댄싱 9>은 새로운 도전인데 만약 블루 아이를 선택하면 우리가 서로 잘 알아서 익숙한 춤이 나올 수도 있겠더라. 너무 편하게 가는 느낌이 들었다. 대신 레드 윙즈의 마스터들은 춤으로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분들이었다. 그 짧은 순간에 우현영 선생님이 내 마음을 따르라고 얘기해 주셨는데 그 순간 내 입에서 갑자기 ‘레드’ 란 말이 흘러 나왔다. 나중에 용우 오빠한테 욕 엄청 먹었지.

 

최고의 무용수인데 굳이 <댄싱 9>에 나가 경쟁할 필요가 있었나 뉴욕에 있을 때 투어를 가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내 공연을 보러왔다. 평생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춤추고 박수받는 쾌감이 정말 최고였다. 춤 하나로 인정받고 응원받는 게 가장 큰 기쁨이거든. 근데 한국에 돌아 와서 2년 정도 지내다 보니 그 기분을 느낄 기회가 많이 사라진 거다. 공연장엔 늘 익숙한 가족, 지인들만 찾아왔다. 그러던 찰나 시즌 1에 출연했던 (이)루다의 공연을 보러갔다. 보통 공연장 가면 누가 누군지 절반 이상은 다 아는데 거긴 모르는 사람들 투성인 거다. 루다가 등장하자마자 소리 지르는 풍경도 놀라웠다. 어떻게 사람들이 이렇게 춤을 좋아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나는 누구를 위해 춤추는 걸까. 이런저런 생각이 머릿속에 침투했다. 큰 맘 먹고 한국에 왔는데 더 늦기 전에 나도 내 춤을 보여주고 싶었다.

 

상대 팀인 김설진과는 경쟁자로 많이 비춰지더라 내가 무대에서 설진 오빠가 실력발휘 못하게 머리 써서 방해한다는 오해를 많이 하더라. 진짜 안 그랬다. 그런 말 들으니 오빠 대하는 게 조심스러워졌다. ‘헨델의 울게 하소서(Lascia ch'io pianga)’에 맞춰 춤췄던 생방송 마지막 무대에선 심지어 우리 둘이 파트너였잖아. 한 사람은 살고 한 사람은 죽는다는 안무인데 내가 오빠를 죽이면 난리가 날 것 같아서 “그냥 내가 죽을게”라고 해서 그 무대가 탄생하게 된 거다.

 

블루 아이에 비해 레드 윙즈 여자들이 기가 좀 세던데 그렇지? 레드 윙즈 남자들이 여자들의 영향을 많이 받더라. 우리가 기분이 좋으면 자기들도 기분이 좋고, 우리가 기분이 다운돼 있으면 자기들 탓인 줄 알고 안절부절 못하는 거다. 그걸 파악한 뒤론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다같이 웃자”라고 말했지.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힘을 주자 해서.

 

춤을 안 출 땐 갤러리에 가서 그림을 보거나, 영화를 본다.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감정도 극대화해서 느낄 줄 알아야 표현이 깊어진다. 그걸 일깨워주는 걸 찾아 다닌다.

 

감정 소모가 큰 직업이다 내 하루는 온통 사람들과의 관계, 그것에서 오는 감정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 방송하기 전에도 하루에 10명 정도는 상대했다. 문자 메시지 주고받고, 전화 하고, 직접 만나고. 가만히 있지 못한다. 잠도 별로 없다.

 

올해 서른이다. ‘최수진 컴퍼니’의 안무가로서의 새 삶도 시작했는데 뭐가 더 하고 싶나 결혼! 빨리 아기 낳고 싶다. 여자로서 가장 큰일 같다. 엄마가 되면 더 많은 생각이 들겠지? 나 욕심 참 많지. 아, 12월에 김수로 씨가 프로듀싱하는 공연을 무대에 올린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정기 공연을 할 수 있길 바란다.

 

 

 

Credit

  • EDITOR 김나래
  • stylist 김하늘
  • PHOTO 김상곤
  • DESIGN 오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