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가을 골목에서

7명의 사진가가 서로 다른 곳에서 마주한 가을의 골목길. 특별한 이유 없이도 셔터를 누르게 만든 찰나의 풍경들.

프로필 by ELLE 2014.10.13

 

붉은 세상
라마
전 세계 어딜 가든 작은 골목은 참 매력적이다. 나라마다 간직하고 있는 역사나 문화의 흔적도 작은 골목에서 더 찾기 쉽다. 큰길은 많은 사람이 스쳐 가면서 빠르게 자리를 내주는 곳이라 계속 새롭게 변화되니까 말이다. 9년 전쯤 찾았던 모로코의 마라케시(Marrakesh)에서도 그랬다. 시장 근처에서 사람 냄새가 나는 골목을 발견했다. 흙벽돌과 회반죽을 사용하는 어도비 양식의 건물들이 만들어낸 골목 안 세상은 온통 적갈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 신비한 느낌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우연한 순간
표기식

상하이의 신천지 거리를 걷다가 작은 골목을 발견했다. 대로와 달리 조용한 분위기에 잠시 멈춰 섰다. 똑같이 생긴 두 건물 사이에 있는 좁은 길이었는데 골목 양쪽엔 문들이 줄지어 있었다. 그중에 딱 하나 열린 문 사이로 간혹 사람이 드나드는 모습이 재미있길래 셔터를 눌렀다. 그런데 타이밍이 어긋나 신문을 보며 지나가던 요리사가 사진에 찍혔다. 우연이 만들어낸 재미있는 장면이었다. 하나 더! 창경궁 옆 골목에서 우연히 하늘을 올려다 봤던 그 순간이다. 늦가을, 노랗게 물든 은행잎은 유난히도 밝았던 하늘과 참 잘 어울렸다.  

 

 

 

 


 

 


비밀 낙원
JDZ

지중해의 낙원으로 불리는 스페인 마요르카 섬(Mallorca l.)에서 독특한 골목을 찾았다. 돌과 산이 많은 지형에 맞춰 층층이 자리한 집 사이로 사람들이 지나다닐 수 있는 계단 길이 나 있었다. 좁은 계단 골목을 지나면서 아파트 난간에 널어둔 빨래, 창문 넘어 보이는 집안 풍경처럼 일상적인 이미지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계단을 따라 계속 이어지는 골목은 걸을수록 비밀스럽고 이국적인 분위기를 냈고, 난 자연스럽게 카메라를 들었다.

 

 

 

 

 

 


개인의 풍경
민혜령

어린 시절 나만의 놀이터이자 비밀 공간이었던 곳. 할아버지가 경기도 구리에서 운영하던 제재소 뒷문과 연결된 좁다란 골목이다. 그곳과 지난 10년간 살아온 뉴욕의 골목을 한 사진에 담았다. 사진처럼 두 곳은 내 기억 속에서도 서로 부딪히며 매일 또 다른 기억을 만들어낸다. 예전부터 어딜 가든 큰길을 피해 골목으로 자연스럽게 발길을 옮겼다. 가끔은 뜨겁고, 때론 어두우며 미스터리한 이야기들이 감춰진 골목의 매력에 나도 모르게 이끌리는가 보다.

 

 

 

 

 

 

 

 

낯선 이들과의 만남
김상곤


얼마전 <엘르 데코> 촬영 차 찾은 샌프란시스코 미션 지구(Mission District). 초가을처럼 선선한 날씨가 좋아 동네를 걷다가 온갖 벽화들이 가득 그려진 골목과 마주쳤다. 18세기부터 거주하던 라틴 계열의 이민자들이 자신들의 설움과 감정을 벽화로 표현하기 시작하면서 골목 자체가 거대한 전시장으로 변했다고. 최근에 그려진 듯 보이는 선명한 그림부터 이미 많은 사람의 손때가 잔뜩 묻은 작품도 있었다. 이름 모를 화가들과 마주했던 그 골목에서 발길을 돌리기까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 안의 기억 방식
정지은

사진 공부를 막 시작했을 때 내 사진의 모든 배경은 오래된 골목이었다. 녹슨 창살, 연탄재, 퀴퀴한 냄새가 공존하는 골목이 좋았다. 시간이 날 때마다 골목 모퉁이에 친구를 세워두고 열정적으로 촬영하곤 했다. 첫 해외 출장지였던 파리의 마레(Marais) 지구에서도 골목부터 찾았다. 언제 또 올지 모르는 이곳에서의 기억을 나만의 방식으로 간직하고 싶어서. 카메라의 노출을 설정하지도 않은 채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골목을 찍고 있는 그 순간이 참 좋았다.

 

 

 

 

 

 

 

 

익숙한 그 골목의 위안
목정욱

유학 시절 살았던 집의 창밖으로 보이던 골목길. 동네 주민들의 차가 주차돼 있거나 가끔 사람들이 지나가는 것 외에는 특별할 것 없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평범했던 풍경이 익숙하게 느껴졌고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 가을, 집앞 골목은 외로운 유학생에게 그런 존재였다. 런던을 떠난 지금도 가끔 조용한 시간을 즐기고 싶을 땐 리움미술관에서 남산까지 이어지는 골목길을 걷는 것으로 대신한다.

 

 


 

Credit

  • editor 김보라
  • DESIGN 하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