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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 디저트' 이론

한국에서 디저트란? 유럽에서 10년 이상 살다가 서울에서 유럽식 디저트 카페를 차린 박준우는 한국의 디저트 문화가 다소 해괴하지만 나름 잘 자라나고 있음을 믿는다.

프로필 by ELLE 2014.09.20

 

“아니, 디저트 말고 음식 먹으러 가자.” 최근 만난 한 지인의 말이다. 내가 한국에 돌아온 지 이미 햇수로 4년이나 됐건만 아직도 한국어 대화에서 이해되지 않는 부분 중 하나다. 한국어에서 통용되는 ‘디저트’의 의미 말이다. 원래 디저트라는 단어는 서양식 코스 식사에서 마지막에 과일이나 초콜릿, 아이스크림 등 달콤한 맛으로 식사를 마치는 ‘음식’을 뜻하는 말 아닌가.  하지만 한국에서 디저트는 묘하게도 음식은 식사로 먹는 ‘단백질 등의 영양소와 염분’이 포함된 것 그리고 식사 외에 먹는 ‘당분을 포함한 주전부리’로 인식되고 있다.  디저트가 ‘후식’이 아닌  ‘간식’으로 쓰이고 있는 셈이다. 한국의 음식 소비문화를 보면 디저트와 간식의 경계가 모호하다. 간식이란 말의 정의를 살펴보면 ‘영양 소요량이 많은 어린이들이 정해진 식사로 충족시킬 수 없는 분량을 보충하는 보조적인 대용식’이다. 물론 어른에게도 간식은 필요하지만 사전적 정의에서는 주 대상을 어린이들로 한정하고 있다. 그러니 대상의 입맛에 맞게 디저트가 달콤하게 변해온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국의 젊은 여자들은 디저트 보다 ‘달다구리’라는 말을 즐겨 쓴다. 사람들이 ‘달다구리’를 찾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후반 스타벅스 등 프랜차이즈 커피숍들이 들어오면서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커피와 함께 곁들이는 달콤한 여유일까?  아쉽지만 여유보다는 미국의 커피숍 문화를 한국시장에서 그대로 이어받은 바람에 커피를 시켜놓고 회의나 공부를 하는 분위기가 생겼고, 그에 따라 간식을 함께 먹게 된 것이 계기라는 게 중론이다. 물론 커피숍 체인들의 마케팅도 한몫했겠지만. 결국 커피숍 디저트들이 커피의 인기에 힘입어 사회 전반으로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디저트 붐의 중심에는 아무래도 여자들이 군집해 있을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과학적 근거를 찾아 설명하기까지 한다. 낮은 수준의 중독으로도 볼 수 있는데, 체내에 당분을 저장할 수 있는 능력이 남성과 비교했을 때 3분의 2 수준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상대적으로 쉽게 저혈당이 생기기도 하고 그로 인해 우울감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연구를 통해 이끌어낸 결과겠지만 남자 중에도 디저트 마니아가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런 현상은 오히려 문화 혹은 개인의 생활 패턴과 밀접하지 않을까.

 

프랑스 파리에서 함께 유학한 지인들을 한국에서 만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밥을 먹고 나면 어느새 다같이 디저트 가게를 찾고 있다. 근처에 마땅한 게 없으면 평소엔 맛이 없다며 욕하는 걸 마지않은 대기업의 체인 제과점이라도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우리가 이걸 꼭 먹어야 할 정도로 디저트에, 아니 설탕에 중독된 걸까 ’ 싶기도 하다. 사실 먹지 않아도 그만인 걸 굳이 먹는 이유를 일행 중의 한 셰프가 이렇게 설명했다. “식사 중에는 대화가 불가능한 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의 숙명”이라고. 프랑스 정찬이라도 먹으러 가거나, 끔찍한 품질에도 불구하고 꽤 비싼 체인 레스토랑에나 가야 어느 정도 앉아 있겠지만 제육덮밥이나 자장면을 먹을 때는 얼른 먹어 치우고 일어나 카페로 옮겨 대화할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빠르고 과묵하게 식사하는 한국인에게 디저트 테이블은 거의 유일한 대화의 장이다. 한국 여자들 사이에서 일어난 디저트 붐은 여성의 당분 저장능력이 아니라 대화할 곳을 찾으려는 의지가 더 크다.

 

어쨌든 디저트 붐을 가장 먼저 이끈 대표주자 중 하나는 티라미수다. 티라(Tira 끌어올리다), 미(Mi 나를), 수(Su  위로). 직역하면 ‘나를 저 위로 끌어올려주는 존재’라는 이름을 가진 이 디저트에 대한 이야기는 누구나 들어봤을 정도로 식상한 레퍼토리이자 그만큼 익숙한 디저트다. 한국식 표기로 ‘티라미스’로 하든, ‘티라미수’로 하든 웬만한 카페마다 지정석을 보유하고 계신 한국 디저트계의 조상님이다. 이후 카페가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종류가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케이크만 해도 그저 과일 생크림 케이크에서 레드 벨벳, 당근 케이크, 컵케이크 등을 지나왔고 와플, 크레페, 타르트, 마카롱 등이 새로운 디저트로 유행하기도 했으며, 그렇게 디저트 시장은 점점 커져갔다. 하지만 20년 가까이 숫자를 키워온 디저트 시장은 아직도 안정화 단계에 이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수많은 매장, 다양한 메뉴 사이에서 수년간 장수하는 제품을 찾아보기 힘들다. 투박한 맛에 비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인기를 누린 독일의 디저트 슈니발렌도 1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기억의 저 편으로 사라지고 있지 않는가. 강남 부촌의 백화점 식품관에는 슈니발렌이 있던 자리에 뉴욕 치즈케이크가 들어섰다고 한다.

 

또 최근 수입된 프랑스 제과의 황제 피에르 에르메 매장도 얼마 전까지는 홍콩의 글로벌 럭셔리 호텔의 컬렉션으로 고급 마케팅을 하던 페닌슐라 부티크의 자리였다.  반면 국내에서만 독보적인 위치를 확보하고 있는 디저트가 있다. 빙수다. 빙수는 나름의 끊임없는 변화와 유행을 가지고 있다. 원조 격인 팥빙수 그리고 올해 난리가 난 연유와 우유 등의 유제품을 첨가하여 갈아낸 눈꽃빙수, 그 외에도 다양성을 위해 몸부림치는 빙수들을 접할 수 있었다. 한동안 회자된 신라호텔의 애플망고빙수는 생 망고가 2개나 들어갔다는 고 퀄리티가 큰 이슈가 됐다. 최근에는 JW 메리어트 호텔에서 돔 페리뇽 빙수를 선보이기도 했다. 4만원대의 애플망고빙수도 어마어마했지만 돔 페리뇽 빙수는 7만원대다. 좋은 샴페인을 굳이 빙수로 희석시킬 수 있느냐는 와인 애호가들의 비소와는 달리 빙수 마니아들에게는 일종의 위시 리스트가 됐는데, 이건 디저트를 사랑하는 마음이라기보다는 한국 소비자의 호기심을 충족시킨 성공 사례로 볼 수 있다. 한두 해 전부터는 이른바 ‘코스 디저트’라고 불리는 것도 나왔는데 다분히 퍼포먼스적인 요소를 가미한 것. 좀 더 다양하고 색다른 사이드들을 곁들여 멋진 플레이팅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디저트다. 신사동의 디저트리나 소나 같은 매장을 보면 꾸준히 유명세를 타고 있다.

 

지난 디저트 시장에서의 트렌드 속도를 반추할 때, 한국 소비자는 호기심을 공략해야 하기에 업계는 끊임없이 새로운 패턴의 디저트를 선보이고 싶어 한다. 이 ‘디저트 붐’이 언제까지 갈 수 있을까. 커피와 맥을 같이하는 가운데 이미 포화 상태를 넘은 커피 전문점들을 따라 디저트도 하향세를 탈 운명일까.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 커피를 벗어나 차나 술까지 곁들이는 꾸준한 움직임을 생각하면 디저트는 디저트로서 독자적인 자리매김의 시기를 눈앞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좋든 나쁘든 한국 나름의 디저트 문화가 생겼고, 이런저런 흐름을 거쳐 어떤 식이든 정착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중원 디저트들의 흥망성쇠를 즐겁게 지켜보며, ‘오 쁘띠 베르’의 타르트는 가늘고 길게 가는 길을 택하겠다.

 

 

 

Credit

  • editor 이경은
  • writer 박준우(칼럼니스트)
  • illustration 조성흠
  • design 하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