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의 초상
영화 <베스트 오퍼>에서 주인공인 독신의 미술품 경매사는 자신이 평생 수집한 초상화 속 여인들과 대화를 나누며 고독을 달랜다. 문득, 오늘날 현대미술에서 묘사하는 ‘여자의 얼굴’이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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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형구, Monroe, 2012, Oil On Acrylic.
2 알렉스 카츠, Pamela And Ursula, 1994, Oil On Linen. @Alex Katz/ADAGP, Paris, 2014
3 알렉스 카츠, Elise, 2013, Oil On Linen.
 
 
영화 <베스트 오퍼>(6월 12일 개봉)를 봤다. 주인공 올드먼(제프리 러시)은 결벽증에 완벽주의 성향을 지닌 미술품 경매사. 타인과의 접촉을 피하며 독신으로 살아온 그는 자신이 평생 수집한 여인의 초상화들을 보며 고독을 달랜다. 그의 비밀 공간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그림들은 라파엘, 브론치노, 모딜리아니, 르누아르 등 세기의 거장들이 남긴 명작들이다(그중 일부는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이 소장자들에게 직접 편지를 써서 빌려온 진품). 문득 오늘날 현대미술에서 묘사하는 ‘여자의 얼굴’이 궁금해졌고 전시 스케줄을 뒤적거렸다. 올드먼이 현존하는 화가들이 그린 초상화들로 새로운 소장고를 만든다면 간택될 만한 작품은 무엇일지 상상하면서.
 
옛 시절 화가들은 아름다운 여인의 초상화를 즐겨 그렸다. 그러나 사진이 발달하면서 실제를 재현하는 방식의 회화는 존재 가치를 잃어버렸다. 당연히 인물화의 인기도 시들해졌다. 루시안 프로이트 이후 세계 미술계에서 ‘거장’이라 할 만한 인물 화가는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도 뉴욕에는 알렉스 카츠와 엘리자베스 페이튼이 있다. 마크 제이콥스, 소피아 코폴라 등 셀럽 팬들 덕분에 엘리자베스 페이튼의 ‘쿨한’ 초상화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그에 비해 낯설지 모를 알렉스 카츠(Alex Katz)는 엘리자베스 페이튼의 선배 격이자 ‘가장 뉴욕적인 화가’로 불려온 대작가이다. 파리의 타대오 호팍 갤러리에서 특별전(7월 12일까지)이 진행 중인 알렉스 카츠는 전통적인 초상 회화에 기초한 도시적인 감성의 인물화로 대중의 ‘핫’한 반응을 이끌었다. 절제된 구성, 마치 TV 화면처럼 클로즈업된 여인들은 정적 속에서 무심한 표정을 짓고 있다. 세계 미술 시장에서 급부상한 중국 현대 작가들의 작품 중에는 유독 인물화가 많다. 문화 개방과 경제성장을 겪으면서 ‘개인’에 대한 관심, 정체성에 대한 탐구가 커졌기 때문이다.
 
 
 
 
 
 

 
4 이소연, 흰 고양이, 2009, Oil On Canvas.
5 장 샤오강, Girl With Braids, 1999, Oil On Canvas.
6 김지희, Sealed Smile, 2014, 장지에 채색.
7 링지안, The Magic Flute, 2012, Oil on Canvas.
 
 
6월 14일 대구미술관에서 막을 올린 회고전(9월 10일까지)의 주인공 장샤오강이 대표적. 혼란한 시대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중국인의 초상을 초현실주의적인 스타일로 화폭에 담아내는데, 특히 가족사진의 형식을 빌린 대가족 연작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가 그린 소녀는 슬픔을 간직한 듯 아련하고 얼굴에는 마치 멍처럼 붉은 얼룩이 있다. 6월 22일 가나아트센터에서 전시를 마치는 또 다른 중국 작가 링지안 역시 인물화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가슴과 엉덩이 등 신체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미녀들의 기이한 초상화는 급변하는 중국 사회의 혼돈과 부조리, 여성에 대한 왜곡된 시선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현존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인물 화가는 누구일까? 천안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강형구와 그의 뮤즈, 마릴린>전(7월 20일까지)을 열고 있는 강형구를 제일 먼저 떠올릴 만하다. 극사실주의 기법으로 시대의 상징적인 아이콘들의 대형 초상화 작업을 선보이는 작가. 돋보기로 확대한 듯 얼굴의 잔주름과 솜털까지 세밀하게 묘사함으로써 그들은 오히려 새로운 성격의 인물로 재탄생된다. 특히 마릴린 먼로는 그에게 가장 많은 영감을 준 뮤즈. 하지만 마릴린 먼로는 시대의 얼굴이 될 수는 있을지언정, 지금 우리의 얼굴이라 할 순 없다. 그리하여 한국의 젊은 여성 작가들이 그려낸 자화상을 만나기 위해 ‘갤러리 위’의 <Adore Me>전(6월 30일까지)을 찾았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얼굴이란 주제에 접근하는 세 여성 작가의 단체전에서 현대 여성의 현실과 고민은 자연스레 공감대를 이룬다. 김지희 작가가 반복해서 그리는 치아 교정기를 낀 채 웃음 짓고 있는 캐릭터, 사진과 조각을 혼합해 작업하는 김민경 작가의 ‘위장’ 시리즈는 생존을 위해 사회적 잣대에 맞춰 살아가는 바로 우리의 얼굴을 닮았다.
 
마지막으로 마주한 또 다른 얼굴은 최근 부산 조현화랑에서 개인전을 마친 이소연 작가의 작품이다. 작가 본인을 모델로 했다는 단발머리에 위로 치켜 올라간 눈을 지닌 캐릭터는 염소를 몰고 다니는 산골 소녀가 되기도 하고, 음산한 하늘 아래 검은 드레스를 입고 서 있기도 한다. 실제로 작가가 찾은 장소들을 배경으로, 직접 느낀 감정들을 색채와 의상, 오브제를 통해 ‘종이 인형 놀이’하듯 연출한다. 전혀 다른 화풍인데도 세계를 여행하며 그림을 그렸던 천경자(두말할 나위 없이 가장 독보적인 여성 인물화를 남긴 작가)가 떠오르기도 했다. 그것은 바로 끈질기게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본 정신이 닮았기 때문일 거다. 인간을 화폭에 담는 것이 ‘전통적인’ 일이 돼버린 시대, 이처럼 오늘날 회화 속의 여성은 르누아르가 그린 여인들처럼 황홀하게 아름답지는 않다. 하지만 그 안에는 현 시대의 모습과 그 안에서 분투하는 진짜 여자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예술가와 관람자 모두에게 그 얼굴을 들여다 보는 일은 변함없이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Credit
- editor 김아름 PHOTO COURTESY OF GALERIE THADDAEUS ROPAC PARIS-SALZBURG
- ARARIO GALLERY
- DAEGU ART MUSEUM
- GANA ART
- GALLERY WE
- JOHYUN GALLERY DESIGN 하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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