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하고 실용적인 스마트 시크 무드 || 엘르코리아 (ELLE KOREA)
FASHION

우아하고 실용적인 스마트 시크 무드

터프하다못해 무섭기까지했던 헤로인 시크 무드에 질린 여자들에게 단비처럼 내려온 스마트 시크 무드는 우아하고 실용적이며 쿨한 긍정의 안식처가 되어줄 것이다.

ELLE BY ELLE 2010.02.11

새로운 계절이 찾아오면 습관처럼 “입을 옷이 없다”며 입을 삐죽 내밀곤 했지만, 여느 때처럼 “어떻게든 그 아이템을 손에 넣고야 말겠어!”라고 외치며 비장한 각오를 다질 만한 옷이 위시 리스트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특정 브랜드를 염두에 두고 아이템을 구비하기보다는, 원하는 디자인과 컬러, 소재를 머릿 속에 그려두고 가격과 품질 대비 가장 이상적인 것을 고르는 쇼핑 습관을 길들이고 있던 터라, 특정 아이템에 ‘꽂힌’게 없는 요즘 같은 시기엔 쇼핑이라는 행위 자체가 심드렁해진다. 옷장엔 지독한 가뭄이 서렸지만, 가격과 피팅감, 그리고 컬러가 꼭 마음에 드는 유니클로 +J 라인의 셔츠를 컬러별로 구매한 것 말고는 단비 같은 쇼핑이 근 몇 달째 없다. 쇼핑 아드레날린이 급격히 감소해 생긴 ‘쇼핑 저혈당(?)’ 증세는 근래 몇 개월간 만나본 패션업에 종사하는 지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과 만나 쇼핑에 대한 수다를 떨다가 결국 발길이 향하는 곳은 유니클로나 갭과 같은 베이식한 아이템이 창궐해 있는 중저가 브랜드 매장이었다. 지난 가을, 2010 S/S 파리 패션 위크를 보고 돌아오면서 이처럼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쇼핑 저혈당증에 시달리게 된 것은 그동안  지나치게 공격적인 옷과 무드에 지배되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몸을 옥죄는 스키니한 실루엣, ‘헤로인 시크’라 불리우는 퀭한 스모키 메이크업과 부스스한 헤어스타일, 엄마의 손에 몇 번이고 버려졌다 구사일생으로 건져낸 늘어나고 구멍난 티셔츠, 무섭다못해 누구라도 해칠 수 있을 것만 같은 징이 박힌 액세서리들…. 그것들이 지난 해 처음 컬렉션에 등장했을 땐, 너나할 것 없이 몸 어느 구석인가에 체인이나 징 하나 달고 있지 않으면 당장 큰일이라도 날 사람처럼 굴었다. 자극적인 것은 결국 더 큰 자극을 불러일으키므로, 공격적이고 파워풀한 무드가 최고에 달했다 싶은 컬렉션이 우후죽순 쏟아져나왔지만, 더 파워풀하고, 더 새로운 것으로 강한 자극을 받고 싶기보단 이제 그만 질려 눈을 질끈 감고 싶어진 것이다. 올봄에도 여전히 ‘강한 여자’의 필수품 같아진 파워숄더가 건재하지만, 클로에, 스텔라 매카트니, 셀린 등의 2010 S/S 컬렉션을 보면서, 누가봐도 예쁘고 사랑스러우며 우아한 여자가 되고 싶은 마음은 트렌드나 계절과는 상관없이-그것도 옆짝꿍과 나의 성별이 다르다는 것을 막 깨닫기 시작한 유치원 시절에도- 언제나 여자를 지배해오던 기본적인 욕망이라는 사실에 새삼스레 고개가 끄덕여졌다. 약 기운 풍기는 로큰롤 무드로 어깨에 힘을 준 배드걸 말고, 우아하고 어여쁜 천상 ‘여자’ 말이다. 균형있고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스텔라 매카트니나 피비필로와 같은 여자 디자이너들을 필두로 이브 생 로랑이나 3.1 필립림 등의 컬렉션에서 선보인 고급스럽고 실용적이며 쿨하기까지한 감성. 이들이 선보인 컬렉션은 옷 자체가 아름다워 보이기보다는, 그 옷을 입은 여자 자체가 예뻐보이도록 하는 옷이라는 데 공통점이 있다. ‘스마트 시크’라 명명하고픈 이 쿨하고 세련된 여성스러운 룩이 (‘핫’이나 ‘트렌드’와 같은 패션계의 흔해빠진 명칭과는 다소 어울리진 않지만) 올봄의 대표적인 키워드로 손꼽히게 된 것은 피비 필로의 컴백에 집중된 패션계의 모든 스포트라이트도 한 몫 거들었다. 가정을 지키고 육아에 힘쓰는 엄마의 역할에 충실하고 싶다는 이유로 클로에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를 훌쩍 떠났던 피비 필로. 그녀가 셀린으로 컴백하며 어떤 것을 보여줄 것인가에 파리는 물론 전 2010 S/S 컬렉션의 가장 큰 이슈라 할 만큼 가히 대단한 관심이 집중되었으니까.


트렌드를 배제하고 각각의 스타일에 집중했다는 피비 필로의 말처럼 그녀가 셀린을 통해 보여준 것은 어떤 트렌드, 어떤 디테일, 어떤 아이템이 아니라 ‘어떤 여자’였다. 그것도 그냥 여자가 아니라 긍정적이고, 좋은 여자. 그녀가 런웨이에 세운 유연한 실루엣과 차분한 컬러의 의상들을 입은 모델들은 보고 있자니, 지난 시즌의 어둡고 음산하며 누구보다 강해야 하는 의무감에 사로잡힌 여자들의 귀에 “밝고 즐거우며 좋은 여자가 되라”고 속삭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클로에에서의 피비 필로와 셀린에서의 그녀가 달라진 것이 있다면, 클로에에서 보여주던 쿨한 엘레강스에 안정된 가정 생활을 누리고 있는 좋은 엄마의 여유 같은 것이 추가된 듯해 보였다. 한번도 비관적인 컬렉션을 선보인 적 없는 스텔라 매카트니 역시 쿨한 엄마의 대표주자로 이와 같은 맥락에서 공통분모를 가졌다. 스텔라 매카트니의 옷에는 어린 시절부터 좋은 옷을 입어본 여자만이 만들 수 있는 드라마와 감성이 있다. 스텔라 매카트니의 옷은 세 아이의 엄마가 되는 동안 더욱 부드럽고 아름다워졌다. 그녀의 옷은 늘아름답지만, 결코 나이보다 어려보이거나 실제 자신의 모습보다 화려해보이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옷을 통해 여유와 긍정을 보여주고자 하는 여자들을 위한 옷이라는 느낌이 더 와닿는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나이를 두려워하거나, 어떻게 보일지를 의도하는 게 아니라, 충분히 즐기며 있는 그대로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는, 그래서 멋지게 나이들어가는 여자들을 위한 옷 말이다. 스텔라 매카트니가 컬렉션 프로그램 노트에 써놓은 글처럼, 요즘 여성들은 힘들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자기 자신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은 그녀의 옷을 보면 단박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지난 몇시즌 동안 트렌드를 지배했던, 거동이 불편할 정도로 쿠튀르적이고, 남자들이 손사레를 칠만큼 터프했던 의상에 질린 여자들이 갈망했던, 입기 편하면서도 우아한 옷. 단순히 트렌드로 그치지 않을 스마트 시크룩은 마치 “그 마음을 다 알고 있어”라고 흐뭇하게 웃는 듯하다. 언제나 한 시즌의 컬렉션이 끝나면 온갖 패스트 패션 브랜드들을 통해 빛의 속도로 카피가 쏟아져 나왔지만, 과연 이번엔 그것이 가능할까? 아니, 그런 옷들로 그 무드를 완벽히 재현해내는 것이 가능할까? 나는 새로이 봄 쇼핑 리스트를 작성함에 앞서 스마트 시크를 위한 스마트 쇼핑으로 방향을 정했다. 우아한 블라우스, 몸의 곡선을 타고 흐르는 듯한 와이드 팬츠, 약간 큰 듯한 테일러드 재킷 등 군더더기 없는 클래식 룩에 도전할 생각이지만 이같은 룩을 위해선 스스로가 긍정적이고 여유있는 마인드를, 또한 운동으로 다져진 몸매를 갖추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을 이번 컬렉션을 다시한번 훑어보며 깨달았다. 겉모습을 흉내낼 수는 있어도 내면을 포장할 순 없다는 것. 이것이 어쩌면 스마트 시크 룩을 위해 가장 먼저 새겨야 할 덕목이자 디자이너들의 궁극적인 메시지가 아닐까?



* 자세한 내용은 엘르걸 본지 2월호를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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