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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맞바꾼 하얀 피부
눈처럼 하얗고 티끌 한 점 없는 피부에 대한 여성들의 집착은 상식을 뛰어넘는다. 납이나 수은이 가득한 회반죽 같은 유독분을 얼굴에 바르고 얼굴이 타들어가는 듯한 따가움을 견디는 건 물론이고 잠자리에 들 때는 기꺼이 얼굴에 돼지가죽을 붙이고 잠들었다. 여자들의 하얀 얼굴에 대한 무모한 애정은 터무니없는 처방을 만들어냈다. 수송아지 발톱과 복사뼈 사이의 뼈를 40일 동안 밤낮없이 달여서 완전히 녹은 것을 아마 천에 싸서 팩을 하거나, 황소똥이나 육지악어 내장의 증류수를 바르는 것은 그나마 봐줄 만하다. 주근깨나 기미가 고민일 때는 뱀 모양의 야생 오이로 문지른 후 그것을 콧구멍에 꽂으면 없어진다는 처방은 어쩌면 좋단 말인가. 예언자로 유명한 노스트라다무스도 <화장과 얼굴을 아름답게 하는 비법 개론>이라는 화장품 제조법에 관한 책을 남겼는데 그 방법이 참 기괴하다. 수은과 은, 주석에 연꽃 물과 단식하면서 모은 가래와 침을 더한다. 그리고 주기도문과 아베마리아를 두 번씩 외치면서 그것들을 섞는다. 주근깨 완화 화장품은 우유에 살모사 한 마리를 으깨어 넣고 증류시켜 만든다(그의 종말 예언도 왠지 신뢰가 가지 않는다). 얼굴의 기미를 없애려면 처녀의 젖이 좋다는 속설도 있었다(대체 처녀의 젖이란 게 가능한 말인가?).
영국 엘리자베스 1세는 얼굴에 약 1.3CM나 되는 두께로 분을 칠했는데 납중독으로 피부에 농포와 균열이 생겼고 이를 감추기 위해 더욱 두껍게 얼굴을 분으로 칠하다가 결국 궁전 내 거울을 모두 없애버리기까지 했다. 동시대에 활동했던 셰익스피어는 자신의 희곡에 화장을 페인팅이라고 표현하면서 하얀 분칠에 열을 올리는 여성들을 조롱했다. ‘너희 여자들은 비가 오면 외출하지 못한다. 얼굴에 칠한 것들이 씻겨나가면 큰일이니까.”
17세기의 여자들은 송아지 육수로 목욕하기, 백합꽃 증류수 바르기, 외출 시 복면을 써서 얼굴 보호하기와 더불어 유독성 금속 산화물 덩어리인 분을 처덕처덕 발라댔다. 덕분에 남성들은 데이트 후 옷에 묻은 흰가루를 털어내기에 바빴다. 파리 여성들은 검은 점을 얼굴에 붙여 흰 피부를 더욱 돋보이게 했는데 점의 이름은 무슈(파리)였다. 수은, 납을 사용한 분을 사용한 여자들은 피부에 무시무시한 화상 자국과 검게 변색된 치아, 원숭이처럼 쭈글쭈글한 피부를 가진 채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더욱 엽기적인 것은 화장품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분칠’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거다. 1760년에 납 중독으로 27세에 죽은 영국 코벤트리 백작 부인처럼 납가루와 비소를 섞은 분으로 유령처럼 창백한 화장을 고집하며 죽어가는 여성들이 속출했다.
19세기 낭만주의 시대에는 창백하고 수척한 외모와 사소한 충격에도 혼절하는 가련한 여성이 미인으로 추앙받았다. 때문에 여자들은 언제라도 정신을 잃을 수 있도록 연습했고 갸날픈 겉모습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관자놀이와 목, 가슴, 어깨 부분에 푸른 핏줄을 그려넣기까지 했다. 결핵 환자처럼 창백해 보이기 위해 벨라돈나 풀에서 추출한 마약을 먹거나 설치류의 분비물로 만든 미용 마스크, 젖먹이 아기의 소변으로 만든 로션과 신선한 인분(!)의 증기를 쐰 헝겊 마스크 등을 사용했고 꿈꾸는 듯한 인상을 주기 위해 동공을 확장시키는 아트로핀을 복용했다. 퇴폐적인 눈매를 얻기 위해 밤늦게까지 책을 읽어 눈밑에 기미를 만들기도 했다.
하얀 피부는 권력이다
그렇다면 왜 죽음을 불사하면서까지 하얀 피부에 대한 집착한 걸까? <치장의 역사> 저자 베아트리스 퐁타넬은 예부터 하얀 피부는 일을 하지 않는 높은 신분의 여성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햇빛 한 번 보지 않은 듯한 피부는 노동과는 거리가 먼 고귀함과 유복함을 상징한다는 거다.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 회화에 등장하는 귀족층 처녀와 귀부인들의 피부는 도자기처럼 매끄럽고 환했다. 그녀들은 흰 피부에 푸른 핏줄을 그려넣으면서까지 고귀한 창백함을 ‘과시’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여서 환한 보름달 같은 피부는 사대부 여성들이나 가질 수 있는 특권이었다.
게다가 최고급 파우더를 사용하거나 피부를 가꿔주는 화장품을 사용하는 것은 부와 권력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네로 황제의 아내 포파에아 사비나의 사치스러운 뷰티 케어를 예를 들어보자. 그녀는 얼굴의 주름을 없애고 피부를 더욱 민감하게 만들어 하얀 살결을 유지해준다는 나귀젖으로 피부를 가꿨는데 하루에 7백 번이나 나귀젖으로 세수를 하고 여행을 할 때마다 암나귀를 50마리씩 데리고 다니며 목욕을 했다. 드라마 <추노>에서 이다해가 노비 주제에 ‘우유 빛깔’ 피부인 건 말도 안 된다는 이야기다.
해마다 화이트닝 케어 제품의 판매가 최고조를 기록하는 인도 여성들의 흰 피부에 대한 사랑에 대해 <인도 리포트>의 저자 가도쿠라 다카시는 역사적인 배경을 들어 설명한다. 고대 인도 시대, 아리아 민족이 토착 원주민 드라비다인을 지배하면서 ‘바르나 제도’라는 신분 제도를 만들었다. 지금까지 존재하는 카스트 제도의 기초가 되는 이 제도 안에서 상위 신분은 하얀 피부를 지닌 북방의 아리아족이었고 하위층이었던 드라비다인은 피부색이 가무잡잡하고 얼굴이 편평했다. 애당초 바르나라는 단어에 색깔이라는 말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피부색에 따른 신분 제도였던 셈이다. 이렇다보니 하얀 피부가 높은 신분의 상징처럼 여겨진 것이다. 결혼의 대부분이 신문에 구혼 광고를 내어 맞선을 보는 방식으로 이뤄지는 현대 인도에서도 프로필에 자신의 피부가 어떤 색인지 기재해야 한다. 피부가 하얗다면 귀티 나는 미녀로 여겨져 배우자 감으로 플러스 요인이 되는 셈.
페로몬보다 강력한 창백함
동서양을 막론하고 하얀 피부는 미인의 선결 조건이었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에서는 여성의 아름다움의 조건을 자그마치 일곱 가지 항목으로 나눴는데 그 중 하나가 ‘얼굴이나 피부가 하얗거나 장밋빛일 것’이었다. 이상적인 미녀의 살결은 희고 수정처럼 투명한 나머지 포도주를 마시면 그것이 목구멍을 넘어가는 것까지 보여야 했단다. 때문에 검은 벨벳으로 된 가는 리본을 이마에 늘어뜨려 최대한 피부가 하얗게 보이는 스타일링이 유행했다. 프랑스 앙리4세의 부인이었던 마그리트 왕비는 블랙 타프타 침구에 누운 채로 정부들을 유혹하는 궁극의 스킬로 유명했다. 남자들이 흑과 백의 극명한 대비에 혼이 나가 이 여자 없이는 살 수 없다고 다짐했다나? 전통적으로 눈처럼 새하얀 피부를 제일로 여기는 일본의 경우 ‘하얀 얼굴이 여자의 일곱 가지 결점을 가려준다.’는 속담도 있을 정도다. 조선시대에 하얀 분은 기생들의 전유물이어서 사대부 여성들은 이를 천대했다. 하지만, 창백한 피부로 남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기생들을 따라 분을 바르는 여성들도 꽤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원체 피부색이 검은 고대 이집트와 누비아족 남성들도 피부색이 환한 여인을 동경했다고 한다.
1874년 다윈의 기록에 따르면 아프리카 남부에 거주하는 반야이족은 ‘우윳빛 혹은 커피색’ 피부를 지닌 여성을 미인으로 여겼다고 한다. <화장의 역사>를 쓴 하루야마 유키오는 남성들이 매끄럽고 잡티 없는 피부의 여성을 선호하는 것은 생물학적 본능이라고 설명한다. 사마귀, 종기, 점, 상처 등이 없는 매끈한 피부에는 기생충이 서식하거나 각종 병균이 침입하기 어렵다. 즉 건강한 피부가 건강한 면역 체계와 건강한 유전자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피부, 건강한 피부, 싱싱한 피부의 여성이 자신의 후손을 낳아줄 건강한 배우자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낀다는 이야기다. 한의학에서도 혈색이 좋은 피부 미인이 오장육부가 건강하다는 뜻임을 강조한다. <동의보감>에는 얼굴에 나타는 다섯 가지 빛이 오장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와 얼굴 안색으로 병의 예후를 판단하는 내용이 언급돼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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